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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창출이 경제민주화다

일자리 창출이 경제민주화다



“가계부채와 부동산 시장은 아직 견딜 만합니다. 그러나 각종 통계와 시장이 앞으로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사인을 보내고 있어요.지금 대비해도 그 효과가 나타나려면 6개월~1년 걸리죠. 백약이 무효가 되기 전에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권혁세(56) 금융감독원장은 “감기 증세를 보이는 지금 대책을 고민하지 않으면 새정부 출범 후 독감을 앓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장이 사인을 보내면 정부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그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거야말로 직무태만이죠.”9월 11일 오후 여의도에 있는 금융감독원권 원장 집무실에서 그와 마주앉았다.



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입니다. 가계빚의 상대적 수준이 주요국보다 높습니다. 가계부채, 뭐가 문제인가요?“금융위기 후 가계부채의 질도 나빠졌습니다. 가계 대출에서 제2금융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42%에서 47%로 높아졌습니다. 2금융권은 은행보다 금리가 2~3배 높습니다.결국 성장을 통해 파이를 키워 국민소득을 늘리든지 가계부채를 줄이든지 해야 합니다. 문제는 저성장이 구조화되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대출을 급격히 규제하면 극심한 고통이 따를 겁니다. 일본의 경우 복합 불황 당시 대출 총량을 규제했다가 부동산시장이 급락했습니다. 어떻게든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살려나가야 합니다.”



부동산 시장이 급락하면 그 파장이 어떻게 나타날 거로 보나요?“부동산 거래는 대출을 통해 이루어집니다.그래서 부동산 중개업자만큼이나 금융사 창구에서 부동산의 움직임을 빨리 파악하죠.

부동산의 자산가치가 떨어지면 금융사 부실로 이어지고 소비의 여력이 줄어듭니다.”

권 원장은 무엇보다 ‘하우스푸어(집이 있지만 가난한 사람)’와 ‘깡통주택’이 문제라고 말했다. 집을 팔아도 주택담보대출금을 갚을 수 없는 집들이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높아 대출금이 집값의 80% 이상되는 집들이 1순위다. 대출금의 일부가 2금융권에서 나왔다면 이자 부담은 가중된다.대출금은 50%선이지만 전세금이 30%인 집들도 있다. 이런 집들이 전국적으로 18만 5000호나 된다고 했다. 이들 가구의 절반이 세대주가 40~50대이다. 일부 지역의 경우 집값이 10% 이상 떨어지는 바람에 대출금이 집값을 앞질렀다.

“이들 깡통주택 소유주가 대출이자를 연체하면 경매로 넘어갑니다. 문제는 경락률이 75%에 불과해 은행도 손실이라는 거예요. 이런 집들이 경매에서 낙찰되면 주변 집값도 떨어집니다. 도미노 현상이죠. 그래서 3개월 가까이 연체를 하면 경매를 유예시켜줘야 합니다.”

권 원장은 9월 13일 “하우스푸어 구제를 위해 은행권이 신‘ 탁 후 재임대(트러스트앤리스백)’를 공동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그는 가계빚 문제는 금융당국의 힘만으로는 풀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범정부적으로 성장률을 높여 국민소득이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주거비 말고도 사교육비, 통신비 등이 가계빚의 주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한번 이 틀에 갇히면 가계 수입 이상으로 빚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지죠. 이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 돼요. 또 2금융권의 고금리 빚을 저금리로 갈아탈 수 있게 해줘야 합니

다. 그래서 고금리 대출창구로 몰리지 않도록 은행권에 저금리 대출상품을 많이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기회에 2

금융권도 경쟁체제를 도입해 금리를 떨어뜨려야 합니다. 서민 대출에 대해서는 정부가 보증 지원을 확대해야 합니다.”



자영업자 수가 너무 많습니다. 전체 취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클뿐더러 음식숙박업,도소매 등 일부 업종에 편중돼 있는 것도 문제인데요?“7월 말 현재 586만명에 이르는데 무급인 가족 종사자까지 포함하면 무려 720만 명이나 됩니다. 국내 전체 취업자의 28.7%에 해

당하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16.8%)보다 훨씬 많고 미국(7.0%)의 네배 수준입니다. 정작 문제는 계속 빠르게 증

가하고 있는 데다 자영업자 가운데 10명 중 여덟 명이 망하는 구조라는 거예요. 공급 과잉이라 장사를 해도 안 되는 거죠.”



게다가 영위하는 업종의 부가가치가 낮은 탓이겠지만 영세 자영업자가 다수입니다.“170만 명이 월 수입 100만원 미만입니다. 기생활 수급자 수준에도 못 미치는 거죠. 선진국 같으면 사회안전망에 들어가 실업수당을 받을 사람들이에요. 우리나라 실업률이 3%대인데 경제 이론상 완전고용에 가깝습니다. 이분들을 감안하면 체감실업률은 훨씬

높을 수 있어요. 이들이 가계부채 증가의 도화선이 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대책이 뭡니까?“과잉 업종은 억제하고 새로운 서비스업으로의 진출과 전환을 유도해야죠. 퇴직한 은행장이 왜 음식점을 차립니까? 금융과 관련

한 서비스업도 많은데요. 정부가 교통정리를 해주고 이를 가로막는 규제가 있다면 풀어 줘야죠. 이렇게 공급이 과잉일 땐 해당

지자체가 음식점 허가를 안 내주는 나라도 있습니다. 자영업자를 전담하는 조직을 만들어 이런 일을 맡길 수도 있다고 봅니다.”



