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스쿨을 가다 - 경로당에서 나와 실버 강사로 뛴다
실버 스쿨을 가다 - 경로당에서 나와 실버 강사로 뛴다
“배 밑에서 소리가 올라온다고 생각하세요. 입 모양을 최대한 모으고 자 다같이! 어흥~” 선생님의 주문에 25명의 학생들이 입을 모아 “어흥” 소리를 낸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소리를 낼 때마다 옆에 앉은 짝꿍과 눈을 맞추며 까르르 웃는다. 4월 10일 오전 10시 ‘매직스토리텔러’ 수업을 받고 있는 이들의 평균연령은 65세가 넘는다. 하지만 수업에 대한 열정은 어린 학생들 못지 않다.
강사의 말 한마디에 집중하고 다음 주 숙제를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책에 받아 적는 모습이 제법 진지하다. 이 강좌는 ‘강남시니어칼리지’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개설한 과목이다. 강남구청은 2009년부터 지역 노인을 위해 서울 강남시니어칼리지를 운영하고 있다. 차별화된 전문교육을 제공해 노인들에게 사회참여와 재능기부 기회를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생겼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이 학교 수료생은 지금까지 600여 명에 달한다.
스마트폰 쓰는 노인 위한 강좌도그중 인기가 많은 과목은 동화구연·전통놀이지도사 수업이다. 매직스토리텔러 수업도 그 일환으로 동화구연에 마술을 접목시킨 형태다. 수료 뒤 보육원, 어린이집, 도서관에서 실버 강사나 자원봉사자로 활동할 수 있어 노인들에게 인기다.
지난해 전통놀이지도사 수업을 들은 이덕영(67)씨는 활동 영역을 더 넓히고 싶어 이 수업을 택했다. 이씨는 전통놀이 강사로서 일주일에 두 번 어린이 집에서 일한다. 한 달에 20만원을 벌지만 돈보다는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한단다.
“아직 건강한데 막상 할 일은 없고. 집에만 있다 보니 절로 우울증 증세가 나타났어요. 경로당에서 노느니 이왕이면 재능기부를 하고 싶어서 강남시니어칼리지에 등록했어요. 여기 오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요.”
교실에서 반장을 맡고 있는 김동인(64)씨는 교직에서 은퇴한 남편과 함께 봉사활동을 다니려고 수업을 신청했다.
“나이 들면 봉사하는 삶을 살자고 남편과 약속했는데 막상 은퇴하고 나니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돼 있었어요. 동화구연과 마술을 배우면 아무래도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지 않겠어요.”
이들의 담임교사인 김분희 한국동화구연지도사협회 강사는 “어린 아이들과 만나서 교감하는 게 노인 정서에도 좋다”면서 “지난해 서울 도봉구 노인복지관에서도 수업을 했는데 반응이 뜨거웠다”고 말했다. 그는 “수료 후에 실제로 동화구연 강사로 활동하는 어르신이 꽤 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강남시니어칼리지를 수료한 이들 중 22명이 자원봉사활동과 연계하고 있으며 9명은 일자리를 찾았다.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평생교육인 ‘실버 스쿨’이 달라졌다. 과거 노인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 단순한 여가활동이나 재미 위주에 그쳤다면 이제는 ‘고학’들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해 세분화·전문화되고 있다. 서울 강남구는 강남시니어칼리지 외에도 노인특화사업 공모 심사를 거쳐 선정된 12개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박철수 강남구청 노인복지과장은 “어르신들의 여가문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다양한 프로그램을 발굴해 새로운 노인여가문화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고학력 노인은 상담사로 변신강남구 외에도 각 지역구 노인복지관이 지역민을 대상으로 실버 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관악구 평생학습관은 노인을 대상으로 한 ‘동화구연 자격증대비반’을 마련했다. ‘중등수학지도사 과정 자격증대비반’, ‘동화교구만들기 전문가반’도 신설해 동화구연 3급 자격증과 중등수학지도사 등 민간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스마트폰 보급이 대중화돼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을 위한 ‘스마트폰 사용법’ 강좌는 실생활에 유용해 인기다. 관악구민뿐만 아니라 다른지역구민도 신청할 수 있으며 무료 강좌가 대부분이다.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실버 스쿨은 1500여 곳에 이른다. 지역구에서 운영하는 노인복지관 외에도 사회복지관, 대학부설 평생교육원, 종교시설 등 다양한 곳에서 노인 대상 강좌를 마련하고 있다. 특히 대학에서는 더욱 전문적이고 질 높은 평생교육을 위해 노인 정보화 교육을 실시하거나 명예학생제도, 학점은행제, 시간제 등록제, 원격대학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신라대학교 평생교육원은 부산광역시와 협약을 맺어 2010년부터 ‘신라시니어스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곽철효 평생교육원장은 “대학의 위상에 맞는 전산교육이나 건강관리 강좌를 마련해 노인의 실생활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고 설립 목표를 밝혔다. 신라시니어스아카데미에서는 정규수업 외에도 보이스피싱방지대책, 노인복지정책 등 다양한 특강 수업을 제공해 좀 더 현실적인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치매 예방 차원에서 마련한 풍선아트와 천연제품 만들기 수업도 수강생들의 선호도가 높다.
신라시니어스아카데미는 부산광역시에서 수업 비용을 전액 후원해 무료로 강좌를 들을 수 있다. 16주 과정으로 매년 2월과 8월에 신청 접수를 받는다. 서부산권 거주자와 다른 대학 평생교육원 수료 경험이 없는 노인에게 우선권을 준다.
공주대학교에는 재능 기부를 희망하는 노인을 대상으로 한 ‘지역아동센터 지원 인재 양성과정’ 수업이 있다. 아동·청소년 상담, 학습지도, 교육복지 등의 수업을 이수하면 지역아동센터에서 상담사로 활동할 수 있다. 공주대학교 측은 “퇴직 교원 등 고학력 노인이 많이 신청하는 수업”이라고 귀띔했다.
광주대학교도 노인이 수강할 수 있는 ‘자녀상담학부모전문가 양성 과정’을 제공한다. 부모역할 교육과 자기주도학습상당 등을 배운 수강생의 90% 이상이 ‘자기주도학습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해 지역유관기관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평생교육진흥원 100세 인재개발특임본부 박인섭 단장은 “실버 스쿨이 지역사회를 넘어 대학 중심으로 재편되는 등 전문성을 더하고 있다”면서 “노인들이 적극적인 삶을 사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수준 높은 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일자리로의 연계 방안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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