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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NOMADS - 새로운 부류의 디지털 유목민

DIGITAL NOMADS - 새로운 부류의 디지털 유목민

사무실이라는 물리적 공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이국적인 곳에서 자유롭게 일하면서 공동체 생활도 유지한다



인도네시아 발리 정 확히 6개월 전 머라브 크나포는 모든 살림살이를 꾸려 캘리포니아주 엔시니타스의 보관 창고에 넣은 뒤 발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지금 그녀는 그 세간들을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모른다. 아니 앞으로 몇 달 뒤에 자신이 어디에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삶을 포기했다는 뜻이 아니다. 그녀는 인생을 사는 다른 방식을 발견했다. 대다수가 두려워 엄두를 내지 못하는 방식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이스라엘 출신 미국 시민권자인 크나포는 자칭 ‘디지털 유목민(digital nomad)’이다. 사무실 같은 특정 장소에 구애 받지 않는 그런 전문직 종사자들이 갈수록 늘어난다. 그들은 스카이프, 구글 독스(Google Docs, 인터넷만 연결되면 언제, 어디서든 마음대로 조회하고, 작성할 수 있는 문서 편집기), SNS 등 웹 기반 툴킷을 사용해 언제 어디서든 개인적인 업무와 공동작업을 수행한다. 태국의 해변에서 일하든, 크나포의 경우처럼 발리에서 논을 내려다보며 일하든 말이다.

크나포는 JomSocial이라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한다. 줌라(Joomla) 콘텐트 관리 시스템을 완전한 SNS 사이트로 변환시켜주는 일을 한다. 아르헨티나부터 인도네시아, 루마니아, 세르비아까지 세계 곳곳에서 일하는 스물댓 명의 직원을 거느린다. 그녀는 발리의 녹색 자연 인테리어로 장식된 공동 근무공간에서 매일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한다. 근무 시간이 길지만 사무실에서 일하던 때보다 훨씬 더 균형 잡힌 삶을 영위한다고 그녀는 말했다. 일하는 도중에 요가도 하고 느긋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살때 든 비용의 몇 분의 1로 넉넉하고 행복한 생활을 즐길 수 있다.

크나포는 최근 어느 날 오후 외국인이 많이 사는 우부드(Ubud, 인도네시아 발리섬에 있는 마을로 ‘예술촌’ 또는 ‘회화촌’이라고 불린다)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난 방콕에 있을 수도 있고 파리에 있을 수도 있다. 지금 나는 어디에도 있을 수 있다. 이미 스페인, 모로코, 이스라엘에서 일해봤다. … 12년이나 그렇게 하다보니 이런 삶이 몸에 뱄다.”

크나포는 자신처럼 일하며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 대다수는 ‘9-5시’라는 틀에 박힌 근무 형태에서 해방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건 되고 저건 안 된다며 아이들, 보모, 가족, 친구 등 갖가지 구실을 찾는다. 하지만 진정으로 원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만 계획이 필요하다.”

디지털 유목민은 여러 가지 형태를 띤다. 근거지를 두고 시간제로 방랑하는 사람, 장기적으로 일하고 살 곳을 선택하는 사람, 배낭 하나에 필요한 모든 소지품을 꾸려 이곳 저곳으로 계속 이동하는 사람 등. 혼자서 또는 커플로, 또는 아이까지 데리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 있는 허부드의 실내공간. 지붕과 벽, 계단 난간이 대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디지털 유목민은 1인 사업을 하거나 프리랜서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기술의 힘으로 물리적인 사무실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는 있지만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 확고한 공동체 의식을 갖지 못한다. 크나포도 그 때문에 캘리포니아주 엔시니타스를 떠나 발리 우부드에 있는 공동체 시설 허부드(Hubud)를 찾았다.

허부드는 개도국에서 저렴한 생활비와 높은 삶의 질을 도모하는 공동 근무시설 중 하나다. 아시아에서 그런 시설을 갖춘 인기 있는 디지털 유목민 허브는 발리 외에도 태국의 치앙마이, 베트남의 호치민 시티, 필리핀의 세부가 있다. 남미에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브라질의 상파울루가 인기다.

