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한국의 전망대 ④ 탁 트인 정상에서 즐기는 서해 일몰
Travel - 한국의 전망대 ④ 탁 트인 정상에서 즐기는 서해 일몰
북한 땅까지 선명하게 보여 … 근처까지 자동차 도로
역사 속의 국명(國名)을 이름으로 쓴 고려산은 사연의 깊이가 만만치 않다. 고구려 장수왕 때인 416년 천축국(인도)에서 온 승려가 산 중에서 다섯 가지 색깔의 연꽃이 핀 오련지를 발견하고 그걸 날려 꽃이 떨어진 곳에 다섯 절을 세웠다고 한다.
이때부터 오련산(五蓮山)으로 불렸고, 지금도 정상 북쪽에 오련지 터가 전한다. 다섯 절 중에 현재도 적련사(적석사)·백련사·청련사가 남아 있다.
정상 북쪽의 시루미산은 고구려의 풍운아 연개소문이 태어난 곳으로 전해온다. 산 밑의 들판에는 남한에서 가장 거대한 탁상식 고인돌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 시대에는 강화도의 중심지였을 것이다. 고려산 일대에 흩어진 고인돌은 130여기에 달한다.
오련산이 고려산(高麗山)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몽고군의 침입으로 고려 조정이 강화로 임시 천도하면서부터라고 한다.
강화읍 바로 곁에 있고 높이도 비슷한 개성의 송악산을 그리워하며 붙인 이름이 아닐까 싶다. 이름 그대로 멋진 낙조를 볼 수 있는 낙조봉(340m) 주변의 억새밭은 아득한 고도감을 더하고 북한 땅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최고의 전망대다. 낙조대(落照臺)는 낙조봉 남쪽 기슭 해발 290m 지점에 있는 조망대다. 바로 옆에 있는 적석사에서 관세음보살을 모신 보타전(寶陀殿)으로 조성한 것이 시초다. 석조관음상은 서해 먼 바다를 지그시 바라보며 앉아 있다. 이름은 전(殿)이지만 전각은 아니고, 지붕 없이 난간을 두른 누마루 형태다.
발밑으로는 내가저수지가 그림 같고, 그 너머로 석모도의 들판이 아득하다. 석모도 뒤로는 미법도·서검도를 징검다리처럼 두고 마침내 수평선 아득한 서해 먼 바다가 펼쳐진다. 대개 해는 이 방향으로 진다. 광활한 바다 위로 밋밋하게 햇살이 스러지는 것이 아니라 석모도 들판을 가로질러 섬과 섬 사이로 노을이 흐르면서 노을 길에는 스펙트럼 같이 단절선이 겹쳐 든다. 덕분에 한층 몽환적이고 인상적인 잔상을 남긴다.
남쪽으로는 꿈틀거리는 근육질을 드러내며 첨봉을 솟구친 혈구산(466m)이 장벽을 드리우고, 석모도 남단의 해명산(309m) 너머로는 인천공항 맞은편의 장봉도가 기다랗다.
낙조대 뒤편의 낙조봉에 오르면(낙조대에서 5~6분 소요) 북쪽 조망도 트인다. 강화도와 교동도를 연결하는 교동대교의 하얀 교각이 드러나고, 홀로 우뚝한 별립산(400m) 뒤로는 황토빛 낭자하게 헐벗은 북녘의 산하가 신음한다. 낙조대든, 낙조봉이든 산 속에서 찬란한 일몰을 보더라도 걱정이 없는 것이, 바로 아래 적석사까지 자동차 길이 나 있기 때문이다. 절 앞 찻집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한잔 차를 음미하는 것도 썩 운치 있다.
찾아가는 길 서울에서 갈 경우, 48번 국도를 따라 강화대교를 건너 강화읍으로 진입한다. 읍내를 살짝 벗어난 서문삼거리에서 좌회전, 나레현을 넘으면 오른쪽으로 고려산 줄기 끝에 높직이 자리한 적석사와 낙조대가 보인다. 고천리에서 적석사 이정표를 따라 1.9㎞ 올라가면 적석사 주차장이다. 단, 적석사 가는 길은 경사가 매우 심해서 운전에 조심해야 한다. 낙조대는 적석사에서 낙조봉 방면으로 100여m만 가면 된다. 적석사 032-932-6191(겨울에는 노면상태 사전 문의). 강화군 내가면 고천리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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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국명(國名)을 이름으로 쓴 고려산은 사연의 깊이가 만만치 않다. 고구려 장수왕 때인 416년 천축국(인도)에서 온 승려가 산 중에서 다섯 가지 색깔의 연꽃이 핀 오련지를 발견하고 그걸 날려 꽃이 떨어진 곳에 다섯 절을 세웠다고 한다.
