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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업자 아니라 동반자로 여겨야

동업자 아니라 동반자로 여겨야

자율 설립 시행 100일 만에 600여 곳 신청 … 의외의 걸림돌 있어 신중해야 ‘신자유주의의 대안 모델’ ‘따뜻한 공생 경제’ ‘일자리 창출의 대안’ ‘지역경제를 살릴 솔루션’…. 협동조합에 대한 헌사들이다. 지난해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 이후 100일 동안 협동조합 600여 곳이 설립 신청을 했다. ‘협동조합 붐’이다. 설립 목적이나 사업 분야도 각양각색이다. “협동조합은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했던 이탈리아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의 말 그대로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다. 협동조합에 거는 기대가 과도하다는 우려도 있다.



“우리도 협동조합 하나 만들어볼까?” 요즘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개인이든 법인이든 5명(개) 이상만 모이면 금융·보험업을 제외한 어떤 분야에서든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협동조합 설립 열기로 뜨겁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후 3월 10일까지 100일간 협동조합 설립 신청 건수는 647건이다. 하루 평균 6.5건이다. 이 중 481건이 수리·인가됐다. 기획재정부 협동조합운영과 관계자는 “서류 미비 등으로 반려된 것을 제외하면 신청서는 대부분 수리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본지가 2월 말 기준으로 지방자치단체에 신청·수리된 일반협동조합 571곳 현황을 분석해 봤더니 설립 동의자, 즉 조합원 수는 평균 11명이었다. 조합원 수가 가장 많은 곳은 부산의 영세 점포 160곳이 모여 만든 골목가게협동조합이다. 새로 출범한 협동조합 중 설립에 동의한 조합원 수가 100명이 넘는 곳은 5곳이다. 전체의 67%는 설립조합원 수가 10명 미만이다. 설립 최소 요건이 5명이 모여 만든 조합수는 183개(32%)다. 10~19명은 21.9%인 125개였다.

설립 요건에 제한이 없는 출자금 규모는 대체로 적었다. 571곳의 출자금은 평균 1684만원. 출자금이 5억원 이상인 곳은 2곳, 1억원이 넘는 곳은 전체의 4.4%인 25곳이다. 출자금이 1억원을 넘는 곳을 제외한 나머지 협동조합의 평균 출자금은 928만원이다. 100명 곳 중 82곳은 종잣돈이 2000만원 미만이란 이야기다. 100만원 이하인 곳은 76곳이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162개(28.3%)로 가장 많았고, 광주·전남·전북이 152개(26.6%)로 뒤를 이었다. 전남도청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일자리 상황이 열악하고 전통적으로 연대의식이 강한 지역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원도와 제주도는 각각 21개(3.7%), 4개(0.7%)였다.

업종(사업)별로는 농·축·수산·식품 분야가 단연 많았다. 전체의 22.4%가 농산물이나 축산물을 공동 생산하거나 유통·판매하는 조합이었다. 식자재 유통·음식업·전통시장 활성화와 같은 유통·서비스 분야 조합은 74곳이었다. 교육이나 컨설팅 분야와 관련된 조합도 72곳으로 많았다. 이밖에 복지·상조·다문화·사회서비스 분야와 문화·예술·출판 분야 조합도 많았다.

최근 협동조합 열풍은 담당 공무원이나 전문가도 놀랄 정도다. 기획재정부 남봉현 협동조합정책관은 “올해 2000개 정도 설립을 예상했는데, 1분기도 지나지 않아 700곳 가까이 신청했다”며 “예상보다 협동조합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협동조합 전문가 사이에서는 벌써 ‘과열’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무늬만 협동조합’이 난립할 우려도 있다.

한국협동조합연구소 강민수 사무국장은 “사무장이 파산한 의사를 데려다 협동조합으로 가장해 운영하는 유사의료생협(생활협동조합)이 전국에 200여 개가 넘는다”며 “협동조합이라는 좋은 이미지를 악용하려는 조합 결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사 의료생협은 오로지 병원 설립을 목적으로 만든 조합을 말한다. 의사 면허가 없는 개인은 병원을 설립할 수 없지만 협동조합을 만들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정관도 제대로 갖추지않고 설립 신청을 하거나, 기존에 하던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자 이름만 협동조합으로 바꾸려는 사례가 있다”며 “조합원 역시 친지나 지인 위주로 구성해 사실상 1인이 독자적으로 운영하려는 편법을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반 협동조합 571곳 평균 출자금 1684조원왜 협동조합이 이토록 주목 받는 것일까.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은 협동조합을 ‘공동으로 소유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해 공통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인 조직’이라고 정의한다.

