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 2연임 닻 올린 한동우-취임 3년째 맞은 김정태의 과제
Issue | 2연임 닻 올린 한동우-취임 3년째 맞은 김정태의 과제
우리금융그룹이 본격적인 해체 수순에 들어가면서 금융권 순위 싸움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NH농협금융지주가 4위로 올라서고 3강인 신한·KB·하나가 선두를 노리는 구도다. 세 곳 모두 자산이 300조원 안팎으로 비슷하다. 특히 공통점이 많은 신한금융그룹과 하나금융그룹은 본격적인 라이벌전에 돌입했다. 두 회사는 은행권 후발주자로 시작해 대형은행을 잇따라 인수하며 덩치를 키웠다. 공기업 성격인 국민·주택은행을 모태로 한 KB금융과 다른 점이다.
1977년 문을 연 제일투자금융에서 출발한 신한금융은 1980년대 신한은행과 신한증권을 설립하고, 2001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2003년 조흥은행을 인수한 뒤 2006년 합병했고, 다음해 LG카드까지 인수하면서 영역을 넓혔다. 하나금융은 1971년 국내 최초의 비은행 금융회사인 한국투자금융이 출발점이다. 한국투자금융은 1991년 하나은행으로 전환한 뒤 보람은행·서울은행 등을 인수하며 국내 대표 시중은행 중 하나로 성장했다. 2012년에는 우여곡절 끝에 외환은행 인수에 성공하면서 단숨에 2위권 금융지주회사로 발돋움했다.
실적은 신한금융의 한판승모태가 단자사라는 점, 적극적인 인수·합병(M&A)으로 업계의 판도를 바꿔온 점, 소매 금융보다는 기업 금융에 강한 점뿐만아니라 회사를 이끄는 수장의 면면도 비슷한 점이 많다. 한동우(66) 신한금융그룹 회장과 김정태(62)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둘다 부산 출신이다. 각각 지역 라이벌인 부산고와 경남고 출신인 점도 흥미롭다. 오랜 2인자 시절을 보낸 것 역시 닮았다.
두 회사는 불과 3~4년 전까지 라응찬(76)과 김승유(72)라는 거물 CEO가 버티고 있었다. ‘신한=라응찬’ ‘하나=김승유’라는 등식이 성립할 정도로 두 사람의 파워는 막강했다. 한 회장은 라응찬 전 회장 재임 기간 신한생명을 이끌었고, 김 회장은 김승유 전 회장 시절 6년 동안 하나은행장과 하나대투증권 사장 등을 맡았다.
한 회장은 이른바 신‘ 한사태’로 라응찬 전 회장과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이 한꺼번에 물러난 직후인 2011년 2월 회장 자리에 올랐다. 3월 26일 신한금융지주주주총회에서 연임이 확정돼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게 됐다. 회사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던 시기에 구원투수로 나섰으니 한 회장의 첫 출발은 불안할 만했다. 하지만 지난 3년 간의 경영 성적표는 ‘A’에 가까웠다.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었고, 어려운 환경 속에 실적도 선방했다는 평가다.
신한금융의 지난해 연결기준 연간 당기순이익은 1조9028억원. 2012년(2조3219억원) 대비 약 18% 감소했지만 금융업계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상황에서 다른 회사의 순이익이 30% 이상 감소한 것에 비하면 나쁘지 않은 결과다. 국내 금융지주회사 중 6년 연속 순이익 1위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기준금리 인하로 마진이 연중 19bp(1bp=0.01%) 하락해 이자이익이 전년 대비 5.4% 줄었지만 무리한 성장을 자제하면서 지속적인 자산 건전성 관리를 통해 대손비용을 크게 줄인 덕분에 순이익을 적정선에서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한금융의 지난해 대손비용은 1조1842억원으로 전년 대비 10.5% 줄었다.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이익 구조도 큰 역할을 했다. 신한금융은 비은행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38%로 4대 금융그룹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은행의 당기순이익이 1조3730억원으로 2012년에 비해 17.4% 감소했지만 금융투자·캐피탈 부문의 순이익이 크게 늘었다. 가맹점 수수료 인하 등으로 어려움이 예상됐던 카드 역시 감소폭을 10% 선에서 막아 좋은 실적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둘이 합쳐 더 쪼그라든 하나·외환이와 달리 같은 날 취임 2년을 맞은 김정태 회장의 성적표는 그리 좋지 않다. 하나금융그룹의 지난해 연결기준 연간 당기순이익은 9339억원으로 2010년 이후 3년 만에 1조원대가 무너졌다. 2012년 1조6215억원에 비해 42.4% 떨어졌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2012년은 외환은행 인수에 따른 부의영업권(인수에 따른 일시적 초과이익) 1조684억이 반영된 수치라 이를 제외하면 전년보다 순이익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9000억원대 순이익은 외환은행과 합병하기 전인 2011년 하나금융의 순이익(1조2224억원)보다도 적은 수치다. 2011년 각자 1조원대의 순이익을 내던 두 은행(2011년 외환은행의 순이익 1조6221억원에는 현대건설 지분 매각 대금 8756억원이 포함)이 만나 2년 새 합해도 순이익 1조원이 안 되는 어중간한 은행이 됐다는 뜻이다. 합병 당시 ‘3년 간 1조원의 시너지를 낼 것’이라던 당당함을 무색케하는 대목이다.
