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untary - 아프리카의 심장 말라위 희망을 품다
Voluntary - 아프리카의 심장 말라위 희망을 품다
7월 3일 오전 9시 말라위 수도 릴롱궤에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말린군데 마을 공터. 우리나라 초가을 날씨임에도 햇살은 따갑다. 나무 그늘 한자락 없는 맨 땅에 1000여 명의 아이가 빼곡하게 앉아 있다. 모두 구호식품 ‘바이타밀(Vitameal)’을 받기 위해 오전 6시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꾀죄죄한 옷차림에 하나같이 배가 볼록 나와있다. 영양 결핍 증상이다.
배급에 참여한 기자가 한 아이에게 다가가자 꼬깃꼬깃 손에 쥐고 있던 노란 종이를 내민다. 1인당 한포대만을 배급하기 위해 미리 종이표를 나눠줬다. 바이타밀을 내밀자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수줍은 듯 자꾸만 얼굴을 가리는 12세 소년 만자는 꼬박 3시간을 걸어서 왔다. 2kg 바이타밀 한 포대면 만자네 네 식구가 3일은 버틸수 있다.
아프리카 동남부의 내륙국가 말라위.대륙 한복판에 있는 ‘아프리카의 따뜻한 심장’으로 불리지만 불행히도 최빈국이다. 지난해 기준 남한 크기의 국토에 1600만 명이 살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69달러로 하루 생활비가 1달러가 안 된다. 2001년 에이즈가 말라위를 휩쓸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다. 8만 명이 에이즈로 목숨을 잃었다. 이후 말라리아와 가뭄으로 200만 명의 고아가 생겼다. 전체 인구의 10% 이상에 해당한다. 현재 수많은 아이가 영양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다.
바이타밀은 옥수수와 콩을 주 재료로 만든다. 여기에 25가지 비타민과 미네랄·탄수화물·단백질 필수 영양 성분을 넣었다. 화장품을 비롯한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는 글로벌 기업 뉴스킨 엔터프라이즈(이하 뉴스킨)가 저개발국 어린이의 영양결핍 문제를 돕기 위해 개발했다. 뉴스킨의 ‘너리시 더 칠드런(Nourish the Children)운동’의 일환이다.
전 세계 회원의 기부와 그에 따른 회사의 매칭 기부로 올해 4월 기준 3억 끼니에 달하는 바이타밀을 공급했다. 1996년 설립한 한국지사 뉴스킨코리아 역시 이 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2004년에는 뉴스킨코리아의 회원들이 자체적으로 ‘포스포 굿(Force for good)’ 후원회를 설립했다. 후원회는 1만원 후원 계좌 만들기 운동과 1% 나눔 운동을 통해 매월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기부한다.
말라위 문제 해결사 좀베뉴스킨은 2004년 말라위 수도 릴롱궤에 바이타밀 공장을 세웠다. 하루 6000포대, 1만2000kg이 생산돼 전국 고아원과 지역 아동 센터에 보낸다. 뉴스킨이 말라위를 주목하고 공장을 세운 데는 특별한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말라위 자선가로 유명한 나폴레온 좀베(54)다. 바이타밀 공장 근처 사무실 입구에 ‘Problem Center’ 팻말이 있다. 좀베의 방이다. 공장 내 문제가 생기면 그가 해결한다.
공장뿐 아니라 말라위 사람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를 찾는다. 푸른색 반팔 셔츠에 회색 바지 차림의 좀베는 구부정한 어깨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언뜻 봐서는 평범한 동네 아저씨같다. 그 역시 배고픈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 일년 수입이 100달러가 전부였어요. 11명이나 되는 가족이 살기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죠. 23살이 될 때까지 하루에 한끼만 먹고 살았어요.”
23살 이후 그의 삶이 바뀌었다. 그는 자신도 몰랐던 뛰어난 비즈니스 감각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초기 자본금은 집안의 유일한 재산인 소 몇 마리였다. 소를 판 돈으로 농작물을 재배했다. 수확물은 근처 시장에 팔지 않았다. 농작물 재배가 어려운 곳을 찾아 비싼 값에 팔았다. 돈이 모였을 때는 트럭을 구입해 물건을 수송하는 운송업을 시작했다.
