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의 황제 세계를 부드럽게 녹이다
초콜릿의 황제 세계를 부드럽게 녹이다
페레로 로쉐라는 이름은 현재 고급 초콜릿의 대명사로 통한다. 동그란 모양의 이 초콜릿은 한가운데 볶은 헤이즐넛과 헤이즐넛 크림이 들어있고 그 위를 웨하스가 감싸고 있다. 가장 바깥은 헤이즐넛 조각이 든 밀크초콜릿이 둘러싸고 있다. 바삭한 식감과 입에서 살살 녹는 부드러움,그리고 너트 류의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복잡한 구조는 정성스럽게 만들었다는 느낌을 준다.포장도 인기 요소다. 헤이즐넛 초콜릿을 고급스러워 보이는 금색 종이로 싸고 스티커를 붙여 접시 모양의 밑받침으로 마무리했다. 페레로 로쉐는 전 세계에서 공항 면세점 선물로는 물론 밸런타인 데이, 크리스마스, 부활절,어머니 날, 생일 등에 빠져선 안 되는 선물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편의점에서도 판매하고 있다.이 명품 초콜릿을 만드는 회사는 이탈리아의 페레로 사(社)다. 이 회사는 유럽 최대 제과업체로 2011년 추정 판매액이 190억 달러에 이른다. 페레로사는 페레로 로쉐뿐 아니라 빵에 발라먹는 초콜릿인 누텔라, 민트 제품인 틱택, 초콜릿 브랜드인 킨더와 몽셰리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 제과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탈리아 브랜드임에도 외국어를 과감히 사용했다는 점이다.
몽셰리(여성이 애인을 부르는 호칭)나 로쉐(바위)는 프랑스어다. 킨더는 어린이를 뜻하는 독일어다. 틱택은 영어권을 비롯한 어느 언어권에서나 잘 통하는 말이다.페레로 사는 이탈리아 서북부 피에몬테주 알바에 터를 잡고 있는 페레로 가문이 운영한다. 전 세계 38개 법
이탈리아 밖의 공장 운영과 영업을 관장하는 페레로 인터내셔녈은 룩셈부르크에 본사가 있다. 조세 회피로 유명한 나라다. 전 세계에 페레로 로쉐 열풍을 일으킨 글로벌 기업다운 운영이다.그럼에도 이 회사는 철저한 가족기업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인 1946년 알바에서 작은 제과점을 운영하던 피에트로 페레로(1898~1949)가 부인 피에라와 함께 창업했다. 동생 조반니는 판매를 담당했다. 피에트로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 미켈레 페레로(87)가 물려받아 2세 경영이 시작됐다.
미켈레는 부인 마리아 프랑카와 함께 페레로 사를 초대형 기업으로 키웠다. 전후(戰後) 이탈리아 기업인 가운데 최초로 해외에 제과 공장을 지어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인물이다.
재산 190억 달러로 세계 부자 25위현재 이 회사의 주인인 미켈레는 재산이 190억 달러에 이른다. 페레로 사의 연간 매출액과 같다. 이탈리아 최고 부자다. 이탈리아 최고 부자로 알려진 미디어 재벌 실비오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를 2008년에 제쳤다. 포브스 세계 기업인 부호 순위로는 25위다.
미켈레는 97년 아들 피에트로(1963~2011)와 조반니(48)에게 회사 경영을 맡겼다. 두 아들의 이름은 창업주인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이름에서 따왔다. 경영권을 물려받은 두 아들은 10년 넘게 이사로 그룹 운영에 참여했다. 하지만 형제가 협력해 제3의 도약을 노리던 2011년 4월, 피에트로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인도주의 활동을 지원하던 중이었다.
그 후로 조반니가 단독으로 페레로 그룹을 이끌고 있다. 미켈레는 주로 모나코에 거주하면서 가끔 경영을 살핀다. 철저한 가족경영이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음에도 가족경영 체제는 바꾸지 않았다. 가족 중심 경영이라는 이탈리아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글로벌 기업인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기업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페레로 사는 광고는 많이 하지만 기자회견을 절대 하지 않는다. 2009년 기업 조사에 따르면 페레로 사는 세계에서 가장 이름이 잘 알려진 기업의 하나다. 그럼에도 기자들의 공장 방문을 허용하지 않는다.
산업 스파이를 막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게 회사 측 얘기다. 이 회사의 제과 기계 역시 모두 사내 기계부서에서 제작한다. 절대 외부에서 들여온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다. 제품을 어떻게 만드는지 아직 외부에 공개한 적이 없다. 글로벌 기업이 가장 전근대적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런 전근대적 경영을 하고서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여기에 페레로 식 가족경영의 비법이 숨어 있다.페레로 가문의 가훈은 ‘일하고, 창조하고, 주어라’이다.
이는 창업주인 피에트로 페레로의 삶 자체였다. 피에트로는 상상력과 야심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40년대 초부터 세계적인 초콜릿 장인 겸상인의 꿈을 키웠다. 당시 초콜릿을 비롯한 과자와 케이크는 오래 두지 못했다. 그래서 동네에 있는 소규모 제과 업체나 소매점에서 소량으로 만든 것을 그때그때 사먹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값이 비쌌다. 아무리 맛이 뛰어난 제품도 수출은커녕 먼 동네로 가져가 팔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니 제과점은 동네 상점 이상으로 성장할 수가 없었다. 작은 제과점을 운영하던 피에트로는 이런 이탈리아의 초콜릿 판매 방식을 바꾸고 싶었다.그는 좋은 제품은 지역을 뛰어넘어 유럽 각국에 팔아야 한다고 믿었다.
