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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성 교수가 만난 예술경영 CEO (5) -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서용성 교수가 만난 예술경영 CEO (5) -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KB국민은행은 서민을 위한 은행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1년 반 만에 젊은층이 선호하는 은행이라는 이미지를 더한 데는 어윤대(67) 회장의 문화예술 사랑이 크게 작용했다. 고려대 총장, 국가브랜드위원장, 금융지주 회장이라는 서로 다른 직책에서 역시 문화예술이라는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었다.

2월 16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명동 KB금융지주 회장실에서 어윤대 회장을 만났다. 조금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적극적으로 문화와 경영의 접목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색다르게 인터뷰는 어 회장의 질문으로 시작됐다.



어윤대 서 교수가 있는 한양대 사회교육원은 교수님이 몇 분인가요?



서용성 정교수가 2명이고 겸임교수가 있습니다.



어윤대 수강생이 많겠네요.



서용성 각 과정마다 수강생이 60여 명입니다. 점점 느는 추세죠.



어윤대 제가 대학 총장을 해봐서 좀 압니다. 힘들지만 수업을 확장해 나가야죠. 그런데 서 교수는 성악을 공부하다 왜 예술경영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서용성 독일 오페라하우스에서 활동하던 중 사고로 성악을 그만두게 됐어요. 이후 문화와 기업의 연관성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이 분야에서 한국과 선진국은 차이가 확연합니다. 문화예술 마케팅이라는 분야가 낯선 것만 봐도 그렇죠.



어윤대 예, 이제 막 시작하는 수준이지요.



서용성 성악 전공 얘기를 하시니 예전 콩쿠르에서 정복주 교수님을 뵌 기억이 납니다. ‘성악은 꾸준하고 성실하게 해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문화예술 경영에서 부인의 영향을 많이 받으시나요?



어윤대 하하, 평생 반려자인데 영향을 안 받는 게 이상하죠.

어 회장은 미국 유학 시절 정복주(64) 이화여대 음대 교수를 만나 1년 만에 결혼했다. 정 교수는 국내 성악 분야 1호 박사로 어 회장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은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이라고 애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성악가 정복주의 남편




어윤대 실제로 아내를 만나기 전에는 음악을 잘 몰랐어요. 같이 있는 시간이 많으니 자연히 관심이 생겼고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문화의 중요성을 인지하게 됐습니다. 요즘 경영학에서 문화와 접목이 트렌드라고 하죠. 문화의 창조성도 중요하지만 현대인은 여유 있는 삶을 원합니다. 기업이 문화예술 활동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서용성 특히 금융회사의 문화계 지원이 활발하지요?



어윤대 그렇습니다. 독일 도이치방크는 수 십 년 동안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매년 베르비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열어 젊은 음악가들에게 기회를 줍니다. 국내에서도 하나은행이 서울시립교향악단을 후원하고 있지요.



서용성 KB금융은 어떤 지원을 하고 있나요?



어윤대 대표적으로 국립극장에 청소년 전용 극장인 KB국민은행청소년하늘극장을 개관했습니다. 공공 공연장에 민간 기업 이름을 붙인 국내 첫 극장이라는데 의의가 있어요. 청소년공연예술제, 청소년예술캠프를 후원해 매년 1만 8000여 명 청소년에게 문화 체험 기회를 제공합니다.



서용성 2000년대 들어 많은 기업이 예술을 후원하지만 형식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어윤대 유명 오페라단을 하루 초청하는데 상식을 벗어난 진행비를 쓰는 맹목적 지원은 문제가 있지요. 거꾸로 생각하면 누군가는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한국에서 최고 수준의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니 필요한 일이긴 하죠. 가장 큰 문제는 ‘초대권 문화’인 것 같아요. 한국에서 큰 공연을 돈을 내고 보는 사람이 많지 않거든요.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어요. 고려대 총장 때 아내가 음악회를 했습니다. 아내는 10년 전부터 초대권을 없애고 표를 산 사람만 공연을 볼 수 있게 했어요. 공연 당일에 친한 사람들과 같이 갔더니 홀의 절반이 비었는데 표가 없더군요. 극단적인 사례지만 이런 문화를 바꿔나가야죠.



