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a - 물 오른 연기력으로 1인 3역 도전

국내 최초 느와르 드라마 … 마약조직에 잠입한 형사로 열연

긴 생머리에 새하얀 얼굴,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청순가련형 여배우 남규리(28)가 데뷔 이후 처음으로 액션 연기에 도전한다. JTBC의 인기 월화드라마 ‘무정도시’에서 그는 마약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잠입수사에 나섰다 중간 보스 시현(정경호 분)을 사랑하게 된 언더커버 형사(윤수민)를 연기한다. 한 드라마에서 고등학생·죄수·형사 역할로 변신을 거듭하며 “연기력이 물이 올랐다”는 호평을 듣고 있다. 6월 4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남규리를 만났다.

드라마 첫 주연을 맡았다.

“너무 큰 역할을 맡아서 부담이 있다. 하지만 작품이 워낙 좋아 온몸을 던져서 연기하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이 다들 연기를 잘해서 많이 배운다.”

5월 27일 첫 방영된 ‘무정도시’는 국내 드라마 최초로 시도된 본격 느와르 드라마로 방영 전부터 많은 화제를 모았다. 거대한 마약 조직과 이의 일망타진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경찰의 대결을 그렸다. 탄탄한 스토리 구조와 뛰어난 연출력으로 시청자들의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작품에 출연하고 싶은 의지가 컸다고 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대본이 들어왔는데 스토리가 너무 재미있었다. 제작진 쪽에선 나를 수민 역할로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동안 작품에서 보여준 모습이 주로 여성스럽고, 뭔가 샤방샤방한 느낌이어서 수민 역할엔 안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작가는 처음엔 내겐 별기대를 안 한 것 같다. 그 미팅 자리에 나갈 때 대사를 다 숙지해서 갔다. 작가한테 ‘이런 부분은 굉장히 좋지만 또 다른 부분은 개연성이 약하다’고 이야기했다. 작가가 4년 동안이나 준비한 대본이었는데 생각해보면 매우 당돌했다.”

수민이라는 캐릭터의 어떤 점에 끌렸나?

“이제까지 맡았던 캐릭터와는 달리 수민은 매우 당돌해서 마음이 갔다. 방송엔 안 나갔는데 수민이 경미 언니(고나은 분)의 애인인 형민 오빠(이재윤 분)에게 ‘10만원만 줘봐! 없어? 재수 없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런 대사들이 나를 자극했다. 그동안 늘 예의 바르고 틀 안에 갇혀있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이번엔 팔딱팔딱 뛰는, 살아있는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 또 시현(정경호 분)과 멜로를 찍다 보니 더 매력이 있더라.”(웃음)

‘무정도시’에서 남규리의 상대역은 정경호다. 수민은 고아원에서 외롭게 자라 마약 조직의 중간보스가 된 시현(정경호 분)과 위험한 사랑에 빠져든다. 5월 20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이정효 PD는 “드라마에서 멜로가 빠질 수 없다”며 “장르적인 성격을 잃지 않으면서 아주 진한 멜로를 그릴 것”이라고 예고했다.

정경호와 연기 호흡은 잘 맞나?

“오빠가 잘 이끌어줘서 편하게 연기한다. 오빠가 워낙 성격이 좋아서 촬영장 분위기도 좋다. 베드신이 있는데 촬영 전엔 스토리보드를 받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오빠가 나를 침대 위에 눕히는 장면이 있는데 숨이 막힐 정도로 긴장했는데 ‘너 지금 보니 진짜 얼굴 작네’라며 엉뚱한 말을 하더라. 그 말을 듣고 나니 긴장이 저절로 풀렸다.”

액션 연기는 처음인데 어떤가?

“액션신을 대역 없이 하니까 아무래도 힘들다. 많이 먹어도 살이 쭉쭉 빠진다.(웃음) 수민이 시현을 잡기 위해 언더커버로 변신해 구치소에 들어가 그곳에서 액션 촬영을 하는데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한 번은 머리를 맞았는데 한쪽 눈을 다쳐 눈이 잘 안 떠졌다. 3일 밤을 꼬박 새고 촬영하는데 점점 말도 없어지고, 어두워졌다. 몸은 힘들지만 수민의 아픔에 더 가까이 가는 게 느껴져 좋다.”

남규리는 가수 출신 배우다. 2006년 걸그룹 씨야의 1집 앨범 ‘여인의 향기’로 데뷔한 그는 2008년 영화 ‘고사: 피의 중간고사’에 출연하면서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2009년엔 씨야에서 탈퇴한 후 연기자로 전향한 뒤로 ‘인생은 아름다워’ ‘49일’ ‘해운대 연인들’ 등에 출연했다.

가수와 배우로 각각 4년을 활동했는데 본인에게 어떤 옷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가수로 활동할 때보다 지금은 훨씬 자유로운 부분이 많다. 예전에 그룹 활동을 할 땐 남들이 만들어주는 옷을 입어야 했다. 콘셉트가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실을 사용할 지, 어떤 디자인으로 만들지 모든 것을 일일이 챙긴다. 그렇게 차근차근 준비해서 일하는 내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이렇게 일하는 방식이 즐겁다.”

연기자로 전향한 후 처음 출연한 작품은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다. 톡톡 튀는 20대 대학생 역할을 맡았던 그는 작품 초반 ‘연기력 논란’에 휩싸였다. 2010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책감에 대본 리딩을 하는 날 작가 선생님 눈을 제대로 못 마주쳤다”며 “그때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마음고생이 심했겠다.

“처음에 혼이 많이 나니까 위축이 됐다.(웃음) 좋은 평가를 들으려 애썼던 게 오히려 안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서클렌즈도 빼고, 잘하려는 욕심도 내려놨다. 신기하게도 모든 걸 내려놓고 나니깐 연기가 잘되더라. 김수현 선생님께도 칭찬을 받았다. ‘초롱아 정말 잘했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셨는데 그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남규리는 이 작품으로 2010년 SBS 연기대상에서 ‘뉴 스타상’을 받았다. 당시 그는 “항상 심장으로 연기하는 배우가 되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연기 활동을 하면서 슬럼프는 없었나?

“SBS의 ‘49일’ 작품을 끝내고 한동안 힘들었다. 그 전에만 해도 자신감만 가지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열심히 해도 뭔가 나아지는 것 같지 않더라. 연기와 인생에 대해 자신감이 사라졌던 때다. 인생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를 계기로 작품·캐릭터를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 예전엔 슬픈 장면을 볼 때면 ‘저 연기는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봤어요. 그런데 이젠 그 장면에서 전달되는 메시지에 더 푹 빠지게 되더라.”

남규리 씨의 연기관이 궁금하다.

“진심이 묻어나는 연기를 하고 싶다. 어떤 장면이든 가식적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 ‘라비옹 로즈’에서 프랑스의 전설적 여가수 에디트 피아프를 연기했던 마리옹 코티아르를 닮고 싶다. 마리옹 코티아르는 주인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어깨를 구부리고 다니고, 눈썹을 밀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진정성 있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