허부드는 약 250명이 거주하며 일하는 공동 주거시설 겸 사무실이다. 그들은 갈수록 디지털화되는 문화의 긍정적인 부산물을 최대한 이용한다. 장소에 구애 받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프리랜스 작가, 영화 제작자, 마케팅 전문가, 소프트웨어 개발자, 그래픽 디자이너, 심지어 기술팀 전체가 랩톱을 들고 그곳을 찾는다. 그러면 허부드는 그들에게 공간과 사무용품, 그리고 인도네시아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초고속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한다.

더 중요한 점은 허부드가 그들을 동료 전문가 네트워크에 연결시켜 준다는 사실이다. “인터넷 때문에 이곳에 왔다가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나려고 계속 머문다”고 허부드의 공동설립자 스티브 먼로가 설명했다. 그는 30여 개국에서 온 전문가들이 대나무 지붕 아래서 함께 일하는 허부드 같은 공간이 “우연히 얻는 기쁨”을 배가시켜 준다고 말했다.

먼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재택근무에 환상을 가졌다. 속옷 차림으로 스카이프 통화를 하는 것 등 말이다. 하지만 사무실 음료대에서 동료들과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분위기가 너무도 그리웠다. 재택근무를 2년 정도 하고나니 너무 따분하고 외로웠다.”

“15년 전에 한동안 유행했던 텔레커뮤팅(telecommuting, 컴퓨터를 이용해 직장과 연결하는 재택근무)을 기억하는가?” 먼로와 함께 허부드를 설립한 피터 월이 거들었다. “그때는 그게 꿈이었다. 모두가 집에서 자기 컴퓨터로 근무하게 되리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진짜 지루하고 따분하다. 둘째는 서로 얼굴을 맞대는 대면 교류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벼가 자라는 논을 쳐다볼 수 있고 30분 정도면 해변에 나갈 수 있는 녹색공간에서 일하는 것도 가치가 매우 높다. 내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공동체에 소속될 수 있으며,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곳에 머물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했다고 나는 판단했다.”

먼로는 디지털 유목민이란 ‘제3의 문화를 가진 아이들(third culture kids)’의 성인판이라고 주장했다. “나의 경우 거의 15년이나 모국 캐나다를 떠나 있었다. 하지만 올림픽 하키 결승전이 열리면 난 캐나다팀에 열광한다. 나머지 51주 동안은 나 같은 사람들과 더 많이 교류한다. 세계를 여행하고 여러 색다른 경험을 한 사람들, 자신이 태어난 곳의 이념과 문화에 짓눌리지 않는 그런 사람들을 말한다.”

역시 캐나다인인 월은 이렇게 덧붙였다. “동네 술집을 무대로 한 1980년대 미국의 인기 시트콤 ‘치어스(Cheers)’와 비슷하다. 그곳에선 모든 손님이 서로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눈다. 발리에 친지가 없는 사람에겐 이곳이 그런 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이상적인 장소다.”

먼로나 월처럼 그런 공동 근무공간(월은 ‘탈기업, 탈조직 환경’이라고 표현했다)을 직접 만드는 사람도 있지만 이 떠오르는 시장의 수요를 만족시키려는 기업도 등장했다. 그 기업들은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일하려는 사업가들이 미지의 세계에 진출하는 일을 돕는다.

매트 쿠퍼는 캘리포니아주 레드시티에 본부를 둔 온라인 일자리 시장 오데스크(oDesk)의 사업개발 담당 부사장이다. 회사들이 세계 어디서든 컴퓨터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자리에 프리랜서들을 고용하고 관리하고 급여를 줄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쿠퍼는 현재 우리가 누리는 ‘연결성(connectivity)’ 수준이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 놓았을 뿐 아니라 과거 우리를 얽매던 구속도 없애준다고 말했다.

