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FEATURES disaster - 악몽으로 변한 크루즈 여행

FEATURES disaster - 악몽으로 변한 크루즈 여행

잇따른 유람선 사고는 그 산업에 안전 불감증이 얼마나 만연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2월 7일 오후, 매트와 멜리사 크루산은 말쑥하게 옷을 차려 입고 텍사스주 갤버스턴항에서 유람선 카니벌 트라이엄프 호에 올라탔다. 그 중년 부부는 그 4일간의 호젓한 유람선 여행을 몇 주 전부터 고대해 왔다. 남쪽 멕시코 코주멜을 다녀오는 크루즈 여행이었다.

유람선은 바다 위의 라스베이거스처럼 ‘대도시’ 테마로 꾸며졌다. 파리 식당, 런던 식당, 로마 라운지, 클럽 리우 등. 그러나 며칠 뒤 이 호화 유람선에는 떠다니는 ‘페트리 접시’ 또는 ‘배설물 배(Ship of Stools)’같은 오명이 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크루산 부부는 1주일에 걸친 시련을 둘러싼 집단 소송의 대표 고소인이 됐다. 시련은 2월 10일 일요일 새벽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시작됐다. 기관실에서 화재가 발생한 뒤 배의 승무원과 승객 4200여명이 구명조끼를 받으러 비상 집합장소로 몰려나갔다.

전역한 해병대원인 매트는 그 순간을 “대혼란”이었다고 묘사한다. 그러나 정말 그의 기억 속에 각인된 건 그 뒤의 일이었다. 승무원들이 큰 피해 없이 화재를 진압할 수 있었지만 전력·배수·난방·냉방 시스템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배는 멕시코만의 유카탄 반도 앞바다에 표류했다.

그 뒤에 벌어진 일은 대다수 미국인들에게 낯익은 광경이 됐다.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이미지였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배의 벽에서 하수가 새나오고, 소변이 바닥을 적셨으며, 승객들은 객실 내부의 유독 가스를 피해 바깥에서 비를 맞고 추위에 떨며 잠을 청했다.

비닐 봉투에선 설사와 구토물이 흘러나왔다. 멜리사는 두 차례 식중독에 걸렸다. 양파 샌드위치를 하나 사려면 4시간이나 줄을 서야 했다. 귀가 후엔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 몇 시간 동안 링거 주사를 맞았다. 어린 세 아들은 TV로 지켜보며 부모가 돌아가실지 모른다고 걱정이 태산 같았다(크게 충격을 받은 한 아들은 부모를 다시 못 만날지 모른다며 사랑을 담은 작별의 시까지 썼다).

마지막 날에는 이른바 ‘해산물과 스테이크’ 점심이 급하게 차려져 나왔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뻔뻔한 PR 시도의 일환인 듯이 보였다. 하지만 매트의 바다가재는 가장자리가 갈색을 띤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몸 상태가 안 좋았던 아내와 몇몇 승객이 갑판에 매트리스를 깔고 누워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갑자기 객실로 돌아가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바다 위의 난민촌이나 다름 없는 모습이 TV 카메라에 잡히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크루산 부부를 화나게 만든 건 그런 불편함뿐이 아니었다.

유람선이 “항해할 상태가 아니다”는 사실을 선사가 알았으며 또는 알아야 했다고 매트 크루산은 믿는다. 그에게는 그것이 정말 울화가 치미는 일이다. “내가 일하는 업계에서는 위반이 여러 차례 반복되면 조직적이라고 부른다”고 매트가 말했다. 그는 마약 단속국(DEA)의 불법물질 규제 컨설턴트로 일한다. “분명 그들에게 업무태만의 잘못이 있다고 본다.”

그것이 그들이 제기한 집단소송의 핵심이다. 그들은 그밖에도 갖가지 문제점들을 줄줄이 열거했다. 분뇨에의 노출, 유람선 수리를 위해 가장 가까운 기항항 대신 “오로지 카니벌의 경제적 이익과 편의만을 고려해” 앨라배마로 견인함으로써 “제멋대로 그리고 무모하게 행동한” 혐의 등이다.

