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화로 글로벌 위기 뚫는다
블록화로 글로벌 위기 뚫는다
#1. 동아프리카공동체(EAC) 회원국 케냐·탄자니아·우간다·부룬디·르완다 다섯 나라가 최근 ‘동아프리카 도전펀드(TRAC)’라는 이름의 지역 투자펀드를 출범시켰다. 아프리카 전역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뉴스사이트 올아프리카닷컴은 “EAC가 750만 달러로 펀드 자본금을 구성해 프로젝트를 모집하고 있다”고 9월 9일 보도했다. 프랑수아카님바 르완다 통상산업부 장관은 펀드의 목적에 대해 “회원국 간 무역을 촉진시킬 수 있는 혁신적인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TRAC은 프로젝트를 제출한 기업에 최대 35만 달러까지 지원한다.
1억3000만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EAC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블록 중 하나로 꼽힌다. 우간다·부룬디·르완다처럼 다른 나라에 둘러싸인 아프리카 내륙 국가는 지역 내 무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런 펀드가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재원이 부족해 지원 대상이 한정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이에 대해 TRAC의 마크 프리슬리 국장은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조만간 예산을 더 늘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2. 서부 아프리카 국가 가나의 존 드라마니 마하마 대통령이 최근 지역 경제 통합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고 가나웹닷컴이 9월 13일 보도했다. 마하마 대통령은 “아프리카가 경제적 잠재력을 모두 연결할 수 있을 때에만, 100% 잠재력을 달성할 수 있다”며 “가나가 서부아프리카 통합 프로세스를 향해 중요한 역할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마하마 대통령은 이날 아데올라 올루세이오나포노칸 가나 주재 신임 나이지리아 고등판무관(high commissioner)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는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나이지리아와 가나는 영연방국가로 영연방 국가들은 상호간에 외교사절 대신 고등판무관을 파견한다).
아프리카경제공동체 지향마하마 대통령은 나이지리아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경제 주체”라고 치켜세우며, 자신이 가나 대통령으로 있는 한 나이지리아와 경제 관계를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이지리아는 사하라 이남 서부 아프리카에서 자연스럽게 감당해야만 하는 리더 역할을 부여 받았다”며 “가나는 언제든지 나이지리아가 그러한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기꺼이 후원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두 나라가 그들의 경제를 통합해, 양국국민이 직면해 있는 사업 장벽을 없애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이지리아신임 고등판무관도 “나이지리아는 가나와의 관계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며, 가나 공화국을 지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고 화답했다.아프리카 국가들이 경제발전을 위해 지역단위로 뭉치고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들끼리 관세와 비관세 장벽을 낮춰 교역을 활성화하기 위함이다. 현재 아프리카 대륙에는 ‘지역경제공동체(RECs)’라고 불리는 8개의 지역 경제 블록이 존재한다. 지역경제공동체는 무역블록이지만, 정치적·군사적 협력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일부 아프리카 국가는 복수의 지역공동체에 중복 가입함으로써, 이 8개의 지역경제공동체가 자연스럽게 아프리카 전역을 경제적으로 연결하고 있다.
실제로 아프리카 내 8개 지역경제공동체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아프리카경제공동체(AEC)다. 아프리카연합(AU) 회원국의 상호 경제발전을 위한 기구로,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럽연합 17개국 회원국)과 같은 아프리카의 경제통화연합을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다.AEC는 1991년 6월 나이지리아의 ‘미래의 수도’ 아부자에서 열린 제 27차 아프리카통일기구(OAU, AU의 전신) 정상회담에서 잉태됐다. OAU 정상들이 아프리카 대륙의 경제 연합을 목표로 AEC 창설을 위한 ‘아부자조약(Abuja)’에 서명한 것이다. 원래 나이지리아의 수도는 라고스였다. 하지만 나이지리아 정부는 라고스의 인구가 너무 많고 더 이상 확장할 땅도 없다는 이유로 1976년 아부자로 천도할 것을 결정했다. 1980년부터 새수도 건설이 시작됐고, 1991년 11월 아부자가 공식 수도가 되었다.
아부자조약은 먼저 지역 수준의 경제통합을 위한 구체적인 단계를 규정하고, 이후 이를 대륙적 수준으로 확대시키면서 최종적으로는 자유무역과 통화통합을 목표로 제시했다. 하지만 지역통합을 추진하는데 여러가지 장애요인이 나타나면서 야심찬 목표는 오랫동안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2006년 아프리카통합담당장관회의(COMAI)가 구성되면서 통합 논의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후 COMAI는 연례회의를 통해 아프리카 각 지역뿐만 아니라 대륙의 통합까지 염두에 둔 행동계획을 모니터링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아프리카의 경제 통합 논의에도 자극제로 작용했다. 세계 경제가 본격적인 침체 국면으로 빠져들자 아프리카 국가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AEC를 구성하는 8개 지역경제공동체중 3개가 단일 자유무역지대(FTA)를 창설하기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동남아프리카 공동시장(COMESA)’과 남아프리카개발공동체(SADC), 그리고 EAC는 2011년부터 ‘3자 FTA(T-FTA: Tripartite-Free Trade Area)’를 구성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 ‘3자 FTA’가 성사되면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이집트 카이로까지 28개국 5억3300만명의 인구와 GDP총액 8330억 달러의 거대 시장이 탄생한다. 2013년 초 발효가 목표다.
