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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iscope PERSONS OF INTEREST - 뉴스위크 화제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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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도 입증이 되나요 - 요한 바오로 2세, 두 번째의 기적 인정받아 성인으로 추대돼

2011년 5월 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식이 거행됐다. 재임 당시 파킨슨병을 앓던 한 프랑스 수녀를 치유하는 기적을 행한 것으로 인정받아 복자(성인 전 단계) 반열에 올랐다.

시복식 당일 치명적인 병을 앓던 한 코스타리카 여성의 가족이 그녀의 회복을 위해 복자품에 오른 교황에게 기도했다.

코스타리카 일간지 라 나시온에 따르면 그 병든 여성은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식을 며칠 앞두고 산호세에 있는 칼데론 과르디아 병원에서 뇌동맥류 진단을 받았다.

그녀의 주치의 알레한드로 바르가스 로만은 라 나시온과 가진 인터뷰에서 시복식과 가족의 기도 이후 그녀의 뇌동맥류가 기적적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녀의 치유를 의학적으로 납득이 가도록 설명할 방법은 없었지만 그녀 가족이 교황에게 간절히 기도한 증거는 많았다. 따라서 이 기적은 선종한 요한 바오로 2세의 전구(轉求, 누군가를 대신해 신에게 은혜를 구하는 행위를 나타내는 가톨릭 용어)로 이뤄졌다고 여겨졌다. 이 사연은 교황청으로부터 요한 바오로 2세의 두 번째 기적으로 승인 받기 위해 다른 수십 건의 사연과 함께 시성성(諡聖省)에 제출됐다. 가톨릭교에서는 두 번 이상의 기적을 행한 사실이 입증되면 성인으로 추대된다.

시성성은 철저한 심사 끝에 6월 말 마침내 요한 바오로 2세의 두 번째 기적을 인정했다. 교황청은 기적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고 그가 심각한 병을 앓던 한 사람의 “의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회복”에 깊이 관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황청과 가까운 소식통들은 이번에 승인된 기적이 코스타리카 여성의 치유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이 코스타리카 여성의 주치의는 기적 심사를 위해 시성성에 서류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아무튼 교황청은 이 두 번째 기적을 바탕으로 바오로 2세를 성인으로 추대한다고 발표했다. 시성식은 성모마리아 대축일이자 이탈리아의 국경일인 12월 8일 열릴 가능성이 높다. 그날 교황 요한 23세의 시성식도 함께 거행될 전망이어서 축하 분위기가 한층 더 무르익을 것으로 보인다.

시성성은 기적의 타당성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많은 증언을 검토해야 한다. 환자의 회복이 어떤 의학적 근거로도 설명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의사와 전문가들의 긴 보고서도 포함된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첫 번째 기적 심사 당시 청원인으로 나섰던 몬시뇨르(가톨릭 고위 성직자) 슬라보미르 오데르는 뉴스위크에 이렇게 말했다. “당시 브라질과 콜롬비아, 이탈리아, 멕시코, 폴란드, 스페인, 미국 등지에서 수천 건의 사연이 기적 심사 대상으로 접수됐다. 하지만 가장 신빙성 있는 경우가 프랑스 수녀 마리 시몽-피에르의 이야기였다.”

시몽-피에르 수녀는 40세였던 2001년 파킨슨병으로 진단 받았다. 2005년 6월 2일 밤 그녀는 두 달 전 선종한 요한 바오로 2세에게 기도한 후 기적적으로 병이 나았다. 시성성에서 자신의 기적을 인정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후 어떤 치료도 받지 않았다.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내겐 제2의 탄생과도 같았다.”

시몽-피에르 수녀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식 준비가 한창일 때 잠깐 재발한 듯 보였지만 결국 아무 문제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녀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식 때 로마를 찾은 100만 명의 순례자 앞에서 연설했다. “주님께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통해 내게 주신 것은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신비였습니다. 매우 위대하고 심오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에게 불가능은 없습니다.”

