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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운 개발 잔혹사 - 황금알 낳는 거위에서 미운 오리새끼로

뉴타운 개발 잔혹사 - 황금알 낳는 거위에서 미운 오리새끼로

개발 무산, 사업비 급증으로 손실 눈덩이 … ‘뉴타운 푸어’도 속출
사업성이 떨어져 조합원과 조합장 사이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는 왕십리 뉴타운.



‘서울 이문·휘경 뉴타운은 곳곳에 경축 플래카드가 내걸리고 순식간에 매물이 소화되는 등 개발 기대감이 크다. 인근 이레부동산 관계자는 “발표 후 하루에 50통 정도의 전화 문의를 받고 있다”며 “2003년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평당 300만원하던 20평짜리 단독주택이 850만원으로 급등했다”고 전했다.’

2005년 9월 한 경제지가 뉴타운 지정을 받은 지역을 취재한 기사 내용 중 일부다. 애초 뉴타운은 강남과 같은 주거환경을 비강남 지역에도 조성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쉽게 이야기하면 정치인과 관료들이 비강남 거주자들에게 “당신들도 강남과 같은 환경에서 거주할 수 있고, 부동산 시세차익도 거둘 수 있다”고 당근을 던진 것이다. 이런 당근은 서울 강북은 물론 수도권까지 번졌다. 하지만 환호성은 오래가지 않았다.



서울·경기도 뉴타운에서 크고 작은 분쟁 잇따라최근 서울과 경기도 뉴타운 곳곳에서 크고 작은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과거 도시정비 사업의 분쟁은 조합장과 그에 반대해 사업을 주도하려는 이들 간 다툼이 대부분이었다. 그들만의 리그인 셈.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양상이 달라졌다. 치솟는 사업비로 ‘뉴타운 푸어’로 전락한 원주민과 과도하게 투자한 투자자들이 사업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1월 2일 새해 벽두부터 서울 성동구청 바로 옆 성동교육지원청에는 한 남성이 11시간 동안 고공 농성을 벌였다. 왕십리뉴타운 2구역 조합의 새 조합장을 선임해 달라는 게 이유다. 조합 내부 권력 다툼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뉴타운 사업의 실체를 엿볼 수 있다. 사업 초기 왕십리2구역의 비례율(개발이익률)은 110%다. 내가 가진 자산이 100이라면 10%의 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전용면적 59㎡의 주택을 소유했다면 59㎡의 새 아파트를 받고 그 아파트 가격의 10%에 달하는 현금까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수 차례 사업 계획을 조정하면서 비례율은 70%대로 떨어졌다. 조합원 1인당 추가로 내놔야 할 분담금은 평균 1억3000만원이다. 59㎡의 자산을 가지고 84㎡ 아파트를 신청한 사람이거나 기존에 보유하던 자산에 은행대출이 물려 있다면 수 억원을 토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조합원이 내놓은 아파트를 시장에 내놔도 제값에 팔릴 일이 만무했다. 조합원들은 모임을 만들어 사업비 인상을 시도하는 조합총회를 두 차례 무산 시켰다. 또 조합장 해임을 추진하는 등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일부에선 주택시장 침체가 불러온 일반적인 사례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이것은 껍질에 불과하다. 2005년 사업 초기 왕십리2구역의 총사업비는 2680억원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5203억원으로 늘었다. 조합 측은 10년 새 물가상승분 등이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이는 과도하다. 그 근거는 건설사의 아파트 시공비다. 왕십리2구역의 공사비는 초기 2217억원에서 올해 기준으로 17% 늘어나는데 그쳤다.

하지만 기타사업비는 464억원에서 2620억원으로 급증했다. 그 많은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서울시도 구청도, 조합도, 건설사도 명쾌하게 답을 못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조합원이 조합장을 해임하자, 조합장이 각종 문서를 모두 파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뉴타운을 둘러싼 갈등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올해 입주 또는 분양을 하는 서대문과 영등포, 강서, 동대문 등 서울지역 뉴타운 사업장에서 유사한 갈등이 벌어졌고, 답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1990년대 초중반 강남북 간 주택 가격 차이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양상이 달라졌다. 아파트를 짓던 건설사들은 줄줄이 망했고, 아파트 공사현장은 멈춰 섰다. 그 사이 강북지역에서는 노후지역을 중심으로 빌라와 다세대, 단독주택이 꾸준히 공급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주택을 짓는 이들로부터 사업성과 규제 논란이 제기됐다.

