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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는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트럼프 행정부, 보호무역주의 강화 하나[이코노 리포트]

[트럼프가 던진 숙제]①
대선후보 시절, 보편 관세 10~20% 강조…韓 경제 타격 우려
과격한 관세 인상 가능성 적다는 해석도

지난 7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세 현장에서 피격 후 주먹 올려들고 있는 모습. [사진 AP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재입성이 확정되면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넘어 ‘극단적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관세에 대한 옹호론을 펼쳤는데, 실제 전 세계 소비 시장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이 관세율을 높일 경우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7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국가 수입품에 대해 전면적으로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서는 60~100%에 이르는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표면적으로는 대립이 심화하는 중국을 대상으로 직접적인 무역 제재를 언급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미국을 상대로 무역 흑자를 보고 있는 국가들에 경고장을 날린 것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관세를 모든 국가의 수입품에 10% 관세를 부과, 즉 보편 관세를 매긴다는 사실만으로 미국의 무역 적자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0월에는 자신의 관세 공약에 대한 비판에 대해 “관세는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한국에도 보편적 기본 관세가 매겨진다면 한국의 총수출액이 최대 448억달러(약 62조5000억원) 줄어들 수 있다고 예상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총수출액이 6322억달러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7%에 해당하는 규모다. 미국의 관세 인상이 현실화하면 우리나라 수출 시장에도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대미(對美) 수출에서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큰 우리나라 입장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보편 관세 공약은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444억달러로 역대 최대 수준이었다. KIEP 보고서의 최악 시나리오가 펼쳐지면 미국의 관세율 인상으로 대미 흑자가 ‘제로’ 수준이 된다는 뜻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무역전쟁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전했다. KDI는 12일 ‘2024 하반기 경제전망’을 발표하며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8월) 2.5%에서 2.2%로 0.3%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내년 성장률도 기존 전망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이른바 ‘트럼프 2.0’ 시대를 맞아 우리 기업의 수출 증가세가 둔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제2기 트럼프 행정부가 예측했던 것보다 빠른 속도로 관세 인상에 나서면 타격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KDI는 내년 성장률이 1%대로 추락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정규철 KDI경제전망실장은 “만약에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미국의) 관세 인상이 더 빠르게 진행된다면 수출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더 클 것”이라며 “그러면 올해 예상한 성장률을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CNBC는 11일(현지시각)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최근 보고서를 인용해 “트럼프 당선인이 강경한 무역 정책을 취하면서 중국뿐 아니라 다른 아시아 경제권에도 문제가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앤드류 틸턴 골드만삭스 아시아태평양 수석 경제학자는 “트럼프 당선인과 일부 유력한 임명자들은 양자(미‧중) 무역 적자를 줄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다른 아시아 국가와의 무역 적자는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이 해당 국가들에 관세를 부과할 위험이 있다”고 전했다.

틸턴은 이런 상황을 이른바 ‘두더지 잡기’(Whack-a-Mole) 방식이라고 표현했다. 미국이 먼저 중국에 높은 관세율을 적용해 대중(對中) 적자를 줄인 뒤 한국과 대만 등 다른 아시아 국가에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세계은행(WB) 소속 경제학자들도 비슷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정책이 아시아 국가에 ‘더 큰 고통’을 안겨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독해진 압박…신속한 협상 필요”
우리나라 통상 정책을 총괄했던 4명의 역대 통상교섭본부장은 우리 정부의 ‘신속한 협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11일 서울 FKI타워에서 ‘미국 新정부 출범, 한국경제 준비되었는가’ 좌담회를 개최한 자리에서 전 통상교섭본부장들은 이같이 밝혔다.

좌담회에는 김종훈 제19대 국회의원과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 유명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여한구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등 전임 통상교섭본부장들이 자리했다. 유 교수는 트럼프 1기 행정부 후반기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후반기 통상교섭본부장을 역임한 유명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은 동맹이든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든 철저히 경제적인 수치로 판단한다”며 “우리나라도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미국은 추후 문제가 되더라도 일단 보편 관세 조치를 한 후에 (다른 나라와) 협상 과정에서 ‘레버리지’(지렛대)로 활용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미국이 제기할 수 있는 무역수지 적자를 해소할 방안, 우리가 원하는 것을 포함한 협상안을 철저히 준비해서 협상 기회가 열렸을 때 잘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무리하게 관세를 인상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당시 수석대표를 역임한 김종훈 전 의원은 “미국은 한국 등 여러 나라와 FTA를 체결한 상태”라며 “보편 관세 도입 등을 통해 기존의 FTA를 폐기하거나 전면 수정하는 것은 대외 관계 전반과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미국으로서도 쉬운 선택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도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관련해 혜택을 받는 공화당 지역이 많으므로 보조금 삭감 등 갑작스러운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반도체법 역시 큰 변화는 없겠지만, 보조금 지원 축소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우리 기업이 투자한 지역의 의원들을 중심으로 요구사항을 먼저 파악하고 판세를 읽으면서 통상 외교를 해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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