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싸구려 막술 예술이 되다
농부의 싸구려 막술 예술이 되다
이탈리아의 전통 후식주 그라빠는 70년대 초 노니노 가문의 손을 거쳐 세련된 드링크로 재탄생 했다. 처음 한국을 찾은 안토넬라 노니노는 5대 경영인이다. 그를 만나 우리에겐 생소한 노니노 그라빠의 특별함을 맛봤다
노니노는 ‘패셔너블한 하이엔드 스피리츠’라는 이미지를 굳히는데 성공했다. 전세계 고급 바와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리스트에 노니노가 등장하는 이유다. 이탈리아 농부의 술이 세계인의 코스모폴리탄 드링크로 탈바꿈한 셈이다. 5대째 노니노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안토넬라 노니노(Antonella Nonino·44)를 7월3일 청담동 리스토란테 에오에서 만났다.
향수 같은 부케를 지닌 그라빠먼저 도착한 이원복 교수가 말했다. “대낮부터 독한 증류주를 마셔보기는 처음이네. 장미살롱에서 증류주를 다루는 것도, 여자분을 모시는 것도 처음이야(웃음).”잠시 후 안토넬라 노니노가 도착했다. 이른 아침부터 그라빠 테이스팅 수업을 진행하고 왔다는 그녀는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뛰어난 미모에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오자마자 인사를 나눈 후 프레젠테이션에 필요한 세팅을 꼼꼼히 지휘했다. 사진 촬영 내내 “비바! 이탈리아~ 비바! 노니노~”를 외치며 분위기를 잡았다. 촬영이 끝나고 그녀가 이야기를 시작했다.노니노 1897년에 설립된 노니노는 부모님이 운영하시기 전까지 평범한 로컬 디스틸러리였어요. 어머니는 전통주인 그라빠가 각광받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셨죠.
연구 끝에 1973년 최초로 단일 포도 품종 그라빠(Single Varietal Grappa)인 피콜리트(Picolit)를 탄생시켰어요.그라빠의 여왕이라고 할 수 있죠. 알코올이 50도나 되지만 부드럽고 깊은 맛이나요. 피콜리트는 프리울리 지역의 대표적인 품종이에요. 그 뒤로 샤도네이, 모스카토, 프로세코, 메를로 같은 품종들도 단일 품종 그라빠로 탄생했죠.
이 교수 재료인 포도 찌꺼기는 어디서 구하나요.노니노 처음에는 같은 지역의 와이너리에서 구했어요.하지만 증류하는 품종이 늘어나면서 이탈리아 곳곳에서 사요. 재료의 품질은 매우 중요해요. 좋은 와인을 만들어내고 남은 찌꺼기는 좋은 그라빠의 원료가 되지요.
이 교수 그라빠가 포도 찌꺼기로 만든 술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바뀌네요. 노니노의 레이블과 병 디자인 역시 특별하군요.노니노 패키징 디자인도 1973년에 바뀐 거에요. 클래식하면서도 모던하죠. 노니노의 로고는 중세시대에 술을 상징하는 심볼이었어요. 병 모양은 약제상의 약병에서 영감을 받았지요. 하지만 병 속에 든 것은 약이 아니고 술이니 재미있죠.
식전주로 시음한 것은 아마로 노니노(Amaro Nonino).여러 가지 허브로 만든 아마로는 너무 달지도 쓰지도 않아 온더락으로 마시기 좋은 리큐어다. 안토넬라 노니노의 설명이 이어졌다. “아마로는 가문에서 전해 내려오는 레시피로 만들었어요. 하루 일과 중 기분전환이 필요하다면 만들기 쉬운 아마로 칵테일을 추천해요. 얼음 몇 조각에 오렌지 슬라이스나 민트 잎사귀만 얹으면 되죠.”
