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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파워피플[36] - 프랑스판 ‘제3의 길’ 진군하는 중도좌파

글로벌 파워피플[36] - 프랑스판 ‘제3의 길’ 진군하는 중도좌파

친기업적 경제개혁 주도, 군사 개입으로 미·중의 각축장 아프리카 선점



새해 벽두에 프랑수아 올랑드(59) 프랑스 대통령보다 매스컴에 더 자주 등장한 인물도 드물 것이다. 그리 명예롭지는 않다. 프랑스 타블로이드 주간지 클로저가 올랑드의 은밀한 사생활을 폭로한 때문이다. 이 잡지는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에서 불과 300m 떨어진 아파트 앞에서 올랑드가 검은색 헬멧을 쓴 채 스쿠터에서 막 내리는 모습과 잠시 뒤 그 아파트에 들어가는 여배우 쥘리 가예(41)의 사진 등을 7페이지에 걸쳐 실었다.

그러면서 올랑드가 가예와 오래 전부터 수시로 함께 밤을 보내왔다고 보도했다. 가예는 올랑드의 열렬한 지지자로 2012년 대선 유세 기간 중 홍보 영상에 출연했으며 “참으로 소박하고 남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인물”이라고 올랑드를 공개적으로 치켜세운 인물이다.



복잡한 여성 편력으로 구설수올랑드는 극우정당 후보로 출마한 적이 있는 이비인후과 의사 아버지와 좌파 지지자로 사회복지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파리 근교 부유한 지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프랑스의 엘리트 대학인 에콜 노르말에 해당하는 파리고등상업학교를 졸업했다. 그 뒤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을 거쳐 엘리트 중의 엘리트만 다닌다는 국립행정학교(ENA)를 마쳤다.

프랑스는 1968년 혁명 뒤 모든 대학을 평준화했다. 고교 졸업생은 자신의 거주지에서 일정 거리 안에 있는 대학에 배정된다. 다만 에콜 노르말만은 예외다. 모든 고교가 평준화됐지만 특목고는 예외인 한국의 중등교육과 비슷하다. 에코 노르말을 마친 학생은 사실상 출세길이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좌우파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젊어서 사회당 지지자였던 올랑드는 하원의원과 시장으로서 사회당에서 입지를 굳혔다.

그는 ENA 동창이자 정치적 동지인 세골렌 루아얄과 1978년부터 2007년까지 거의 30년 가까이 동거했다. 둘 사이에는 토마스(30)·크레멘스(29)·쥘리앙(27)·플로라(22)라는 자녀가 있다. 프랑스에선 1999년 민법 개정으로 동거 커플에게도 부부에 버금가는 법적 권리를 부여하고 사회보장도 거의 똑같이 제공한다. ‘동성이나 이성의 성인 2명이 공동생활을 맺기 위해 하는 계약’인 민사연대계약이 그 바탕이다.

이 계약의 커플은 재산이 각자 소유다. 그러니 부부 상속이나 재산분할이니 복잡한 문제가 없다. 헤어질 때 합의이혼이나 소송이혼 같은 절차도 필요 없다. 헤어지면 짐만 싸 들고 집에서 나가거나 반대로 상대를 그렇게 내보내면 그만이다. 두 사람은 2007년 그렇게 헤어졌다. 올랑드가 집에서 나갔다. 사실상 부인인 루아얄이 프랑스 사회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가 우파 후보인 니콜라 사르코지에게 패배한 직후였다. 언론들은 그 해 6월 총선 전날에 이를 보도했다.

헤어진 이유에 대해 여러 추측이 있지만 올랑드가 잡지인 파리 마치 기자 출신의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와 오랫동안 깊은 관계를 맺은 게 결정적인 이유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트리에르바일레르는 올랑드가 2012년 사회당 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해 사르코지를 물리치고 엘리제궁에 입성한 뒤에는 ‘퍼스트 걸프렌드’로서 사실상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하다 올랑드-가예의 외도로 결별했다.

답답할 정도로 모범생 이미지를 풍겨 대통령 선거전에서부터 ‘무슈 노르말(미스터 정상)’이라는 애칭으로 불린 올랑드는 주간지 클로저의 폭로로 졸지에 ‘두 집 살림’을 하는 ‘두 얼굴의 남자’가 됐다. 가예와의 밀회가 들통난 뒤 올랑드는 여기저기서 풍자의 대상이 됐다.

