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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 성스럽게 즐기는 중세의 성탄절

Travel - 성스럽게 즐기는 중세의 성탄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된 중세도시에서 예수 탄생 기리며 옛 풍습 재현
대주교 복장을 한 성 니콜라스가 천사·악마와 함께 어린이가 있는 가정을 방문해 1년 동안 착한 일을 한 어린이에게는 과일이나 과자를 주고 잘못한 어린이에게는 석탄을 준다. 체코에서 붉은 옷의 미국식 산타클로스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다.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추위로 바깥 활동이 뜸해지는 겨울, 그중에서도 밤이 가장 긴 동지(冬至)와 성탄절은 구전(口傳)의 계절이다. 따뜻한 아랫목이나 벽난로 앞에 모여 앉은 어린이들은 할머니와 어머니에게서 옛 이야기와 풍습을 전해 들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교회력으로 12월 1일부터 24일까지 성탄절 전의 4주간을 가리키는 애드번트(Advent)는 대림절(待臨節)로 번역된다. 세상을 구할 메시아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임하기를 기다리는 시기라는 의미다. 기독교 전통을 가진 유럽 국가들은 대림절 기간 동안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다양한 옛 풍습의 재현을 통해 가족과 공동체의 소중함을 다시 확인하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다.

12월 3일부터 9일까지 체코 프라하와 체스키 크룸로프, 올로모우츠, 쿠트나 호라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유적들로 가득한 도시들을 돌아봤다. 고딕·르네상스·바로크·로코코 양식의 건물들과 성당·탑·다리 등 곳곳에 남겨진 전설과 민담, 현지 주민들이 재현한 대림절 풍습이 극동에서 온 이방인을 신과 악마, 연금술과 철학이 공존하던 중세 유럽으로 안내하는 듯했다.

대림절은 체코 수도 프라하 구시가를 비롯한 지방 각 도시의 중앙 광장에서 수천 개의 작은 전구가 달린 대형 크리스마스트리에 붉을 밝히는 것으로 시작된다. 크리스마스트리 옆에는 아기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의 마구간이 재현된다. 말구유에 짚을 깔아 만든 요람 속에서 잠든 아기 예수를 마리아와 요셉이 지켜보고 있고, 가축들과 동방에서 온 세 명의 왕이 경배를 드리는 장면이다. 도시의 광장마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들어서 천사나 종 모양의 진저 쿠키, 양초, 트리 장식, 공예품, 구운 치즈, 순대 햄, 벌꿀 술 등 다양한 물건이 전시·판매된다.

체코의 각 가정에서는 짚·종이·나무·도자기 등 다양한 재료로 직접 베들레헴을 만들어 집안을 장식하기도 한다. 대림절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또 다른 상징은 애드번트 화환. 가문비나무 등의 상록수를 고리 모양으로 엮은 뒤 빨간 리본과 솔방울로 장식하고 4개의 초를 배치한다. 대림절 기간 4주 동안 매주 한 자루씩 초를 밝히며 예수의 강림을 기다린다는 의미다.

체스키 크룸로프는 프라하에서 남서쪽으로 200여 km 떨어진 오스트리아 국경 근처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도시다. 구불거리는 강가라는 의미의 지명처럼 말굽 모양으로 휘돌아 흐르는 블타바 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1992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붉은 지붕과 둥근 탑이 어우러져 동화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인구가 1만3000명에 불과한데 300여개 이상의 건축물이 문화 유적으로 등록돼 도시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다.

13세기 중엽 보헤미아의 비테크가(家)가 이곳에 자리를 잡고 고딕 양식의 성을 지은 것을 시작으로 로젠베르크가, 합스부르크가의 루돌프2세와 에겐베르크가, 슈바르젠베르크가 등으로 주인이 바뀌면서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의 건물들이 추가됐다. 그러나 18세기 이후에 지어진 건물이 3~4채에 불과해 17세기에 시간이 멈춘 도시로도 불린다.

폭군이었던 남편의 학대로 일찍 죽은 로젠베르크가문의 페르타가 좋은 일을 예고할 때는 흰 장갑, 나쁜 일을 예고할 때는 검은 장갑을 끼고 사람들 앞에 나타난다는 ‘화이트 레이디’의 전설, 자신이 아내를 죽였다는 사실을 잊은 채 마을사람에게 살인범 누명을 씌워 살육을 일삼는 루돌프2세의 정신이상자 줄리아의 살인행각을 멈추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이발사의 비극적 전설이 얽힌 이발사 다리, 말 조련사와의 사랑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린 엘사 로젠베르크의 유령 등 숱한 전설을 담고 있다.

1. 체스키 크룸로프는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남서쪽으로 200여km 떨어진 곳이다. 오스트리아 국경 근처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도시다. 2. 크지보클랏 크리스마스 마켓.





중세의 비극적 전설 머금은 곳프라하로 돌아오는 길, 체스케 부데요비체에서 열린 성 니콜라스의 날(12월 6일) 전야제에 참석했다. 도시의 중앙광장에 수천 명이 모인 가운데 천사로 분장한 사람이 서로 떨어진 높은 건물을 연결한 줄을 타고 날아가는 장관을 연출하고 광장에 대형 천사가 나타나 어린이들을 축복해 주었다.