기적은 본질적으로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시성성은 이 일을 절대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몬시뇨르와 주교, 대주교 30여명이 기적의 타당성 여부를 심사하는 임무를 맡는다. 그들은 치유된 환자가 예비 성인에게 진실된 마음으로 충분한 시간을 들여기도했는지 여러 증거를 통해 확인한다. 그 뿐 아니라 시성성에는 의사와 전문가, 정신과의, 서체 분석가 등 80여 명의 자문위원이 있다. 자문위원들은 기적 심사를 위해 제출된 사연이 과학적으로 설명될 여지가 있는지 조사한다.

시몽-피에르 수녀는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 증명하기 위해 광범위한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그녀가 몸담고 있던 수녀원의 원장과 동료 수녀들은 그녀의 신앙심과 관련해 조사를 받았다. 교황청 기적 조사위원회에서 25년 이상 의학자문위원으로 활동해온 의사 프랑코 디 로사는 뉴스위크에 기적 심사 절차와 기적의 은총을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어떤 식으로 철저한 조사를 받는지 설명했다.

“기적적인 치유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먼저 주교를 만나야 한다. 그리고 주교는 외부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그 환자에게 의학적 치료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는지 여부를 조사하도록 한다. 환자는 재발없이 오랫동안 치유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기적 심사 청원인은 복잡한 요식 절차를 통해 심사가 진행되는 과정을 관리한다. 그리고 전통적 처치가 치유에 도움이 됐는지 여부를 입증하기 위해 X선 사진, 약물 투여 등 의료 기록을 포함한 방대한 서류를 준비한다. 이 서류는 의사 두 명의 검토를 거쳐 의학 전문가 5명으로 구성된 위원회에 제출된다.

그리고 5명의 위원 모두가 종교적 기적 외에는 환자의 치유를 달리 설명할 길이없다는 사실에 동의해야 한다. “제출된 사연의 99%는 의학적 설명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고 디 로사는 말했다. “의학적 설명이 불가능한 경우 신학자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마지막으로 교황에게 기적의 승인을 요청한다.”

일부 반대자들은 요한 바오로 2세의 성인 추대 과정이 지나치게 빨리 진행됐다고 말한다. 교황청이 성직자들의 성추문과 금융 관련 추문으로 휘청거리던 시기에도 변함없이 유지됐던 그의 높은 인기에 힘입은 결과라는 설명이다.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종했을 때 장례식에 참석했던 순례자들은 “즉시 성인으로 추대하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후보자 선종 이후 최소 5년 동안 시복을 위한 절차를 미루는 통상적인 유예기간을 지키지 않고 요한 바오로 2세 선종 직후 시복 절차를 시작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성인 추대가 이례적으로 단기간에 이뤄진 주된 요인이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요한 바오로 2세의 시성식은 가톨릭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경사 중 하나가 될 듯하다. 그의 시복식을 보기 위해 전세계에서 100만 명이 넘는 순례자가 로마를 찾았다. 올 연말 거행될 그의 시성식에는 훨씬 더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이야말로 곤경에 처한 가톨릭 교회가 기대하는 기적이다.





포퓰리즘의 유혹 - 대규모 시위가 브라질 도시들을 뒤흔들면서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지지도가 추락했다…최선의 출구 전략은?약 20년 전 브라질이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전의 일이다. 브라질의 허약한 경제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투자자들이 몸을 사렸다.

그러자 당시 대통령이던 페르난두 엔리케 카르도수는 이렇게 말했다. “브라질은 쾌속정이 아니라 원양 여객선이다.” 방향을 틀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지우마 호세프 현 브라질 대통령에게는 별로 위안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최근 몇 주 동안 군중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버스 요금 인상, 부패, 열악한 공교육과 병원 서비스 등 브라질의 문제점 전반에 불만을 터뜨리며 시위를 벌였다. 브라질 정계는 전례 없이 흔들렸다.