프랑스 렌터카 업체인 시스는 ‘대통령 각하, 다음에는 스쿠터를 피하세요. 시스는 창문을 선팅한 차를 렌트합니다’라는 광고를 내놨다. 드라이브라는 렌터카 업체는 ‘보이지 않는다. 들통나지 않는다. 어둡게 선팅한 자가용. 싼 가격으로도 신중하게 처신할 수 있다’는 광고 문구를 신문광고에 실었다. 대통령의 권위가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타고 지난 대선에서 올랑드에게 패한 니콜라 사르코지도 정치권에 다시 등장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올랑드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다. 이 정도 사생활 문제로 무너질 사람이 아니다. 사실 올랑드는 대외적으로 강력한 지도자로 통한다. 국제적인 영향력이 강한 파워피플이다. 특히 아프리카 사태에 대한 군사적 개입에선 한 치의 양보도, 주저도 없었다. 지난해 올랑드는 아프리카의 말리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병력을 파견했다.

지난해 초에는 말리에 군대를 보내 급진 이슬람 무장세력을 축출하는 데 성공했다. 반군의 수도 장악이 초읽기에 들어간 순간 말리 정부가 도움을 요청하자 당일에 곧바로 공정부대를 투입했다. 정예 프랑스 부대는 며칠 내로 반군을 멀리 사막으로 쫓아냈다. 알카에다와 관련이 있는 이슬람 반군이었다. 올랑드의 과감함은 아프리카에 믿음을 줬다.

올랑드는 정부군과 이슬람 반군 사이에 무력 충돌이 벌어진 중앙아프리카에는 치안유지 목적의 병력을 파견했다. 이 두 나라 모두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로 1960년에 독립했다. 세계의 경찰을 자임해온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의 여파와 재정위기 때문에 해외 군사개입을 꺼리는 사이 올랑드의 아프리카에서 과거의 주도권을 회복해가는 형국이다.

말리와 중앙아프리카는 가난한 아프리카 내륙국가다. 하지만, 우라늄 등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원자력발전이 주요 산업의 하나인 프랑스로서는 국익을 위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지역이다.

이 지역뿐만 아니고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는 경제적으로나 전략적으로 프랑스에 중요하다. 프랑스는 여전히 이 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 이 지역은 프랑코폰이라고 해서 프랑스어 사용자가 많은 지역이다. 과거 식민지였던 나라가 많다. 이 지역은 프랑스어 사용자가 1억명이 넘는다. 프랑스로 들어오는 불법·합법 이민자 10명 중 4명이 아프리카 출신이다.

프랑스는 이 지역에서 강력한 소프트파워를 지닌 매력국가이자 듬직한 후견국가다. 여기에 군사력이라는 하드파워까지 갖췄다. 갈수록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고 빠른 경제성장을 계속하는 아프리카에 올랑드가 눈독을 들이는 이유다. 프랑스 경제회복의 한 축으로 아프리카를 보는 것이다.



프랑스 경제회복의 지렛대로 아프리카 노려올랑드는 전임 사르코지 시절 걸프 지역과 중동에 가까운 북·동아프리카로 옮긴 군사기지를 일부 원상 복귀하는 등 아프리카에 정성을 쏟고 있다. 프랑스는 중앙아프리카와 세네갈 등 아프리카 8개국과 군사협력협정을 맺고 있다. 올랑드는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5년에 걸쳐 매년 2만명의 현지 군인을 훈련하고 장비와 군수물자를 지원할 계획이다. 군사 분야에선 미국·중국 등 경쟁국을 제치고 주도권을 확보한 셈이다.

올랑드는 아프리카에 대한 경제협력도 강화해 앞으로 5년 안에 지원과 교역 규모를 2배로 늘릴 계획이다. 2000년 10.1%에서 2011년에는 4.7%로 떨어진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 프랑스 제품의 무역비중을 다시 회복시키는 게 목적이다. 이를 통해 프랑스에 일자리 20만개가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한다.

뿐만 아니다. 올랑드는 프랑스와 인연이 강한 시리아 문제 해결에선 미국보다 더욱 강경한 매파로 나서기도 했다. 미국이 시리아 공습을 망설이자 먼저 제안하기까지 했다. 물론 시리아 공습이 막판에 흐지부지돼 프랑스의 중동 개입은 일단 보류됐다. 영국 의회에서 발목이 잡히고 미국에서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의회 설득이 여의치 않은 상태에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이 공습의 명분인 화학무기만 제거하는 방향의 중재안을 들고 나오면서 방향이 바뀐 것이다.

하지만 당시 올랑드가 보인 강력한 이미지는 유약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불식하는 데 한 몫 했다. 미국에도 든든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줬다. 프랑스 국민에게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강력하게 일을 추진하는 지도자라는 인식을 심었다. 과거 프랑스의 보호령이던 시리아와 인접한 레바논에는 프랑스 국적을 가졌거나 프랑스어 구사가 가능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시리아의 석유산업에 프랑스 기업이 투자하고 있기도 하다.