2013년 ‘3자 FTA’ 출범 전망올 1월에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제 18차 AU정상회의에서 대륙내 무역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계획이 마련됐다. 향후 10년 동안 대륙 내 교역량을 지금의 두 배로 늘린다는데 합의한 것이다.논의 과정에서 아프리카가 역내 교역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프라부터 개선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유엔경제사회이사회 지역기구인 유엔아프리카경제위원회(UNECA)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해상으로 운송되는 수출입화물의 부두 체류시간이 평균 10.1일로, 다른 대륙의 평균 2.1일에 비해 한참 느리고, 도로망도 포장률이 30%에 불과하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SADC가 최근 야심찬 계획을 내놓았다. 엔지니어링뉴스는 “SADC가 남부 아프리카 국가들의 성장과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500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개발 사업을 추진한다”고 6월19일 보도했다. ‘지역인프라마스터플랜(RIMP)’으로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상호연결성(connectivity)’ 부족이 지역 내 교역의 제약이 되고 있다는 평가에서 출발해 초국경적인 인프라를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현재 SADC 국가 간 교역량은 전체 교역량의 2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그나마이 교역량도 대부분 남아공에 편중돼 있다.
SADC는 RIMP를 추진하기 위한 준비기구로 ‘아프리카 인프라 개발 프로그램(PPDF)’을 남부아프리카 개발은행에 설립했으며, 독일개발은행(KfW)으로부터 일부 기금도 지원받았다.SADC는 아프리카 대륙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경제통합이 빠르게 진행되는 지역이다. 경제국경은 이미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다.케냐의 인터넷 뉴스 사이트인 케냐센터럴 닷컴은 “경제대국 남아공과 거래를 하기 위해 (같은 SADC 회원국인) 모잠비크에서 매일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이 많다”고 보도했다.
이 사이트는 ‘모잠비크는 아프리카 경제의 가공하지 않은 다이아몬드 원석’이라는 제목의 9월3일자 보도에서 “모잠비크가 남아공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는 점도 경제가 활기를 띠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며 이같이 전했다. 케냐센트럴닷컴은 “비즈니스 거래나 출퇴근을 위해 모잠비크와 남아공 국경을 넘는 사업가와 노동자가 많다”며 “모잠비크수도 마푸토에서 남아공 국경까지의 거리는74㎞에 불과하다”고 말했다.아프리카가 다른 대륙 경제블록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략적인 동맹 차원의 강력한 통합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케냐 나이로비 소재 케냐타 대학교 정치경제학과 학생인 암보코 줄리안스는 “지구촌 다른 지역의 경쟁력이 통합으로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8월 30일 올아프리카닷컴에 기고한 ‘동아프리카의 통합이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서다. 줄리안스는 “식량과 수자원 등 개별국가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요인들에 대해 회원국들이 힘을 합치면 더 잘 대응할 수 있다”며 “지역통합의 필요성이 결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되며, 아프리카 국가들이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해 그들의 정책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프리카의 경제 통합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적 소득까지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으로 인식돼 왔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빈곤을 퇴치함으로써 튼튼한 정부가 탄생하는데도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프리카 지도자들도 일찍이 지역경제통합을 위해 뜻을 같이하고 있다.
실행력 부족이 가장 큰 걸림돌경제통합은 또 아프리카 국가들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도 아주 중요한 문제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만약 경제통합을 이루지 못한다면,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육지로만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내수시장이 작아 성장에 한계가 있고, 개별국가의 교섭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그래서 통합을 통해 더 유리한 조건으로 국제시장에 접근함으로써 성장의 엔진 역할을 감당하게 하려는 것이다. 한 국가가 시장진입 장벽을 없애고 수송부문을 포함해 낮은 거래 비용으로 효율을 높여 주면, 지역적으로도 경쟁력이 강화돼 투자를 불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세계 경제위기로 국제무역 거래가 줄어들면서, 투자를 끌어들이는 통합의 장점이 더욱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1991년 아부자조약으로 ‘AEC 창설’이란 큰 그림을 그린 이후, 아프리카는 20여 년동안 경제통합을 목표로 적지 않은 성취를 이뤄냈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숙제 또한 많은 것으로 평가된다. 미 국제개발처(USAID)는 2009년 7월 발표한 ‘아프리카의지역경제통합(Regional Econom ic Integration in Africa)’ 보고서에서 “(아프리카 각국의) 능력과 자원의 한계에서 기인하는 실행력 부족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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