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에세이 - 늦가을의 채움(열매)과 비움(낙엽)
CEO 에세이 - 늦가을의 채움(열매)과 비움(낙엽)
짧아서 더 아쉬운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가을은 참 미련이 남는 계절이다. 봄에는 봄바람과 함께 소리 없이 다가오는 봄 꽃을 맞이하는 기쁨이 있다. 여름에는 도심에서도 각양각색의 꽃이 경연하듯 피어난다.
가을 꽃은 눈보라 치는 긴 겨울이 떠올라서인지 아쉬움으로 만나게 된다. 쑥부쟁이·구절초·산국·감국 등을 통칭하는 들국화, 익모초·꽃향유·용담·산박하처럼 향이 좋은 보라색 꽃, 가을을 대표하는 코스모스는 초가을에 피는 꽃이다.
가을 단풍의 남진(南進)도 짧은 가을의 속도만큼이나 빠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고개를 창가로 돌리면 아파트 단지, 도심 공원, 도로변에서도 붉게 노랗게 물든 늦가을의 정취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벚나무·감나무·신나무의 단풍 든 잎도 운치 있다.
단풍 든 잎도 멋지지만 빨갛게 익어가는 열매에서 더 화려한 가을을 느낀다. 필자가 일하는 서울 목동 전산센터 건물 주변에도 산수유의 붉고 노란색의 긴 열매, 마가목의 높은 줄기 끝에 모여 열린 빨간 열매, 꽃이 다진 줄기에 매달린 맥문동의 까만 열매, 붉은 물든 잎과 잘 어울리는 만큼이나 화려한 남천의 열매를 볼 수 있다.
가을날 식물의 잎이 화려한 빛깔로 물드는 이유는 뭘까? 긴 겨울 동안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다. 광합성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잎이 가지와 잎 사이에 특별한 세포층을 만들어 물과 양분의 왕래를 차단한다. 잎 속의 푸른색 엽록소는 파괴되고 다른 색소가 나타나며 잎이 빨갛게 노랗게 단풍이 든다. 단풍 든 잎은 결국 말라 낙엽이란 이름으로 떨어지고 만다.
열매가 빨갛게 먹음직스럽게 열리는 이유는 뭘까?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이 다른 곳으로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한 지혜다. 찔레·마가목·낙상홍 열매가 빨갛게 먹음직스럽게 익어야 새 같은 동물의 눈에 잘 띤다. 늦은 가을에 꽃을 대신하는 열매와 단풍잎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뭘까? 채움과 비움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식물이 이른 봄부터 잎을 키우고 여름에는 꽃을 만들고, 수정을 통해 가을에는 결실을 만든다. 어쩌면 이 과정이 1년 단위로 목표를 세우고 수립된 전략에 따라 땀 흘리며 목표라는 항아리에 성과를 채워가는 우리 직장인의 일상과도 닮았다. 열매의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듯 사람들마다 저 나름의 채움 항아리를 만들고 거기에 1년 간의 땀과 정성을 채운다. 가을이 되면 내가 채운 결실의 항아리가 남들이 만든 성과와 뭐가 다를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열매가 채움이라면 단풍, 그리고 낙엽 지는 잎은 비움이 아닐까? 나무는 곧 닥칠 긴 겨울을 나기 위해 나무 둥치와 굵은 가지만 남기고 다 비운다. 화려한 단풍은 비우기 위한 과정이다. 채우기에 바빠 쉴 틈 없이 열심히 일한 당신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쉬어가야 한다. 결실을 되돌아보고 채움을 조금 덜어 나누어 주는 여유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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