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세대 노후 30년 어둠에서 벗어나라
5060세대 노후 30년 어둠에서 벗어나라
베이비부머인 50·60세대가 일본에서 사회문제로 떠오른 ‘노후난민’보다 훨씬 궁핍한 처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노후난민은 빈곤 탓에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가족과 사회로부터 고립돼 일상생활에 곤란을 겪는 계층을 일컫는 말이다. 버블 붕괴와 고령화로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겪은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진 말이다. 일본에서는 노인 혼자 힘겹게 살다 죽은 뒤 한참 있다 발견되는 고립사(孤立死)가 늘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직장인의 평균 정년퇴직 연령은 53세다. 기대수명이 80세를 넘어선 상황이라 이들은 은퇴 후 평균 30년을 더 산다. 이들은 대부분 자산의 70∼80%를 부동산으로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자산만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빚도 만만치 않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50대 이상이 짊어진 가계 부채는 2011년 말 기준 424조원으로 2003년 말 157조원보다 170%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가계 부채 증가율 90%를 크게 웃돈다.
이처럼 50대 이상의 부채는 빠른 속도로 늘었지만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이들의 자산은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 2006년과 2011년 통계를 비교하면 50대 이상은 부채가 30~50%가량 늘어났지만, 자산은 별로 늘어나지 않아 순자산(자산-부채) 증감률은 0.1~-7.1%로 정체하거나 오히려 감소했다. 특히 50대 이상 대출자 중 3곳 이상의 금융회사에 빚을 진 다중채무자는 2010년 3월 말 120만명에서 올해 4월 말 182만명으로 늘었다.
이들의 연체율은 평균 4.15%로 가계대출 평균 연체율의 5배 수준이다.이들은 노후대책이 부실하다는 지적을 들으며 살았지만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부동산 가격이 치솟아 단숨에 수억원의 평가차익을 챙겼기 때문에 큰 걱정 없이 지냈다. 이들은 대개 부모를 모시고 자식을 교육하는데 재산을 썼다.
은퇴하면 아파트를 팔거나 역모기지 제도로 월급수준의 소득을 올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연금을 받기 전까지만 일하면 나중에는평생 놀고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서 이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부동산 정보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서울 소재 아파트 평균 실거래가격은 4억2468만원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8월보다 6334만원 하락했다. 더구나 아파트를 내놓아도 잘 팔리지 않는다.
아파트 거래건수는 6월 6602건으로 2008년 같은 기간보다 61%나 줄었다.국민은행의 7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평균주택가격은 6월보다 0.1% 하락했다. 월간 기준 전국 주택 가격이 하락한 것은 2010년 7월(-0.1%) 이후 2년 만이다. 집을 판다고 해도 출 원금을 갚을 수 없는 ‘깡통 아파트’도 적지 않다. 부동산 하나만믿고 은퇴를 기다리던 베이비부머들은 제 발등을 찍은 꼴이 됐다.
50대 이상 연령층 부채 급격히 늘어이런 상황에서 이들은 직장을 떠났거나 곧 떠나야 하는 처지다. 특히 별다른 소득 없이 빚을 짊어진 채 홀로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통계청이 7월 10일 밝힌 장래가구추계를 보면 65세 이상 1인 가구주가 2010년 105만5650명에서 2035년 342만9621명으로 늘어난다. 이들 중 미혼 노인은 2010년 1만6746명에서 2035년 10만1243명으로 급증한다. 고령자를 위한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가족이 없거나 연락이 끊긴 ‘나홀로 가구’가 급증하면 노후난민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각한 일본(19.4%)과 비교해도 높다. 그러나 벌이는 시원찮다.
한국노년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68만7000원에 불과하다. 일본 605만원, 프랑스 363만8000만원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다. 위기의 이탈리아(329만6000만원)나 구조적으로 노년 수입이 적다는 영국(290만8000원)보다 적다. 그렇다고 자식의 부양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자녀세대 일자리 문제는 더욱 심각해서다. 일을 하고 있다 해도 과거처럼 부모를 부양하려는 자식세대가 흔치 않다.