다음은 가장 전통적인 스타일의 그라빠 트라디지오네(Tradizione)를 테이스팅 했다. 묵묵한 포도의 향이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느낌이다. 목 넘김은 부드럽고 깔끔하지만 입안의 여운은 은은하게 지속된다. 41도나 되지만다른 증류주들에 비해 알코올 향이 튀지 않는다.
우에 우바비안카(Ue Uvabianca)는 노니노가 1984년 어렵게 정부의 허가를 받아 출시한 야심작이다.
찌꺼기가 아닌 싱싱한 포도를 통째로 증류해 만드는 게 특징이다. 와인의 우아함과 그라빠의 캐릭터가 동시에 존재하는 우에 우바비안카는 마치 젊은 여인의 향수처럼 발랄하고 향기로운 부케를 지녔다. 와인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향이 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시음한 샤도네이 그라빠는 향이 풍부해 와인잔에 서빙했다.
1년간 바리크 숙성을 거쳐 오크풍미가 진하다. 함께 곁들이기 위해 안토넬라 노니노가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페코리노 치즈와 초콜릿을 내놨다. 그녀는 “지금 여기에 시가 한대만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라고 말했다.
세 자매가 함께 경영노니노가 단일 품종 그라빠를 내놓자 이를 추종하는 그라빠 생산자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노니노는 전통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다른 디스틸러리들과 차별성을 두고 있다.“그라빠의 80%가 대량생산되는 데 반해 노니노는 수공업(artisanal) 생산을 고집하고 있어요. 단식 증류기(pot still)에 회분 증류(batch distillation) 방식을 사용하고 있지요. 증류 기간을 장기간 끌게 되면 몸에 해로운 메탄올이 생성될 수 있어요. 노니노는 9월부터 11월 초까지만 그라빠를 증류해요. 또한 2차 발효를 막기 위해 온도 조절이 가능한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발효하죠.”
이탈리아의 와이너리 중에서도 그라빠를 만드는 곳이 많다. 하지만 노니노처럼 증류부터 병입까지 모든 공정을 책임지는 곳은 드물다고 안토넬라 노니노가 덧붙였다. 이름을 걸고 품질을 보장한다는 얘기다. 현재 노니노의 5대째 경영진은 그녀를 포함한 세 자매이다. 이탈리아가 부계 중심 사회라는 점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다.
“홀로 된 친할머니께서 노니노를 이끄셨어요. 그래서 아버지는 여자가 디스틸러리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익숙하세요. 어머니도 활발하게 경영에 참여하셨죠. 지금은 다섯 식구 모두가 서로 도우며 일하고 있습니다.”노니노가 만드는 수십 가지의 증류주 중 한국에는 수입되지 않지만 궁금증을 자아내는 술이 몇 가지 있다. 2000년 노니노의 세 자매가 출시한 조이엘로(Gioiello)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순수 꿀을 증류해 만들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아카시아 꿀, 해바라기 꿀, 민들레 꿀 등 다양한 꿀을 원료로 7가지의 증류주를 선보이고 있다.
싱싱한 피콜리트 포도를 증류해 만든 우에 피콜리트(Ue Picolit)도 1984년부터 선보였다. 주목할 점은 우에피콜리트 시리즈의 병 디자인이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유리 수공예 브랜드 베니니(Venini), 프랑스의 크리스탈 브랜드 바카라(Baccarat), 오스트리아의 와인잔 메이커리델(Riedel)과 매해 콜라보레이션을 이어왔다.
이는 현재 이탈리안 트리엔날레 디자인 박물관의 상설 컬렉션에 들어있다. 싸구려 술로 남을뻔했던 그라빠가 노니노의 장인정신과 열정을 통해 예술 작품으로 승화한 것이다.이원복 교수는 이날 “그라빠에 대해 많이 배운 좋은 시간이었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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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나 그 나라를 대표하는 전통 증류주가 존재한다. 한국에 소주가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그라빠가 있다.이탈리아 북동부 지역에서 유래한 그라빠는 와인을 만들고 남은 포도 찌꺼기를 증류해서 만든 술이다. 겨울철 농부들이 일을 나가기 전 몸을 데우기 위해 마셨고, 감기에 걸렸을 때는 따뜻한 우유와 꿀을 섞어 마시기도 했다.
