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맡아보세요!
예술을 맡아보세요!
뉴욕 아트 디자인 박술관(MAD)의 우중충한 회의실. 세계 유일의 후각예술(olfactory art) 큐레이터 챈들러 버가 병을 하나 꺼내와 얇은 종이조각에 액체를 뿌린다. 그러고는 내게 냄새를 맡아보라고 권한다. “어때요?” 그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묻는다. 종이조각에선 향수 같은 냄새가 난다. 10월의 이날 아침에 냄새를 맡아본 다른 모든 종이조각보다 약간 더 코를 쏘는 듯하지만 그래도 향수다. 아니면 화장비누일까(fancy soap).
틀렸다. 버는 희미한 장미 냄새뿐 아니라 금속과 피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플로싱을 할 때 때때로 피가 나는데 그 맛이 싫다. 끔찍하다.”
그 향은 오 드 프로텍숑(Eau de protection)으로 불린다고 버가 설명했다. “모든 형태의 예술을 통틀어 지금까지 만들어진 가장 환상적인 작품 중 하나다.” 작품은 “한 여성의 초상화”로 구상됐다. “너무나 아름다워 피 속에 장미가 흐르는 여자다. 한 남자가 금속칼을 들고 다가와 그녀의 심장 깊숙이 찔러넣는다. 칼날을 타고 흘러내리는 그녀의 피냄새가 퍼져나간다.”
그는 또 다른 냄새를 맡아보라고 권한다. 이번에는 장미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하지만 금속 향은 없다. 아니, 쇠의 떫은 향이 살짝 묻어나는 듯도 하다(maybe a touch of steely astringency). 피 냄새는 분명 없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향수다. 여느 향수와는 좀 다르지만 말이다. “희한하죠! 이상하죠!” 버가 단언한다.
“이 냄새를 맡을 때 머리 속에 알람 벨이 울리지 않는다면(If an alarm bell does not go off) 신경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아니면 그냥 향기에 문외한일지도 모른다(you’re just an untutored philistine of fragrance). 향수 제조자가 가령 종합적 입체주의와 분석적 입체주의(synthetic and analytic cubism)를 구분하지 못하듯이 향기의 미묘한 차이를 감지하지 못하는(impervious to scent’s subtleties) 사람 말이다.
버의 첫 전시회(아니, 첫 ‘후각 감상회’라고 해야 하나?)가 지난 11월 13일 MAD에서 열렸다. 후각예술의 선구자인 그는 전시회를 앞두고 명백한 난제에 맞닥뜨렸다. 후각이 발달하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하면 자신처럼 예민하게 냄새를 포착할 수 있게 만드느냐는 점이다. 아무리 열렬한 탐미주의자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향기 예술(The Art of Scent): 1889-2012’ 전시회에서 버는 관람객들에게 향기 역사의 12가지 하이라이트를 소개한다. 미세한 연무처럼 향수를 뿜어내는 방사 기술을 이용했다(thanks to diffusion technology that releases perfume in minute puffs). 하지만 관람객 중 그 예술형태의 미세한 차이점을 식별할 줄 아는(recognize the art form’s finer points)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불확실하다.
할리 하치너 관장이 이끄는 MAD는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예술을 전문으로 한다. 온갖 종류의 공예와 디자인, 미술의 가교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녀조차도 자신이 후원하는 이번 전시회를 도박으로 여긴다. “아마도 이번 전시회가 가장 파격적인 실험인 듯하다(is probably as far afield as we’ve gone). 사람들이 코를 이용해 작품을 감상하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버는 한 콧구멍씩 그런 인식을 바꿔나갈 작정이다(is determined to change that nostril by nostril). 사람은 한번에 하나의 콧구멍으로만 냄새를 맡는다고(we only smell through one at a time) 그는 말한다.