프랑스의 입김이 미치고 이익이 걸린 지역인 것이다. 이에 따라 과거 토니 블레어가 들고 나왔던 적극적인 개입주의를 올랑드가 실천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블레어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요청에 따르는 ‘푸들’식이었다면 올랑드는 자발적이고 주도적인 개입을 중시한다. 아울러 프랑스의 이익이 있는 곳에만 개입한다. 아프리카와 중동은 프랑스의 이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역이다.

올랑드는 프랑스 국내에선 경제난 회복과 국민생활 향상을 위해서라면 이념보다 실용을 중시하는 중도좌파 지도자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사실 올랑드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좌파 정당인 사회당의 이념적인 적자였다. 프랑스 제5공화국에서 좌파로서 첫 대통령이던 프랑수아 미테랑의 낙점을 받은 전도유망한 좌파 인재로 정치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2012년 대선 전후에는 강경한 좌파였다.

그는 “부자가 싫다” “부자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강제하겠다” “부자들의 부유세를 기업이 대신 내라” “긴축만이 재정 건전성 회복을 위한 유일한 길은 아니다” “자동차 기업 푸조의 감원 계획을 정부가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등 좌파 색채가 짙은 발언을 많이 했다.

하지만, 대통령에 오른 뒤로는 “경제회복이 시급하다.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해선 안 된다” “기업의 힘을 빌지 않고서는 실업률을 낮추거나 경제성장을 할 수 없다” “성장을 위해선 공급 정책이 필요하다. 공급은 다시 수요를 창출한다” “나는 사회주의자이지만 (구조개혁을 인정하는) 사회민주주의자” 등의 발언을 했다. 대통령직 수행의 원칙이 이념적 실천에서 경제 살리기, 일자리 만들기로 선회한 느낌이다.



“나는 사회민주주의자”스캔들 보도 직후인 1월 14일 올랑드는 엘리제궁에서 열린 신년 회견에서 친기업적인 경제개혁 정책을 발표했다. ‘나는 사회민주주의자’라는 말은 이 자리에서 한 것이다. 그의 사민주의자 선언은 좌파 사회주의 이념보다 구조개혁을 용인하는 중도를 추구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이날 이미 시행에 들어간 200억 유로 규모의 기업 세금 축소에 이어 기업의 사회보장 부담금 300억 유로(약 43조원)를 추가로 감면하겠다고 발표했다.

합쳐서 500억 유로 규모의 기업 부담을 경감하는 획기적인 조치를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포석이다. 올랑드는 이를 ‘책임협약’이라 일컬으며 기업이 고용을 늘려줄 것을 부탁했다. 마치 1980년대 과도한 복지와 경기침체로 ‘더치(네덜란드) 병’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얻었던 네덜란드가 1983년 노·사·정이 모여 바세나르 협약을 체결한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조치다. 당시 일하지 않는 복지 국가의 대명사였던 네덜란드는 1983년 누적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58%에 이르면서 곪았던 고름이 터졌다.

중도 우파인 루드 루버스 총리가 예산을 동결하자 대규모 노사분규가 일어났다. 그러자 루버스 총리는 자본가 측의 찰스 반빈 산업고용주연합회장과 노동자 측의 빔 코크 노조총연맹 대표를 초청해 대타협을 이뤄 바세나르 협약을 조인했다. 임금인상률을 4.6%에서 2.2%로 낮추고 근로시간을 주당 40시간에서 38시간(나중엔 36시간)으로 줄여 기업이 고용을 늘리도록 유도했다.

빔 코크는 나중에 노동당 당수가 됐고 1994년 집권해 총리를 맡아 네덜란드식 제3의 길을 추구했다. 그는 좌파 총리지만 임금인상률을 2.2%에서 1%, 나중에는 0.5%로 낮춰 기업 경쟁력을 회복시키는 정책을 폈다. 그 결과 1997~2000년 평균성장률을 4%대로 높이고, 실업률은 2000년 2.6%로 낮춰 이른바 ‘더치의 기적’을 이뤘다.

올랑드는 이런 대변화를 프랑스에서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판 제3의 길일 수도 있다. 목적은 경쟁력 회복과 일자리 창출이다. 그게 현재 15%로 바닥권인 지지율을 회복시키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좌파 이념 전사로서 장렬하게 전사하지 않고 국민도, 기업도 살고 자신의 정치적 생명도 지키는 길을 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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