높은 인기를 누리던 호세프 대통령은 6월 중순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컨페더레이션컵 축구대회 개막식에 참석했다가 관중의 야유를 받았다. 호세프의 지지도는 6월 초 57%에서 6월 말 30%로 곤두박질쳤다. 호세프는 국민의 고충을 이해한다며 정치개혁을 두고 대담한 국민투표를 제안하며 민심을 달래려고 애썼지만 추락한 지지도는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경제 전문가들은 브라질이 지금까지 놀라운 성장을 거듭했지만 이제는 운이 다한듯하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급증하는 원자재 수요 덕분에 브라질은 호황을 누렸다. 브라질은 그 성장의 파도를 거의 10년 동안 타며 승승장구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별 타격을 받지 않았다. 2001년부터 2011년 사이 실업률이 크게 줄었고, 4000만 명이 빈곤에서 벗어났다. 브라질 역사에서 처음으로 중산층(현재 1억 명에 이른다)이 빈곤선 아래 인구보다 많아졌다.

호세프의 운도 브라질의 성장과 궤를 같이 했다. 2012년 중반 호세프의 지지도는 76%까지 치솟았다. 그녀는 강인하고 헌신적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자신감을 쌓았다. 세계무대에서 당당히 한 자리를 원하는 새로운 브라질에 적합한 리더처럼 보였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침체하면서 브라질의 성장세도 멈춰 섰다. 호세프 정부는 가계 대출과 세제 혜택으로 타격을 완화하려고 애썼다.

동시에 자동차 회사 같은 일부 업계에 저리 융자를 제공했다. 새로운 구매력을 가진 소비자들이 크게 늘었다. 그러나 제조업체들은 브라질의 극심한 부침 경향을 우려해 새로운 투자 없이 기존 설비를 최대한 이용하는 쪽을 택했다. 그 결과 생산의 병목현상이 생기면서 소비자 부채가 크게 늘었고, 인플레이션이 촉발됐다. 2012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올해 2.5% 성장하면 다행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주요 신흥시장 중 최저 수준이다.

한편 브라질 거리는 여전히 불만으로 들 끓는다. 브라질의 경제 하락이 극심하진 않지만 인플레이션을 잡으려고 정부가 금리를 인상하자 서민의 불만이 커졌다. “물가가 올라 임금을 잠식하기 시작하면서 서민은 좌절하고 신경과민적이 됐다”고 브라질 정치 분석가 세르지우 아브란체스가 말했다. “그런 불만이 지도자에게 직접 이전된다.”

호세프는 2014년 10월 재선에 도전하겠다고 발표했다. 호세프의 지지도가 추락하자 브라질의 정치층이 더욱 분열되기 시작했다. 호세프는 18개 정당과 허약한 연정으로 정부를 꾸려가려면 그들과 끊임없이 씨름하고 설득해야 한다. 강해 보이는 대통령이 수많은 정당의 요구에 발목이 잡혀 있다는 사실이 브라질 정치의 아이러니다. 마치 난쟁이들에게 사지가 묶인 걸리버와 같다.

호세프의 인기가 드높을 때는 “모든 정치인과 정당이 대통령의 캠프로 몰려들었다”고 아브란체스가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 캠프에서 부정적인 신호가 나오고 허약한 모습이 드러나자 대통령이 의존하던 몸집 작은 선수들이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재선이 아직 15개월이나 남았기 때문에 호세프에게 승산이 없다고 말하기는 너무 이를지 모른다. 국제정치 컨설팅 업체 유라시아 그룹의 라틴아메리카 선임 분석가 크리스토퍼 가먼은 호세프의 지지도가 떨어졌지만 워낙 높았기 때문에 그 정도 하락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브라질이 느끼는 두려움은 대통령만이 아니라 정치층 전체에 퍼져나간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국민투표 제안은 정치가의 신념이라기보다 정치적 절망의 발로처럼 보인다. 지금까지 브라질인들은 정치 개혁을 계속 요구했지만 특권과 권력을 지키려는 의원들과 대통령들 때문에 무산됐다. 호세프의 정적들은 국민투표 제안이 의회를 우회하려는 포퓰리즘 전술이라고 비난한다.

