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샘물은 하나의 거대 산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국내 시장규모가 연간 6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되고 수년 내에 1조원대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국내 먹는샘물 시장에서는 ‘한라산 물’의 수성이냐, ‘백두산 물’의 돌풍이냐에 관심이 쏠려있다.
14년 간 시장점유율 부동의 1위였던 ‘제주삼다수’ 유통권이 농심에서 광동제약으로 넘어간 가운데 농심과 롯데칠성음료가 백두산 생수 신제품을 출시하고 맞불을 놓으면서다. 소비자 충성도가 높은 제주삼다수, 그리고 유통과 마케팅 역량이 막강한 농심과 롯데칠성의 신제품이 새해 초부터 치열한 수‘ (水)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삼다수 뺏긴 농심, 백산수로 설욕전농심은 중국에서 판매해 온 ‘백두산 백산수’를 지난해 12월 20일 국내에서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백두산의 상징성을 담기 위해 다산 정약용의 대동수경에서부터 등장했던 백두산의 옛 이름인 백산(白山)을 브랜드로 정했다. 백산수는 백두산 천지 북면의 산기슭 해발 670m에 있는 원시림보호구역에서 뽑아낸 물이다. 연중 7도 안팎의 온도를 유지하는 저온 천연 화산암반수로, 불순물을 제거한 청정함과 부드러운 목넘김을 내세웠다. 가격은 소매점 기준 600㎖ 페트가 500~600원, 2ℓ 페트는 1000~1200원이다.
농심은 백두산 백산수로 5년 안에 연 매출 2000억원을 달성, 먹는샘물 시장 1위를 탈환한다는 목표를 잡고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최윤석 농심 상품영업 총괄전무는 “제주삼다수로 먹는샘물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온 노하우를 활용해 세계 최고 수준의 물맛을 자랑하는 백산수로 신화를 재현하겠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선 제주삼다수를 잃은 농심이 이를 ‘설욕’하기 위해 백두산 백산수에 대규모 마케팅 공세를 펼 것으로 보고 있다. 제주도 산하 공기업인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가 생산한 제주삼다수는 1998년 3월 첫 출시 이후 판매 대행사인 농심의 탄탄한 유통망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2011년 12월 제주도 측이 농심과의 계약이 ‘불공정 계약’이라고 문제삼아 계약 해지를 통보하면서 양쪽의 오랜 파트너십은 파국을 맞았다. 농심은 1년 가까이 이어진 법적 분쟁에서 최종적으로 패소, 2012년 12월 14일로 삼다수 유통사업을 종료하게 됐다.
농심의 한 관계자는 “수십여개 브랜드가 난립하던 생수시장에서 무명 브랜드였던 제주삼다수에 상당한 마케팅 비용을 투입해 1등으로 키운 우리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일방적 통보였다”며 제주도 측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자체 기술로 생산한 신제품을 출시한 만큼 백두산 물의 장점을 앞세워 반드시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칠성도 지난해 12월 11일 백두산 자연보호구역에서 뽑아낸 고급 광천수 ‘백두산 하늘샘’ 판매를 시작했다. 청정 수원지인 백두산을 직접적으로 강조하고, 민족의 정기가 서린 천지를 하늘(天)과 샘(池)이라는 말로 풀어내 백두산 하늘샘 브랜드가 탄생했다는 설명이다. 백두산 하늘샘의 수원지는 북한 혜산시를 마주보고 있는 중국 칭바이현 백두산 남쪽 관문이다.
알칼리성 화산암층을 통과해 천연 미네랄 함량이 풍부하고 맛이 깔끔한 물이란 점을 내세웠다. 가격은 편의점 기준 550㎖ 페트가 900~1000원이다. 롯데칠성은 백두산 생수 사업이 그룹 차원의 오랜 숙원사업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이익 창출만큼이나 민족의 정기를 담은 물을 제공한다는 차원에서도 큰 의미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시스’ ‘에비앙’ ‘볼빅’ 등의 생수를 판매 중인 이 회사는 백두산 하늘샘도 5년 내 연 매출 1000억원대의 주요 브랜드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성기승 롯데칠성 홍보팀장은 “백두산 하늘샘의 수원지는 12월에는 기온이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지는 오지여서 결빙을 막기 위한 고가의 특수 컨테이너 등이 추가로 도입됐고, 국내로 이송되기까지 2000km 이상을 이동하게 된다”며 “백두산 물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지상파TV와 인쇄매체 광고 집행하고 소비자 대상 프로모션도 적극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신춘호 회장의 농심과 신동빈 회장의 롯데칠성을 범(凡) 롯데가로 묶어 ‘롯데가의 생수 전쟁’ 구도로 풀이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농심과 롯데칠성 측은 먹는샘물 시장의 대결 구도를 ‘백두산 물 대 한라산 물’로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1위 브랜드인 제주삼다수의 점유율이 30% 안팎에 달하고, 2위 브랜드(아이시스)와는 격차를 두 배 가까이 벌리고 있다.