버는 항상 “그림은 그림일 뿐”이라고 생각했다고 돌이켰다. 그러던 중 우연히 어느 예술감정가(a connoisseur)를 만났다. 그는 감식안이 있으면 반 고흐의 그림 한 점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는지 버에게 보여줬다(showed him how much a trained eye could unpack from a single van Gogh).
“그가 그림에서 나보다 100배나 많은 걸 읽어냈다는 사실이 큰 충격이었다”고 버가 말했다. “냄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 같은 향수 전문가가 더 뛰어난 코를 갖고 태어난 “생물학적 돌연변이(biological freak)”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미술 평론가라고 해서 원래부터 더 뛰어난 안목을 타고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단지 후각을 더 자주 그리고 더 주의 깊게 사용할 뿐이다.
“모든 지식은 비교를 토대로 한다(All knowledge is based on comparison)”고 버가 말했다. 그가 한때 파리에서 배웠던 한 교수의 말이다. 그는 흠잡을 데 없는 프랑스어로 그 경구를 되뇌인다. 전화 통화를 엿들으니 이탈리아어 실력도 그에 못지않다. 스페인어도 유창하게 구사한다(그의 파트너는 히스패닉계다). 일본에서 교사생활을 해서 일본어에도 능하다고 한다. “덧셈은 잘 못해도 3개월 정도면 언어 하나를 마스터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또한 자신이 찾아갔던 각각의 장소를 냄새로 기억한다고 한다.
48세의 버는 키가 182cm를 넘는 우람한 체격이다. 숱이 적어진 갈색 머리에 고급 사립학교 출신의 귀공자 같은 옷차림이다(with thinning brown hair and standard preppy clothes). 보트 슈즈와 카키색 바지, 그리고 잘 다려진 격자무늬 셔츠를 입었다. 뉴스 마니아라면 지난해 그가 CNN에 출연했을 때를 기억할지 모른다. 버는 콜롬비아 아동 두 명을 입양했다. 그런데 그가 게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콜롬비아 정부가 입양을 무효화하려 했던 일이다(법정투쟁에서 승리한 버는 현재 뉴저지에서 아이들과 함께 산다).
버는 명민한 두뇌의 소유자로 어떤 화제가 나오든 빠르고 막힘 없이 길게 이야기한다(has an agile mind and talks long, fast, and well about whatever comes up). 다만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좀처럼 끝낼 줄 모른다는(there’s not much sign of an off switch) 점이 문제다. 어쩌면 그의 가장 놀라운 점은 그의 냄새, 아니 그에게서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향수를 전혀 뿌리지 않는다”며 일할 때 생기는 향기로도 충분하다고 설명한다.
버는 베르트랑 뒤쇼푸르의 작품으로 내 후각 훈련을 시작한다. 뒤쇼푸르는 “사상 최고의 후각 예술가 중 한 명이며 분명 오늘날 그 분야에서 활동하는 최고 권위자로 손꼽힌다.” 바로 ‘시엔 리베르(겨울의 시에나)’라는 작품이다. 버는 말들의 열기와 가죽, 지푸라기, 향긋한 이탈리아 흰송로버섯, 그리고 고대 돌들의 냄새를 식별해 보라고 내게 요구한다.
“고대의 차가운 돌들 … 미네랄 냄새뿐 아니라 그 차가운 느낌까지.” 여느때처럼 향수 냄새가 난다. 하지만 다소 차가운 느낌의 향수일지도 모르겠다. “이 냄새에는 햇빛, 봄, 식물, 활짝 핀 꽃들이 없다”고 버가 말한다. 향수 냄새가 미치는 범위 안에 일반적인 꽃 향기가 없는 건 사실이다.
버는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받은 인상을 표현한 뒤쇼푸르의 이 작품이 “자신이 맡아 본 향기 중 가장 세련되고 기술적으로 높은 경지에 이른 사실주의 작품 중 하나(one of the most accomplished, technically virtuosic realist works I’ve ever smelled)”라고 단언한다. 그는 또한 10여년 전 후각예술의 세계에 빠져들기 전이었다면 그것을 터무니 없는 소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버는 시카고 인근에서 태어났지만 워싱턴 DC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부동산업에 종사했다. 그는 일가친지의 향수 가게에 일자리를 얻었다. 하지만 버는 그 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 분이 완구나 자동차를 취급했다면 나도 그런 품목을 판매했을 것이다.”