이때부터 오련산(五蓮山)으로 불렸고, 지금도 정상 북쪽에 오련지 터가 전한다. 다섯 절 중에 현재도 적련사(적석사)·백련사·청련사가 남아 있다.
정상 북쪽의 시루미산은 고구려의 풍운아 연개소문이 태어난 곳으로 전해온다. 산 밑의 들판에는 남한에서 가장 거대한 탁상식 고인돌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 시대에는 강화도의 중심지였을 것이다. 고려산 일대에 흩어진 고인돌은 130여기에 달한다.
오련산이 고려산(高麗山)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몽고군의 침입으로 고려 조정이 강화로 임시 천도하면서부터라고 한다.
강화읍 바로 곁에 있고 높이도 비슷한 개성의 송악산을 그리워하며 붙인 이름이 아닐까 싶다. 이름 그대로 멋진 낙조를 볼 수 있는 낙조봉(340m) 주변의 억새밭은 아득한 고도감을 더하고 북한 땅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최고의 전망대다. 낙조대(落照臺)는 낙조봉 남쪽 기슭 해발 290m 지점에 있는 조망대다. 바로 옆에 있는 적석사에서 관세음보살을 모신 보타전(寶陀殿)으로 조성한 것이 시초다. 석조관음상은 서해 먼 바다를 지그시 바라보며 앉아 있다. 이름은 전(殿)이지만 전각은 아니고, 지붕 없이 난간을 두른 누마루 형태다.
발밑으로는 내가저수지가 그림 같고, 그 너머로 석모도의 들판이 아득하다. 석모도 뒤로는 미법도·서검도를 징검다리처럼 두고 마침내 수평선 아득한 서해 먼 바다가 펼쳐진다. 대개 해는 이 방향으로 진다. 광활한 바다 위로 밋밋하게 햇살이 스러지는 것이 아니라 석모도 들판을 가로질러 섬과 섬 사이로 노을이 흐르면서 노을 길에는 스펙트럼 같이 단절선이 겹쳐 든다. 덕분에 한층 몽환적이고 인상적인 잔상을 남긴다.
남쪽으로는 꿈틀거리는 근육질을 드러내며 첨봉을 솟구친 혈구산(466m)이 장벽을 드리우고, 석모도 남단의 해명산(309m) 너머로는 인천공항 맞은편의 장봉도가 기다랗다.
낙조대 뒤편의 낙조봉에 오르면(낙조대에서 5~6분 소요) 북쪽 조망도 트인다. 강화도와 교동도를 연결하는 교동대교의 하얀 교각이 드러나고, 홀로 우뚝한 별립산(400m) 뒤로는 황토빛 낭자하게 헐벗은 북녘의 산하가 신음한다. 낙조대든, 낙조봉이든 산 속에서 찬란한 일몰을 보더라도 걱정이 없는 것이, 바로 아래 적석사까지 자동차 길이 나 있기 때문이다. 절 앞 찻집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한잔 차를 음미하는 것도 썩 운치 있다.
찾아가는 길 서울에서 갈 경우, 48번 국도를 따라 강화대교를 건너 강화읍으로 진입한다. 읍내를 살짝 벗어난 서문삼거리에서 좌회전, 나레현을 넘으면 오른쪽으로 고려산 줄기 끝에 높직이 자리한 적석사와 낙조대가 보인다. 고천리에서 적석사 이정표를 따라 1.9㎞ 올라가면 적석사 주차장이다. 단, 적석사 가는 길은 경사가 매우 심해서 운전에 조심해야 한다. 낙조대는 적석사에서 낙조봉 방면으로 100여m만 가면 된다. 적석사 032-932-6191(겨울에는 노면상태 사전 문의). 강화군 내가면 고천리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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