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NEUNG | 강릉의 신흥부촌 교동 - ‘커피 향’에 관광객 늘고 ‘평창’ 덕에 집값 뛴다
GANGNEUNG | 강릉의 신흥부촌 교동 - ‘커피 향’에 관광객 늘고 ‘평창’ 덕에 집값 뛴다
“이 많은 커피전문점의 맛과 향이 모두 다르다니 언제 다 맛보고 가나.” 3월 13일 저녁 강릉시 견소동 안목항 커피거리에서 만난 중년 여성들은 탄성을 질렀다. 친구와 함께 왔다는 홍모(48) 씨는 “말로만 듣던 안목항 커피거리를 보려고 서울에서 3시간을 달려 왔다”며 “바람과 파도가 있어 커피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라고 했다. 해가 지면서 바람이 거세졌지만 해안도로엔 연신 차가 들어섰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잠시 바닷바람을 쐬고는 총총히 커피점으로 들어갔다.
강릉이 변했다. 경포대, 신사임당과 오죽헌 정도로 기억되던 강릉에 ‘커피의 성지’라는 브랜드가 추가됐다. 횟집보다 커피점이 더 많은 안목항이 중심지다. 1980년대 중반만해도 변변한 상가 하나 없던 이곳은 커피를 만나 강릉의 새명소가 됐다. 2002년 커피커퍼가 처음 생긴 후 카루소, 이탈리코, 산토리니, 씨엘, 엘빈 등 이름도 건물 모양도 다양한 커피점이 늘었다. 스타벅스, 카페베네, 엔제리너스, 네스카페, 할리스커피 등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도 눈에 띈다. 커피점마다 개성도 뚜렷해 산토리니는 핸드드립 커피로 유명하고 엘빈은 다양한 디저트로 이름을 알렸다. 이날도 30여 개의 커피점이 불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한국은행 강릉본부가 발표한 ‘커피시장 현황 및 강원지역 커피산업 발전방안’ 보고서를 보면 강릉지역의 커피점은 2012년 말 265개로 최근 4년간 연평균 60% 증가했다. 강릉의 대표적인 자영업종인 횟집 수에 근접한 수치다. 풍광이 수려한 안목항(현 강릉항), 해돋이 명소 정동진, 경포대 등에 형성된 카페촌을 바탕으로 커피 도시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커피, 강릉의 오랜 잠을 깨우다최근 몇 년 새 강릉을 찾는 관광객은 꾸준히 주는 추세였다. 한때 연 1500만 명 관광객을 유치했던 강릉은 10년새 260만 명이나 급감했다. 강릉지역에선 이를 타개할 수 있는 관광상품 브랜드로 커피를 꼽고 있다. 국내 커피계의 전설로 불리는 바리스타의 카페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커피농장과 커피박물관, 커피공장까지 이 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 강릉커피축제가 열리고, 대학 등을 통해 강릉에서만 한 해 5000명의 바리스타가 태어난다. ‘커피의 성지’가 과장된 말이 아니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현재 강원지역의 커피 가공업체 수는 전년 말보다 14개 증가한 44개에 이른다. 특히 강릉은 2011년 5개에서 2012년 12개로 급격히 늘었고, 지난해도 10월말까지 4개 업체가 신설됐다.
한국은행 측은 “강릉시의 성공적인 커피 도시 브랜드 정책은 관광객 증가 등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뿐만 아니라 커피산업 발전에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커피 관련 산업이 강릉의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행객이 증가하자 주변에는 숙박업소와 식당도 덩달아 늘고 있다. 퇴락하던 남문동 구도심도 카페와 소극장이 문을 열면서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초 나흘간 열린 제5회 강릉커피축제에는 30만 명이 다녀갔다. 강릉시 공보담당관실의 안정철 계장은 “커피가 강릉 지역경제를 살리는 활력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강릉의 커피산업 활성화는 커피 부자 세 명의 영향이 크다. 커피 마니아의 성지로 불리는 커피점 ‘보헤미안’을 연 커피 명인 박이추 씨, 커피공장을 차린 김용덕 테라로사 사장, 커피박물관을 운영하는 최금정 커피커퍼 대표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커피를 기반으로 재산을 늘린 강릉의 신흥부자이기도 하다. 안 계장은 “지난 5년간 커피축제에 강릉을 찾은 관광객이 100만 명을 넘는다”며 “선구자 몇 분이 길을 뚫은 덕에 여름 휴가철 반짝 장사에 만 목을 매던 지역사회 전체가 또 다른 블루오션을 찾게 됐다”고 했다.