저렴한 서민의 술이었던 그라빠는 1973년 노니노(Nonino)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다. 여러 포도 품종이 섞인 찌꺼기가 아닌, 단일 포도 품종 찌꺼기를 사용해 그라빠를 생산한 것이다. 디자인도 앞서나간 노니노는 럭셔리 브랜드로서 이탈리아 증류주의 역사를 바꿨다.
노니노는 ‘패셔너블한 하이엔드 스피리츠’라는 이미지를 굳히는데 성공했다. 전세계 고급 바와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리스트에 노니노가 등장하는 이유다. 이탈리아 농부의 술이 세계인의 코스모폴리탄 드링크로 탈바꿈한 셈이다. 5대째 노니노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안토넬라 노니노(Antonella Nonino·44)를 7월3일 청담동 리스토란테 에오에서 만났다.
향수 같은 부케를 지닌 그라빠먼저 도착한 이원복 교수가 말했다. “대낮부터 독한 증류주를 마셔보기는 처음이네. 장미살롱에서 증류주를 다루는 것도, 여자분을 모시는 것도 처음이야(웃음).”잠시 후 안토넬라 노니노가 도착했다. 이른 아침부터 그라빠 테이스팅 수업을 진행하고 왔다는 그녀는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뛰어난 미모에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오자마자 인사를 나눈 후 프레젠테이션에 필요한 세팅을 꼼꼼히 지휘했다. 사진 촬영 내내 “비바! 이탈리아~ 비바! 노니노~”를 외치며 분위기를 잡았다. 촬영이 끝나고 그녀가 이야기를 시작했다.노니노 1897년에 설립된 노니노는 부모님이 운영하시기 전까지 평범한 로컬 디스틸러리였어요. 어머니는 전통주인 그라빠가 각광받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셨죠.
연구 끝에 1973년 최초로 단일 포도 품종 그라빠(Single Varietal Grappa)인 피콜리트(Picolit)를 탄생시켰어요.그라빠의 여왕이라고 할 수 있죠. 알코올이 50도나 되지만 부드럽고 깊은 맛이나요. 피콜리트는 프리울리 지역의 대표적인 품종이에요. 그 뒤로 샤도네이, 모스카토, 프로세코, 메를로 같은 품종들도 단일 품종 그라빠로 탄생했죠.
이 교수 재료인 포도 찌꺼기는 어디서 구하나요.노니노 처음에는 같은 지역의 와이너리에서 구했어요.하지만 증류하는 품종이 늘어나면서 이탈리아 곳곳에서 사요. 재료의 품질은 매우 중요해요. 좋은 와인을 만들어내고 남은 찌꺼기는 좋은 그라빠의 원료가 되지요.
이 교수 그라빠가 포도 찌꺼기로 만든 술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바뀌네요. 노니노의 레이블과 병 디자인 역시 특별하군요.노니노 패키징 디자인도 1973년에 바뀐 거에요. 클래식하면서도 모던하죠. 노니노의 로고는 중세시대에 술을 상징하는 심볼이었어요. 병 모양은 약제상의 약병에서 영감을 받았지요. 하지만 병 속에 든 것은 약이 아니고 술이니 재미있죠.
식전주로 시음한 것은 아마로 노니노(Amaro Nonino).여러 가지 허브로 만든 아마로는 너무 달지도 쓰지도 않아 온더락으로 마시기 좋은 리큐어다. 안토넬라 노니노의 설명이 이어졌다. “아마로는 가문에서 전해 내려오는 레시피로 만들었어요. 하루 일과 중 기분전환이 필요하다면 만들기 쉬운 아마로 칵테일을 추천해요. 얼음 몇 조각에 오렌지 슬라이스나 민트 잎사귀만 얹으면 되죠.”