우리나라 협동조합기본법은 ‘재화 또는 용역의 구매·생산·판매·제공 등을 협동으로 영위함으로써 조합원의 권익을 향상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고자 하는 사업조직’으로 규정한다. 협동조합은 크게 소비자·생산자·직원 협동조합으로 나뉜다. 어떤 형태의 조합이든 조합원은 이용자며 곧 소유자고, 투자 이익이 아닌 사업 이용에 따른 편익을 추구하기 위해 참여하는 게 원칙이다.

협동조합은 주식회사와 다르다. 주주(투자자) 소유가 아니라 출자금을 낸 조합원의 공동 소유다. 의결권도 균등 분배된다. 출자액과 상관없이 1인1표다. 주식회사 같은 상법상 영리회사의 목적이 이윤 극대화라면,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이익을 추구한다. 이윤이 직접적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원가 경영을 기본으로 한다. 이익을 배분하는 방식도 주식회사와 다르다.

주식회사가 남은 이익을 주주 지분에 따라 배당한다면, 협동조합은 내부 유보금으로 적립하거나 이익만큼 판매 가격을 인하하는 방식 등으로 조합원 이익을 챙긴다. 협동조합은 기본적으로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지속가능한 안정적인 경영에 유리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협동조합의 안정성이 부각된 배경이다. 하지만 이는 협동조합이 적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한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최근 협동조합 열풍에 불을 댕긴 건 지난해 12월 1일 시행된 협동조합기본법이다. 기존에는 개별 협동조합특별법에 따라 8개 협동조합(농협·수협·신협·생협·새마을금고협·산림조합·인삼조합·중소기업협동조합)만 있었다. 하지만 기본법이 시행되면서 거의 모든 규제가 풀렸다. 5명만 뜻을 모으면 어떤 형태의 조합이든 만들 수 있다. 출자금 제한도 없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회에서 출자금 하한선을 두자는 얘기가 있었지만 자유로운 설립을 위해 제한을 아예 없앴다”고 말했다.

설립 분야의 제한도 사실상 없다. 기본법 시행 이후 각 지방자치단체에 신청·수리된 협동조합 사례를 보면, 농수축산물을 공동 생산·판매하거나 소비자 조합원이 공동 구매하는 협동조합이 많이 생겼다. 복지·육아·사회서비스 분야 조합도 많다. 대리운전·퀵서비스·청소·세차·경비 분야 근로자나 영세 상인 등이 모여 만든 직원 협동조합 설립도 이어진다.

문화·예술·언론 분야나 창업·교육 관련 조합도 늘고 있다. 시간강사나 실업자, 노숙자 등도 연대해 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골프 경기보조원(캐디)나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 분야 근로자의 조합 설립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시민단체나 영리 기업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중소 제조업체들이 모여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도 있다. 중소기업 36곳이 모여 지난 2월 출범한 한국경제발전협동조합이 좋은 예다.



황금알 낳는 거위 아니다 … 소박한 마음가짐 필요금지되는 분야도 있다. 투기를 목적으로 하거나 소수 조합원의 이익을 취하는 사업은 할 수 없다. 정당을 지지하거나 공익에 반하는 사업도 할 수 없다. 특히 사회적 협동조합은 공익사업을 40% 이상 수행한다는 사업계획서를 제출해야 인가를 받을 수 있다. 상조 분야는 장례 서비스나 장례 용품 판매 등은 할 수 있지만 금융 사업은 제한된다.

협동조합이 주목 받는 다른 이유는 지난해 우리나라를 강타한 ‘경제 민주화’ 바람과도 관계 있다. 협동조합이 일자리 창출과 고용 안정에 기여하면서 동시에 양극화와 빈부 격차 등 사회 갈등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엄연한 사업체다. 시장에서 혹독한 경쟁을 해야 살아남는다.

전문가들은 시장경쟁 측면에서 보면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은 모델이라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결코 아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설립에 신중 또 신중하라”고 당부한다. 돈도 얼마 들지 않는데 일단 만들어 보자는 식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와 체계적인 학습은 필수다. 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남봉현 정책관은 “큰 돈을 벌 생각이라면 접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협동’이다. 한국협동조합학회장인 전형수 대구대 교수는 “협동조합은 개인의 힘보다 공동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전제한다”고 말했다. 개인의 다양한 힘이 세도 한 덩어리로 뭉치지 않으면 소용없다.

전 교수는 “협동조합이 필요한 것은 힘의 잡동사니가 아니라 힘의 응집력”이라고 강조했다. 협동조합을 설립했거나,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면 먼저 옆 사람을 살펴보자. 단순히 돈을 함께 벌기 위한 동업자인지, 뜻을 함께하는 신뢰 있는 동반자인지. 그것이 협동조합 성공을 가름하는 제1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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