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보드의 ‘헌법’인 가문헌장은 창업자의 핵심 가치로 대를 이어 전승된다. 포브스코리아는 삼성패밀리오피스와 공동으로 이상춘(57) 에스씨엘 대표의 가문헌장을 제정했다. 윤태경 삼성패밀리오피스 상무는 5월 14일 경기도 도당동 에스씨엘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패밀리보드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가문헌장에 필요한 의견을 나눴다. 2시간 넘는 상담을 통해 이 대표의 5가지 가치를 뽑아냈다. 후계 경영자 수업을 받는 두 아들이 이어갈 가문헌장이다.
1. 꿈을 품어라이 대표는 1971년 겨울을 잊을 수 없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코 앞에 두고 서울로 올라왔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라 공부 대신 일을 택했다. 그는 “입학시험만이라도 보고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아버지에게 매달렸다. 아버지는 “어차피 학비가 없어 배울 수 없는 데 합격하면 마음만 더 아프다”고 만류했다.
상경하던 날 어머니는 밤새 눈물을 흘렸다. 고향 경북 김천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는 다짐했다. “기필코 성공해서 어머니가 가난 때문에 우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요. 또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학업을 포기하는 사람을 돕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서울에서 친척이 운영하는 볼펜 스프링 공장에서 일했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21세에 서울 용산에 작은 회사를 세웠다. 자동차 부품업체 에스씨엘의 시작이다. 사업을 하면서 밤에는 야간 고등학교를 다녔다. 배움의 한을 풀듯 그는 열심히 공부했고 숭실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2. 내실 경영을 하라생각만큼 사업은 쉽지 않았다. 얘기하던 도중 이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에서 봉투를 꺼냈다. 누렇게 해진 봉투 안에는 한다발의 수표가 있었다. 2억원 상당의 부도 수표였다. 1992년 전국적인 노사분규가 일었다. 많은 공장이 부도가 나자 시중 자금 경색이 더 악화됐다. 회사는 약 5억원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 위기에 몰렸다.
빚 독촉에 시달리던 그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죽음을 결심하고 유언장을 썼다. “유서를 쓰는 데 어린 두 아들이 어른거렸어요.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어요. 이번 위기만 넘기면 100억원을 출연해 재단을 세우겠다고요.”
절실한 마음이 통했을까. 다음날 거래은행의 지점장이 어음을 막아줬고, 기적적으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 후 내실경영을 중시하게 됐다. 최대한 부채비율을 낮춰 재정을 탄탄하게 유지했다. 1997년 외환위기때는 경쟁업체를 인수할 정도였다. 에스씨엘은 국내 자동차 패드 스프링 부품 시장의 80%를 점유한다. 경기도 부천에 본사를 두고 경기 화성과 충남 당진, 중국 톈진에 대규모 공장을 운영한다. 지난해 매출액은 약 1050억원.
3. 나누고 베풀어라사업이 안정화되면서 이 대표는 서울 본사 근처 상가를 구입했다. 이 상가와 경기 부천시 도당동의 옛 공장 부지를 기반으로 2008년 상록수 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은 상가 임대 수익으로 운영한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학업성적이 우수한 중·고교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지난해까지 706명에게 약 10억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이 대표는 “부모에게 나눔 정신을 배웠다”고 했다. “부모는 집안 형편이 그렇게 어려웠는데도 베풀기를 좋아해 집에는 늘 손님들로 북적였어요. 손님이 갈 때마다 어머니는 먹을거리를 보따리에 싸줬어요. 차비도 주고요. 손님에게 줄 차비가 없어서 옆집에 돈을 빌리러 가곤 했지요. 어린 마음에 학용품은 안사주면서 남 챙기는 부모가 야속할 때도 있었어요. ‘뿌린대로 거둔다’는 옛 말이 있잖아요. 많이 베풀고 나눌수록 얻는 게 더 많습니다. 우선 행복해져요.”
지난해 9월 그는 국내 최초 ‘기부자 조언 기금’ 가입자가 됐다. 기부자 조언기금이란 기부자가 공익재단에 기부한 자산을 금융 회사가 운영하면서 생기는 수익이나 원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제도다. 재단 설립과 비슷하다. 이 대표는 제도의 취지를 듣고 어머니 장례식 조의금 1억원을 기부했다. 평소 나눔을 즐기던 어머니의 뜻을 기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부인과 차남 부부가 3000만원을 더 했다. 이들의 기부금은 장학사업을 비롯해 저소득가정의 의료비와 생계비로 쓰일 예정이다.
4. 사람을 키워라이 대표는 장학사업에 관심이 많다. 어린 시절 상경하며 다짐한 일 중 하나다. 재단 명칭을 상록수로 지은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철 내내 푸른 소나무처럼 아이들이 푸르게 자라기를 바랍니다. 가난해서 공부 못하는 사람은 없어야죠. 재단은 장학생에게 학비 뿐 아니라 학생들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PC를 설치하거나 집수리를 해줍니다. 매년 두 차례 수련회도 열어요. 재단 후원으로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이 중·고교 장학생의 멘토가 됩니다. 사춘기를 겪는 후배에게는 인생 선배로서 조언을 해주고 진학 상담을 해줘요. 향후 서로에게 힘이 되는 네트워크가 될 겁니다.”
2011년에는 장학생과 함께 해외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태국과 미얀마 국경지대에 있는 난민촌 ‘메솟’이다. 이 회장은 미얀마 난민 학생들을 위해 학교를 세웠다. 초·중·고교생 300명이 공부할 수 있다.
5. 겸손한 부자가 되라최근 자동차를 바꿨다. 그동안 구형 에쿠스를 8년간 34만5000㎞를 탔다. 남들이 두번 정도 바꿀 때까지 탔다. 차 한 대 살 돈을 아껴서 기부하기 위해서다. 작년 1월에 치료비가 없는 환자를 위해 1억원을 국립암센터에 기부했다. 한동안 잘 구르던 차가 고장 나기 시작해 어쩔수 없이 차를 바꿨다. 그는 “돈을 아끼고 절약해서 꾸준히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스씨엘 사무실 중앙에는 네모난 박스가 있다. 임직원의 기부 저금통이다. ‘입맛 없을 때 거른 점심 값, 커피값을 아껴 모으다보면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저금통에는 약 900만원이 쌓였다. “돈은 쌓아두기만 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어렵게 번 돈일수록 아름답게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자녀가 보고 배우는 것도 좋은 교
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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