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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행수입 가로막는 숨은 적은 - 화장품 들여오는데 수입업자 정신 감정?

병행수입 가로막는 숨은 적은 - 화장품 들여오는데 수입업자 정신 감정?

지난해 11월 경기도 용인시 이마트 트레이더스 구성점에서 ‘캐나다 구스’ 패딩을 시중가보다 20~30% 싸게 팔았다.



명품 브랜드 페라가모의 소피아 백은 국내 백화점에서 230만원대, 병행수입 상품은 이보다 30% 싼 170만원대에 팔린다. 미국 프리미엄 유모차인 오르빗 ‘G2’의 국내 공식 판매가는 125만원이지만 병행수입 최저가는 40% 싼 70만원대다. 이처럼 국내 독점 판매권을 가진 수입업체와 병행수입 업체의 제품 간 판매 가격이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60%까지 차이가 난다.

병행수입은 독점 수입권자가 아닌 제3자가 다른 유통경로를 통해 외국 상품을 수입하는 것을 말한다. 본사 제품을 수입해오는 게 아니라 현지 아울렛이나 별도 유통 채널에서 제품을 비교적 싸게 들여오다 보니 구매 단가를 낮출 수 있다. 여기에 마케팅 비용이 줄고 임대료 등 부동산 비용을 내지 않는 온라인 몰 중심으로 제품을 파니 백화점 제품보다 가격이 싸게 마련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개인사업자들은 미국의 아울렛에서 코트나 가방을 70~80% 세일할 때 제품을 구입해 들여오는 경우가 있지만 대형업체들은 수입업자와 계약해 제품을 들여온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서도 같은 제품이 판매되고 있는데 이때 싼 가격으로 제품을 들여오는 게 병행수입의 매력”이라며 “해외 직접 구매만큼이나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어 소비자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덧붙였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병행수입 규모는 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국내 전체 수입물품 시장의 10%에 못 미치는 수치다. 국내 병행수입은 1995년 11월 정부가 공산품 가격을 내리기 위해 법으로 허용하면서 시작됐다. 개인사업자들이 주도하던 병행수입은 2005년 이후 백화점·할인점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뛰어들면서 시장을 한 단계 성장시켰다.

정부는 병행수입을 물가안정 정책의 일환으로 활용하기 위해 정식 통관 물품으로 인증하는 병행수입 물품 통관 인증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의 활성화 의지에도 여전히 독점 수입업체의 반발과 까다로운 절차 등으로 활성화 단계에 이르진 못했다.

일례로 화장품을 병행수입 하려면 대표가 정신 감정까지 받아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화장품이 잘못 유통되면 얼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제조업자에게 적용하는 규제를 병행수입 업자에게까지 그대로 적용한 때문이다. 통관 절차는 더 까다롭다. 독점 수입업체가 짝퉁(위조 상품), 불량이라며 문제 삼으면 관세청은 병행수입 업체 물품의 통관을 보류한다.



지난해 국내 병행수입 규모 2조원국내에 제품이 들어오면 해외에서 이미 거친 KC검사(품질안전검사)를 다시 진행한다. KC검사는 정부에서 규정한 품질 테스트다. 자동차·가전제품·유모차·승강기 등 일반 공산품 모두 시행한다.

이런 품질테스트를 거친 합격 상품에 대해 KC인증마크를 붙일 수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만약 100개의 샤넬 가방을 수입해오면 샤넬코리아와 관세청에 물품 통관 검사를 받아야 한다”며 “어떤 때는 제품 가격보다 검사비용이 더 많이 들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검사비용 탓에 수입 단가가 오르는 것이다. 윤철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팀장은 “병행수입 업자는 대부분 종업원 5인 이하에 매출 1~2억원의 영세사업자여서 경영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병행수입 시장을 더욱 활성화 하려면 병행수입 절차와 통관 방식을 간소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제품을 수입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과거 병행수입 사업에 뛰어든 일부 대형마트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매장을 철수한 것 역시 충분한 물량 확보를 하지 못한 때문에서다.

본사나 한국 지사가 백화점에서 운영하는 매장보다 제품 구성이 열악해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다. 지난해 병행수입으로 6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이마트도 올 들어선 수입한 제품이 아직 없다.

이렇다 보니 국내 병행수입 시장은 일본과 자주 비교된다. 일본 내 전체 수입물량 중 병행수입 비중은 약 40%에 달한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소비자와 병행수입 업자 친화적이다. 예를 들면 핸드백이나 시계의 경우 원산지 표시를 강제하지 않는다. 독점 수입업자의 횡포에 맞서고 병행수입 시장을 더 늘리려는 노력도 활발하다.

1998년 병행수입 업체 100여 곳이 모여 ‘일본유통자주관리협회(AACD)’라는 단체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일본은 병행수입 업체가 공동으로 ‘진품 관리’를 하고 별개의 유통망을 갖추는 등의 노력으로 시장을 활성화시켰다. 이와 달리 국내 병행수입협회는 지난해 10월에서야 출범했다. 현재 15개 업체만이 참여하고 있다.



교환이나 환불 여전히 미흡정부도 병행수입을 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3월 말 병행수입의 통관절차와 허가 기준을 완화하는 병행수입 활성화 세부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정석 기획재정부 사무관은 “화장품이나 가방 등 수입 품목 가격을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병행업체들의 통관 입증 대상을 확대하는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입 제품의 현지 가격을 알게 되면 국내 업체끼리도 자연스럽게 가격 경쟁을 유도할 수 있어 병행수입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병행수입 상품의 그늘도 있다. 부실한 애프터서비스(AS) 문제다. 정품처럼 반품이나 교환이 가능한 곳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윤철한 팀장은 “골프용품이나 전자제품의 경우 AS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업체들은 그렇지 않다”며 “소비자 입장에선 사후 관리 시스템이 개선되면 병행수입 제품을 더욱 많이 살 것”이라고 말했다.

병행수입에 대한 소비자 불만조사를 살펴보면 ‘위조상품이거나(26%)’ ‘품질이 낮아 보여(21%)’ 걱정된다는 답변이 많다. 정부는 이런 우려를 없애기 위해 지난해 5월부터 병행수입 물품에 통관표지를 붙이는 ‘병행수입물품 통관인증제’를 도입했다. QR(Quick Response)코드 방식의 통관표지에 해당 물품의 통관정보를 수록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매장에서 스마트폰으로 품명·상표·수입자 등 통관정보를 즉시 확인할 수 있어 위조 걱정을 덜 수 있다. 박희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병행수입 사업의 경쟁력은 진품의 저렴한 가격과 제품의 다양화”라며 “향후 제품 수급 문제까지 해결돼 전체 시장이 커진다면 일본처럼 병행수입이 제대로 정착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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