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My Golf Life’① 전 메이저리거 박찬호 - “골프로 마인드컨트롤 배워요”
명사의 ‘My Golf Life’① 전 메이저리거 박찬호 - “골프로 마인드컨트롤 배워요”
골퍼들은 18홀의 골프 경기를 곧잘 인생에 비유한다. 한 샷 한 샷을 통해 페어웨이와 그린, 홀을 향해 가는 순간이 인생 행로에서 만나는 고비고비를 닮았기 때문이다. 이번 달부터 골프 매니어로 알려진 명사들의 골프 철학을 연재한다. 그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골프 코스에서 라운딩을 하며 골프와 인생을 듣는다. 왕년의 코리안 메이저특급 박찬호를 경남 남해 사우스케이프 오너스클럽에서 만났다.
메이저리그 영웅 박찬호(41)는 요즘 골프의 매력에 푹 빠져 사는 듯하다. 한 주에 서너 차례 골프장에 나설 때도 있다. 선수 시절 그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이 주로 라운딩 파트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골프 코스 중 하나는 경남 남해군의 끝자락에 위치한 사우스케이프 오너스클럽이다. ‘힐링 골프 리조트’로 알려진 이 골프장을 지인들과 즐겨 찾는다.
이 골프 코스는 남해 다도해 한가운데 위치한 창선섬의 끝자락에 조성돼 수려한 풍광을 자랑한다. 푸른 바다를 향해 손짓하듯 펼쳐진 수많은 리아스식 해안의 기암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골프 코스가 조성됐다. 라운딩을 하면서 푸른 바다에 보석처럼 알알이 박혀 있는 섬들을 감상하는 것은 보너스다. 마치 바다 위에서 골프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박 선수는 “이 골프장을 다녀간 이들이 세계 최고 코스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그와의 티오프 시간은 9월 28일 오전 11시30분. 인코스 1번 홀은 내리막 파4 홀이다. 티잉그라운드에서 박 선수가 친 공이 힘차게 창공을 가르며 페어웨이로 떨어진다. 드라이버 비거리가 270야드는 족히 될 성싶다.
“야구선수 출신이 골프를 잘 친다는 속설은 허언이 아니네요”라는 말에 박 선수는 “투수들은 손끝이 섬세한 편이죠. 특히 릴리스 포인트가 일정해야 제구력이 안정되는데 그 점이 골프 스윙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아요.” 그는 “임팩트 순간에도 손의 위치가 항상 같아야 하는데 투수 출신이 손끝 감각이 좋아 컨트롤을 잘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 선수는 세컨드샷으로 ‘온 더 그린’에 성공했다. 버디 기회를 만들었지만, 퍼팅한 공이 홀컵을 살짝 빗겨간다.
구력 8개월 “장타지만 정확성에 관심”골프를 시작한 지는 얼마나 됐을까? 실력에 비춰볼 때 그의 대답이 의외다. “8개월 정도 됐어요. 스코어는 80대 초 중반 정도죠. 최고 기록은 79타까지 쳐봤고요. 그렇지만 그 다음 라운딩에서는 100타를 넘겼어요.”(웃음)
전성기 때 구속 160㎞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뿌린 최고 투수답게 그의 드라이버 비거리는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처음 골프에 입문했을 때 “드라이버 티샷이 340m를 나간 적이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요즘은 거리보다 정확성을 높이려 노력한다. “그날 400m 파 4홀에서 드라이버샷을 했는데 캐디가 60m 남았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투수에게도 강속구보다 컨트롤이 더 중요하듯이 골퍼에게도 거리보다 정확도가 더 중요하다고 여겨졌어요.”
그는 골프가 참 어렵다고 푸념한다. “야구공은 움직이는 걸 치잖아요. 그런데 ‘골프공은 서 있는데 왜 제대로 못 치느냐’ 그런 이야기를 해요. 하지만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더 멀리 치고 싶은 마음에 공은 안 움직이는데 마음이 자꾸자꾸 움직이는 거예요. 그래서 슬라이스가 나죠. 마인드컨트롤이 안되면 참 어려운 게 골프더라고요.”
그의 골프 스윙을 보고 있노라면 역시 강한 하체의 힘이 느껴진다. 잘 알려졌듯이 박 선수의 굵은 허벅지는 웬만한 사람의 허리 둘레만하다. 단단한 하체가 그의 강한 스윙에 도움을 준다. 백스윙 때 체중을 오른쪽 다리에 충분히 옮겨서 오른쪽 무릎이 기둥 역할을 하도록 한다. 백스윙톱에서는 오른쪽으로 옮겨온 체중을 지탱하기 위해 허벅지 안쪽의 근육이 단단해지는 긴장을 느껴야 한다고 한다. 박찬호 선수의 설명이다.
