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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직접 다니는데 회의를 왜 하나”

“현장에 직접 다니는데 회의를 왜 하나”



재계의 영업 전문 CEO 가운데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을 빼놓을 수 없다. ‘디지털 보부상’이라는 별명을 가진 최 실장은 14년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신화를 이끈 주역이다. 1985년 법인조차 없던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1인 사무소장으로 발령받은 뒤 1000여쪽에 이르는 반도체 기술 교재를 암기하고 생면부지의 바이어를 만나러 다녔다. 직접 차량을 몰고 알프스 산맥을 넘나들며 부임 첫해에만100만 달러어치 반도체를 팔아 영업계 전설로 불린다.

최 실장은 현재 삼성그룹의 5대 신수종사업을 이끌고 있다. 태양전지, 바이오, 자동차용 전지, LED, 의료기기·제약 등 5가지 업종에 10년간 23조원을 투자하는 계획이다. 삼성그룹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사업이지만 그동안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새로 시작하는 사업인데다 투자비가 막대하다 보니 내로라하는 재무·기획 전문가들도 추진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삼성 안팎에서는 최 실장이 특유의 추진력을 바탕으로 이들 사업을 키울 것으로 보고 있다.


33년간 주류영업 외길특유의 영업력으로 회사를 업계 1위로 만들어 CEO가 된 인물도 있다. 영어 한 마디 할 줄 모르면서도 외국계 주류회사 CEO에 오른 장인수 오비맥주 사장이다.

장 사장은 영업총괄 부사장에서 6월 20일 CEO로 승진했다. 상고를 졸업한 그는 1980년 진로에 입사해 33년간, 주류영업의 외길을 걸었다. 영업사원 시절 동료 선배가 6개 영업라인을 담당할 때 19개의 라인을 자진해서 맡았다. 영업부장이 된 지 10개월 만에 동기 중 가장 빨리 임원을 단 것은 오로지 그의 탁월한 영업력 때문이었다.

장 사장은 오비맥주로 자리를 옮긴 이후 전국영업지점장회의를 한 차례도 열지 않았다. “내가 직접 현장을 다니는데 굳이 회의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이유에서다. 장 사장이 영업을 맡으면서 오비맥주는 시장점유율을 10% 이상 끌어올렸다. 지난해 말 15년 만에 국내맥주시장 1위(출고량 기준)에 올랐다.

CEO 부임 이후 장 사장은 현장 적응력을 키우는 두 가지 영업 전략을 세웠다. 카스와 OB골든라거로 대중 맥주시장을, 산토리 더 프리미엄 몰츠 등으론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는 투 트랙 전략이다.

지방시장을 공략하는 전략도 따로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부터 ‘사우스어택(South Attack)’이라는 이름으로 부산과 광주의 20~30대 층을 대상으로 사투리 버전의 광고를 내고 있다. 덕분에 2009년 20%대였던 시장점유율은 현재 30%대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장 사장은 여전히 부산·경남 지역을 비롯해 지방 도매상을 직접 만나고 있다.

KDB대우증권 백운목 연구원은“맥주시장의 승패는 마케팅에 좌우되게 마련”이라며 “장 사장이 영업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는 오비맥주의 강점인 만큼 앞으로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업 위기를 맞은 업종에서 영업 전문 CEO에 거는 기대는 더욱 크게 마련이다. 조선업종이 대표적이다. 올 초 대우조선해양 CEO에오른 고재호 사장은 선박과 해양 플랜트 영업, 해외 영업에 매진해온 조선업계의 대표적 영업 전문가다. 지난해 말 대우조선해양의 수주실적이 떨어지면서 대안으로 고 사장이 여러 차례 거론됐다. 수주(영업)를 중심으로 회사를 재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7월 7일로취임 100일을 맞은 고 사장은 영업 전문가답게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현장인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보내고 있다. 조직 문화도 실사구시형으로 바꿨다. 옥포조선소장 자리를 없애는 대신 6개 총괄 체제를 도입해 각 총괄장에게 권한과 책임을 줬다.




현장 중시하니 노조와 관계도 좋아져고 사장은 취임 직후 대우조선해양의 영업 방향을 확 바꿨다. 조선업 영업물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고 사장은 한발 앞서 조선에서 해양플랜트 중심으로 영업 방향을 전환했다. 올 상반기 대우조선수주액 59억 달러 중 56%에 달하는 33억달러가 해양플랜트 계약분이다.

이에 따라 올해 수주 목표치 110억 달러의 53%를 상반기에 채웠다. 대우조선해양의 영업부서 조직도 늘리고 있다. 인원을 늘리는 한편 조직을 세분화해 영업력을 키우는데 주력하고 있다. 영업이익 하락에 대비해 생산조직도 강화해 생산성도 높이고 있다. 대우조선 해양 관계자는 “영업방향 변경과 영업조직 확대로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면서 “노조와의 관계가 좋아진 것도 현장을 중시하는 고 사장취임 후 달라진 점”이라고 말했다.