이렇다 할 산업이 없는 강릉에서는 의사와 함께 커피점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신흥부자로 꼽힌다. 강릉엔 제조업체라고 해봐야 옥계 쪽에 라파즈한라시멘트 정도다. 큰 산업이 없어 신흥부자가 생기기 힘든 구조다보니 커피산업이 각광받는다. 김상철 하나대투증권 강릉지점장은 “부산이나 울산, 대구 부자들 대부분이 지역 주력산업의 1·2차 밴딩(협력회사) 오너나 임원들인데 이곳은 대기업이나 제조업체가 전무하다”고 말했다. “강릉 부자는 조상에게 물려받은 유산을 유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물려받은 재산을 기반으로 임대업이나 자영업 등을 통해 다시 부를 키우고 있다.”
김 지점장의 말처럼 커피거리 일대 주변 상권이 형성되면서 부동산 소유주들의 재산은 크게 늘었다. 국토교통부의 부동산 공시가격 알리미를 보면 안목항 중심지는 1990년 3.3㎡(1평)당 30만원이었으나 2000년에는 108만원으로 올랐다. 커피거리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2006년부터는 363만원으로 가격이 급등했다. 2013년 기준 이곳의 공시지가는 3.3㎡당 최고 528만원으로, 20년 사이에 최고 16배까지 올랐다. 실거래가는 공시지가보다 더 높은 가격대로 형성돼 있다.
동계올림픽 앞두고 부동산 들썩커피가 강릉 관광산업 부활의 신호탄 격이라면 평창 동계올림픽은 강릉 지역 최대의 개발 호재다. 특히 수혜지역으로 꼽히는 교동택지지구에 중산층이 몰리면서 신흥 부촌을 형성하고 있다. 강릉 내 유일한 택지지구로 강릉IC와 7번, 35번 국도가 가깝고 강릉의 명문 학군인 율곡초등학교와 관동중학교가 있어 동해·삼척시에서 이주해 오기도 한다. 강릉 주민 사이에서는 ‘택지에 산다’는 말이 부의 상징이 될 정도다. 2017년 개통 예정인 KTX 강릉역이 가깝고, 평창 동계올림픽 빙상경기가 펼쳐질 경기장이 차로 10분 이내 거리에 있다.
3월 13일 점심 무렵에 찾은 교동 택지지구는 넓은 도로와 줄지어 선 아파트가 경기도의 신도시와 어딘지 닮아 있었다. 교동 아파트의 매매가격은 3.3㎡ 당 2012년 1분기 472만원에서 2013년 1분기 495만원으로 올랐고 올해 2월말 515만원으로 시세가 형성돼 있다. 홍제동(495만원), 견소동(450만원)에 비해 비싸다. 특히 2009년 입주한 교동 롯데캐슬 111㎡(33평)가 2억4000만원, 195㎡(59평)가 3억8000만원으로 가장 비싸다.
교동 현대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이후 주거 선호도가 높아져 매매나 전세 물건이 거의 없고 일부 단지의 경우 전세비율이 90%를 넘는다”며 “토지거래 제한구역으로 묶인 평창과 달리 강릉은 개발과 거래가 가능하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곳은 2009년 이후 신규택지 공급이 없다. 이 때문에 교동택지지구와 길(동해대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유천택지지구가 새 투자처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부지조성 공사를 마친 상태. 지난해 11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분양한 단독주택지 62필지에는 1559명이 몰려 평균 25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개인 사정으로 계약을 포기한 1필지가 재분양에 부쳐지자 645명이 몰렸고, 분양 현장에서 웃돈 1억7000만~1억8000만원이 붙는 진풍경까지 펼쳐졌을 정도다.
