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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2000년 중소기업大賞 수상 31개 기업 지금은

[Inside] 2000년 중소기업大賞 수상 31개 기업 지금은



2000년 12월 말, 31개 중소기업이 ‘제10회 중소기업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중소기업대상(중소기업진흥공단 주최)’은 당시 중소기업 대상의 가장 권위 있는 상이었다.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중소기업청장상 등을 받은 곳은 전도유망한 기업으로 인정 받았다. 12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어떤 모습일까.
부산 강서구에 위치한 하이록코리아는 산업용 밸브와 피팅(관이음세) 전문 제조업체다. 1977년 설립된 이 회사는 2000년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주최한 ‘제10회 중소기업대상’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하이록코리아는 전형적인 중소기업이었다. 2000년 매출은 363억원, 직원은 219명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하이록코리아는 어엿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코스닥 상장사인 하이록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1428억원. 12년 전에 비해 440% 늘었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18%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직원도 많이 늘었다.

현재 직원 수는 500명을 조금 넘는다. 모두 정규직이다. 이 회사는 달콤한 중소기업 혜택을 계속 받기 위해 계열사를 마구 늘리거나, 기업을 분할하지도 않았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우물을 팠고 꾸준히 성장했다.

하이록코리아를 포함해 2000년 중소기업대상을 받은 중소기업은 31곳이다. 수상 당시 31개사의 업력은 평균 15.4년이었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창업 후 10년 동안 생존할 확률은 25% 정도다. 네 곳 중 한 곳만이 10년 동안 기업을 유지한다는 얘기다. 당시 수상기업은 그만큼 생존력이 있고, 전도유망한 기업이었다.

본지 취재 결과 31개 기업 중 중소기업을 졸업하고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곳은 하이록코리아와 절삭공구 전문업체인 와이지원, 제약회사인 동국제약 3곳이었다. 6곳은 부도 등으로 폐업했다. 사라진 기업 중에는 2000년 당시 매출이 300억~400억원이던 곳도 있었다.



기업 규모 커지며 일자리 많이 늘어3곳은 대기업 계열사로 편입되거나, 외국계 기업에 흡수됐다. 주방용 후드로 이름을 날리던 하츠(옛 한강상사)는 2008년 벽산그룹 계열사로 편입됐다. 한국과 일본 합작회사였던 동우화인켐은 현재 일본 스미모토화학이 지분 100%를 보유한 외국계 기업으로 바뀌었다. 2000년 매출이 918억원이었던 동우화인켐은 2010년 매출이 2조2500억원에 달하는 대형 기업이 됐다. 산업용 특수가스 제조업체인 대한특수가스는 2006년 미국 에어프로덕트의 한국법인에 흡수 통합됐다.

나머지 19개 기업은 여전히 중소기업이다. 이들 기업의 2012년 현재 업력은 평균 26.5년이었다. 이 중 7곳은 설립한 지 30년이 넘었다. 19개 중소기업 중 6곳은 12년 전보다 매출이 오히려 줄었다.

이들 31개 기업이 중소기업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들의 성장경로를 살펴보면 의미 있는 메시지를 찾아낼 수 있다. 예컨대 매출이 늘어도 중소기업에 오래 머물러 있는 한 일자리 창출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 기업은 중소기업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직원을 300명 미만으로 유지하고, 대신 계열사를 늘리는 모습도 보였다. 이와 관련 최근 한 민간경제연구소 소장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국경제에 닥친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중소·중견기업에서 고용이 늘지 않는 것이다. 고용의 8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는 상황에서 성장과 복지를 얘기할 수는 없다. 우리 중소기업은 그동안 해외에 공장을 세우고 계열법인을 늘리면서 국내에서는 고용을 하지 않았다. 회사가 성장해도 고용을 늘리지 않는 현상을 냉정하게 봐야할 때다.”