농심과의 계약이 만료된 직후인 2012년 12월 15일 제주삼다수 유통을 시작한 광동제약은 1등 굳히기에 나섰다. 광동제약은 2012년 새로운 삼다수 유통사업자를 선정하기 위한 공개입찰에서 “계약 기간 4년 동안 제주도에 총 700억원 상당의 혜택을 환원하겠다”는 ‘파격 베팅’을 내세워 롯데칠성음료, 코카콜라음료, 아워홈, 남양유업, 샘표식품, 웅진식품 등 쟁쟁한 경쟁업체를 제쳤다. 회사 차원에서 거는 기대는 상당하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편의점과 수퍼마켓 유통을 맡은 광동제약은 제주삼다수로 연간 1000억원의 매출을 더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수부 광동제약 회장은 삼다수 판매 개시를 기념한 유통 발대식을 열어 “엄격한 심사기준을 통과해 삼다수 사업을 시작한 만큼 소비자 제일주의의 마음을 잊지 말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광동제약은 ‘옥수수수염차’와 ‘비타500’을 통해 전국 소매점의 95% 이상을 고객사로 확보하고 있어 삼다수 공급도 차질 없이 이어갈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전국에 200개에 가까운 삼다수 대리점을 확보했고 전담 영업인력도 추가 채용한 상태다.
광동제약은 제주삼다수 유통 시작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는 도의회의 동의를 얻어 취수량을 증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성수기인 여름만 되면 공급부족 현상이 벌어지고 있고, 무엇보다 물 사업이 ‘큰 돈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공사의 경영실적을 보면 영업이익률이 2009년 23.9%, 2010년 21.2%, 2011년 24.7%에 달하는 등 해마다 20%를 넘고 있다. 식음료업계 평균 영업이익률이 5% 안팎임을 감안하면 너댓배 높다. 제품생산에만 집중하고 유통과 마케팅은 민간기업에 맡기는 영업방식이 비결로 꼽힌다.
제주도 차원에서도 먹는샘물 사업은 지방재정에 톡톡히 기여하는 알짜 사업이다. 공사 지분 100%를 보유한 제주도는 2007년 이후 출자배당금으로 매년 80억~150억원 안팎을 받아가고 있다. 이는 고스란히 도 재정으로 쓰였다. “무리한 계약 파기”라는 업계 비판에도 제주삼다수 유통 대행사를 교체한 것도 공개입찰을 통해 물 사업에서의 주도권을 쥐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 많다. 광동제약은 옛 히트상품인 옥수수수염차와 비타500의 최근 성장세가 예전같지 않았던 탓에 새 성장동력을 찾을 필요성이 절실했다.
업계에서는 2013년 광동제약, 농심, 롯데칠성 3사를 중심으로 먹는샘물 시장에서 치열한 마케팅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오랫동안 먹는샘물 시장은 제주삼다수가 독보적 1위를, 대기업 계열음료업체의 생수가 중위권을 형성하는 동시에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대형마트와 편의점의 자체상표(PB) 생수가 선전하는 양상으로 굳어져 있었다. 제주삼다수의 위상이 단기간 내에 흔들릴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 물맛에 대한 소비자 충성도가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다만 “식음료업체 가운데 대형마트와 ‘맞짱’ 뜰 수 있는 몇 안되는 회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유통망 장악력이 탄탄한 농심과 롯데칠성이 매출 확대에 총력을 쏟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제주삼다수와 후발주자 간의 격차는 상당 부분 좁혀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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