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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화·전문화가 마지막 비상구

대형화·전문화가 마지막 비상구

국내 법률서비스 시장의 빗장이 단계적으로 풀린다. 국내 상위권 로펌은 ‘대세굳히기’를 위해 대형화와 더불어 분야별로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다. 해외에 직접 진출해 새로운 시장을 열려는 로펌도 있다. 소규모 로펌은 자기만의 영역을 특화하거나 중소형 딜을 적극 공략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성공 공식을만들어가고 있다. 변화의 시기를 맞은 국내 로펌업계를 들여다봤다.



국내 법률시장의 빗장이 풀린다. 한·미FTA, 한·유럽연합(EU) FTA가 발효되면서 국내 법률시장은 이미 1단계로 문을 연다.2014년 3월 14일부터 외국 로펌이 한국에 사무소를 열어 외국법 자문사 형태로 법률 활동을 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미국 로펌은 미국법과 미국이 당사자인 조약에 관한 법률 자문만 제공해야 한다. 2017년부터는 미국 로펌이 국내 로펌과 합작사업체를 설립하고 국내 변호사를 고용해 자유롭게 영업을 할 수 있다.


국내 기업의 해외 자문 노려현재 법무부의 외국법 자문사 자격승인 예비심사를 신청한 영·미 로펌은 총 13곳. 영국의 클리포드챈스와 미국의 롭스앤그레이,셰퍼드멀린은 예비심사를 통과하고 정식 심사 신청서를 낸 상태라 통과한다면 7~8월쯤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유럽의 로펌은 일단 덩치 면에서 국내 로펌을 압도한다. 세계 3위의 로펌인 클리포드챈스는 변호사 수만 2600여명에 이르며 2010년 매출이 18억7450만 달러에 달했다.

국내 1위 로펌인 김앤장의 변호사 수 430여명에 불과하고 2011년 약 3000억원의 수입을 올린 것과 비교된다. 세계 로펌 순위 20위를 기록한 클리어리 고틀리프, 세계 순위 30위권 내에 드는 폴 헤이스팅스, 롭스 앤그레이 등 예비 심사를 신청한 9곳 중 6개회사가 세계 순위 100위권 내에 드는 대형미국계 로펌이다.

해외 로펌은 처음에는 한국에 사무소를 내고 적게는 3~4명, 많아야 10명 정도의 인력을 두고 활동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미국계 로펌들은 양국 사정에 정통한 한국계 미국변호사를 한국사무소 대표자로 내세우고 있다. 해외 대형 로펌은 전 세계에 사무소를 두고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 기업의 해외 관련 자문 시장(아웃바운드)에서 국내 상위권 로펌과 경쟁을 벌일 것이라고 법조계는 내다본다.

이번 법률시장 개방이 송무 분야는 제외된데다 해외 로펌은 기업자문 시장에 먼저 치중할 것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당장 시장의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 그러나 국내주요 로펌은 긴장하는 분위기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특성상 기업의 해외관련 자문은 이들 로펌의 업무 중 비중이 큰 분야이기 때문이다.

개방 이전에도 국내기업은 해외 로펌에 매년 10억 달러가 넘는 법률 서비스 비용을 지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국법에 관련된 자문을 구할 일이 많은 국내 기업은 미국 대형 로펌이 국내법률시장 진출에 적극적인 것을 반기는 분위기다. 한국사무소를 통해 직접적인 접점을 만들고 이전보다 나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세계적인 로펌과 경쟁을 앞둔 국내 주요 로펌은 각자 전략적으로 태세를 정비하는 모습이다. 주요 상위권 로펌은 동요하기보다는 오랜 시간에 걸쳐 확보한 분야별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국내 1위 로펌인 김앤장은 법률 분야별로 내부 조직을 구분함은 물론 제약, 화학, 해외건설 등 산업별로도 전문화를 이뤄내 30개의 세분화된 팀을 갖췄다. 윤병철 김앤장 변호사는 “해외 로펌은 해외 곳곳에 사무소를 둔 것이 강점인데 우리도 지역별 전문가 그룹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발금융위기 이후 해외 채용시장 상황이 나빠져 국내로 들어오는 변호사도 늘었다. “현지화된 인재를 채용해 해외 로펌 못지않은 경쟁력을 갖춰나가고 있다”고 윤 변호사는 말했다. 해외 자문은 해외 로펌이, 국내 분쟁은국내 로펌에 맡긴다는 기업의 인식을 바꿔놓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앤장은 해외분쟁 조정과 아웃바운드 M&A에서 핵심 역량을 확보하며 1위로 성장한 역사를 가진 만큼이 부분에 역량을 집중해 해외 로펌에도 뒤지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2위권 그룹에서 치고 나와 김앤장을 바짝 추격하고 있는 광장은 되려 자신감을 내비친다. 지난해 말 시장 정보 제공업체인 톰슨로이터는 2011년 1~9월까지 광장의 M&A자문 규모가 한국 내 최대였다고 밝혔다. 이분야에서 처음으로 김앤장을 앞지른 것이다. 세계 법률시장 정보업체가 발표한 ‘리걸500’은 한국 로펌의 14개 분야별 경쟁력을 분석했는데 김앤장이 14개 분야, 광장이 13개 분야에서 1등급을 차지했다. 다른 선두권로펌이 3~4개 분야에서 1등급을 받은 데 그친 것에 비해 광장은 그 차이를 확연하게 벌렸다.

광장의 김재훈 대표변호사는 “30년 전부터 4개 분야로 나눠 전문화를 꾸준히 시도한 것이 결실을 거뒀다”고 말했다. 광장의‘몸집 불리기’도 최근 눈에 띈다. 변호사, 변리사, 회계사 등 전문인력이 400여명에 달한다.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전문 변호사들을 꾸준히 영입한 결과다. 김 변호사는 “상위권 로펌 간에도 격차가 심하기 때문에 시장 개방 이후 전문화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에 따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며 “한동안 혼돈의 시기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로펌 간 부익부 빈익빈 심화될 전망최근 사옥을 옮긴 세종은 새로운 터전에서 새 전략을 짜고 있다. 2010년 3월 상해에 사무소를 연 것에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독일에서 국내 로펌으론 최초로 법인설립 정식허가증을 받고 유럽 대표사무소를 열었다. 한국 기업의 유럽 진출이나 법률 자문을 특화하려는 목적이다. 세종은 베트남 지역 진출도 고려하고 있다. 김범수 세종 변호사는“금융 분야에서 특화한 것으로 출발한 세종은 M&A 분야에서도 강점을 갖췄다”며 “앞으로는 노무와 FTA 관련 통상업무, 국제분쟁 중재 분야에 여력을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개방의 시기를 맞아 국내 대형 로펌은 대형화와 전문화, 해외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이다.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긴 하지만 외부의 시선과는 달리 업계 내부에서는 개방에 따른 큰 동요가 느껴지지 않는다. 업계 관계자는 “300명 규모를 갖춘 대형 로펌은 해외 로펌이 노리고 들어오는 기업 해외법 자문 영역에서 이미 오랜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붙어볼 만하다는 분위기”라며 “중위권 로펌이 인수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우거나 해외 로펌과 제휴를 모색하는 등 다양한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재훈 변호사는 “해외 대형 로펌이라해도 사무소 규모에서의 변호사 전력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들이 갖춘 세계적인 네트워크의 효과는 생각보다 미미하다”고 지적하며 “오히려 국내 기업이 국내 로펌을 통해 진출하려는 지역 현지의 토착 대형 로펌의 자문을 받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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