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Management | 쉽게 풀어 쓰는 경영논문 - 오너 이익에 악용되는 기업 절세

Management | 쉽게 풀어 쓰는 경영논문 - 오너 이익에 악용되는 기업 절세



직장인들은 연말정산을 ‘13월의 월급’으로 여긴다. 세법이 개정되기 전 마지막 절세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권유는 고마운 충고로 받아들인다. 개인들의 절세 노력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지 않는다. 그런데, 대기업이 절세전략을 실행한다고 하면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지 않다. 세금도 기업의 비용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경영자가 세후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절세전략을 추구하는 것은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인데도 말이다.

실제 경영 현장에서 회계·세무 분야는 골치 아픈 일이다. 전통적으로 회계나 세무는 MBA 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기피 과목이기도 하다. CEO를 꿈꾸는 대부분의 학생에게 회계는 몰라도 되는 전문가 영역이었다. 회계부정이 발각됐을 때 차라리 ‘나는 몰랐다’고 말하는 것이 좋다는 견해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MBA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세무를 배우고자 몰려들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세무회계 분야에서 지난 20여 년간 벌어진 가장 큰 사건을 들라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이론 숄즈와 마크 울프슨이 제기한 새로운 패러다임(‘Scholes and Wolfson framework’)을 들 수 있다. 사업형태 결정, 자본조달 결정, 투자 결정 등 기업활동의 모든 측면에서 조세계획(tax planning)이 기업 전략의 핵심 요소로 사전에 계획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개인들처럼 연말이 가까워야 절세방안을 고민하거나 세금 문제를 전문가에게만 맡겨놓아서는 안 되고, 최고경영자가 세금을 미리 고려한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전략적 조세계획’ 과목은 세계 유수 MBA 프로그램에서 최고 인기 과목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전략적 조세계획의 시대가 열렸다.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다국적기업의 절세전략은 널리 알려져 있다. 세율이 높은 국가의 본사나 관계사로부터 세율이 낮은 국가의 관계사로 소득을 이전해 기업집단 전체의 조세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요 관계사를 국내에 거느리고 있는 한국의 대기업은 기업집단 전체의 세후이익 극대화를 위해 어떠한 조세전략을 수행하고 있을까? 특히 우리나라 재벌 지배구조의 특성 가운데 하나인 소유권과 지배권의 괴리 현상은 재벌의 절세 전략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내부거래를 통한 소득이전 수법숄즈와 울프슨의 프레임워크에 의하면, 기업의 의사결정에서 중요하게 고려할 것은 명목세율이 아니라 한계세율(marginal tax rate)이다. 한계세율은 나의 의사결정의 결과로 올해의 과세소득이 증가할 때 그로 인해 올해 또는 미래에 추가로 부담하게 될 모든 세금(현재가치로 계산)을 포함한다.

기업집단 내의 모든 기업이 국내에 있다고 하더라도 개별 기업의 한계세율은 다를 수 있다. 명목세율 자체가 누진적이기도 하고, 소득공제나 세액공제와 같은 복잡한 세법규정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재벌에 소속된 개별기업의 추정한계세율과 수익률의 관계를 분석해 보았다. 구체적으로,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을 적용 받는 기업 중 기업집단 내 추정한계세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기업과 낮은 기업 간 내부거래가 세전수익률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기업집단 내에서 추정한계세율이 높은 기업은 내부거래비율이 1% 증가할 때 자산수익률이 0.0012% 낮아지는 반면, 추정한계세율이 낮은 기업은 내부거래비율이 1% 증가할 때 자산수익률이 0.01%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집단이 내부거래를 통해 한계세율이 낮은 기업으로 소득을 이전했음을 시사하는 결과이다.

