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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파워피플[39] 할리파 빈 자예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 대통령

글로벌 파워피플[39] 할리파 빈 자예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 대통령

석유·가스 의존 줄일 ‘아부다비의 경제비전 2030’ … 팔레스타인 경제 부흥도 지원
할리파 빈 자예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 대통령.



중동의 석유 부국인 아랍에미리트(UAE)의 대통령이자 이 나라를 이루고 있는 7개 토후국(이슬람 군주인 에미르가 다스리는 세습군주국)의 중심 국가인 아부다비의 에미르(수장)인 할리파빈 자예드 알 나흐얀(66). 그는 중동의 조용한 야심가로 불린다. 아부다비는 매년 2000억 달러에 이르는 UAE 전체 석유생산량의 95%를 차지한다. 가스 생산은 6%를 차지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9%, 가스 매장량의 5%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이 나라는 인구 1인당 석유와 가스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이웃 국가인 카타르에 이어 세계 2위다. UAE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기준 추산 3900억 달러에 이른다. 1인당 GDP는 4만3185달러에 이른다. 전 세계를 뒤흔든 경제위기 속에서도 8~9%의 성장을 이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석유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았다. 2008년까지만해도 GDP의 60%가 석유와 천연가스에서 나왔다. 다른 걸프 산유국 평균인 45%와 비교해도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석유와 천연가스 말고는 대추야자와 말린 생선밖에 수출할 게 없을 정도다. 그런 상황에서 석유가 가져다 준 엄청난 달러는 국민의 진취적인 기상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석유로 번영을 구가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페르시아만 연안 국가에서 작업복을 입고 먼지 속에서 땀 흘려 일하는 현지인의 모습은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UAE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현지인들은 에어컨이 잘 나오는 사무실에 앉아 편안히 일하는 공공 부문 일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건설 등 힘든 일은 대부분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가 맡고 있다. 이 나라는 사회복지가 거의 완벽해 힘들여 일하지 않고도 상당한 수준의 생활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숙련된 지식인이 투입될 제조업 발달을 기대하기가 애초에 힘든 구조다.

사실 아무리 산유국이라고 해도 과도한 복지정책을 언제까지나 계속 펼 수는 없다. 인구는 늘고 있으며 석유는 언젠가는 고갈될 수밖에 없다. 나라 안에는 석유회사와 국부펀드 운용사, 그리고 공공 부문 말고는 별다른 일자리도 없다. 할리파가 대대적인 경제구조 개혁 드라이브를 건 이유다.

그래서 그가 2007년에 들고 나온 것이 ‘아부다비의 경제비전 2030’이다. 오는 2030년까지 아부다비를 세계적인 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한 야심찬 계획이다. 지속가능성, 인프라 수용력, 공동체 계획, 삶의 질을 향상한다는 목표 아래 나라를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국가 개조 사업이다. 경제계획 2030에는 9가지 주안점이 있다. 첫째, 민간 부문의 활성화다.

석유와 가스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이를 관리하는 정부 주위에만 경제활동이 집중되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석유에서 탈피해 새로운 미래 경제 프레임을 짜는 것이 바로 이 비전의 핵심이다.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찾아보자는 점에서 한국의 ‘창조경제’와 서로 통할 수 있다. 둘째, 지속가능한 지식기반 경제의 구축이다.

석유 의존 경제를 지식기반 경제로 업그레이드하겠다는 것이다. 셋째, 최상의 투명한 규제 환경, 넷째, 강력하고 다양한 국제관계, 다섯째, 국가 자원의 최적화, 여섯째, 최상의 교육, 보건, 그리고 인프라 자산, 일곱째, 완벽한 국제와 국내 안전, 여덟째 아부다비의 가치, 문화, 유산의 유지, 아홉째, 아랍에미리트에 대한 현저하면서도 지속적인 기여 등을 내세운다.