버는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비즈니스와 과학 분야의 취재 기자로 한동안 일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후각 전문가를 만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향기 전도사가 됐다. 저서로 후각 과학자 뤼카 튀랑에 관한 ‘향기의 황제(The Emperor of Scent)’와 향수 두 종의 제조 및 판매를 다룬 책이 있다. 2006년 버는 최초의 뉴욕타임스 ‘향수평론가’가 됐다. 2010년 말 하치너 MAD 관장이 그의 권유를 받아들여 미술관에 후각관을 설치하자 평론가 일을 그만뒀다.
버는 샤넬 넘버5가 뿌려진 지팡이를 내게 건넨다. 1921년에 출시된 향수다. 그는 그것을 가리켜 “향수를 근본적이고 극적으로 바꿔놓은 혁명적인 예술작품”이라고 표현한다. 버는 샤넬 넘버5가 실제로 “향수 같다(perfumy)”는 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 제품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그 뒤에 나온 수많은 향수의 모델이 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샤넬 넘버5는 알데히드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향수였다고 그는 설명한다. 알데히드는 자연에는 유사한 냄새가 거의 없는 합성분자다(synthetic molecules that barely have smell-cousins in nature).
여기서 버 특유의 이론이 나온다. 인공적인 향을 포함하는 향수만이 가치 있는 예술작품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자연발생적인 성분으로만 이뤄진 초창기 향수를 “공예품(artisanal products)”으로 평가절하한다. 향수가 진가를 인정받은(came into its own) 때는 1884년 이후라고 그는 말한다. 당시 새롭게 합성된 향기분자가 포함된 푸제르 루아얄(“사상 최초의 후각예술 작품”)이라는 신제품이 나왔다.
예술로 인정받으려면 “인공적이어야 한다(a thing must be artificial). 완전히 자연으로만 예술을 창작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버는 단언한다. 물감재료를 모두 자연에서 얻은 중세 거장들은 의외로 받아들일 성싶다. 버는 독학으로 예술에서 발견한 기법을 화학자가 생각하는 인공의 개념과 융합해 새로운 미학 이론을 만들어낸 듯하다(seems to have conflated the artifice found in art with a chemist’s idea of the artificial). 그리고 이제 그 융합이론을 세상에 전파할 작정이다.
버의 전시회에 푸제르 루아얄은 출품되지 않는다. 더 이상 생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전시장에선 지키(Jicky)라는 향수가 뿌려진다. 푸제르보다 5년 늦게 출시됐으며 아직도 “후각 낭만주의의 최고 걸작품 중 하나(one of the greatest works of olfactory romanticism)”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프랑스의 낭만주의 화가들인 외젠 들라크루아와 테오도르 제리코, 그리고 영국 낭만주의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이 떠오른다. 지키는 말하지 않고 냄새로 존재를 알린다(doesn’t speak, it proclaims).” 지키는 적어도 MAD관장에게는 확실히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녀는 그 냄새를 맡자마자 자신의 향수를 지키로 바꿨다.
‘향기 예술: 1889-2012’에선 현대의 하이라이트로 ‘자스맹 에 시가레트(Jasmin et Cigarette)’라는 향수가 언급된다. 버의 표현을 빌리자면 “21세기의 포토리얼리즘(photorealism, 사물을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예술 기법)”이다. 어느 정도는 그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 “싸구려 재스민 향수를 뿌리고 담배를 피우는 프랑스 여성”의 냄새를 맡아 봤다. 앞서 언급했던 칼날에 흐르는 피 냄새 향수와 이 향수의 개발자는 앙트완 리와 앙트완 메종디외다.
