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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저리 지수 1위 - 삼성엔지니어링

미저리 지수 1위 - 삼성엔지니어링

무리한 저가 수주 후유증에 시공 능력도 떨어져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경영기획총괄사장



지난 연말 삼성그룹은 보너스 잔치를 벌였다. 이른바 ‘신경영 격려금’이었다. 삼성그룹 계열사는 기본급의 90%를 보너스로 받았다. 그러나 유일하게 보너스를 받지 못한 회사가 있다. 바로 삼성엔지니어링이다.

실적 부진이 이유다. 대규모 적자를 내고 주가가 급락하는 상황에서 보너스를 받긴 어려웠다. 보너스는커녕 대표이사 경질에 이어 그룹의 경영 관리 점검을 받으면서 여러모로 체면을 구겼다.

삼성엔지니어링이 수주한 UAE 플랜트 공사현장.
삼성엔지니어링의 실적은 부진의 늪에 빠졌다. 이코노미스트가 조사한 200대 상장사 미저리 지수 조사에서 마이너스 76점으로 최악의 점수를 받았다. 시가총액은 1년 전보다 45% 줄고, 매출과 영업이익률은 각각 14.3%, 16.9%포인트 감소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상반기 실적을 분석한 하반기의 미저리 지수 조사에서도 마이너스 78.9점으로 2위의 불명예를 안은 바 있다.

당시 오명의 1위였던 GS건설은 7위로 다소 개선됐지만, 삼성엔지니어링은 3분기의 대규모 적자가 더해지면서 더 깊은 수렁에 빠졌다.

시가총액은 지난해 3월 31일 기준 5조2200억원에서 올해 3월 31일 2조8680억원으로 절반 가까이로 줄었다. 대규모 적자의 영향이 컸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4.3% 감소했다. 영업손실은 자그마치 1조280억원이다. 200대 상장사 중 가장 큰 규모다.

4분기에 270억원의 이익을 내면서 흑자전환 했지만 1~3분기에 이미 1조원을 훨씬 웃도는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3월 말 기준 13만원을 웃돌던 주가는 실적 부진으로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말에는 5만원대로 떨어졌다. 최근 주가는 7만원 안팎에서 움직인다.



지난해 불명예 2위, 올해는 1위재무상태도 불안하다. 지난해 부채비율은 554%에 달한다. 현금과 현금성 자산은 2012년 4364억원에서 지난해 2637억원으로 줄었다. 3740억원이던 단기 차입금은 1조1650억원으로 불었다. 이에 따라 이자비용도 250억원을 넘어서면서 계속 늘고 있다. 실적 악화의 원인은 급격한 외형 성장의 부작용과 규모를 따라가지 못한 사업 수행 능력에 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매출 1조원대의 작은 삼성 계열사였던 삼성엔지니어링은 정연주 사장(현 삼성물산 부회장)이 취임한 2003년부터 변모했다.

2006년 1조7169억원이던 매출은 2009년 3조4714억원으로 뛰었다. 영업이익은 1136억원에서 3156억원으로 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에도 미리 수주한 일감 덕에 2012년 사상 최대 매출(11조4401억원)을 기록했다. 주가도 2011년 최고점(28만1000원)을 찍었다.

급격한 외형 성장에는 그늘이 있었다. 해외에서 수주한 대규모 사업의 수익성이 급격히 나빠진 것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이 몸집을 불린 2009~2012년은 해외 플랜트 수주 경쟁이 치열하던 때다. 당시 정 사장은 공격적인 수주전략을 썼다. 싸게 많은 수주를 따낸 것이다. 기존 사업 영역인 화공(석유화학)플랜트 외에 발전·해상플랜트에 진출하거나 미국 다우 팔콘 프로젝트처럼 새 지역에 진출해 선진국 기업과 경쟁하면서 수주가를 낮추기도 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삼성엔지니어링이 수주한 20~30억 달러 규모의 몇몇 프로젝트는 2위 입찰자가 제시한 수주 가격과의 차이가 5억 달러 이상 난 것도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프로젝트당 수익률이 보통 4~5%임을 감안하면 수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라 해도 지나치게 가격을 낮춰 부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막상 공사에 들어간 후 공사 비용이 증가했고, 이로 인해 적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물론 저가 수주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자사의 수행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비용을 절감하면서 수익만 낸다면 저가 수주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건설은 환경 변화에 따라 도중에 원가가 예상을 어긋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특히 해외 플랜트는 공사 기간이 길고 변수가 많다. 예상 원가가 증가하는 일도 다반사다.

