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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으면 복지도 없다

일하지 않으면 복지도 없다

100년간 20차례 복지제도 손질…사회보험당국 기준 강화해 ‘꾀병 수령자’ 가려



‘중병 환자를 일터로 내몰아선 안 된다’. 2009년 12월 2일, 스웨덴 최대 일간신문 DN 1면을 장식한 헤드라인이다. 온건당(보수당) 정부가 강화한 의료보험 기준에 따라 암 말기 환자도 직장에 복귀해야 하는 현실을 비판한 기사였다. 병가를 내고 유방암 수술을 받은 63세 여성이 암이 전이돼 상태가 악화됐는데도 복직할 수밖에 없는 사연을 다룬 기사에 대한 후속 기사였다.

이 여성은 1년 간 병가를 사용했지만 병이 호전되지 않았고, 다시 일하지 않으면 의료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 스웨덴 사회보험국의 새로운 기준에 따라 직장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암 말기 환자라도 일하지 않으면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됐다는 사실에 스웨덴 국민들은 분노했다. 결국 이 사건으로 크리스티나 페르손 사회보장부 장관이 경질됐다.

그로부터 3년. 후임자인 울프 크리스터손 사회보장부 장관은 여전히 복지 제도를 손보는 중이다. “더욱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스웨덴 복지가 나아가야 한다”는 기조 아래 복지 시스템을 개혁하는 울프 크리스터손 장관을 11월 14일 스톡홀름 시내 정부청사에서 만났다.

그는 당시 사건에 대해 “한해 4700만 건에 이르는 사회보험국의 의사 결정 과정 중에 빚어진 실수였다”며 “질병 휴직 후 (기존 업무 강도에 비해 약한 수준의 일이라도)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상태라면 일하지 않고는 더 이상 병가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기본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설명했다. ‘복지 천국’의 규칙은 생각보다 더 엄격했다.

스웨덴은 명실상부한 ‘복지 천국’ 아닌가.

“단 한번도 ‘복지 천국’이었던 적은 없었다. 내년이면 스웨덴이 1913년 국가연금보험제도를 도입해 사회 복지를 구현한 지 100주년이 된다. 100년 간 스웨덴 복지제도는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1990년대 금융위기 때 조세·연금제도를 개혁한 것을 비롯해 각종 사회보험 보장을 축소했고, 보육확대도 중지했다. 최근에는 질병수당과 실업수당을 축소했고, 근로장려세제(EITC)를 도입하는 등 ‘일하는 복지’로 탈바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같은 개혁은 100년간 20여 차례 이뤄졌다.”

결국 실패로 끝난 복지 제도도 있나.

“1959년 도입한 연금제도 중에 ‘국가부가연금제도’가 있었다. 일종의 산업연금이었는데 일하는 사람이 일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세금을 내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청년 실업률이 높아지고, 고령화가 시작되자 운영이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출산율은 떨어지고, 경제는 흔들렸다. 20여 년간 시행착오를 겪다 1980년대 들어서야 개혁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결국 1994년에 폐지했다. 잘못된 복지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수정하기까지 수 십 년이 걸린 셈이다.”

개혁하면서 복지 재정을 줄였다. 이유가 무엇인가.

“복지의 관대함보다 지속가능성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 산업연금제도는 관대했지만 지속가능하진 않았다. 관대성을 유지하되 사회에 공헌한 만큼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가장 최근(2008년)에 개혁한 병가 제도를 예로 들어보자. 병가를 내면 급여의 80%가 보장이 된다. 대신 병가를 낸 첫 번째 날은 개인이 그 비용을 부담하는 식(급여에서 하루치의 급여가 깎이고 둘째 날부터는 안정적으로 보장)이다. 제도가 주는 안정성의 수준은 높게 유지하되, 개인이 초래한 리스크의 일정 부분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여지를 남긴 것이다.”

사회보험제도의 역할은 무엇인가.

사회보험제도는 사회 안정성의 기반이다. 사람들은 이 제도를 통해 안전한 장치로부터 보호 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스웨덴 사람들은 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다만 상대적으로 고부가 가치의 일을 하거나, 고소득을 창출하는 사람은 사회보험 혜택을 더 많이 되돌려 받을 수 있다. 사회보험제도의 안정성 덕에 사람들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상황이 나빠져도 보험 혜택을 받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믿음이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들진 않나. 이른바 ‘복지병’을 어떻게 막을 수 있나.

“스웨덴 사회보험국은 엄격한 기준에 따라 개인에게 복지 혜택을 준다. 예를 들면 개인이 몸이 아파서 3주 간 병가를 낸다고 치자.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정말로 3주 동안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태인지, 이 일이 어려우면 다른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는지 확인한다. 만약 업무가 가능하다고 확인되면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병가를 낸 모든 사람들이 꾀병이란 뜻은 아니다. 단지 이전에는 병가를 사용하는 것에 조금 해이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개혁 후에는 그 사람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상태이면 병가 혜택이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다.”

사회복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재원이 필수적이다. 어떻게 마련하나.

“연간 소득세를 기본으로 한다. 별다른 기금마련은 하지 않는다. 이 시스템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경제가 돌아가는 한 전혀 문제가 없다. 우린 노르웨이처럼 유전 산업으로 구축할 수 있는 거대 자금도 없다. 이 때문에 근로하는 인력 상황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실제로 근로 인력 비율이 높은 편이기도 하다.”

고세율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은 없나.

“1970년대에는 소득세율이 70~80% 달하던 시절도 있었다. 다행히 국민들은 복지혜택을 누리면서 세금은 개인이 응당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세금 부담이 너무 컸고, 정부는 변화를 시도했다. 공익 재정을 위해 GDP의 약 57%를 지출하던 것을 약 50% 수준으로 감축했다. 현재 국민의 세금 부담률은 덴마크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 부유층은 소득의 60%, 저소득자도 29%를 부담한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긴 하지만 다른 유럽 나라들과 비교하면 일반적인 수준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스웨덴 사람들은 세금이 높더라도 사회에 지불하는 만큼 돌려 받는 혜택이 크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는 한 해 동안 개인 소득(지불한 세금)이 얼마인지를 확인한 후 이에 맞게 병가나, 육아복지 혜택 등을 적용시킨다. 일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복지 혜택을 적용하되 매우 기본적인 수준의 지원만이 이뤄진다. 이런 원칙 때문에 열심히 일하는 고소득자들이 고세율을 지불하도록 동기부여를 한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복지제도를 개혁 중이다. 스웨덴 복지 모델만의 강점은.

“우린 이미 20여 년 전에 사회복지제도를 개혁했다. 다른 유럽 국가들이 하지 못한 시도였다. 기존 법률을 변경하고, 세금을 줄였으며 국립은행을 설립하는 등 새로운 복지 체제를 위한 구조적인 개혁을 마쳤다. 이 시기에 복지 체제를 손보지 않았다면 오늘 날 일부 유럽 국가의 위기가 남의 일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또한 우린 관대함의 한계를 깨닫기 시작했다.

매년 세금만 올리면서 사람들이 미소 지어 주길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금을 올리는 만큼 그 가치를 돌려받도록 해줘야 한다. 스웨덴의 건강한 정치 문화도 한 몫을 했다. 우리 정당은 여전히 서로 싸우지만 동시에 논의와 타협을 한다. 싸우면서도 서로 미워하진 않는다. 바로 이런 바탕이 스웨덴식 복지 모델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런 토대 위에서라면 현재 개혁의 목표인 일하는 복지, 지속가능한 복지가 실현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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