돈을 벌자 그는 선진국을 여행했다.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선진국의 발전한 비즈니스를 벤치마킹하기 위해서다. 그는 스웨덴에서 나무 자르는 기계를 들여왔다. 말라위의 풍부한 나무를 잘라다 목재로 가공하는 사업을 구상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목재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
좀베는 “부자가 됐지만 주변 사람은 여전히 배고픔으로 굶주리고 있었다”고 얘기했다. 그는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굶어죽는 사람들을 살릴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고 덧붙였다. 우선 사재를 털어 병원을 지었다. 다음으로 배고프고 가난한 사람을 찾아 다니며 도와줬다.
우연히 말라위에 여행온 한 미국 관광객이 좀베의 사연에 감동해 인터넷에 올린 사진과 글이 미국에서 화제가 됐다. 이 사연을 접한 블레이크 로니 뉴스킨 회장은 2002년과 2003년에 각각 컨테이너 두 박스에 바이타밀을 실어 보냈다. 이 인연을 시작으로 뉴스킨은 말라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좀베의 간곡한 부탁으로 바이타밀을 직접 생산하는 공장도 세웠다. 덕분에 공장 근로자·운송업자·농부 등 500명이 넘는 말라위 사람에게 새 일자리가 생겼다.
좀베는 “언제까지 해외 원조를 받을 수는 없다”며 “하루 빨리 자립해야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얘기했다. 그가 식량 문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내놓은 게 농업 교육이다. “말라위는 풍부한 일조량, 기름진 토양, 물이 있어 농사 짓기 좋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농사 짓는 방법을 모르는 거예요. 상당수가 좁은 땅에 너무 많은 농작물을 심어서 망합니다. 씨앗을 뿌려 농작물을 키우고 거두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2009년 음탈리만자에 가족자립학교(School of Agriculture for Family Independence·SAFI)가 설립됐다. 뉴스킨이 후원했다. 지금까지 모두 100여 쌍의 부부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들이 각각 자신의 마을로 돌아가 전파한 효과를 고려하면 적어도 7000여 명의 자립형 농부가 생겼다. 좀베의 꿈은 이제부터다.
“농사로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을 계획하고 있어요. 7000명의 농부가 키운 농작물을 가공해서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겁니다. 예컨대 벼농사로 수확한 쌀은 재가공해 다양한 상품으로 만들어서 판매하는 겁니다. 쌀 수출보다 더 높은 마진을 챙길 수 있어요. 이 사업이 성공한다면 말라위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농업 교육으로 자립 가르친다7월 4일 오전 9시 좀베의 고향인 음탈리만자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울퉁불퉁 산길을 따라 오르면 파스텔로 칠해진 건물들이 눈에 띈다. 가족자립학교 ‘사피’다. 교육 과정은 2년이다. 첫 해는 이곳에서 머물면서 농업·가축 사육·영양 관리·비즈니스를 배운다. 교육비는 모두 무료다.
둘째 해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배운 내용을 실습한다. 여기서 사피의 지원은 끝나지 않는다. 초기 자본금이 부족한 졸업생들을 위해 밭에 뿌릴 씨앗과 새끼 염소 등 가축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가축은 모두 사피에서 학생들이 돌봤던 동물이 낳은 새끼들이다.
처음 둘러본 곳은 피쉬팜(Fish Farm)이다. 우리나라 양식장과 비슷하다. 사피 학생인 밀라즈(30)가 피쉬팜을 만드는 방법을 설명했다. “세로 15m, 가로 10m 직사각형 모양으로 깊게 파들어가면 지하수가 올라옵니다. 혼자서 두 달 정도면 만들 수 있어요. 흙탕물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손바닥 크기의 새끼 물고기를 넣어주면 됩니다. 약 250마리를 키울 수 있어요. 물고기가 성인 팔뚝 크기 정도로 커지면 시장에 내다 팔 수 있습니다.”
