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늑대소년’-순애보 영화의 새로운 기준을 세우다
영화 ‘늑대소년’-순애보 영화의 새로운 기준을 세우다
영원한 사랑. 영화가 ‘사랑’이라는 주제를 ‘사랑’하는 이유는 이 판타지적인 설정 때문일 것이다. 조성희 감독의 신작 ‘늑대소년’은 순애보라는 감정 그 자체에 집중하는 영화다. 소녀를 위해 평생을 기다린 소년의 이야기, 말하자면 여자들을 위한 순애보다. 그래서 어쩌면 남성 관객보다 여성 관객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일부 남성 관객은 공감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절래 흔들 수도 있지만.
이런 차이는 순애보를 대하는 남녀의 태도 차이 때문인지 모른다. 남자에게 순애보는 리얼리티지만 여자에게는 판타지다. 남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여자를 지켜내고 사랑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만, 여자에게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는 감정 그 자체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마음, 그것이 여자의 순애보이자 판타지다. ‘늑대소년’은 바로 그 지점에서 여심(女心)을 공략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늑대소년’은 동화적인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가족과 함께 요양 차 시골에 내려온 소녀(박보영)는 집 앞마당에서 괴상한 소년(송중기)을 발견한다. 헝클어진 머리, 찢어진 옷부터 심상치 않은 모습이다.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고, 갑자기 사나워지는 태도 역시 소년의 실존을 의심케 한다.
하지만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닫고 살던 소녀는 세상에서 버려진 채 야생에서 살아온 거친 소년에게서 동질감을 발견하고 점점 마음의 문을 연다. 사람답지 않은 행동을 보이는 늑대소년이 왠지 신경이 쓰이는 소녀는 먹을 것을 보고 기다리는 법, 옷 입는 법, 말하는 법, 글을 읽고 쓰는 법 등 소년에게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하나씩 가르쳐준다.
여성을 위한 순애보 판타지어느새 순수한 소년에게 마음을 열게 된 소녀와 세상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향해 손을 내민 소녀를 만난 소년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소년와 소녀의 첫사랑이 시작되는 것. 하지만 달콤한 첫사랑의 시간은 그리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어느 날 소년은 소녀를 곤경에 빠뜨린 지태(유연석)를 본 후 분노를 숨기지 않는다. 소녀에게 예기치 못한 위기가 닥치자 소년은 숨겨져 있던 본성을드러내며 늑대로 돌변하고,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다.
이로 인해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된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소년은 소녀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다. 이 사건 이후 소녀의 마음은 혼란에 빠진다. 분노하면 인간의 본성을 잊고 늑대로 돌변하는 괴물 같은 존재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고민하던 소녀는 소년의 흉측한 외형과 순수한 내면 사이에서 후자를 믿기로 한다. 그리고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남기고, 그의 곁을 잠시 떠난다.
그녀가 남긴 한마디, 그가 평생을 품어야 하는 한 마디. “기다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소녀를 기다리는 소년의 모습으로 마무리 한 이 영화의 엔딩은 ‘늑대소년’의 핵심인 셈이다. 조성희 감독은 “늑대소년은 감정의 판타지다. 이 세상에 없을 것 같은 사‘ 랑’을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판타지다”라고 말한 바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곽경택 감독이 ‘사랑’(2007)을 통해 그려낸 순애보가 남자의 시각에서 펼쳐 낸 리얼리티라면, 조성희 감독이 그려내는 순애보는 여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판타지다. 다시 말해 ‘늑대소년’은 시간을 초월한 운명적인 만남, 사랑을 넘어선 순수한 교감을 통해 여자들의 순애보(판타지)를 영화적 상상력으로 그려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여성 관객에게는 현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황홀한 체험이 되지 않을까.
