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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손일선 태평염전 회장 - 염전의 아들 ‘소금왕’ 꿈꾸다

[CEO] 손일선 태평염전 회장 - 염전의 아들 ‘소금왕’ 꿈꾸다

아버지는 자수성가했다. 고학으로 학업을 마치고 무일푼으로 서울에 왔다. 1958년 모 국립병원 원무과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5년 동안 단 한푼도 쓰지 않고 저축을 했다. 잠은 친구집에서 잤다. 삼시세끼를 병원에서 먹었다. 차비를 아끼기 위해 걸어서 출퇴근했다. ‘왕소금’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었지만 그는 그렇게 사업자금을 모았다.

1960년대 초 동대문 신설동에 금은방을 열었다. 특유의 입담과 친화력으로 손님을 끌어 모았다. 또 돈을 모았다. 청과물상·주유소·택시회사 등으로 사업을 넓혔다. 1976년에는 부동산 업체 삼선개발을 세워 수백억 원대 자산가가 됐다. 30세에 주유소협회장을 지낸 손말철(2004년 작고) 태평염전 회장의 얘기다.



아버지의 유토피아, 아들의 유배지사업이 해마다 번창하던 1985년 손말철 회장은 느닷없이 염전사업에 투자했다. 신(新)사업을 찾기 위해 전국을 떠돌던 그는 전남 신안군 증도에서 우연히 염전을 발견했다. 망해서 문을 닫은 염전이었다. 그는 10억원을 들여 염전을 인수하고 이름을 ‘태평염전’이라고 지었다. 이 염전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3년 피난민을 정착시키고 소금생산을 늘리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조성됐다. 증도와 대초도 사이의 갯벌을 막아 만들었다. 이승만 정권 시절, 서울시장·국방부 장관을 역임한 이기붕씨가 소유했던 척방산업이 염전사업을 관장했다.

그러나 손말철 회장이 폐염전을 인수한 1980년대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정제염’(기계염·용어설명 참조)을 장려하던 시절이었다. 정제염은 바닷물을 전기로 분해해 만든 소금이다. 염분이 높고 가격이 저렴해 식품업체에서 주로 사용한다. 반대로 태평염전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은 당시 ‘광물’(鑛物)에 불과했다. 당연히 소비자에게 팔 수 없었고, 큰 수익을 올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천일염이 식품으로 인정받은 건 2008년 3월 ‘천일염법’이 개정된 이후다.) 그럼에도 손말철 회장은 꿈을 잃지 않았다. 그의 아들에게 시시때때로 이렇게 말했다. “봐라! 이 염전이 머지 않은 미래에 유토피아가 될 것이다.”

아들은 모범생이었다. 국내 명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사업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가 염전사업을 하고 있는 증도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다. 1986년 아들은 대학친구와 함께 증도에 처음 내려갔다. 버스를 수차례 갈아탄 것도 모자라 배까지 타야 했다. 장장 15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한 아버지의 염전. 아들은 모든 게 싫었다. 거무튀튀한 갯벌도, 주변에 문화·오락시설이 없는 것도 싫었다. 지금은 ‘바다의 홍삼’으로 불리는 염생식물 함초도 잡초처럼 보였다. 아버지가 ‘미래의 유토피아’라고 자랑했던 염전을 보면서 아들은 투덜거렸다. “유토피아가 아니라 유배지다. 염전을 살 돈이 있으면 차라리 강남 땅을 사지….”

그로부터 26년이 흐른 지금. 염전을 인수했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염전을 그토록 싫어했던 아들은 태평염전을 이끌고 있다.

손일선(48) 태평염전 회장이 그다. 아들은 틀렸고 아버지의 눈은 정확했다. 태평염전은 국내를 대표하는 염전으로 거듭났다. 규모는 462만㎡(약 140만평)로 국내에서 가장 크다. 여의도 면적의 약 22배다. 천일염 생산량은 국내 1위다. 매년 1만5000t 가량의 소금을 생산한다. 품질 역시 세계 최고다. 몸의 생체균형을 맞춰주는 미네랄이 프랑스 게랑드산(産) 천일염보다 많이 함유돼 있다.