대표적인 예가 주택 신축지에 조성할 주차장 면적이다. 건축주 입장에서 주차장 면적을 줄여 한 칸이라도 방을 더 만들어야 임대 또는 분양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정부는 어려운 경기 여건에서 저렴한 주택을 공급해야 했다. 결국 주차장 관련 규제를 완화했다. 문제는 곧 발생했다.

차량 보급이 늘어나면서 주차장 없는 주택이 증가했고, 주택 골목마다 차량이 넘쳐났다. 구급차나 소방차가 현장에 진입하지 못했고, 사회문제로 이어졌다. 양적 성장을 위한 규제 완화가 오히려 서민층 주거환경을 악화시킨 것이다. 반대로 주차장이 넉넉하고 교육·교통·치안 여건이 좋은 강남 아파트 값은 꾸준히 올랐다. 비강남권과 아파트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들은 지역 정치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 때 등장한 것이 뉴타운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재개발이나 재건축 지역 지분 매입은 내 집 마련의 대표적인 방식 중 하나였다. 당시 청약경쟁률은 수 십대 1을 기록할 때라 청약가점이 낮은 사람들은 신규 분양을 받기 어려웠다. 이들은 재개발이나 재건축 지분을 매입하면 분양권을 받을 수 있고, 일반분양보다 싼 가격에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자가 보유자라고 해도 1가구 다주택 규제도 피할 수 있었다. 전국 곳곳에서 재개발 지역과 재건축 단지 조합원들이 새 아파트를 받고 현금청산까지 수천 만원을 받는 등 불로소득을 얻으려고 너나 할 것 없이 재개발과 재건축을 이야기 할 때였다.

이런 가운데 뉴타운 개발이 제기된다. 뉴타운은 재개발과 재건축을 한데 묶고 사업 속도를 빠르게 하는 조건으로 시작됐다. 상업과 교육, 녹지 등을 조성할 수도 있었다. 과거에도 합동재개발이라는 형식으로 재개발과 재건축을 혼합한 도시정비사업은 있었다. 뉴타운이 등장하면서 서울 시내 전역에서 전면 재개발 사업은 반드시 거쳐야 할 수순으로 꼽혔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시절인 2002년 뉴타운이 추진되면서 은평·길음·왕십리 등 34개 구역을 처음으로 지정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2006년 지방선거에서 뉴타운 추가 건설을 내세웠고, 민주당도 이에 가세하면서 뉴타운 공약은 붕어빵처럼 찍혀 나왔다. 기초자치단체는 앞다퉈 뉴타운지구지역를 지정했고, 해당 지역은 물론 인근지역까지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중대형 많은 강북 뉴타운 부동산 침체 직격탄천하를 평정할 것 같은 뉴타운이 급제동이 걸린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다. 글로벌 경제위기는 부동산 시장에 큰 타격을 줬다. 전국 각지에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났고, 주택 중심 건설사들은 워크아웃과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강남권 일부 아파트도 최고점일 때보다 절반 가까이 시세가 떨어졌다. 하지만 비강남권 뉴타운 아파트의 분양가는 강남과 별 차이가 없었다. 각종 투기로 토지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뉴타운 아파트가 대부분 전용면적 85㎡를 초과하는 중대형이라는 것도 문제가 됐다. 시장이 침체되면서 사람들은 실수요층이 두텁고 거래량이 많은 전용면적 84㎡ 이하 물량에만 몰렸다. 서울 시내 전역에는 중대형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났다. 시세 차익을 기대한 뉴타운 조합원들은 자산가치 하락으로 불안에 떨었다. 여기에 미분양 아파트에 대한 판매 지연은 금융비용 증가로 이어졌다. 이는 조합원 부담으로 이어지면서 추가로 분담할 금액은 점점 늘었다.

급기야 중대형 아파트를 중소형으로 설계변경 했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길음과 흑석, 가재울 등 일부 뉴타운 지역에서는 입주가 시작됐지만 과거와 같이 웃돈(프리미엄)이 수 억원이나 오고 가는 일은 없었다. 초기 분양가에 되팔거나 초기 분양가의 10%만 웃돈을 받아도 다행이다. 이 마저도 각종 세금과 수수료를 제하면 손해 보는 장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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