그들이 “담뱃재 냄새를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해 냈다(the most f--king lifelike representation of cigarette ashes)”는 버의 말이 맞는 듯하다. 담배연기 자체의 손쉬운 향기가 아니라 재털이 속 꽁초의 떨떠름한 냄새 말이다(the sour smell of butts in an ashtray). 하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맡은 향기는 여전히 이런 마법을 부리는 ‘향수’로 인식될 수 있다. 변함없이 근사한 향수병에 어울린다는 뜻이다.
몇 시간 동안 냄새를 맡고 버로부터 장시간 강의를 들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체험 할 만한 범위가 몇몇 다른 예술형태보다 너무 좁지 않나 싶다. 모든 시각예술은 감정, 그리고 세상에 대한 모호한 시사가 전부인 표현주의적 추상에 국한된 듯하다. 여전히 향수의 미학을 지배하는 구식의 감각적 모델을 따르는 그림들 말이다(paintings that buy into the old-fashioned sensual model that still rules the aesthetics of perfume).
하지만 물론 미술은 콘텐트로 충만할 수 있다. 예술가들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주제에 관해 직접으로 힘차게 표현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드로잉이나 페인팅 또는 사진촬영 아니면 영화나 동영상, 설치작품 등의 형태로 말이다. 그들은 극도로 추잡하거나 대단히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낼 수도 있다(can go for the wildly scatological or the emphatically political).
본능에 어필하거나 우리의 가장 추상적인 정신능력에 호소하는 체험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can craft experiences that work below the belt or speak to our most abstract mental capacities).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분노와 혐오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반면 대다수 향수 제조자는 적게든 많게든 기본적으로 향수 냄새 풍기는 값비싼 상품을 만들어낸다.
후각예술은 “철저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상업적 이해의 노예가 됐다(completely and aggressively and successfully colonized by commercial interests)”고 버는 시인한다. 화장품업계는 근사한 병에 약간의 액체를 담아 유명인의 이름을 붙였다. 그럼으로써 명성을 상품화하는 지름길에 이르렀다고 버는 말한다(공교롭게도 화장품업계는 그의 최대 돈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향수 제조자가 만들어낸 작품은 “지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엄청난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낸다(have a huge intellectual impact and generate an immense emotional reaction)”고 그는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만든 영혼의 생각, 욕구, 편견, 어리석음, 꿈, 소망, 탁월함과 소통한다.”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냄새 하나만으로 이 모두를 읽어내기는 더 어렵다는 점 또한 부인하지 못한다. 버에 따르면 냄새는 두뇌의 가장 원시적인 부위에서 처리된다. 더 분명하게 콘텐트로 채워진 예술형태와는 관련 부위가 다르다.
버의 첫 전시회 그리고 그의 생각은 흔히 말하는 “좋은 향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그를 잘 구슬리면 다른 종류의 최신 후각문화에 관해서도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향기를 뿜어내는 조각도 있다고 한다. 개념미술에 가까운 향수 제조자의 작
품들은 몸에 뿌리기보다 수집품으로 더 어울릴 듯하다. 냄새가 없는 후각예술(nonaromatic nose art)에 관해서도 논한다. 미에 관한 미술적 판단을 거부하는 마르셀 뒤샹의 비시각적 시각미술론(the non-retinal visual art)을 모델로 삼았다.
세탁비누, 베이비 파우더, 신차 등 우리가 매일 생활 속에서 접하는 갖가지 ‘후각적 이정표(olfactory landmarks)’ 이야기도 있다. “모두 예술가들이 합성했다”고 버가 말했다. 다만 그들의 이름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을 뿐이다. “선크림 코퍼톤(Coppertone)의 향은 기막히게 잘 만들어지고 아름답게 합성됐다. 디자인 작품으로 부르든 뭐라 부르든 하나의 작은 예술작품이다(Call it a work of design—call it what you will—it is a minor work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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