이곳에는 일반 아파트와 함께 동계올림픽 올림픽선수촌과 미디어촌이 들어설 예정이다. 강릉지역 부동산업계에서는 이곳이 서울의 아시아선수촌 아파트와 올림픽선수기자촌 아파트처럼 지역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16년 3월 입주 예정인 우미린 아파트를 분양대행하고 있는 삼일산업의 정환식 이사는 “강릉지역은 큰 평수의 인기가 높다”며 “기존 아파트와 차별성을 두기 위해 강릉 최초로 4베이(Bay) 구조를 적용했다”고 말했다.
교통 호재 등으로 강릉지역 부동산시장은 계속해서 상승세를 탈 것이란 분석이 많다. 2017년 원주와 강릉을 잇는 KTX가 개통되면 서울~강릉 이동시간이 1시간대로 줄어든다. 최근 강릉시는 400억원을 들여 KTX의 시내 구간을 지하화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따라 역 위치가 확정되면 토지거래 시장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서울과 원주를 연결하는 제2영동고속도로와 서울과 양양을 잇는 동서고속도로도 2016년 개통돼 서울·수도권 접근성이 크게 향상된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은 “강원도 중에서도 특히 KTX 개통을 앞둔 강릉의 개발 재료가 무궁무진하다”며 “사실상 수도권 지역으로 편입되는 셈이어서 인프라 확장에 따른 장기적인 수혜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리조트와 호텔 등 관광업계의 개발사업도 한창이다. 2012년 7월 강릉 경포해변 옆에 들어선 라카이샌드파인은 동해안 최고의 럭셔리 리조트로 평가받는다. 5만5734㎡ 부지에 10층 규모의 콘도 5개동과 리셉션동, 야외 테마가든 그리고 1000석 규모의 컨벤션을 갖추고 있다. 또 호텔급 피트니스센터와 회원전용 라운지를 운영하며 야외 풀과 산책로, 사우나, 연회장 등 최고급 부대시설을 자랑한다.
리조트의 최훈 상무는 “경포해변에 고품격의 리조트가 개장함으로써 여름철 숙박난 해소와 가족단위 체류형 관광객 증가는 물론이고 지역경기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기간에도 라카이 리셉션동과 컨벤션동은 크고 작은 행사를 열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현대중공업이 운영하는 호텔현대경포대도 한창 리모델링 중이다. 지난해 5월 철거에 들어간 호텔현대경포대는 내년 5월께 지하 4층~지상 15층 건물에 160여 개의 객실과 컨벤션센터, 야외 공연장 등을 갖춘 최고급 호텔로 문을 열 예정이다. 1971년 건립된 호텔현대경포대는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가 큰 애착을 가졌던 곳으로 매년 신입 사원 수련회를 이곳에서 열었다.
프라에 얹힐 콘텐트 개발 절실그러나 인프라 구축과 함께 콘텐트 개발도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권은희 하나대투증권 강릉지점 차장은 “강릉시에서 커피축제 등을 통해 커피를 지역브랜드화하고 있지만 가시적인 경제효과는 뚜렷하지 않다”고 말했다. “강릉시 자료를 보면 커피축제 기간 동안 경제적 파급효과는 생산유발 132억원, 소득유발 29억원, 고용유발 273명 수준으로 그리 크지 않다. 지역 내에 커피제조공장이 있지만 아직은 소규모라 아쉽다. 매출과 고용창출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지역사회에서 모색해야 한다.”
한국은행 역시 보고서에서 지역 커피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해 선제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고급 원두확보와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커피가공업을 특화하는 등 품질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커피도시 브랜딩 및 올림픽 마케팅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커피가공업을 지역특화산업으로 지정하고, 지역 커피기업과 대학·연구소 등의 컨소시엄을 통해 다양한 육성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활용한 러시아인 의료관광객 유치도 시급한 과제다. 강릉시가 지난해 내놓은 의료관광상품 ‘힐링 코리아 강릉’엔 모두 4차례에 걸쳐 150명의 러시아인 관광객이 다녀갔다. 이들은 목요일 동해안∼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해운항로를 통해 동해항으로 입국한 뒤 강릉 아산병원의 건강검진에 이어 커피박물관 체험 등 지역 관광을 마친 뒤 일요일 출항했다. 동계올림픽 개최에 발맞춰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의료관광 활성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양양공항 활성화도 늘 오르는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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