트와일라잇과 타이타닉의 결합‘늑대소년’은 ‘타이타닉’(1997)과 ‘트와일라잇’(2008) 사이에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로즈(케이트 윈슬렛)를 향한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마음과 벨라(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위한 에드워드(로버트 패틴슨)의 감정이 ‘늑대소년’ 가슴 속에 혼재돼 있다는 인상이다. ‘늑대소년’의 목가적인 풍경 속에 펼쳐지는 소년과 소녀의 모습은 ‘타이타닉’이 서정적으로 그려낸 순수한 사랑을, 소녀를 위해 맹목적으로 돌변하는 소년의 존재는 ‘트와일라잇’이 보여주는 헌신적 사랑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몽환적인 이야기의 중심에 선 송중기·박보영, 두 배우의 열연은 단연 돋보인다. 한국 영화에서는 낯선 캐릭터인 ‘늑대소년’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 송중기는 이 작품으로 필모그래피에 든든한 주춧돌을 세웠다. 박보영 역시 순수한 사랑 앞에 선 소녀의 애절한 감성을 오롯이 표현하며 빼어난 연기를 선보인다. 그리고 영화에서 악역으로 등장하는 지태 역의 유연석은 드라마의 강약을 조절하는 임팩트 있는 명연기를 펼친다.
‘늑대소년’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영화다. 분명한 것은 ‘늑대소년’이라는 신선한 소재와 ‘순애보’를 외치는 감성적인 화법이 최근 한국 영화에서 보지 못한 생소한 풍경이라는 점이다. ‘늑대소년’은 한국 순애보 영화의 새로운 기준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가을에 어울리는 신작 멜로 3
감독 루이 말 | 출연 제레미 아이언스, 줄리엣 비노쉬, 미란다 리차드슨 | 러닝타임 111분 | 개봉 11월 1일 | 청소년 관람불가
1992년 미국에서 개봉해 1993년 아카데미시상식 여우조연상(미란다 리처드슨) 후보에 오르는 등 평단과 대중의 호응을 얻었지만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예술이냐, 외설이냐’ 하는 논란에 휩싸였다. 올해 재개봉하는 ‘데미지’는 무삭제 버전. 이 버전의 ‘데미지’를 보면 ‘외설이 아닌 예술’이라는 점이 더욱 확실해진다. 인간 영혼의 심연을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전혀 녹슬지 않았다.
라잇 온 미
감독 아이라 잭스 | 출연 투레 린드하르트, 재커리 부스, 줄리앤 니콜슨 | 러닝타임 101분 | 개봉 11월 1일 | 청소년 관람불가
‘라잇 온 미’를 보고 가슴이 저릿해졌다면 그것은 이 영화가 가장 보통의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성의 사랑을 다룬 퀴어 멜로라는 장르 안에 가두기에는 너무나 보편적인 멜로 영화 ‘라잇 온 미’는 인생에서 가장 절절했던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보듬는 듯한 시선을 지닌 영화다. ‘라잇 온 미’는 그들의 치열한 사랑만큼이나 치열했던 헤어짐까지를 담아낸다. 덤덤해 보이는 그들의 마지막이 더 가슴 아픈 까닭은 그들이 거기에 도달하기까지 이미 수없이 마음속에서 서로를 잡았다 놓았다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숭아나무
감독 구혜선 출연 | 조승우, 류덕환, 남상미 | 러닝타임 106분 | 개봉 10월 31일 | 15세 관람가
샴쌍둥이로 태어나 뒤통수를 맞대고 살아가는 어느 형제의 이야기. 외부와 소통 없이 자란 상현과 동현의 삶에 아마추어 삽화가 승아가 발을 들여놓으면서 모든 것이 달라진다. ‘복숭아나무’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편견에 대한 이야기다. 그 편견으로부터 버텨나가는 사람들을 통해 영화는 교감, 배려, 희생에 대해 말한다. ‘복숭아나무’는 구혜선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로 그의 재능과 약점을 동시에 엿볼 수 있는 영화다. 한편 한 몸을 연기하는 조승우와 류덕환의 기묘한 어울림, 남상미의 싱그러움을 보는 재미가 제법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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