두 은행 간 양극화가 시작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주력인 하나은행의 당기순이익은 2012년 6563억원에서 지난해 7062억원으로 소폭 증가했지만, 외환은행은 2012년 6672억원에서 지난해 4443억원으로 순이익이 크게 줄었다. 환평가 이익이 줄고, 자회사에 대한 손실이 반영된 탓이다. 합병은 했지만 5년 간 외환은행의 독립경영이 보장된 상황이라 사실상 두 은행은 경쟁 업체일 뿐 시너지 효과를 내긴 어렵다. 기업대출 등에선 영역이 겹쳐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재 하나금융은 외환은행 내 카드사업부를 떼내 하나SK카드와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는데 카드 사업마저 떨어져나가면 외환은행의 덩치는 더욱 작아진다.
실적에선 희비가 엇갈리는 듯 보이지만 앞을 보면 한동우 회장이나 김정태 회장이나 공통 과제를 안고 있다. 일단 새 먹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둔화되고 기업대출도 우량 기업에 집중돼 은행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기업 실적이나 부동산 시장의 극적인 반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시중은행이 할 수 있는 선택은 해외 진출 밖에 없다.
신한은행은 전 세계 15개국에 현지법인 9개를 포함해 총 67개의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본격적인 해외 진출을 시작한 2008년 이후 글로벌 부문 총자산은 76억 달러에서 지난해 상반기 147억 달러로 매년 13.8%씩 성장했다. 성장 가능성이 큰 아시아 지역을 집중 공략한다는 계획인데 이를 통해 2015년까지 은행 수익의 10%를 해외시장에서 거두는 게 목표다.
하지만 이익을 내는 게 쉽지 않다. 지난해 3분기까지 신한은행이 해외에서 거둔 순이익은 674억원 정도다. 전년 동기(920억원)만도 못했다. 국제 금리의 지속적인 하락 속에 이자 마진이 줄어든 탓이다. 이와 달리 운영 경비는 국내에 비해 훨씬 많이 들기 때문에 이익을 남기기 쉽지 않은 장사다.
하나은행 역시 아직 해외에서 거두는 순이익이 100억원대에 그친다. 한 애널리스트는 “지난해부터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의 해외 진출을 독려하고 있지만 특색 있는 돌파전략이 없으면 시장 개척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공격적인 오너십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신한사태내부적으로는 전임 회장의 색깔을 지우는 일, 조직 내부 갈등을 제대로 봉합하는 일이 중요하다. 취임 때부터 지적된 문제지만 아직 해결이 안 됐다. 어쩌면 실적보다 더 시급한 과제다. 한 회장으로서는 신한사태의 뒷마무리를 잘 하는 게 급선무다. 신한사태는 2010년 9월 신한은행이 신상훈 전 사장을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시작됐다. 라 전 회장과 신 전 사장 간 권력 다툼으로 확산됐고, 소송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핵심 인물인 신 전 사장은 1심에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지만 지난해 12월 열린 2심에서 일부 유죄를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경영 자문료를 부풀린 점에 대해서만 벌금 2000만원으로 선고하고 횡령, 배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결했다. 선고 직후 신 전 사장은 복직을 요구는 동시에 “신한이라는 브랜드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납득할 만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엔 신한 임직원을 상대로 한 고소까지 진행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한 회장은 “신한사태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더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응수했다. 하지만 그는 “얼마 전 신 전 사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지만 솔직히 온도 차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는 말도 했다.
김정태 회장 역시 ‘김승유의 그늘’을 벗어나 김정태의 색깔을 확실히 보여줘야 할 시점이다. 임기가 1년 밖에 남지 않았다. 사실 하나금융 내부에선 김승유 라인으로 분류되는 측근들이 많아 김 회장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뒷말이 많았다. “김 전 회장이 하나금융고문으로 재직하면서 해외 사업 결정과 주주관리 업무를 계속했다. 사외이사들로 자기 사람들을 채워 여전히 회장 시절처럼 행세했다”는 내부 관계자의 발언도 있었다(관련기사 이코노미스트 1228호).
위기를 느껴서일까? 김 회장은 달라졌다. 하나금융은 최근 사외이사 8명 가운데 4명을 교체했다. 송기진 전 광주은행장, 김인배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등인데 모두 김 회장이 직접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잠재적 경쟁자로 여겨지던 최흥식 하나금융 사장이 사장직이 없어지면서 자연스레 물러난 것과 김승유 전 회장이 추대한 윤용로 외환은행장이 연임 없이 떠난 것도 맥을 같이 한다. 본격적인 홀로서기에 나선 분위기다.
“김정태에게 외환은행은 장애물이자 기회”외환은행과의 합병 효과를 끌어올리는 것도 중요하다. 한 애널리스트는 “외환은행 인수가 김 전 회장의 작품이라면 마무리는 김 회장의 몫인데 그 동안 성과가 미진해 부담스러울 것”이라면서 “김 회장에게 외환은행은 최대 장애물인 동시에 기회인 만큼 올해 내로 뭔가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외환은행을 인수한 지 2년이 지났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거의 없다. 해외법인 한 곳을 통합한 게 전부다. 통합의 첫 단추라던 카드 사업 합병도 영 속도를 못 낸다. 외환은행 노조의 반발이 여전한데다 ‘화학적 결합은 아직 멀었다’는 게 내부의 솔직한 평가다.
김 회장은 3월 20일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의 이임식과 다음날 김한조 신임 외환은행장의 취임식에 연이어 참석했다. 김 회장이 다수의 외환은행 직원이 참석하는 대규모 공식행사에 얼굴을 비춘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점령군 느낌을 줘선 안 된다’며 방문을 자제하던 것과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다.
김 회장의 별명은 ‘영업의 달인’이다. 1981년 은행원이 된 후 대부분의 시간을 영업 현장에서 보냈다. 지방지역본부장 시절에는 ‘점심은 경상도, 저녁은 전라도에서 먹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왕성한 활동력과 친화력은 김 회장의 강점이다. 바로 지금이 그 능력을 발휘해야 할 때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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