경제성장률 높지만 제조업 기반 허약이를 위해 할리파는 2007년 ‘아부다비 2030 도시 구조프레임 계획’을 마련했으며 ‘아부다비 도시계획위원회’를 같은 해 설립했다. ‘아부다비 2030’은 최고 지도자인 할리파가 아부다비를 글로벌 도시로 만들라는 선친 셰이크 자예드 빈 술탄 알나흐얀의 유지를 받들어 마련한 것이다. 그야말로 국가 최고 지도자의 의지가 실린 계획이다. 할리파는 ‘아부다비 2030’과 ‘경제비전 2030’의 책임자로 이복동생이자 왕세제인 모하메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53)을 임명했다. 자신의 후계자에게 일을 맡겨 프로젝트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바그 그 모하메드 왕세제가 2월 말 네 번째로 한국을 찾았다. 그는 2월27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면담하고 공식만찬에 참석했다. 두 사람은 이날 원전·에너지·건설·국방·보건 등 분야를 막론하고 확대 추세에 있는 양국 간의 협력 현황을 점검했다.

이 자리에선 한국의 창조경제와 아부다비의 ‘경제비전 2030’을 서로 연계해 양국 간 동반성장 위한 실질 협력 증진 방안도 협의했다. ‘경제비전 2030’이 한국과 손을 잡게 된 것이다. 사실 할리파가 대한민국의 해외 수주 역사상 최고 액수(명목가치 기준)인 400억 달러짜리 원자력 발전소 건설과 공동운영권을 발주한 것도 경제비전 2030 실천의 일환이다.

할리파는 조용한 성격 때문에 국제무대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여러 가지 파격적인 발상과 추진력, 그리고 기부로 중동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두바이의 지도자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막툼이 차입금을 바탕으로 부동산을 대대적으로 개발해 경제개발을 이끌었다면, 할리파는 더욱 보수적이고 실용적이며 차분한 개발을 추구한다.

그는 중동에서 가장 많은 돈을 가진 지도자로 통한다. 세계 최대 규모 국부펀드를 운용하는 아부다비투자청(ADIA)의 관리를 오랫동안 맡아왔다. ADIA는 자산 규모를 밝힌 적이 없지만 국제 경제계에서는 3000억~8750억 달러 정도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1976년부터 아랍에미리트 최고석유위원회 위원장도 맡아 석유로 번 돈을 UAE를 구성하는 7개 토후국에 분배하는 일을 해왔다.

그는 UAE 대통령 취임 초인 2005년 4월, 전국의 공무원 급료를 한꺼번에 15~25% 올려주는 선심을 쓰기도 했다.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에 심장병과 중환자동 건물을 짓는데 거액을 기부했다. 이 건물에는 자신의 선친인 셰이크 자예드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그런 돈을 국가 개혁에 사용하겠다는 게 그의 의지다. UAE 전체를 위해서도 쓰겠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군주를 맡고 있는 아부다비에 투자를 집중해왔다.

친환경 신도시인 마스다르 시티의 태양광 공개경쟁시험장.





친환경 미래도시에 큰 관심그는 석유 부국인데도 친환경 미래도시에 관심이 많다. 친환경 에코 시티라는 확실한 개념을 가지고 건설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할리파는 싱가포르·뉴질랜드·노르웨이를 벤치마킹 했다. 쾌적하고 친환경적인 도시를 건설한 작은 나라들이다. 이를 바탕으로 화석에너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신도시인 ‘마스다르 시티’를 2015년 완공을 목표로 아부다비시 인근에 건설하고 있다. 마스다르는 아랍어로 자원을 뜻한다.

인구 5만 명 규모가 될 이 소도시는 석유를 비롯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에너지를 전혀 이용하지 않고 태양열 전지 등 친환경 에너지만을 이용해 100% 전기를 생산하게 된다. 석유를 사용하는 자동차의 운행도 허용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쓰레기 배출이 없는 시스템을 운영한다.