골프의 매력에 흠뻑 빠져 이론과 실기 모두에서 흥미를 갖고 있지만 여전히 골프는 어렵게만 느껴진다. 티샷을 아무리 잘해도 세컨드샷이 조금 빗나가면 러프나 벙커에 빠지기도 한다. “골프를 하면서 18홀을 인생에 비유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잘되는 홀에선 멋지게 버디를 기록하지만 어떤 홀에선 클럽을 집어던지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나기도하니까요. 인생의 ‘업 앤 다운’이 골프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건 야구와도 똑같아요.”
그가 골프를 시작한 이유는 “나를 찾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지난해 시즌을 마치고 한화 이글스에서 현역선수 생활을 마감한 그는 한동안 공허함을 떨치지 못했다고 한다. 그 아쉬움과 허탈감의 탈출구가 골프였다. 박 선수는 그린 위에서도 늘 프로페셔널의 마음가짐을 강조한다. 티잉 그라운드에 서면 마치 마운드에 설 때의 긴장감을 맛보게 돼 좋단다.
“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절제하는 게 굉장히 쉬워지잖아요. 선수들도 부상이 있으면 은퇴할 때 마음을 내려놓기가 굉장히 쉬워요. 그런데 저는 부상이 없는 상태에서 은퇴를 했어요. 그러니 ‘더 던질 수 있는데’ 하는 집착이 남더라고요. 그러던 중 골프를 접했는데 그런 마음이 치유가 됐어요. 오랫동안 운동을 했기 때문에 잔디에 올라서면 힐링이 됐어요. 골프가 꼭 공을 다시 던지는 것 같고, 제2의 마운드에 올라서는 것 같았죠.”
그러면서 그는 “마운드에 설 때 투수는 심리적인 마인드 컨트롤이라든지, 마인드 매니징을 하는데 골프를 하면서도 똑같은 느낌을 갖는다”고 말했다.
그는 “후배 야구선수, 특히 투수들에게는 꼭 골프를 하라고 권하고 싶다”고 했다. “골퍼와 투수는 마인드컨트롤을 잘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똑같은 것 같아요. 선수 시절 실수하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많거나 컨디션이 매우 좋은 날은 꼭 져요. 너무 오버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실수해도 괜찮아’ 하며 편안하게 경기에 임해요.
그러면 배 이상의 에너지가 나와요. 마운드에서 내 할 일, 정확하게 던져야 하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고, 타자들은 못 치는 거예요. 골프에서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이번 퍼팅을 홀컵에 넣어 버디를 해야지 하면 공이 빗나가거든요. 마음이 흔들리는 거죠. 하지만 편안하게 경기에만 집중하면 버디를 잡아요. 결국 마인드컨트롤이 가장 중요한 거죠.”
정재봉 한섬피앤디 회장과의 인연승부에 집착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경기를 망친다고 말하지만 특유의 승부욕이 생긴 걸까? 박 선수는 4번 홀(파4)에서 드라이버샷을 290야드를 넘게 날려 보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나왔다.
박 선수와 사우스케이프의 인연이 궁금했다. 사우스케이프는 개장한지 4개월 남짓밖에 되지 않은 터였다. “야구장을 떠나고 나서도 공을 던지고 싶어 참기 힘들었죠. 나이는 먹었지만 열정은 그대로였거든요. 그래서 명상을 했죠. 정신적 건강은 자기를 아는 일이거든요. 자기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아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걸 가르치는 게 명상이에요. 그러던 중 명상 선생님이 힐링을 테마로 만든 골프장이 있다고 소개해줬죠.
이곳 대표인 정재봉(한섬피앤디) 회장을 만났고, 정 회장과 힐링과 명상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짓고 있는 골프장을 세계 최고의 ‘힐링 리조트’로 만들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골프장이 완공된 후 초청을 받았는데 라운딩을 하면서 마음이 편안했어요. 골프보다도 자연 환경에 더 매료되더라고요.”
사우스케이프 오너스클럽은 개장과 함께 골프업계에서 유명세를 치뤘다. 우선 4000억원에 달하는 골프장 건설비용과 주말 기준 37만원에 이르는 국내 최고의 비싼 그린피 때문이다. 하지만 골프장을 가면 더욱 놀랍다. 세계적 골프코스 설계자인 카일 필립스의 국내 첫 작품이다. 필립스는 세계적 명코스로 꼽히는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스킹스반스 골프링크스를 비롯해 전 세계 16개국에서 36곳의 골프장을 설계했다. 700여 억원을 들여 만든 클럽하우스도 최고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국내 최고 건축가로 꼽히는 조민석의 작품이다.