이번 본지 조사에서도 그런 현상이 뚜렷했다. 중견기업 지위에 오른 곳은 상대적으로 일자리가 많이 늘었다. 2000년 중진공 이사장상을 받은 동국제약은 당시 매출이 320억원이던 조그만 제약회사였다. 하지만 1978년 첫 발매한 구강질환치료제 인사돌이 꾸준히 팔리고, 이후 마데카솔연고와 오라메디연고가 히트하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지난해 매출은 1616억원. 2006년 직원이 300명을 넘으면서(매출은 780억원) 중소기업 졸업 요건을 갖춘 이 회사는 중소기업 유예기간을 거쳐 2009년 중견기업 반열에 올랐다. 지난해 9월 기준 직원은 483명이다.

인천에 본사가 있는 와이지원 역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모범 사례다. 절삭공구 제조업체인 이 회사는 1981년 설립됐다. 2000년 매출은 614억원, 직원은 595명에 달했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중소기업이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2559억원, 직원 1030명을 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절삭공구 분야 한 우물만 판 와이지원의 주력 제품인 엔드밀은 세계시장 점유율 1위다.

중소기업 졸업을 눈 앞에 둔 기업도 있다. 광학필름을 제조하는 상보(옛 상보화학)다. 1977년 설립된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1820억원, 순이익 72억원을 올렸다. 2000년 매출은 358억원이었다. 계열사가 한 곳도 없는 상보의 현재 직원은 311명이다. 중소기업 졸업 요건을 갖췄다. 상보는 3년간의 중소기업 유예기간이 지나면, 160가지나 되는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이 회사는 중소기업에 머물 생각이 없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한국전기연구원으로부터 이전받은 기술로 향후 5년간 6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중소기업 머문 19곳 평균 업력 26.5년반면, 매출은 대폭 늘었는데 직원 수는 거의 늘지 않은 중소기업도 많았다. KB오토시스(옛 한국베랄)는 자동차 부품인 브레이크 패드 등을 만드는 업체다. 1985년 설립된 이 회사는 국내외 유수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납품한다. 회사는 많이 컸다. 2000년 294억원이던 매출은 2011년 1116억원으로 늘었다. 덩치는 커졌지만, 국내 일자리 창출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생산성이 증가한 이유가 있겠지만, 매출이 네 배로 늘어난 지난 12년간 직원 수는 40여 명만 늘었다. 이 회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말 직원 수는 211명이었다. 2011년 9월 말 현재 직원 수는 249명이다.

2000년 중소기업대상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은 에이텍의 당시 매출은 443억원이었다. LCD모니터·TV를 제조하던 이 회사는 매출이 꾸준히 올라 2005년 1000억원을 돌파했다. 이후 2007년 매출이 500억원 대로 떨어졌지만 교통카드솔루션 개발에 성공하며 지난해 매출 1111억원을 올렸다. 순이익은 65억원이었다. 하지만 이 회사는 여전히 중소기업이다. 2000년 205명이던 직원은 현재(2011년 9월 말 기준) 260명이다. 대신 4개의 계열회사가 있다. 9개 타법인출자 회사의 총자산은 4740억원이다.

석유스토브로 유명한 파세코 역시 2000년 직원이 350명이었지만, 지난해 말 기준으로는 280명이다. 이 회사의 매출은 2000년 823억원에서 2010년 1035억원으로 늘었다. 선박부품업체인 삼공사도 비슷하다. 지난 12년 사이 매출은 467억원에서 1143억원으로 늘었지만, 이 회사의 상시근로자는 2010년 말 기준 150여 명이다.

잘나가던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흡수합병되면서 오히려 성장이 멈춘 곳도 있다. 주방용 후드 전문업체인 하츠다. 1988년 설립된 이 회사는 1990년대 후반 주방용 후드로 업계에 돌풍을 일으키며 시장 점유율 1위로 올랐다. 하지만 창업주가 건강 악화를 이유로 2008년 4월 벽산그룹에 지분을 넘겼다. 2007년 이 회사의 매출은 770억원. 하지만 지난해 매출은 667억원으로 줄었다. 근로자 수는 12년간 거의 변하지 않았다. 2011년 9월 기준으로 하츠 소속 직원은 207명이다. 벽산그룹에 인수되기 전 이 회사 창업주는 한 언론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중소기업이라는 태생적 이유로 신입사원이나 경력사원 등 우수 인력을 유치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많은 중소기업의 고민인데, 하츠는 대기업 계열사가 됐지만 성장은 오히려 정체됐다.

