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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자연주의자들의 천국

[Travel] 자연주의자들의 천국

비에케스섬은 135㎢의 작은 섬이다. 푸에르토리코 본토에서 불과 12.9km 떨어져 있다. 구식 페리 서비스나 빠른 프로펠러 비행기로만 접근이 가능하다. 비행기는 푸에르토리코 수도 산후안, 버진아일랜드 세인트크로이섬 또는 세인트토마스섬에서 출발한다. 카리브해 전역에서 과거 때묻지 않은 순결함을 자랑하던 해변들이 붕어빵을 찍어내는 듯한 과잉개발(cookie-cutter over-development)로 망가졌지만 비에케스는 본토와 바다로 갈라진 덕분에 그런 난개발을 면했다.

대신 비에케스는 험준한 산악지대의 고요한 절경, 야생마 무리, 기이하게 스스로 빛을 발하는 만(bioluminescent bays)을 자랑한다. 가장 흥미를 끄는 점은 갈수록 세련미를 더해가는 예술, 건축, 디자인계의 모습이다. 2010년 개장한 W 비에케스 휴양지&스파는 157개 객실을, 인근의 작은 마을 에스페란자의 말레콘 하우스는 현대적 디자인의 객실을 10개 들여놓았다. 이런 신축 구조물들이 들어서면서 섬이 더 유명해졌다.

그러나 스타일 면에서 비에케스의 진정한 핵심은 개발자이자 설계자의 이름을 딴 힉스 아일랜드 하우스다. 15년 전에 세워진 ‘극단적인 친환경’ 산정 별장(hilltop retreat)이다. 이 별장의 개발자는 건축가이자 에코 디자인을 고집하는 존 힉스다.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나 비에케스와 토론토를 오가며 생활하는 힉스는 형태보다 기능을 우선하는 철학(a form-follows-function philosophy)을 철저히 따른다. 바우하우스 설립자 월터 그로피우스로부터 힉스의 담당교수였던 루이스 칸에 이르는 이상주의자들과 상당히 흡사하다. 그의 철학은 건물 디자인뿐 아니라 그 건물에서의 생활에까지 적용된다. 5.3ha의 면적에 객실 13개를 들인 힉스의 호텔은 ‘벙커’ 같으며 강화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그가 비에케스에 지은 몇몇 개인 빌라들처럼 금방 눈에 띈다. 각진 기둥, 바다로 이어진 듯한 수영장(infinity-edge pools), 기존 유리창 대신 강철 방호문을 끼워넣은 창문 때문이다.

힉스는 “비에케스 현지인들이 집 짓는 모습을 보고 섬 특유의 기후조건에 대처하면서 건물을 아름답게 세우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비에케스는 1940년부터 63년 동안 미군 점령하에 있었다. “제대로 설계하면 이 건물들은 에너지 수요가 줄고 인공냉방이 필요하지 않으며 완전히 태양광으로만 전력충당이 가능하다.”

힉스의 철학은 비에케스와 잘 맞아떨어진다. 이 섬의 온후한 무역풍, 아열대 기온(semitropical temperatures), 변화무쌍한 지형은 영감을 주면서 동시에 실용적이다. 원조 힉스 아일랜드 하우스의 넓고 높은 방들은 태양광으로 동력을 공급하며 끊임없이 부는 미풍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배치됐다. 에어컨 시설보다 미학을 중시하는 디자인 제일주의자들은 모더니즘 가구와 옥외 요가 스튜디오에 끌려 이곳을 다시 찾는다. 산업디자인 업체 마리메코 섬유 디자이너 출신의 도나 고먼 같은 단골 고객들은 힉스의 매혹적인 친환경 디자인에 반해 자신의 개인 빌라 건축도 그에게 맡겼다. 현재 힉스가 설계한 몇몇 주택은 주 또는 일 단위로 임대할 수 있다(1박에 175~310달러).

“그 호텔은 글로벌하고 흥미로운 부류들을 끌어들인다”고 현재는 개인 디자인 컨설턴트로 일하는 고먼이 말했다. 비에케스에 있는 그녀의 침실 두 개짜리 빌라를 힉스가 설계했다. “그는 카리브해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연출하는 건축가는 아니다”고 그녀가 말했다. “그의 작품은 대중적인 스타일은 분명 아니다.”

힉스의 최신 작품인 방 여섯 개짜리 카사 솔라리스는 그의 건축물 중 가장 대중성과 거리가 먼 듯하다. 카리브해 연안 지역 최초의 100% ‘자가발전형(off-grid)’ 호텔이다. 석유와 가스를 전혀 쓰지 않아 오염이 없다. 그러면서도 빳빳한 프레테 리넨 시트, 분위기가 사는 데돈 가구, 그리고 최소 90㎡ 이상의 아파트형 객실로 고급스럽게 꾸몄다. 원조 힉스 아일랜드 하우스와 마찬가지로 지붕에 태양전지판을 설치한 카사 솔라리스는 냉방은 풍력으로, 야외 샤워장 온수는 태양열로 그리고 갓 구워낸 아침 식빵은 힉스 부인이 공급한다. 하지만 힉스는 자급자족 개념을 확대해 물을 낭비하지 않는 설비, 강화 퇴비화 시스템(enhanced composting systems), 외부전력사용 제로까지 포함했다. 분명 고급 부티크 호텔은 아니다. 그러나 기분 좋게 지내며 좋은 일도 한다는 사실을 잘 아는 고객들은 개의치 않는 듯하다. 오히려 발전기보다 섬에 부는 바람이 더 신뢰할 만한 경우가 많아 실제로 그들이 비에케스에서 가장 시원하게 지낼지도 모른다.

힉스는 “섬의 다른 지역에 전기가 나간다고 해도 이곳 조명은 여전히 반짝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비에케스와 바하마 군도에서 더 많은 빌라를 짓고 있다. “1960년대 외부전력을 사용하지 않는 자가발전형 설계를 처음 시도했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디자인이 실용화되는 걸 보니 큰 보람을 느낀다.”

[필자는 뉴욕에서 거주하는 작가다.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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