특히 칼륨(㎏ 당 3067㎎)·마그네슘(㎏ 당 9797㎎)은 게랑드산보다 각각 2.9배, 2.5배 많다(표 참조). 손 회장은 “천일염하면 게랑드산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사실은 우리 천일염의 품질이 더 좋다”며 “이는 태평염전 주변에 세계적인 갯벌이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염전과 갯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갯벌을 통과한 바닷물은 미네랄 성분이 많고 깨끗하다. 갯벌이 오염물질을 정화해 적조·부영양화(용어설명 참조)를 방지해서다. 갯벌에 인접한 염전이 각광받는 이유다. 프랑스 게랑드 염전 근처에도 갯벌이 있다. 태평염전의 입지는 더 좋다. 세계 5대 습지 중 하나인 증도 갯벌이 옆에 있다. 증도 갯벌은 지난해 9월 람사르 습지로 공식지정됐다. 람사르 습지는 람사르 협약(습지자원 보전과 이용을 위한 정부간 협약)에 따라 지정된 갯벌을 말한다. 세계 5대 습지는 캐나다 동부연안·북해연안·미국 동부연안·아마존 하구·증도 갯벌이다. 세계 5대 습지 가운데 염전이 있는 곳은 증도가 유일하다.

최근 웰빙열풍이 불면서 태평염전의 소금·함초식품 브랜드인 ‘섬들채’도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전통방식으로 만든 ‘토판 천일염’‘3년 묵은 갯벌 천일염’이 인기가 많다. 덩달아 태평염전의 매출은 2007년 21억5200만원에서 지난해 80억300만원으로 크게 늘었다. 올해는 100억원 돌파가 기대된다. 손 회장은 “한때 폐염전이었던 태평염전이 유토피아로 거듭나고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말에 콧방귀를 뀌었던 아들의 생각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손 회장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시계추를 다시 돌려 1988년. 군복무를 마친 손 회장은 말단직원으로 태평염전에 입사했다.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엄한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지 못했다. 낮에는 소금밭에서 일하고 밤에는 관리·경리업무를 담당했다. 주경야경(晝耕夜耕)이었다. 손 회장은 괴롭고 답답했다. 1988년은 서울올림픽이 열린 해였다. “지구촌의 축제라는 올림픽이 서울에서 열리는데, 시골에 박혀 있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온종일 도망칠 궁리만 한 날도 많았어요(웃음).”

그는 1년 만에 염전을 박차고 나왔다. 갑상선이 좋지 않았던 게 이유였지만 답답함을 이겨내지 못한 탓도 컸다. 손 회장은 갑상선을 치료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MBA 과정(미 캘리포니아주립대학)을 밟았다. 손 회장은 “그제야 내 길을 찾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MBA 과정을 마친 직후 다시 태평염전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아버지의 제안을 뿌리치지 못했다. 귀국 당시 태평염전의 사정은 이전보다 더 나빠져 있었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가 체결된 후 값싼 해외소금이 대량수입되면서 국내 소금값이 폭락했기 때문이다. 문을 닫는 염전이 하나둘씩 생겼고, 태평염전도 예외일 순 없었다. 아버지 손말철 회장이 ‘소금 굽는 기계’까지 들여와 쓰러지는 염전을 회생시키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태평염전은 1997년 7월 66개 염판(소금이 결정되는 바둑판 모양의 지면) 중 8개를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 폐쇄한 염판의 규모는 142만5600㎡(약 43만2000평)에 달했다.

손 회장은 2000년 별 희망이 없어 보이는 태평염전의 대표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소금사업보다는 영화관사업에 더 몰두했다.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 있는 ‘판타지움’이 바로 그가 세운 영화관이다. 지금은 CGV에 장기임대된 상태다.

그랬던 그가 소금에 매력을 느낀 건 2004년 함경식 목포대 교수(천일염 생명과학연구소장)가 건넨 『게랑드 이야기』를 읽은 후부터다. 폐전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적 염전으로 거듭난 게랑드 염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한 책이었다. 2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단숨에 읽은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천일염 사업도 가능성이 있겠구나.” 아버지가 유언처럼 남긴 말도 떠올랐다. 손말철 회장은 임종 순간 아들에게 피터 린치의 『월가의 진실』에 나오는 이야기를 남겼다. “…겉으로 화려한 사업은 하지 마라. 버려진 사업을 광채가 날 수 있도록 키워라….”



책 한권으로 달라진 인생책만으론 확신을 갖기 어려웠다. 손 회장은 게랑드 염전에 직접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얼마나 대단한 염전인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2005년 학계 인사, 식약청 고위관계자 등 10여명과 함께 게랑드 염전을 방문했다. 손 회장은 그곳에 도착한 직후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맏은 듯 멍해졌다. 게랑드 염전 사람들의 소금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었다.

“게랑드 염전의 초입에는 소금장인의 집, 염의 대지, 소금박물관 등 소금역사를 읽을 수 있는 박물관이 있더라고요. 훌륭한 소금을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이 몸과 마음으로 느껴졌죠. ‘태평염전을 이끌고 있는 나는 뭔가’라는 자책까지 들었습니다.”