다음은 가장 전통적인 스타일의 그라빠 트라디지오네(Tradizione)를 테이스팅 했다. 묵묵한 포도의 향이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느낌이다. 목 넘김은 부드럽고 깔끔하지만 입안의 여운은 은은하게 지속된다. 41도나 되지만다른 증류주들에 비해 알코올 향이 튀지 않는다.
우에 우바비안카(Ue Uvabianca)는 노니노가 1984년 어렵게 정부의 허가를 받아 출시한 야심작이다.
찌꺼기가 아닌 싱싱한 포도를 통째로 증류해 만드는 게 특징이다. 와인의 우아함과 그라빠의 캐릭터가 동시에 존재하는 우에 우바비안카는 마치 젊은 여인의 향수처럼 발랄하고 향기로운 부케를 지녔다. 와인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향이 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시음한 샤도네이 그라빠는 향이 풍부해 와인잔에 서빙했다.
1년간 바리크 숙성을 거쳐 오크풍미가 진하다. 함께 곁들이기 위해 안토넬라 노니노가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페코리노 치즈와 초콜릿을 내놨다. 그녀는 “지금 여기에 시가 한대만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라고 말했다.
세 자매가 함께 경영노니노가 단일 품종 그라빠를 내놓자 이를 추종하는 그라빠 생산자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노니노는 전통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다른 디스틸러리들과 차별성을 두고 있다.“그라빠의 80%가 대량생산되는 데 반해 노니노는 수공업(artisanal) 생산을 고집하고 있어요. 단식 증류기(pot still)에 회분 증류(batch distillation) 방식을 사용하고 있지요. 증류 기간을 장기간 끌게 되면 몸에 해로운 메탄올이 생성될 수 있어요. 노니노는 9월부터 11월 초까지만 그라빠를 증류해요. 또한 2차 발효를 막기 위해 온도 조절이 가능한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발효하죠.”
이탈리아의 와이너리 중에서도 그라빠를 만드는 곳이 많다. 하지만 노니노처럼 증류부터 병입까지 모든 공정을 책임지는 곳은 드물다고 안토넬라 노니노가 덧붙였다. 이름을 걸고 품질을 보장한다는 얘기다. 현재 노니노의 5대째 경영진은 그녀를 포함한 세 자매이다. 이탈리아가 부계 중심 사회라는 점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다.
“홀로 된 친할머니께서 노니노를 이끄셨어요. 그래서 아버지는 여자가 디스틸러리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익숙하세요. 어머니도 활발하게 경영에 참여하셨죠. 지금은 다섯 식구 모두가 서로 도우며 일하고 있습니다.”노니노가 만드는 수십 가지의 증류주 중 한국에는 수입되지 않지만 궁금증을 자아내는 술이 몇 가지 있다. 2000년 노니노의 세 자매가 출시한 조이엘로(Gioiello)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순수 꿀을 증류해 만들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아카시아 꿀, 해바라기 꿀, 민들레 꿀 등 다양한 꿀을 원료로 7가지의 증류주를 선보이고 있다.
싱싱한 피콜리트 포도를 증류해 만든 우에 피콜리트(Ue Picolit)도 1984년부터 선보였다. 주목할 점은 우에피콜리트 시리즈의 병 디자인이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유리 수공예 브랜드 베니니(Venini), 프랑스의 크리스탈 브랜드 바카라(Baccarat), 오스트리아의 와인잔 메이커리델(Riedel)과 매해 콜라보레이션을 이어왔다.
이는 현재 이탈리안 트리엔날레 디자인 박물관의 상설 컬렉션에 들어있다. 싸구려 술로 남을뻔했던 그라빠가 노니노의 장인정신과 열정을 통해 예술 작품으로 승화한 것이다.이원복 교수는 이날 “그라빠에 대해 많이 배운 좋은 시간이었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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