상호출자 제한기업인 희성그룹 계열사지만, 중소기업으로 분류되는 희성정밀은 2000년 매출 811억원, 2006년 1714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룹 차원에서 핵심 사업을 다른 계열회사로 넘기면서 2010년 매출은 518억원으로 줄었다. 이 회사 상시근로자는 90여 명이다.



일자리 늘리는 기업 지원해야제10회 중소기업대상에서 최고 영예인 대통령상을 받은 케어라인은 역성장했다. 당시 이 회사의 수상 이유는 이랬다. ‘전동스쿠터에 대한 독자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해 높은 대외 경쟁력을 갖췄다. 이를 바탕으로 매출액의 88% 이상인 173억원을 세계 16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케어라인은 휠라코리아 윤윤수 회장이 1984년 창업한 회사다. 수상 당시 매출은 252억원. 케어라인은 2007년 휠라코리아가 휠라 본사를 인수하기 위해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릴 때 보증을 서고, 휠라코리아 지분을 담보로 제공했다. 하지만 케어라인은 여전히 중소기업이다. 2010년 매출은 92억원, 영업이익은 1억을 조금 넘었다.

한때 촉망받다 지금은 사라진 기업은 6곳이었다. 남북경제협력사업 전도사로 불리던 유영완씨가 설립한 아이엠알아이는 2000년 수상 당시 매출 427원을 올린 유망기업이었다. 매출의 95%는 수출에서 나왔다. 이 회사는 2002년 기업공개(IPO) 당시 공모주 청약 경쟁률이 570대 1에 달할 만큼 주목 받았다. 하지만 회사는 과잉 투자에 따른 유동성 악화로 휘청거렸다. 결국 회사는 2004년 2월 단돈 2억원에 경영권이 팔렸고, 그해 3월 상장폐지됐다. 해상조난안전시스템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자랑했던 사라콤은 한때 매출 350억원을 올리며 세계 4대 해양통신 장비업체로 성장했다. 2000년 중소기업대상 수상 당시 근로자 수는 140여 명. 그해 코스닥에도 상장했다. 하지만 2008년 2월 다른 기업에 인수된 뒤, 무리한 사업확장과 통화옵션거래 손실 여파로 2008년 말 부도가 났다.

1988년 설립돼 광통신용 반도체 소재 분야에서 이름을 떨치던 나리지온은 2007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후 2009년 일본계기업인 한국고덴시에 합병됐다.

국내 대형 가전회사에 TV 브라운관용 특수코팅제 등을 납품하던 일동화학(현 이그잭스)은 2002년 코스닥에 상장했지만, 이후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들면서 위기를 맞았다. 2004년 이후 최대주주와 상호가 각각 다섯 번 바뀐 이 회사는 최근 4년 연속 적자를 봤다. 2000년 중소기업대상에서 지역개발 분야 수상을 한 두남(경남 김해 소재)은 불과 2년 후 산사태가 공장을 덮치면서 재기하지 못하고 2002년 부도를 맞았다.

이렇듯 중소기업의 성장 경로는 제각각이다.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보호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잘 성장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는 데 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중소기업에 머물며 달콤한 혜택에 안주하는 기업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작은 것은 아름답지 않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오랫동안 사업을 해온 성숙한 중소기업은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한 신생 기업과 마찬가지로 일자리를 파괴한다. 정책 당국자는 기업의 크기에 신경 쓸 게 아니라 성장을 지향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사랑받는 건 대기업보다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그냥 중소기업이 아니라 전적으로 신생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에 보조금을 퍼주고, 보호하는 규제를 만드는 대신 정부는 성장의 장애물을 없애는 데 집중해야 한다.”



김태윤 이코노미스트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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