농사 역시 가장 기본적인 방법부터 교육한다. 땅을 일구고, 퇴비를 만드는 일을 직접 실습한다. 특히 밭 규모에 따라 얼마만큼의 씨앗을 뿌려야 농작물이 잘 자랄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실제 이곳에는 배추·파·토마토·옥수수 등 다양한 농작물을 구획별로 나눠서 심고 가꾼다. 가축 사육도 중요하다. 먹거리는 기본이고 배설물은 퇴비로 쓰기 때문이다. 사육장 입구마다 물 웅덩이가 있다. 신발을 소독하는 곳이다. 가축을 돌보기 전 반드시 신발을 담갔다가 들어가도록 교육한다. 이곳엔 학교도 있다. 교육생들의 어린 자녀들은 이곳에서 수업을 받는다.
이날에는 사피 교직원 기숙사 개관식이 열렸다. 뉴스킨 코리아 임직원과 회원들이 기부한 모금액으로 지어졌다. 커다란 창문이 달린 핑크색 기숙사는 교사들이 머물 수 있는 방과 주방, 그리고 화장실을 갖춘 현대식 건물이다.
오후에는 사피 졸업생의 집을 방문했다. 사피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키심바 마을이다. 자동차는 비탈진 고갯길을 따라 이동했다. 곧 쓰러질 것 같은 집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자동차가 멈춘 곳에 20~30여 명의 사람이 몰려 있었다. 방문 소식을 듣고 구경 온 동네 사람들이었다. 사람들 사이로 집 주인 에너시(29)가 걸어나왔다. 쑥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지난해 사피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울타리 안에는 새로 지은 조그만한 벽돌 건물들이 많았다. 에너시가 집 구경을 시켜줬다. 부엌은 3.3㎡ 남짓한 공간에 화덕이 놓여 있다. 한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입구를 지나니 커다란 대야에 물이 담겨 있다. 욕실이었다. 집 근처에는 토끼·닭·염소 가축 우리가 여러개다. 동물은 물론 사육장 안은 깨끗했다. 마치 사피를 조그맣게 옮겨 온 듯했다. 마당 한쪽에는 빨간 벽돌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에너시는 환하게 웃으며 “저기에 살 집을 새로 지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피에 가기 전에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죠. 당장 아이들에게 먹일 음식조차 부족했어요. 지금은 25마리의 염소를 갖고 있답니다. (웃음) 새 집을 지을 시멘트와 벽돌을 살 돈도 생겼고요.”
집 한채를 짓는 데 1만5000개의 벽돌이 필요하다. 벽돌과 염소를 살 수 있었던 비결은 집 뒷편에 있었다. 집에서 3분 정도 떨어진 곳에 커다란 농장이 있다. 밭 고랑 사이로 토마토·배추·콩이 잘 자라고 있었다. 한 눈에도 신선하고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농장 한 쪽에는 피쉬팜이 있다.
사피에서 배운대로 땅을 파서 만든 물고기 양식장이다. 시골에서 흔히 보던 양수기가 있었다. 에너시는 “얼마 전에 이곳을 방문한 한국 선교사가 선물로 사줬다”고 얘기했다. 마중물을 양수기에 넣고 발로 펌프질을 하자 밭으로 연결된 기다란 고무 호스에서 물이 콸콸 쏟아졌다. 피쉬팜의 물을 끌어다 농작물에 물을 주는 방식이다.
“사피에서 배운대로 농사를 지었더니 수확량이 크게 늘었어요. 예전에는 4047㎡(약 1224평)당 한 박스 정도의 농작물을 생산했는데 요즘엔 50박스가량 나와요. 수확한 농작물은 고등학교에 공급하고 있어요.”
에너시는 정부에서 선정한 이 마을의 영농 후계자다. 마을 사람에게 농사를 가르친다. 피쉬팜을 만들고 물고기 양식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에너시는 “사피를 다녀온 후 삶이 풍요로워졌다”고 했다. “행복합니다.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됐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게 되면 자전거를 사고 싶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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