매트는 이렇게 말한다. “탑승자가 모두 죽어야만 배를 수리할 작정이었는가?” 트라이엄프 사고는 흥미를 끌기 위한 미디어 서커스와 TV 심야 토크쇼의 우스갯소리로 전락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크루즈 업계 감시단체들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거의 규제를 받지 않고 성장하는 그 산업에 안전 불감증이 얼마나 만연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는 지적이다. 단지 천국의 바캉스 여행이 어떻게 바다 위의 지옥으로 변했는지를 말해주는 스토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제임스 워커는 과거 크루즈 선사를 변호했으며 지금은 승객과 승무원을 대변하는 마이애미의 일류 변호사다. 유람선 사고는 심한 경우 “가족이나 애인이 주검으로 돌아오기도” 하며 승무원들이 장시간 근무에 시달리기 일쑤라고 그는 말한다. 휴일 없이 한번에 몇 달씩 근무하는 일이 예사다.

“선사는 승무원들만큼 유람선도 혹독하게 굴린다.” 화재가 발생하고 전기가 끊기는 배가 왜 그렇게 많은지를 더 따져 물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최근 유람선 안전 관련 의회 청문회에서 1990~2011년 유람선 화재가 79건이나 발생했다고 전문가들은 증언했다. 그리고 “그 뒤로 11건의 화재가 더 발생했다”고 워커가 말했다.

크루즈 관광은 매년 2000만 명이 이용하는 350억 달러 규모의 산업이다. 지난해 호화 유람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가 이탈리아 서해안 앞바다에서 침몰해 수십 명이 사망했다. 그와 같은 재앙으로도 업계가 변하지 않았다면 트라이엄프 사고 정도는 취재 열풍이 한 차례 지나가고 나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금방 잊혀질 듯하다(코스타 콩코르디아 호도 카니벌 선사의 배였다).

바다 여행에는 항상 모험의 이미지가 있다. 호화로워 보이는 유람선은 건조하는 데 5억 달러 안팎의 비용이 들며 최대 8500명의 승객을 수용할 수 있다. 항해 중의 극단적인 환경에서 완충 기능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러나 해운업 문화는 여러 측면에서 구태

를 벗지 못했다. 최근 수십 년 사이 큰 발전을 이룬 자동차와 항공 산업처럼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지난 1월 미국연방항공국(FAA)은 화재안전 우려로 미국의 보잉 787기 운항을 전면 금지했다. 문제의 트라이엄프 호는 걸프만에서 표류하기 전에도 말썽을 일으킨 전력이 있다고 승객들은 말한다. 그런 문제가 뻔히 보이는데도 해운업의 FAA는 어디 있는가?

클린턴 정부 시절 국가운수안전위원회(NTSB) 위원장을 지낸 짐 홀은 해운업이 국제해사기구(IMO) 같은 ‘종이 호랑이’의 감독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규제가 허술한 장거리 관광버스 업계와 마찬가지로 “말썽쟁이들”로 골머리를 앓는다고 한다. “해운업은 지상에서 가장 오래된 운수업이다. 수세기의 역사를 지닌다. 항공산업과 달리 그런 문화가 혁파된 적이 한 번도 없다.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사고에서 그 영향이 여실히 드러난다.”

유람선들은 미국 배처럼 보이고 느껴지지만 주로 바하마나 파나마 같은 국가에 등록됐다. ‘합당한’ 안전기준의 적용을 받지 않고 영업하기 위해서다. “예나 지금이나 무법자들의 산업”이라고 홀이 말했다. “크루즈 여행을 예약하는 사람들은 그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유람선 화재가 발생한 선사는 카니벌뿐이 아니다. 하지만 트라이엄프는 최근 몇 년 사이 카니벌의 배 중 화재로 전기가 끊긴 4번째 사고였다. 1998년 카니벌 엑스터시호에서 불이 나 선미 전체가 새까맣게 탔다(다행히 마이애미 항구가 보이는 곳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그 다음 해에는 트로피칼레호에 불이 나서 열대성 폭풍우가 접근하는 동안 이틀이나 멕시코만에서 표류했다.