오데스크는 이제 직장이란 우리가 출근해서 일하는 장소가 아니라는 아이디어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쿠퍼는 “모험을 즐기는 삶과 직업적 성공이 반드시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는 것”을 디지털 유목민이 입증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유목민은 번창하는 사업을 하며, 인기 블로그를 쓰고, 멋진 웹사이트를 만든다. 그들은 세계 어느 구석에서든 계속 그런 일을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마냥 해변에서 느긋하게 즐기는 건 아니다. “디지털 유목민은 ‘수동적으로 직접 대면하며 대화하는 상황’에서 얻는 혜택을 누릴 수는 없다”고 쿠퍼는 말했다. “출근하면 그냥 잘 봐주는 그런 혜택 말이다. 대신 철저히 성과를 바탕으로 평가 받는다. 자신의 가치를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는 뜻이다. 또 디지털 유목민은 지구의 다른 편에 있는 사람들과 일하려면 시간대를 맞춰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시간이 흐르고 더 많은 사람이 그런 식으로 일하면 분명히 더 쉬워질 수 있지만 지금으로선 적응의 어려움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일을 할 때 융통성이 많다는 것이 디지털 유목민의 장점이다. 또 자영업을 하는 사람은 아주 폭넓은 인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오데스크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물리적 사무실에 얽매이기 싫어서 자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전체의 4분의 3이며 또 그중에서 67%가 프리랜서가 됐고, 34%는 독자적인 온라인 사업팀을 조직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그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디지털 유목민이 된 사람 중 59%는 소득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물리적으로 사무실에 덜 얽매이게 된 이후 더 행복해졌다고 응답한 사람이 92%나 됐다(만족도가 떨어졌다고 응답한 비율은 2%에 불과했다). 오데스크는 재산을 모으기보다 경험을 축적하는 것에 더 높은 문화적 가치를 두는 최근의 일반적인 추세가 그 원인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쿠퍼는 이렇게 말했다. “디지털 유목민의 생활방식에 부응하는 기반 시설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런 시설은 융통성 있는 생활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동시에 융통성 있는 자원의 수요도 만들어낸다. 공동 근무공간이 크게 늘어나고 숙박을 알선해주는 에어비앤비(Airbnb) 같은 웹사이트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은 지난해 3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여행·관광업계가 밀레니엄 세대의 지출이 크게 증가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BCG의 소비자·고객 정보센터는 장소에 구속 받지 않는 독립적인 근로자들의 인력시장이 등장할 여건이 무르익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5년 안에 밀레니엄 세대가 소득, 지출, 여행의 최고점에 도달하면서 베이비붐 세대를 능가할 것”이라고 그 보고서 작성을 지휘한 BCG 파트너 크리스틴 바턴이 보고서 요약본에서 말했다. “업계가 밀레니엄 세대의 근로 방식과 여행 습관을 이해하고 브랜드를 인지시킬 수 있는 기회의 창이 머지않아 닫힌다. 서둘러야 한다.”

버지니아주 헌던의 비즈니스 서비스 업체 MBO 파트너스는 X세대와 Y세대에 초점을 맞춘 보고서에서 2020년이 되면 프리랜서가 미국 민간 인력의 50%를 차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크나포는 한술 더 뜬다. 그녀는 지금 우리 대다수가 아는 직장의 개념이 10~20년 안에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사무실 같은 장소에 구애 받지 않게 된다. 미국의 대기업들도 재택근무를 허용하는 추세다.”

디지털 유목민의 속성 때문에 지구촌을 누비는 그들의 정확한 수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람들이 ‘칸막이 농장(cubical farm, 사무실에서 개인의 일하는 공간을 제한한 형태)’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증거가 갈수록 많아진다. 아무튼 우리 대다수는 함께 일하는 동료를 직접 선정하고 책상 위의 합성수지 깔개와 형광등, 맛 없는 커피에서 벗어나 계속 변하는 와이파이 신호의 리듬에 맞춰 행군할 기회를 좋아할 듯하다. 20년 전 만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러나 기술 덕분에 유선전화를 끊기가 갈수록 더 쉬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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