관계기업 간 내부거래를 통해 기업집단이 전체 비용 최소화를 추구하는 것은 기업집단 전체의 이익극대화를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기업집단의 모든 주주들이 이를 환영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기업집단 내에서 한계세율이 높은 기업의 주주들의 부가 기업집단 내 다른 기업으로 이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집단의 지배주주는 자신이 통제(지배)하고 있는 모든 계열사의 일부가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조세비용 최소화를 위해 오른쪽 주머니에서 왼쪽 주머니로 재산을 옮겨 놓는 식으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투자하고 있는 회사의 재산에 대해서만 권리를 갖는 소액주주들은 기업집단 전체의 비용최소화로 재산권을 침해받을 수 있는 것이다.

기업집단의 전략적 조세계획이 조건 없는 조세절감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외부주주들이나 채권자로부터 일정 수준 이상의 회계이익을 내야하는 경영자는 회계이익의 감소를 수반하는 절세전략이 그리 반갑지 않기 때문이다. 숄즈와 울프슨은 합리적 경영자라면 조세비용과 비조세비용을 모두 고려해야한다고 강조한다.

기업집단 소속 기업들의 비조세비용이 소득 이전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 결과, 유가증권 상장법인의 경우 추정한계세율이 높더라도 오히려 소득을 이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집단의 소득이전이 기업집단 전체 조세를 최소화하는 목적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비조세비용을 부담하는 기업을 지원(propping)하는 목적에 의해서도 영향받는다는 증거로 해석된다.

최근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는 지배주주의 현금배당 몫이 큰 비상장기업으로 소득을 이전시키는 내부거래의 한 유형이다. 이와 같은 지배주주의 사적이익추구(tunneling) 목적의 소득이전과 조세최소화 목적의 소득이전과의 관계를 조사했다. 분석 결과 높은 조세비용을 부담하더라도 지배주주의 현금흐름이 높은 기업으로 소득이 이전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상대적으로 한계세율이 높다고 하더라도 지배주주 소유권이 강한 기업은 내부거래비율 1% 증가 시 수익률이 오히려 0.0264%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배주주의 사적이익 추구현상이 기업집단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으며, 조세최소화보다 지배주주의 사적이익 추구가 우선 시 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결과다.



추가 세금 부담해 지배주주 사적이익 우선종합해보면, 내부거래를 통한 소득이전이 기업집단 전체의 조세최소화뿐만 아니라 계열사 지원이나 지배주주의 사적이익추구와 같은 다양한 목적을 위해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현행 완전자회사에 한해 적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연결납세제도의 적용범위를 확대할 필요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지배주주의 사적이익추구를 적절하게 감시하고 기업집단의 지배구조개선을 촉진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해 소액주주의 재산권 보호를 강화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 이광숙·윤성수, 2012, 관계 기업 간 내부 거래를 이용한 기업 집단의 소득 이전, 세무학연구 제29권 제4호, 121~156쪽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농구 선수 허웅, 전 여자친구 고소 “협박·스토킹…마약 연루도”

2택배 기사님 “아파트 들어오려면 1년에 5만원 내세요”

3“응애” 소리 늘까…4월 출생아 수, 전년 동월 대비 증가

4책 사이에 숨긴 화려한 우표…알고 보니 ‘신종 마약’

5경북도, K-국방용 반도체 국산화 위해 전주기 지원체계 구축

6영천시, 베트남 대형 유통업체 K-MARKET과 "농특산물 수출 확대" 협약 맺어

7대구시, 경기 화성 배터리공장 화재피해 복구 지원에 1억원 지원

8소방당국, 아리셀에 ‘화재 경고’…‘예방컨설팅’까지 했다

9최태원 동거인 첫 언론 인터뷰 “언젠가 궁금한 모든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것”

실시간 뉴스

1농구 선수 허웅, 전 여자친구 고소 “협박·스토킹…마약 연루도”

2택배 기사님 “아파트 들어오려면 1년에 5만원 내세요”

3“응애” 소리 늘까…4월 출생아 수, 전년 동월 대비 증가

4책 사이에 숨긴 화려한 우표…알고 보니 ‘신종 마약’

5경북도, K-국방용 반도체 국산화 위해 전주기 지원체계 구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