2006년에는 카니벌의 자회사 프린세스 크루즈가 운영하는 스타 프린세스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100개의 객실이 파손되고 승객 한 명이 호흡관련 심장마비로 사망해 소송을 당했다(재판 전 당사자간 합의를 봤지만 프린세스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2010년에는 카니벌 스플렌더 호의 발전기에서 불이 났다. 승객 수천 명을 태운 채 멕시코 앞바다에서 전기 없이 며칠 동안 표류하다가 샌디에이고로 견인됐다.

“스플렌더 호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비행기 사고였다면 분명 의회 청문회가 열렸다. 시스템 전체가 엉망이다.” 셀리브리티 호 크루즈 여행 중 딸이 실종된 켄달 카버가 말했다(그 사건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카버는 현재 ‘국제유람선피해자들’이라는 단체를 이끈다.

크루즈 업계는 강력하게 반발한다. 카니벌 대변인 밴스 걸릭센은 이렇게 말했다. “카니벌 스플렌더 화재를 조사한 뒤 우리는 화재예방, 시스템 보완과 보호, 승무원 안전교육을 중심으로 한 다수의 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화재가 발생했다. 스플렌더 사고 이후 2012년 인도양에서 코스타 알레그라 호에 불이 났다. 코스타 콩코르디아 호 사고 후 불과 한 달 만이었다.

카니벌은 “진행 중인 소송에 관해서는 논평할 수 없으며 다만 엔진에 불이 붙을 경우 추진력 상실을 피하기 위한” 방법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걸릭센 대변인이 말했다. 그러나 집단소송을 추진하는 마이애미의 변호사 찰스 립콘은 그 회사가 과거의 문제를 시정했다는 말을 믿지 못한다. “그들은 그냥 도박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고 그가 말했다. “승객들을 대상으로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해서 그들이 진 셈이다.”

이전의 트라이엄프호 크루즈 여행중에도 배가 문제투성이라는 사실을 승객들이 알아차렸다. 텍사스주 오스틴 주민 폴라 윌슨은 23세 딸 첼시의 대학졸업 선물로 그 배의 12월 크루즈를 예약했다. 모녀가 갤버스턴에 도착했을 때 4~6시간 출항이 지연되리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뒤 배에 승선할 때 승무원들이 “읽어보라며 종이쪽지를 건넸다”고 폴라가 돌이켰다.

“다른 사람들은 광고전단인 양 그냥 호주머니에 꾸겨 넣었다. 하지만 엔진 이상으로 코주멜에 입항하지 못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충분히 속도를 올릴 수 없기 때문에 프로그레소까지밖에 못 간다는 내용이었다.” 코주멜 관광을 예약했던 모녀는 실망이 컸다. 하지만 “우리 앞에서 눈물을 쏟은” 예비신부만큼은 아니었다. 코주멜에서 결혼할 예정이었는데 자신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됐으니 그럴 만도 했다.

프로그레소까지 가는 동안 딸 첼시는 엔진 고장과 배의 불규칙한 듯한 속도 변화에 불안감을 느꼈다. “우리가 탔던 지난해 12월에도 그 배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때 뭔가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고 엄마 폴라가 말했다.

한 달가량 뒤 트라이엄프에 승선했던 다른 승객들도 비슷한 경험을 전했다. 기계적인 문제로 인한 지연의 반복과 원래 목적지였던 코주멜까지 못 간 일 등이다. 초기의 고장은 수리됐으며 2월 10일의 화재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카니벌 대변인 걸릭센이 말했다.