아무튼 브라질의 거리는 계속 들끓는다. 시위가 조직화되진 않았지만 시위대는 이미 중요한 승리를 거뒀다. 브라질 주요 도시는 버스요금 인상을 취소했다. 또 시위대의 압력으로 의회는 헌법수정안 37조를 폐기했다. 의원들의 부패를 수사할 수 있는 연방 검사들의 권한을 제한하는 내용이다.

20년 만에 최대 규모로 벌어지고 있는 시위가 어디로 향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시위대는 불만과 좌절을 개혁으로 전환하려면 궁극적으로 조직을 갖추고 그들이 혐오하는 정치인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전통적으로 브라질인들은 아무리 불만이 많아도 선거 때마다 전체 의원의 절반 이상을 재선출했다. 물론 분노의 파도를 타는 것이 품위 있는 끝내기 전략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권위가 무너지고 인기가 추락하는 호세프에게는 그 파도에 올라타는 것이 최고 전략일지 모른다.

— MAC MARGOLIS





영국 테니스 ‘가뭄 끝의 단비’ - 앤디 머레이의 우승으로 77년만에 자국인 윔블던 챔피언 탄생2013년 7월 7일, 영국이 윔블던에서 자국 챔피언을 본 지 77년 만에, 앤디 머레이가 윔블던 테니스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우승했다. 1936년 프레드 페리가 센터 코트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린 이래 테니스를 국가 스포츠로 간주하는 영국은 윔블던에서 자국 우승자를 보지 못해 가슴 아파 했다.

하지만 머레이가 그 징크스를 깼다. 테니스계의 강적인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에게 3대 0 완승(6-4, 7-5, 6-4)을 거뒀다. “모두가 윔블던에서 영국 우승자를 보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잘 안다”고 머레이가 우승 직후 코트에서 말했다. “이제 여러분들은 기뻐하기를 바란다.” 경기가 어떻게 끝났는지 상황을 돌이켜 보라는 요청에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기억은 앞으로 오랫동안 영국인들의 머리와 가슴에 각인될 것이다. 지난해 윔블던 결승전에서 머레이는 로저 페더러(스위스)에게 역전패한 뒤 분루를 삼켜야 했다. “지난해와 약간 달랐다”고 머레이가 우승 직후 말했다. “그때가 내 선수 경력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12개월 뒤 머레이는 멋지게 설욕했다. 승리의 순간 그는 베이스라인에서 돌아서서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라켓을 떨어뜨렸다. 곧 잔디 코트에 무릎을 꿇은 뒤 머리를 감싸고 선수 박스로 가서 가족과 팀을 얼싸 안았다. “그 마지막 경기를 어떻게 해냈는지 모르겠다”고 머레이는 웃었다. “표현 못할 정도로 기쁘다.”

그 일이 일어나기를 학수고대했던 영국인들에게는 ‘기쁨’이라기보다 ‘환희’가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머레이는 5년 연속 준결승전에 진출했고 2년 연속 결승전에 진출했다. 한때 영국의 테니스 총아였던 팀 헨먼도 네 번이나 결승전에 올라갔지만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이제 머레이가 영국의 숙원을 풀어주었다.

머레이는 환호하는 군중 앞에서 두 팔을 들어올렸다. 평상시 침울한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영국 테니스 선수 출신 해설자인 존 로이드는 “머레이는 지난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원한 건 올림픽 금메달이 아니었다. 그는 윔블던 우승을 원했다. 이제 그가 새 역사를 썼다.” 앞으로 77년 동안, 아니 어쩌면 좀 더 오래, 기억될 역사다.

―NICHOLAS MCCAR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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