서용성 극단적이지만 현실적입니다.



어윤대 아내는 성악 박사 1호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평생 개인 레슨 한번 한 적이 없습니다. 학생들 가르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을 보면 존경스러워요. 아마 서 교수께 ‘꾸준히 하라’고 말한 것도 예술은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는 지론을 전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서용성 정 교수님 같은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기업이 노력할 일이 있을 텐데요. 기업은 잘못된 문화를 바꾸는데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어윤대 작은 일부터 해야죠. KB금융은 고가의 공연에 고객을 초청할 때 무조건 표를 뿌리지 않습니다. VIP라고 모두 음악을 즐기는 건 아니니까요. 가능하면 미리 참석 의사를 물어 오겠다는 고객에게만 표를 보냅니다. 또 공연장에 따로 부스를 설치해 공연 당일 직접 표를 받을 수 있게 합니다. 표 한 장에 50만원씩 하는데 받고서 안 오면 아깝지 않습니까.



한국 기업 후원활동 관행성 짙어




서용성 외국 기업들은 감성이 아닌 전략으로 후원활동을 합니다. 후원효과를 철저히 분석하죠. KB금융은 문화예술 후원활동에 어떤 전략이 있습니까.



어윤대 기업이 전략적이라는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전략적이기보다 관행적 성격이 짙습니다. 다만 제가 KB금융을 맡은 후 문화예술 후원에서 달라진 게 있다면 국제적 실력을 갖춘 음악가를 지원한다는 것입니다. 사적 네트워크로 지원하는 것은 절대금지입니다. 아주 기본적인 문제죠. 또 외국의 유명 기업 CEO들은 문화예술계 직책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국내에서는 이운형 세아제강 회장이 국립오페라단 이사장직을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에게 넘기고 후원회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죠. 최근 기업가 사이에 예술 애호가들이 급속히 늘고 있어요. 아주 좋은 현상이라고 봅니다.



서용성 문화예술 경영을 강연하는 저에게도 반가운 소식이네요(웃음).



어윤대 제가 그 분야에 관심이 많아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CEO 문화예술 과정이 제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것 아세요?



서용성 아, 그랬군요. 이제 보니 문화예술 쪽에서 참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2007~2008년에 예술의 전당 사외이사를 맡으셨죠.



어윤대 예술을 경영과 어떻게 연계할지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예술의 전당 주 출입구인 지하 1층에 레스토랑과 카페를 입점하자는 의견을 냈어요. 지금 ‘비타민 스테이션’이라는 이름으로 관객들에게 친숙하죠. 덕분에 예술의 전당 브랜드 이미지가 한층 높아졌다고 하더군요. 지난해 개관한 챔버홀과 IBK의 인연도 제가 있을 때 시작됐습니다. 예술인들에게 생소한 경영이나 관리 부문에 도움이 된 것 같아 뿌듯합니다. 지금도 관심이 많아요.



서용성 혹시 제의가 들어온다면….



어윤대 에이,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러면 노욕이죠. 명예직으로 펀드레이징(fundraising)이나 인재 육성을 돕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고대·한예종 자매결연 가장 잘한 일




서용성 고려대 총장 시절에도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으셨습니까.



어윤대 지금 생각하면 가장 뿌듯한 일 중 하나를 했죠. 고대에서 줄곧 예술대학을 만들자는 얘기가 있었어요. 최고 수준으로 하려면 예산이 수백억원이 들거든요. 그래서 예술대학을 신설하는 대신 한예종과 자매결연을 맺었습니다. 하버드 대학이 음악으로 유명하진 않잖아요. 고대 인문대 교수가 한예종 학생들에게 철학·역사를 강의하고 한예종 학생들이 고대에 와서 발레나 오케스트라 공연을 했습니다. 학생들의 반응이 열광적이었어요. 한예종 학생과 교직원에게 도서관 이용, 고려대병원 할인 같은 혜택을 똑같이 줬습니다.



서용성 고대에 한예종의 문화예술을 그대로 옮겨 온 셈이군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나요?



어윤대 아쉽게도 지금은 잘 되지 않고 있어요.