“카니벌 트라이엄프는 예전에 교류발전기 한 쪽에 전기적인 문제가 있었다. 발전기 납품업체가 수리를 했으며 2월 2일 작업이 완료됐다.” 그 뒤에도 제3의 기술자가 종합적인 검사를 했다. “현재로서는 이 과거의 문제와 2월 10일에 발생한 화재 간에 어떤 관련이 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해안경비대 대변인 카를로스 디아즈의 시각은 다르다. 예전의 고장은 “우리가 조사 과정에서 검토하는 많은 요인 중 하나다. 그와 함께 화재진압 시스템이 작동했는지, 승무원들이 제대로 대처했는지 등 여러 각도에서 조사하는 중이다.” 그 배는 바하마 국적이기 때문에 바하마 해운청이 조사를 담당하게 된다. NTSB가 조사를 지원하지만 파견할 만한 해상안전 조사관이 10명뿐이다. “사람들은 항공기 사고 조사와 비슷하리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고 짐 홀 전 NTSB 위원장이 말했다.

유람선이 마침내 앨라배마주 모빌로 견인된 이후 며칠 사이 집단소송을 추진하는 립콘의 사무실에 수백 명의 승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그들은 폐와 호흡이상, 요로감염, 설사, 공황발작 등의 증상을 호소했다. 텍사스주의 팰리스 바이어라는 승객은 진균 감염으로 생긴 듯한 기관지염 진단을 받았다.

도나 헤스는 사고에 관한 나름의 견해를 내놓았다. 1월 28일 그녀는 남편 밥과 함께 짧은 크루즈 여행을 하려고 트라이엄프에 승선했다. 그들이 모르는 사이 그날 해안경비대가 배를 점검했다. 그들은 발전기에 있는 고전압 접속함의 누전으로 케이블이 손상됐음을 지적했다. 부부는 스피커를 통해 잡음과 함께 들려오는 선장의 억양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배가 움직이기 시작한 다음 목적지가 코주멜에서 프로그레소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에게는 그 목적지가 중요했다. 장성한 아들 마크가 불치병을 앓을 동안 아름다운 해변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에 눈을 감고 말았다. 65세 동갑인 부부는 코주멜 앞바다의 아름다운 파도에 아들의 재를 뿌릴 생각으로 손에 성경을 들고 여행을 떠났다. 결국 그들은 아들의 마지막 꿈을 이뤄주지 못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텍사스주 갤버스턴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배의 추진력 문제 때문에 일정이 크게 지연됐다. 배가 느릿느릿 이동하는 동안 도나는 자신들이 “항해할 상태가 아닌 배”를 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이켰다. 몇 주 뒤 TV를 켜고 표류하는 트라이엄프의 모습을 봤을 때 모든 사실이 명확하게 이해됐다. “수리가 필요했던 배였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3人…나란히 국감 불출석 통보

2벤츠코리아, 국내 최대 ‘SUV 오프로드 익스피리언스 센터’ 오픈

3운전 중 돌연 가로수 쾅...20대 중학교 동창 3명 사망

4현대차, 수소전기버스 ‘일렉시티 FCEV’ 누적 판대 1000대 돌파

5제주도 활보한 ‘베이징 비키니’…“한국에서 왜 이러는지”

6하늘길 넓히던 티웨이항공...특정 항공기 운항정지·과징금 20억

7고려아연 “MBK·영풍 공개매수 ‘위법’ 소지…즉각 중단돼야”

8‘불꽃축제’ 위해 띄운 위험한 뗏목·보트…탑승자 4명 구조

9도검 전수조사한 경찰청…1만3661정 소지 허가 취소

실시간 뉴스

1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3人…나란히 국감 불출석 통보

2벤츠코리아, 국내 최대 ‘SUV 오프로드 익스피리언스 센터’ 오픈

3운전 중 돌연 가로수 쾅...20대 중학교 동창 3명 사망

4현대차, 수소전기버스 ‘일렉시티 FCEV’ 누적 판대 1000대 돌파

5제주도 활보한 ‘베이징 비키니’…“한국에서 왜 이러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