그가 놀란 것은 또 있었다. 천일염의 친환경적 생산방식이었다. 게랑드 염전의 주변은 결코 깨끗하지 않았다. 염전에서 자라는 식물(염생식물)을 자연 그대로 방치해 놨다. 소금에 묻은 갯벌도 인위적으로 분리하지 않았다. 소금은 그들에게 ‘생태계’ 그 자체였다. “우리는 염전 주변을 깨끗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염생식물을 인위적으로 죽이곤 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게랑드 염전 사람들은 염전을 생태계의 일부분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한국에 돌아온 손 회장은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곧바로 태평염전에 소금박물관을 짓기로 했다. 직원들이 “이런 외진 곳에 왜 박물관을 지으려 하느냐”고 반대했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자비 17억원을 들여 2007년 7월 국내 최초로 소금박물관을 열었다. 옛 건물인 소금창고를 개조해 만든 소금박물관은 근대문화유산 361호에 등록됐다. 이 박물관에선 소금에 얽힌 세계사와 우리의 전통소금생산방식을 볼 수 있다. 지난해 10만명 가량이 방문했다.



세계 5대 습지에 있는 유일한 염전비슷한 시기에 염생식물원도 만들었다. 태평염전 하구에 자연적으로 생성된 11만㎡(약 3만3000평) 규모의 삼각지를 야외식물원으로 조성했다. 220m에 달하는 탐방로도 만들었다. 탐방로를 따라 걸으면 ‘삐비’로 불리는 하얀꽃과 퉁퉁마디(함초), 보랏빛 개정향풀을 코앞에서 볼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태평염전을 더욱 친환경적으로 변모시켰다. 염전 주변에서 자라는 식물을 의도적으로 죽이지 않았다. 염판에 깔리는 비닐은 친환경 재질로 모두 바꿨다. 정구술 태평염전(관리팀) 차장은 “선대 회장이 염전의 터전을 닦았다면 현 회장은 염전의 생태계를 가꾸는 데 일조했다”며 “태평염전은 이제 친환경적 측면에서도 게랑드 염전에 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지역의 변화도 이끌었다. 신안군 증도는 2007년 12월 담양군 창평면, 장흥군 유치면·장평면, 완도군 청산도와 함께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slow city·용어설명 참조)로 지정됐는데, 여기에는 손 회장의 노력이 숨어 있다. 슬로시티는 자연 속에서 ‘느림의 삶’을 추구하는 국제운동을 말한다.

2006년 증도에는 개발바람이 일었다. 당시 지자체장은 염전을 밀어버리고 골프장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경비행장을 만들자는 제안까지 나왔다. 염전을 개발용지로 수용하겠다는 공문이 날아온 적도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개발에 집중할 때 손 회장은 이렇게 반대했다. “강점을 부각해야 합니다. 우리 지역에 골프장을 만들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신안과 증도는 환경적 가치가 큽니다. 염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자 손 회장은 2006년 세계 슬로시티 본부가 있는 이탈리아로 자비를 들여 날아갔다. 증도를 슬로시티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는 슬로시티 추진이 개발바람으로부터 염전을 지키고 세계에 천일염을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 “다행스럽게도 증도가 슬로시티 후보지가 됐습니다. 슬로시티의 창시자이자 심사위원인 파울로 사투르니니는 우리의 염전과 습지를 보고 ‘신이 키스한 곳 같다’고 하더라고요. 증도가 슬로시티가 되는 덴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천혜의 자연을 갖고 있다는 말이죠.”

인터뷰가 끝날 무렵 손 회장과 태평염전 전망대에 함께 올랐다. 먼발치에서 소금을 만들고 있는 염인(鹽人)의 모습이 보였다. 태평염전에는 현재 30명이 넘는 염인이 천일염을 생산한다. 손 회장은 이들을 ‘소금장인’이라고 높여 부른다. 귀한 일을 하고 있다는 존중의 표현이다. 그에게 소금은 보물이고, 소금을 만드는 이는 장인이다.

때마침 석양이 염전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손 회장은 “바로 이 모습이 슬로시티의 면모”라면서 말을 이었다. “태평염전은 염전의 세계적인 메카로 떠오를 겁니다. 아니,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천일염하면 게랑드가 아니라 태평염전이 떠오를 때가 오겠죠.” 그에게 물었다. 폐염전을 ‘유토피아가 될 것’이라고 했던 아버지의 혜안을 평가해 달라고. 그는 짧게 답했다. “그땐 몰랐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아버님.” 그의 눈에 소금 같은 눈물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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