업종을 바꿔도 스타일은 잘 변하지 않는다. 한기선 두산중공업 대표는 소주업계의 전설적인 영업맨이었다. 1992년 진로에 입사해 마케팅 상무, 전무, 영업본부장 부사장을 거쳤다. 특히 영업 담당 전무로 있던 1998년 소주 ‘참이슬을’ 히트 시키면서 진로의 시장점유율을 1년 만에 30%선에서 40%대로 끌어올렸다. 그는 당시 진로의 부도로 무너진 영업망을 복구하기 위해 전국을 돌며 영업직원과 주류 도매상을 직접 만났다. 2004년 두산 주류BG의 대표에 올라서도 마찬가지다.

‘처음처럼’을 앞세워 2006년 소주 업계 최단 기간 100만 상자를 판매 기록을 세웠다. 당시 한 대표 부임 후 처음처럼의 시장점유율은 1년 만에 두 배로 늘었다.그러던 그가 2011년 두산중공업의 대표가 됐다. 전문 종목을 바꾼 것이다. 생소한 중장비를 다뤄야 했지만 자신만의 경영철학인 ‘호기심’으로 난관을 돌파했다. 처음 주류를 접할 때 공부를 해야 영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처럼 중장비에 관심을 갖고 공부에 매진했다.

한 대표 취임 후 두산중공업은 2011년 말 처음으로 자산 10조원(13조5892억원)을 돌파했고, 매출액은 전년에 비해 27% 이상 늘어난 8장인수 오비맥주조4955억원을 기록했다. 한 대표는 영업맨 특유의 감각을 살려 사업분야를 플랜트, 발전 등으로 넓히고 있다.영업맨 특유의 승부사 기질은 경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마라톤 경영으로 유명한 신헌철 SK에너지 부회장은 영업과 마케팅으로 경력을 쌓았다.

1981년 SK의 전신인 유공의 판매기획 부장대행 시절 유공은 호남정유의 신제품에 밀려 시장점유율이 급락하고 있었다. 이때 그는 고급휘발유를 내세워 경쟁사인 호남정유에 맞섰고 결국 이겼다. 신 부회장은 당시 공로를 인정받아 대전영업소장, 유공가스 영업담당 이사, 상무 등을 거치며 유공의 영업을 이끌었다.

1995년 이동통신 업체인 한국이동통신의 수도권마케팅 본부장으로 옮겨서도 승부사 기질은 여전했다.55만명에 불과한 이동통신 가입자를 3년간의 치열한 영업전 끝에 700만명으로 늘려 업계를 놀라게 했다. 현재 그는 SK미소금융재단 이사장을 겸하고 있다. SK에 입사한 이후 40년의 세월 대부분을 영업에 몸 담은 그답게 미소금융 또한 영업 마인드로 접근하고 있다.

영업의 과실이 기업의 이윤에서 서민의 자립으로 바뀌었을 뿐이다.스스로를 ‘장돌뱅이’라 말하는 신 이사장은 “미소금융에서도 발품을 차별화의 주무기로 삼으려고 한다”며 찾아가는 미소금융을 표방하고 있다.


4시30분에 스포츠센터에서 사람 만나영업을 최고로 치는 금융계에는 전통적으로 영업 전문 CEO가 많다.최근에도 영업쪽에서 대거 CEO에 올라 전통을 잇고 있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큼 은행권을 대표하는 영업 전문가다. 1981년 서울은행에 입행해 1986년 신한은행을 거쳐 1992년 하나은행에 합류했다. 김 회장은 30년 은행원 생활 대부분을 영업현장에서 보냈다.

신한은행 시절에는 ‘영업왕’에 선정되며 금융업계 단골 스카우트 대상이 됐다. 2006년 증권사 사장으로 취임한 김 회장은 하나대투증권의 도약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은행장 시절에도 전국의 영업점을 빠짐없이 모두 찾고 주말에도 영업점을 돌아다니며 마케팅 강좌를 직접 열기도 했다.

3월에 하나금융 회장직에 오른 뒤에는 자회사로 인수한 외환은행과 해외 영업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동양증권 성병수 연구원은 “김 회장은 취임 후 영업력을 보다 강화해 하나금융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면서 “오랜 현장 경험에서 배운 특유의 친화력으로 외환은행과의 화학적 결합을 앞당기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서는 LIG투자증권 김경규 사장이 소문난 영업통이다.김 사장은 20년 동안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서울 마포지역의 한 스포츠센터로 출근한다. 운동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 곳에서 다양한 계층 사람들과 만나 교류를 쌓으며 영업하기 위해서다. 김사장은 영업수완이 좋기로 유명하다.

1999년 LG투자증권 법인영업부 재직 당시 대형 증권사의 자사주 400만여주를 처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현 주가보다 3~4% 할인해 한번에 모두 팔아치우기도 했다. 2008년 6월 LIG투자증권 영업총괄 부사장으로 영입되고서는 자본금 800억원의 회사를 현재 1700억원 규모로 키웠다.

대신증권 나재철 사장 역시 영업력 덕에 지금의 자리에 오른 CEO다. 그는 양재동 지점장, 강남지역본부장, 리테일 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하는 등 현장 경험이 풍부하다. 현재 대신증권은 위탁매매와 리테일 영업에 강점을 보여 수익원 다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나 사장은 영업중심 조직화에 나서며 “리테일과 리스크관리 부문 등 핵심역량을 강화하고 고유자산운용, 기업금융, 홀세일 부문을 회사의 핵심 사업으로 육성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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