노후난민 처지로 전락하지 않을 방법은있다. 미리 노후를 준비한 사람도 적지 않다. 10여년 전부터 노후를 준비한 대기업 간부 출신 윤모씨(57)가 대표적인 사례다. 먼저 자산관리. 윤씨의 노후대비 전략의 두 축은 ‘주택 다운사이징(Down Sizing)’과 ‘현금 확보’였다. 2000년 당시 대기업 간부였던 윤씨는 서울 청담동의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았다. 자녀를 유학 보내고 은퇴를 앞둔 그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아파트(83㎡)를 1억8000만원에 샀다.
아내와 둘이 살면서 큰 집이 필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모은 돈은 빚 없이 샀다. 이 아파트 가격은 부동산 시장 침체에도 현재 4억7000만원 수준에 거래되고 있다. 여전히 강남에 사는 여러 친구들이 한달에 40여만원의 관리비를 낼 때 윤씨는 겨울에 하루 종일 보일러를 틀어도 25만원를 남짓 낸다. 윤씨 역시 버블세븐 지역에 속한 아파트를 사고팔아 재미를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들 아파트로 큰 돈을 벌겠다고 나설 때 “내가 살 집이니 욕심부리지 않겠다”며 그러지 않았다.
좁은 집을 선택한 대신 윤씨는 금융자산을 불려나갔다. 대출이 없으니 금융비용으로 나갈 돈을 저축이나 투자로 돌릴 수 있었다.현재 그의 자산비중은 금융자산 70%, 부동산 30%이다. 금융자산중 40%는 주식, 20~25%는 채권, 나머지는 고수익 위험자산에 투자하고 있다. 이밖에 3억원 가량을 정기예금에 넣어 월 120만원 정도 이자를 받아 생활비로 쓰고 있다. 10여년간 그가 모은 금융자산은 10억원대에 이른다.
자산관리만으로 노후를 준비할 수는 없다. 윤씨는 정년을 몇 년 앞둔 2004년에 직장을 그만뒀다. 정년퇴직 후 연금을 받을 때까지 소득이 없는 소득의 공백기를 메울 새로운 일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중간정산분을 제외하고 1억원 남짓한 퇴직금을 받았다. 그의 퇴직 동료들은 훨씬 더 많은 퇴직금을 받아 다양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프랜차이즈를 열거나 새로운 일로 창업한 사람의 70%가 사업에 실패해 퇴직금을 날렸다. 윤씨는 퇴직금을 받자마자 금융자산에 넣었다. 그리곤 자신의 전문 분야를 살려 시설비가 거의 들지않는 서비스 사업을 시작했다. 이미 알고 있던 거래처 인맥을 계속 활용할 수 있는 것도 영업에 큰 도움이 됐다. 윤씨는 “많은 사람이 전 직장에서 하던 일에 진절머리를 내고 다른 직업을 찾는데 그건 바보짓”이라며 “직장은 또 하나의 직업훈련소이고 수십년 해온 일만큼 잘할 수 있는 사업은 없다”고 말했다.
“유산은 기대하지 말라”현재 윤씨는 자녀교육비에 가장 많은 돈을 쓴다. 중학교 때부터 영국에서 유학한 아들의 학비와 체류비 등이다. 현재 대학원에 진학한 아들의 교육비는 연간 5000만~6000만원 정도다. 외아들에게 유산을 물려주지 못하더라도 교육만은 끝까지 시키겠다는 생각에서 무리를 했다. 그러나 최근 아들에게 대학원 졸업 때까지 생활비는 대주겠지만 학비는 직접 벌라고 통보했다. 또 결혼식 비용과 결혼 후 살 집, 생활비도 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에게도 노후가 있고 이제 그걸 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윤씨 아들은 영국현지에서 여러 회사 인턴을 하며 학비를 벌고 있다. 윤씨는 “유산을 한 푼도 기대하지 말라고 이야기 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대신 자식에게 용돈 한 푼 받지 않고, 아쉬운 소리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원히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 윤씨는 노후생활을 즐길 취미거리를 찾았다. 자전거로 4대강 자전거길을 종주하고 있다. 이미 서울에서 경상도 일부까지 달렸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관리를 해야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여행수단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자전거를 선택했다. 제법 비싼 자전거를 구입해 쓰지만 추가 비용이 얼마 들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그는 거의 매주 버스나 기차에 자전거를 실고 자전거길를 찾아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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