기업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합니까? 기업의 몫도 있을 텐데요.“가계부채 해소에 기업이 기여하는 길은 일자리 창출밖에 없습니다. 국내에 투자해 일자리를 만들어 내야죠. 그런데 현대·기아차,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의 경우 국내에서 창출하는 일자리는 별로 없습니다. 최근 화두인 경제민주화도 일자리 창출과 연계돼 논의해야 합니다. 한국경제가 직면한 최대의 과제가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가계빚 문제 해결아닙니까. 사정이 이런 데도 베이비부머와젊은 층이 자영업자 대열에 끼기 위해 대기중입니다.”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당좌거래가 정지된 개인사업자의 44%가 베이비붐 세대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창업은 2013~2014년에 절정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일자리 창출을 어떻게 유인할 수 있나요?“일자리 창출을 한 회사에 세제상의 지원을 할 수 있습니다. 기술 투자, 해외투자한 기업에 세제 지원을 하는데 국내에 일자리를 만들어 내지 않는다면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겁니다.”



정치의 계절을 맞아 정치 테마주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테마주에 대한 감독당국의 대응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는데요?“2007년 대선 때도 20~30배 오른 테마주가 있었지만 선거 후 급락했습니다. 실적이 받쳐주지 않아 제 자리로 돌아간 거죠. 경영실적과 무관하게 뜨는 테마주는 당락과 관계없이 추락합니다. 개미들의 무덤으로 서로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는 거죠. 이 와중에 보유 주식을 대거 처분하는 대주주도 있고요.주가가 오를 이유가 없다고 공시를 해 놓고 자기는 주식을 파는 겁니다. 금감원이 샘플링해 조사를 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정치권이 내놓는 공약 가운데는 포퓰리즘적 요소가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어쨌거나 문제가 있으니까 공약 형태로 대안을 제시하는 겁니다. 정부가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보여줘야죠. 그러

면 우리 국민들이 공약을 제대로 선택하지 않겠습니까?”



신자유주의가 퇴조하면서 금융의 패러다임도 바뀌고 있다고 보나요?“경제공황을 겪을 때마다 반성이 일어났습니다. 그 단초를 제공한 게 금융이었고요.실물에 비해 과도하게 돈이 몰리고 그러다 버블이 꺼지는 거죠. 금융에 대한 규제완화와 관계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규제완화가 대세인 시기가 있었죠. 과거 신용카드사태 당시 거리에서의 카드 회원 모집 단속을 규제라고 막은 일이 있습니다. 규제와 감독은 구분해야 합니다. 국민들이 맡기는 돈을 관리·운용하는 금융업은 기본적으로 규제산업이에요. 방만하게 경영하다 무너지면 공적자금이 투입돼야 합니다.”



SC은행, 씨티은행 등 일부 외국계 은행의 고배당,고금리 장사가 논란이 됐습니다. 감독당국은 조정권고 말고는 수단이 없나요?“SC은행은 당초 2000억원 배당하려다 1000억만 하기로 했습니다. 금감원이 세계적인 은행자본 규제강화 추세 등을 제시하며 강력하게 지도했기 때문이죠.”



저축은행 사태 배후엔 금감원 직원들의 비리가 있었습니다. 금감원 내부의 개혁과제는 어떻게 돼가나요?“저축은행 사태 후 금감원 임직원들이 금융회사 감사로 옮기는 게 금지됐습니다. 그렇게 자율적으로 자정 결의를 했고, 강도 높은 쇄신도 했습니다.”



금융 분야의 경우 기업과 투자자 간의 정보의 불균형이 극심합니다. 이런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한 불공정 문제에 대해 금융 소비자들의 불만의 소리가 높습니다.“금융소비자보호처 신설을 계기로 컨슈머리포트를 만들 겁니다. 9월 말에 발간할 예정인데 연금저축을 최우선으로 다룰 겁니다. 은행별로 금리 비교를 해 중소기업과 가계가 자신의 신용등급에서 어느 은행을 찾아야 가장 싸게 돈을 빌릴 수 있는지 알게 할 거예요. 금융사들도 경쟁체제로 만드는 거죠. 이 때문에 금융회사들 영업이익이 줄어들 수도 있어요. IMF 체제를 겪으면서 감독 당국도 은행이 이익을 많이 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소비자의 이익을 최대한 보호하는 게 현안입니다.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죠.”

권 원장은 9월 초 피치사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AA-로 한 등급 올린 것은 국가부채를 잘 관리한 덕이라고 말했다.“가계부채가 많이 늘기는 했지만 재정이 건실했습니다. 대기업들은 무역흑자 구조를 만들어냈고, 은행들은 외화유동성 관리를 잘하고 예대율도 낮췄죠. 정부는 30년 국채를 발행했고, 우리 은행들은 씨티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보다 신용등급이 더 좋습니다.위기 관리가 느슨해져 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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