서용성: 국가브랜드위원장 재임 시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데 문화예술이 가장 호소력 있고 효과적 수단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이런 철학을 경영에도 접목하고 있습니까.



어윤대 물론이죠. KB금융의 락스타 지점을 들어보셨습니까. ‘즐거울 락(樂)’ 자를 써서 대학교 앞에 학생들을 위한 지점을 만들었어요. 전국에 41개 락스타존이 있습니다. 지난해 락스타존에 홍대 인디밴드를 초청해 미니 콘서트를 열었어요. 은행 지점 안에서 공연을 한 것은 국내 최초일 겁니다. 음악대학이 있는 락스타존에서는 클래식 전공 학생들에게 공연할 장소를 제공했어요. 관객은 지점 앞을 지나가는 학생들이고요.

KB금융은 파격 마케팅을 실적으로 이어갔다. 대학생 전용상품인 락스타 통장은 지난해 11월 15일 기준 20만 계좌를 돌파했다.



서용성 ‘문화와 경영의 접목’이라는 경영철학을 실천하고 계시네요.



어윤대 그뿐만이 아닙니다. KB투자증권의 광고 모델이 누군지 아세요.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대표입니다. 소녀시대, 동방신기도 출연하죠. 가수 바비킴이 랩을 하는 KB국민은행 광고도 인기입니다. 지난해 12월에는 홍대 앞 공연장에서 ‘나도 랩퍼다’ 경연대회를 열었습니다. 282개 팀이 참가했어요. 민병덕 KB국민은행장이 깜짝 랩을 선보이기도 했죠.



서용성 이런 활동으로 기업이 얻는 효과는 무엇입니까.



어윤대 고객 충성도가 높아집니다. 쉽게 말해 KB금융에 애정을 갖게 되죠. KB국민은행은 그 동안 주부나 중소기업이 좋아하는 친절한 은행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어요. 요즘은 대학생이 가장 좋아하는 은행으로 꼽힙니다.



서용성 독일에서는 대학생이 학생증을 제시하면 고가의 공연을 저렴한 가격에 볼 수 있습니다. 사회 소외계층이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돼 있고요. 한국은 아직 이런 시스템이 활성화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윤대 소외계층에 대한 노력은 많이 하죠. KB금융도 공연 표의 10%를 보육원 같은 사회시설에 보냅니다. KB뿐 아니라 많은 기업과 기관이 비슷한 지원활동을 하고 있어요. 문제는 대학생 지원입니다. 제가 그 문제를 깊게 고민했어요. 왜 한국은 안될까. 독일은 대학 수가 적잖아요. 좋은 음악회도 자주 열리고요. 한국은 서울에만 대학이 50여 개인데 공연은 많지 않죠. 뜻은 좋은데 현실적 문제가 있습니다.



서용성 문화 수준의 차이도 있겠지요.



어윤대 맞습니다. 서양 음악은 200년 전통을 자랑하지만 한국은 길어야 30년입니다. 그래도 삶의 가치를 중시하면서 문화 수준이 높아졌어요. 악보를 들고 심포니를 들으러 오는 학생들이 많아요. 이운형 회장은 오페라 관람 전 비디오를 두 번이나 본답니다.



故 박성용 금호 명예회장은 순수했던 분




서용성 국내에서 문화 지원을 대표하는 인물로 고(故)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을 첫 손에 꼽습니다. 혹시 생전에 기억에 남는 일이 있습니까.



어윤대 그분이…. 참 예술을 좋아하셨어요. 큰 음악회나 작은 음악회나 항상 기립박수를 치시고…. 그만큼 순수하셨어요. 아내가 음악을 하니 뵐 기회가 많았죠. 음악회 표를 보내주셔서 가보면 항상 회장님 옆자리였어요. 회장님이 초대 이사장을 지낸 통영국제음악제도 두 번이나 같이 가서 봤습니다. 또 회장님이 경제학을 전공해서 학문적으로도 잘 통했어요.

어 회장은 “자화자찬”이라고 미리 밝히고 “예술을 잘 모르면서 나만큼 관심을 갖고 문화예술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라며 웃었다.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어 회장에게서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이 듬뿍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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