체코에서는 12월 5일 저녁 대주교의 복장을 한 성 니콜라스가 천사·악마와 함께 어린이가 있는 가정을 방문해 1년 동안 나쁜 일을 했는지, 착한 일을 했는지 묻고 착한 일을 한 어린이에게는 과일이나 과자를 주고 잘못한 어린이에게는 석탄을 준다는 풍습이 있다. 악마로 분장한 사람들은 어린이들에게 겁을 주고 천사는 이를 말린다. 체코에서 붉은 옷을 입고 어깨에 선물주머니를 둘러멘 미국식 산타클로스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프라하에서 동쪽으로 250㎞, 펜돌리노 급행열차로 2시간30분을 달려가면 슬로바키아와의 접경지역에 모라비아 지방의 중심지이자 체코 가톨릭의 본산인 올로모우츠가 있다. 체코공화국은 서쪽의 보헤미아 왕국과 동쪽의 모라비아 왕국이 합쳐져 이루어진 나라다. 프라하가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였다면, 올로모우츠는 10세기부터 1640년까지 700년 간 모라비아 왕국의 수도였다. 11세기에 대주교가 상주하는 가톨릭 대교구가 설립돼 1848년 합스부르크왕가의 요제프 1세가 즉위식을 했다.

12세기에 지어진 세인트 벤체스라스 대성당, 15세기에 지어진 시청사, 유전학의 아버지 그레고르 멘델이 다닌 올로모우츠대학 등 200여개의 건물과 유적들로 가득하다. 특히 1716년 착공해 38년 만에 완공된 높이 35m의 삼위일체탑은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은 페스트의 소멸을 기원하며 곳곳에 세워진 역병 퇴치 기원탑 가운데서도 예술적 가치가 높아 시청사 건물과 함께 200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올로모우츠에서 11km 떨어진 스바티 코페체크(성스러운 언덕)는 1633년 상인 안드리에치가 성모의 그림을 든 천사의 계시를 받고 성모방문 성당을 건립해 체코의 대표적인 성지로 꼽힌다. 올로모우츠는 모라비아 농축산물의 집산지이기도 해 체코 특산 벌꿀술인 메도비나와 스프레이, 립밤, 크림, 시럽 등 품질 좋은 프로폴리스 제품을 저렴한가격에 살 수 있다.

쿠트나 호라는 프라하로부터 동쪽 약 60㎞ 지점에 있다. 13세기 매장량이 풍부한 은광이 발견되자 바츨라프 2세는 1300년 화폐개혁을 단행해 기존 화폐를 폐기하고 이곳의 블라슈스키 드부르궁전 내에 있는 화폐주조소에서 주조한 은화 ‘프라하 그로셴’을 통용한다는 칙령을 내렸다.

쿠트나 호라에서 주조된 은화는 순도가 매우 높아 14세기에는 전 유럽에서 국제통화로 사용됐다. 이에 따라 쿠트나 호라는 14~15세기에 프라하와 경쟁하는 보헤미아의 정치·경제·문화 중심지이자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로 부상했다. 그러나 지하 600m까지 내려간 은광에 지하수가 차오르면서 16세기 초에는 문을 닫았다.

1. 쿠트나 호라 근처 세들레츠에 있는 해골성당. 2. 프레로프 나드 라벰 민속촌에 전시된 체코의 대림절 풍습.


호두껍질 배로 운세 점쳐광부들의 수호 성인인 성녀 바르바라에게 헌정된 대성당은 후기 고딕 양식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1388년 이곳 광산공동체의 공동기금으로 착공했다가 1626년 예수회가 대성당을 관리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1905년 500여년 만에 완공됐다. 성당 내부의 프레스코화와 조각들은 성경의 내용이 아니라 중세 광산도시와 광부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인근 세들레츠에는 7만여명의 뼈로 내부를 만든 납골당 성당이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든다.

중세 때 이 성당의 주임신부가 예루살렘을 방문해 성전의 성스러운 흙을 가져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신자들이 이곳에 묻히기를 원해 공동묘지는 늘 만원이었다. 더 이상 시신을 수용할 수 없게 되자 1878년 이곳을 관리하던 시토수도회의 수도사가 지하납골당에 안치된 오래된 유골을 모아 삶의 무상함과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에서 해골성당을 건립했다고 한다.

1900년 설립된 쿠트나 호라 근처의 프레로프 나드 라벰 민속촌에 가면 다양한 대림절 풍습과 체코인의 전통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다. 겨울이 유독 길고 추워서인지 체코는 대림절 기간 미래를 점치는 풍습이 많다. 사과를 잘랐을 때 중심에 별 모양이 나타나면 운이 좋은 것이고 만약 네 개의 귀퉁이가 보인다면 운이 좋지 않을 것으로 믿었다.

호두껍질 배는 온 가족이 즐기는 일종의 운수점이다. 반으로 쪼갠 호두껍질에 작은 초를 올려놓고 물을 채운 대야에 띄워 배가 가는 방향을 보며 점을 치는 것이다. 호두껍질 배가 중앙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집에 머무르는 것이고 배가 이동할 경우는 대야의 어느 쪽으로 가는가에 따라 배주인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믿었다. 젊은 처녀들은 벚나무의 가지를 잘라 물에 담가 놓는다. 성탄 전야까지 벚나무에 꽃이 피면 일 년 안에 결혼을 하게 된다는 미신이 있어서다.

성탄절 전야가 되면 젊은 처녀들은 신발을 어깨 너머로 던지며 언제쯤 결혼하게 될지 점을 친다. 던진 신발 코가 문을 향하고 있으면 이듬해 결혼을 하거나 이사를 하게 되고 신발 코가 안을 향하고 있으며 결혼은 틀렸고 집에 머물게 된다고 믿었다. 납을 국자 같은 데 올려놓고 뜨거운 불에 녹인 다음 물 속에 부어 납이 굳은 모양을 보고 미래를 판단하는데 미혼 여성들은 결혼하게 될 남자의 얼굴이나 이름을 추측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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