하늘과 바다를 품고 있는 듯한 열린 로비에서 바라보는 남해안의 절경은 탄성을 절로 자아내게 한다. 정재봉 회장 역시 남해 경관에 반해 리조트 사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이곳에 ‘힐링’이라는 테마를 접목했다. 일반적 리조트에 있는 요가·스파 등 정적인 요소와 트래킹 코스·골프장·요트 등 동적인 요소, 거기에 ‘푸드 테라피’를 결합한 ‘얼티미트(Ultimate) 힐링’이 콘셉트다.
“최고의 힐링은 정적인 힐링과 액티브 힐링뿐만 아니라 음식까지 갖춰야 해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그런 면에서 남해는 수산물뿐만 아니라 햇살이 좋아 농산물도 굉장히 좋아요. 그래서 로컬 푸드로 건강식을 제공하고 있어요.” 정 회장은 힐링의 일환으로 ‘10분 티업, 원웨이 티오프’라는 방침도 세웠다. “일반 골프장은 티업 시간이 너무 짧아요. 그런 건 힐링이 아니죠. 리조트에 오면 여유가 있어야죠. 홀을 걸으면서 주변 경관도 즐기면서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정 회장은 사우스케이프가 완성된 모습을 보고 120% 만족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2년 뒤 국제대회를 유치해 명실공히 세계적 골프 리조트로 자리매김할 계획이다.
사우스케이프의 아웃코스는 정말 환상적이다. 특히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12번부터 16번 홀까지 아름다운 코스가 이어진다. 라운딩의 묘미도 훨씬 커진다. 그중 14번 홀과 16번 홀은 전문가와 골퍼들 사이에서 시그니처홀(대표 홀)이어야 한다는 의견이 분할될 만큼 쌍벽을 이루는 아름다운 홀이다.
도전 욕구 부르는 아웃코스 16번 시그니처 홀14번 홀(파3)은 110m 정도로 거리가 짧지만 해안 끝에 마치 섬처럼 돌출돼 있는 공간에 그린을 앉혔다. 그린 주변엔 벙커가 있고 바로 밑으로는 절벽이다. 반면 16번 홀(파3)은 골프장 측이 ‘시그니처홀’로 꼽는 곳이다. 해안 절벽을 향해 바다를 건너 쳐야 한다. 블루티 기준으로 180m로 맞바람이 불 경우 드라이버로 티샷을 해도 온그린이 쉽지 않다. 박 선수는 “이곳은 페어웨이가 넓어 보여 심적으로 안정감을 주지만 그린 주변에 벙커가 많아 세컨드샷부터 부담이 크다”고 말한다.
라운드 도중에 빗방울에다 도그레그홀·벙커·워터 해저드·러프 그리고 바람까지 더해져 힘겨운 싸움이 시작됐다. 하지만 그린 너머로 펼쳐진 바다를 보면서 라운딩하면 이 같은 상념도 일순간에 사라지는 듯하다. 전반 홀에선 파를 7개나 잡은 박 선수지만, 후반 홀에서 더욱 경기에 집중하는 듯했다. 그는 시그너처홀 파3에서 4번 아이언으로 티샷해 그린에 공을 올려 놓은 뒤 깔끔하게 파를 기록했다. 박 선수는 “도전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만큼 희열도 크다”며 “시그니처홀은 ‘도전’이라는 테마가 있는 것 같아 가장 좋아하는 홀”이라고 말했다.
박찬호에 이어 LA다저스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류현진 선수 이야기가 나왔다. 한화에서 함께 뛴 후배의 활약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류현진의 최대 강점을 제구력이라고 했다. “류현진은 직구·슬라이더·체인지업 밖에 없어요. 굉장히 단순하죠. 스피드가 굉장히 빠른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류현진이 승승장구하는 것은 왜일까요. 구질이 아니라 모든 투수가 가져야 될 필수조건인 제구력이 뛰어나죠. 그것으로 메이저리그를 평정하고 있어요. 류현진은 내년에 더욱 성장한 모습을 보여줄 거예요.”
그는 류현진의 승패보다는 류현진의 생활에 관심이 많다고도 했다. “1승을 하기 위해 현진이가 첫 날에는 어떻게 훈련을 했고, 클럽하우스에서 어떤 행동을 했고, 비디오실에서 뭘 보고, 어떤 미팅을 통해 투수코치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저는 그런 걸 더 유심히 봐요. 현진이가 1승 할때마다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겪고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이기는지 알거든요. 그래서 더욱 자랑스럽죠.”
박찬호의 말처럼, 야구든 골프든 단순한 승패보다 그 과정이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골프나 야구·인생이 모두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그가 18홀의 골프 경기에서 그 고락을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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