나아가 유럽을 넘어 전 세계에 맛 좋고 질 좋은 이탈리아 초콜릿을 공급하면 성공할 것이라 생각했다.피에트로는 보존성이 좋은 최고급 초콜릿 제품을 개발해 합리적 가격으로 광범위한 지역에 판매할 방법을 고민했다.
3대 조반니가 기업 이끌어고급 초콜릿을 대량 생산해 유럽 전역에서 누구나 먹을 수 있는 가격에 판매한다는 꿈. 이를 이루기 위해 피에트로는 42년 제과점 근처에 제과 개발실을 차렸다. 초기에는 헤이즐넛과 코코아를 주재료로 한 초콜릿을 개발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당시에는 물자난이 극심했다.
특히 초콜릿 원료인 코코아 버터와 코코아 분말은 열대 지역에서 수입해야 했기 때문에 더욱 구하기 어려웠다.이런 시기에 종전 뒤를 예상해 제과 개발실을 만든 것은 페레로 가문의 기업가 정신을 잘 보여준다.
초콜릿 개발실에 코코아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것은 군인에게 실탄이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가 없으면 틀니를 끼면 된다는 게 피에트로의 방식이었다. 그는 코코아에 자신의 본거지인 피에몬테 지역 특산 물인 헤이즐넛을 섞어 양을 늘렸다. 그러자 헤이즐넛의 맛과 향이 가미된 독특한 풍미의 새로운 초콜릿이 탄생했다. 재료가 부족하다는 단점을 초콜릿과 헤이즐넛의 퓨전이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승화해 성공신화를 이룬것이다.
손자병법에 있는 ‘나의 단점을 장점으로 활용하라’는 구절을 현실화한 셈이다. 역경을 기회로 이용하는 데 비상한 재능을 보인 페레로 가문의 DNA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가훈이자 사훈인 ‘일하고, 창조하고, 주어라’에 걸맞은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가족기업은 어린 시절부터 온 가족이 함께 경영에 매달리고 가장이 형식적으로 대표를 맡다 세상을 떠나면 다음 대가 대표직을 이어받는 방식을 따른다. 그래서 경영상속이 더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편이다. 2대 경영인 미켈레는 아버지의 장인정신에 현대 기업가의 열정을 보태 50년~70년대 페레로 사를 세계적인 제과업체로 키웠다.
그는 사람들이 초콜릿을 즐기는 방식을 바꿔 놓았다. 페레로는 초콜릿 제품을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과자를 개발·생산해 판매했다. 그는 우선 이탈리아 시장을 공략했고 이어 유럽 여러 나라에 진출했다. 56년에 독일 공장, 58년에 프랑스 공장을 세워 현지생산에 나섰다. 69년에는 미국뉴욕에 페레로 USA를 열면서 북미 대륙에 발을 디뎠다.
이 시기에 내놓은 제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누텔라다. 잼처럼 빵에 발라먹는 헤이즐넛 초콜릿이다. 처음에는 빵 위에 얹어 먹는 고체형 초콜릿이었으나 이를 도시락으로 가져 간 아이들이 빵은 먹지 않고 초콜릿만 쏙빼먹자 발라먹는 초콜릿 스프레드를 개발했다. 누텔라는 한국에는 비교적 덜 알려졌으나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식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초콜릿만 발라 먹는 것보다 값이 싸고 헤이즐넛이 들어가 맛이 좋다. 페레로 그룹의 효자상품이다. 초콜릿 브랜드인 킨더와 입 냄새를 없애주고 졸음을 방지하며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는 민트 브랜드 틱택 역시 이 시기에 나왔다.
페레로가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할 기회는 82년에 찾아왔다. 페레로 로쉐를 론칭하면서다. 미켈레는 페레로 로쉐 브랜드를 앞세워 다양한 초콜릿을 유럽 각국에 팔기 시작했다. 이 프리미엄 초콜릿은 선물용으로 이탈리아는물론 유럽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유럽을 찾은 다른 대륙 사람들이 선물용으로 한 아름 사가기도 했다.
85년에는 미국 대륙에 상륙해 동부 일부 지역에서 판매됐다.88년에는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가 몇 년 새 미국 소비자에게 최고급 명품 초콜릿으로 인정받았다.2000년대에 들어서도 페레로 로쉐의 성장은 멈추지 않았다. 주무대는 유럽에서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으로 바뀌었다. 미국인은 품격 높은 이탈리아 초콜릿에 빠졌다.
2001년에는 미국에서 다양한 종류의 페레로 초콜릿을 담은 모듬 제품이 출시돼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미국에서는 ‘로쉐’로 불린다.페레로 가문은 초콜릿으로 3대째 세계적 제과 명가를 이어가고 있다. 창립자 피에트로 페레로의 정신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회사 직원들은 가훈 겸 사훈처럼 열심히 일하고, 상상력을 현실에서 일구는 창의적인 일을 하고, 사람들에게 최상의 상품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페레로 사는 브랜드 고유의 컨셉트를 지키며 최상의 품질과 맛, 적절한 가격으로 소비자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노력한다. 페레로 그룹에서 창업주의 정신은 어떤 상품, 어떤 경영기법보다 우선한다. 페레로 가문의 역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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