그러나 삼성엔지니어링의 경우 자사의 역량을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은 채 저가로 사업을 수주했다는 게 중평이다. 특히 공사 현장 관리 노하우 부족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2000억원 가량의 손실이 발생한 아랍에미리트(UAE) CBDC(카본블랙 앤 딜레이드 코커) 정유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가격이 싼 협력업체를 구해 수주 단가를 낮추려다 협력업체들이 이를 거부했고, 이로 인해 설계를 변경하면서 공사 비용이 증가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샤이바 가스전 프로젝트도 공사 현장이 오지에 위치한 탓에 인력 수급이 어려웠고, 이로 인해 인건비가 증가했다. 현지 협력업체 생산성 저하로 공사기간도 길어져 20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업계 관계자는 “다른 건설사들이 시공 중심의 ‘건설업’에서 시작한 것과는 달리 삼성엔지니어링은 ‘엔지니어링(설계)’ 기반의 회사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며 “시공 노하우 부족 탓에 예상 밖의 손실이 커져 실적 부진을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내부에서는 규모에 비해 경험이 부족한 인력 구조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삼성엔지니어링의 한 내부 관계자는 “20여명 규모의 프로젝트팀에 부장급 1명, 책임 1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사원인 경우가 많다”며 “경험이 부족한 젊은 직원이 대부분이라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성장 과정에서 인원을 대폭 늘리긴 했지만 전문성은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또 이 관계자는 “내부의 삼성 순혈주의 때문에 경험이 풍부한 외부 인사 영입도 쉽지 않은 형편”이라고 털어놨다.

이어진 실적 부진에 삼성그룹은 지난해 8월 박기석 사장을 전격 경질했다. 이에 따라 박 대표와 함께 투 톱 체제를 이룬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사위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경영기획총괄 사장의 경영능력도 도마 위에 올랐다. 김 사장은 그동안 삼성그룹 내부에서도 초고속 승진하며 승승장구해왔다. 이서현 사장과 결혼, 2002년 제일기획을 통해 삼성그룹에 입사한 김 사장은 2010년 12월 삼성 임원 인사를 통해 제일모직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2개월 후인 2011년 3월에는 사장에 올랐다.



‘삼성 순혈주의’가 전문가 영입 발목 잡아2011년에는 연말 임원 인사를 통해 삼성엔지니어링 경영기획총괄 사장으로 옮겼다. 삼성엔지니어링이 가장 잘 나가던 시기다. 이후 김 사장도 몇몇 해외 수주를 따내면서 경영 능력을 인정받는 듯 보였으나, 지난해 회사의 실적이 급속도로 악화됨에 따라 평가도 바뀌는 분위기다. 물론 지금의 영업 손실은 김 사장이 삼성엔지니어링에 오기 전 경영진이 남긴 부실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잇단 영업 손실에 언제까지 면책권을 주장할 수만도 없게 됐다. 더구나 그가 몸 담았던 제일모직이 삼성SDI에 흡수 합병되는 등 최근 삼성그룹의 계열사 정리가 속도를 내는 시점이다. 미묘한 시기에 터진 삼성엔지니어링의 대형 적자가 향후 그룹의 구도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가늠하긴 어렵다. 업계에서는 현 상황을 어떻게 수습하느냐가 김 사장에 대한 평가를 좌우할 수 있다고 본다.

삼성엔지니어링의 부진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지난해 어닝쇼크 당시 삼성엔지니어링 측은 “과거에 쌓인 손실을 털어내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4분기에는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아직 금융시장에서 신뢰를 얻진 못한 듯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미국 다우 팔콘과 사우디 마덴 등 그동안 고통을 안겨준 문제 프로젝트들이 끝나는 것은 희소식”이라면서도 “다른 건설사에 비해 규모가 큰 공사에 손을 댄 만큼 실제 실적을 확인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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