‘지속가능형 개발도시’라는 별명을 가진 마스다르 시티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이산화탄소 제로, 쓰레기 제로’의 도시로 건설된다. 장기적으로는 이 도시를 건설하면서 전 세계의 경쟁력 있는 그린 기술을 개발하거나 들여와 아부다비를 하이테크 도시로 만들겠다는 의도다. 이런 미래 환경도시를 중동 사막에 세우겠다는 생각을 서구의 환경 운동가가 아닌, 전통적인 생활 방식에 익숙한 중동의 지도자인 할리파가 해낸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세계자연보호기금(WWF)과 협약을 맺고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인재가 부족하면 전 세계에서 아웃소싱 하는 것은 두바이와 닮았다. 아부다비는 마스다르 시티에 국제기구인 ‘국제 재생 가능 에너지 기구(IRENA)’의 본부를 유치했다. 이 과정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를 비롯한 전 세계 주요 인사들의 지원을 받았다. 아부다비는 마스다르 시티를 앞으로 전 세계 신에너지 허브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바탕으로 2030년까지 아부다비를 국제적인 친환경 비즈니스 허브로 키울 계획이다. 할리파가 중동에서 처음으로 상업용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려는 계획도 이런 그린 비즈니스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석유로 번 돈으로 그린 테크놀로지와 그린 시티 개발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포브스 선정 세계 왕족 재산 순위 2위할리파는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기술까지 이전받아 세계적인 원자력 강국에 올라서는 꿈도 꾸고 있다. 발주 조건에 기술이전이 필수적으로 포함된 이유다. 할리파는 첨단기술 확보에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아부다비 국부펀드의 하나인 무바달라는 세계적인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인 GE와 공동으로 아부다비에 80억 달러 규모의 합자법인을 세웠다.

할리파는 그린과 에너지 기술뿐 아니라 심지어 반도체를 비롯한 다양한 고부가 하이테크 확보에도 주력하고 있다. 무바달라 펀드를 앞세워 에어버스를 만드는 EADS와 계약을 하고 일부 항공기 부품을 아부다비에서 제조하기로 했다. 아부다비의 젊은 기술자 손으로 항공기 부품을 개발하고 제조하게 된 것이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이탈리아와 스위스 항공업체들에 대한 지분 투자에도 나서고 있다.

무바달라는 설립 목적부터 독특하다. 벤처 투자, 인수합병 등을 통해 아부다비 경제를 다양화하도록 지원하는 게 목적이다. 할리파가 UAE와 아부다비를 앞으로 어떤 나라로 만들려는지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오일달러로 최첨단 기술을 확보해 단숨에 고부가 하이테크 산업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분원을 유치해 아부다비를 중동의 문화 중심지로 만드는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그가 석유가 아닌 새로운 산업 확보를 위해 팔을 걷고 나선 이유는 지도자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미래 포석이다. 하지만 할리파는 1971년 독립하면서 UAE의 초대 대통령을 맡은 부친 셰이크 자예드 빈 술탄 알나흐얀의 충고를 새기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 아부다비는 원래 진주 조개잡이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이 지역의 전통산업이자 국부의 바탕이 진주조개였다. 오스만 튀르크와 서구가 이 나라의 진주에 눈독을 들였다. 그래서 19세기 말 이후 제법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1차대전이 끝나고 1020년대 세계대공황이 오면서 주요 고객인 서구의 중산층의 몰락해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그 이후 일부 회복되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일본 미키모토의 양식진주가 나오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다행히 1960년대 석유 개발로 이 나라는 ‘검은 황금의 해안’이 됐지만 진주조개잡이 몰락의 기억은 알나흐얀 집안의 큰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이렇게 쓰라린 교훈이 있기에 이 지역에는 ‘미래에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몰락한다’는 격언이 있다고 한다.

할리파는 재산 230억 달러로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왕족 재산 순위 2위다. 중동 사막지대에서 전통적인 부의 상징인 낙타도 1만4000마리 보유하고 있다. 그는 중동에서 기부천사로 알려졌다. 팔레스타인 자치구인 가자지구에 신도시인 셰이크 할리파 시티를 건설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경제적인 부흥을 지원해 이 지역에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기대에서다. 할리파의 프로젝트 덕에 대부분 실업자인 현지 젊은이들이 건설 분야 등에서 일자리를 얻고 있다. 친미 지도자로 분류되는 할리파가 팔레스타인에서 헤즈볼라 지도자에 이어 인기 2위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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