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20년 만에 달라진 미국 환율정책 - 경제 회복 자신감에 “강한 달러도 문제 없어”

20년 만에 달라진 미국 환율정책 - 경제 회복 자신감에 “강한 달러도 문제 없어”

재닛 옐런 미 연준 의장.
미국의 달러화 정책이 바뀌고 있다. 전통적으로 약한 달러를 선호해온 미국은 최근 가속화 되고 있는 달러화 강세를 적극 수용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경제의 회복세가 두드러짐에 따라 달러화 강세에 따르는 부작용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달러화 강세는 미국의 무역수지를 악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라진 미국의 무역구조는 이런 부작용을 충분히 감내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의 에너지 자급도가 높아지고 이에 따라 무역수지가 크게 개선됐기 때문이다. ‘강한 달러’로의 환율정책 전환은 미국 셰일오일 붐과 이에 따른 유가 폭락세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강한 달러는 미국의 경제 회복세를 더욱 가속화 할 수도 있다. 달러화 강세로 수입물가가 하락해 미국 기업들과 소비자들의 실질 구매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미국에서는 32만1000개의 일자리가 새롭게 생겨났다. 지난 2012년 1월 이후 최고치였다. 올 들어 미국에서는 265만명이 일자리를 얻었다. 지난 1999년 이후 15년 만에 나타난 가장 강력한 고용 회복세다. 이 소식으로 달러 강세 행진에 가속도가 붙었다. 달러인덱스는 지난 2006년 4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 됐다. 조만간 달러화 가치는 2003년 수준으로까지 높아질 태세다.
 수입물가 하락으로 실질 구매력 높아져
달러화의 초강세에는 어두운 배경도 있다. 유럽과 일본의 경제가 상대적으로 부진한 결과이기도 하다. 일본은행과 유럽중앙은행(ECB)은 화폐증발에 가속도를 내며 달러의 상대가치를 끌어 올리고 있다. 지난 9월까지만 해도 연준은 달러화 강세를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달러인덱스가 47년 만에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뛰어 오르던 때였다. 당시에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일부 위원들은 유로존의 저성장과 저물가가 지속될 경우 달러가 더 강해지면서 미국의 무역수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달러화 강세 때문에 미국의 물가마저 상당한 기간 동안 목표치를 밑돌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FOMC의 부의장인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당시 연설에서 “달러화 강세는 미국의 성장을 저해하고 물가를 끌어 내려 완전고용과 물가목표 달성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외환시장에 제동을 걸었다. 금리 인상을 미루는 등 정책 대응에 나설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목소리는 자취를 감추었다. 연준은 오히려 강한 달러를 당연시 여기는 자신감을 표출하고 있다. 10월 말에 열린 FOMC 회의가 전환의 계기가 됐다. 참석자들은 달러화 강세에 대한 시각을 바꾸었다. “미국 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으며, 달러화 강세가 무역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다”고 판단했다. 일부 위원들은 당시 회의에서 “최근의 유가 하락세가 낮은 금리와 더불어 달러화 강세에 따르는 부작용을 상쇄해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유가 하락이 특히 저소득층의 소비를 진작시키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분석도 회의에서 제시됐다.

미국 정부와 연준은 일본과 유로존의 강력한 화폐증발 정책에 대해서도 호의적이다. 이들 나라의 통화부양 정책은 내수를 회복시켜 궁극적으로 미국의 수출성장을 촉진하는 동력이 될 것으로 미국은 기대하고 있다. 올 들어 미국의 경제 회복세가 더욱 뚜렷해지면서 석유 이외 부문의 미국의 무역적자(이하 실질 기준)는 사상 최대 수준으로 불어났다. 이는 달러화를 약세로 이끄는 원인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미국의 전체 무역수지 적자폭은 월간 500억 달러 안팎 수준에서 안정돼 있기 때문이다. 셰일오일 효과 덕이다.

지난 2000년대 중반에만 해도 월간 200억 달러를 훌쩍 넘어 섰던 미국의 석유 부문 무역적자는 최근 들어 100억 달러 미만으로 대폭 감소했다. 미국은 수입해서 쓰던 석유의 상당부분을 자급하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해외에 수출까지 하고 있다. 석유 무역수지의 대대적인 개선은 다른 부문의 무역적자 확대를 상쇄하고 있다. 석유 수입이 줄어 발생한 잉여 소득이 우리를 포함한 산업수출국의 제품을 사들이는 데 쓰이고 있는 것이다. 연준이 지난 10월 회의 때 언급한 ‘미국의 교역 및 생산구조 변화’는 이러한 흐름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강한 달러 정책은 석유 이외 제품의 수입 수요를 더욱 늘려 우리를 포함한 산업수출국 경제에 더 많은 혜택을 부여할 수 있다.

지난 1970년대 초 금태환 폐지 이후 미국은 ‘약한 달러’를 선호하는 환율정책을 취해왔다. 미국 제조업과 농업의 수출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경제를 부추기기 위해 기축통화 지위를 이용, 달러를 남발한 결과이기도 하다. 최근의 급등세에도 주요국들에 대한 달러화 가치는 여전히 지난 1973년에 비해 20% 가까이 절하돼 있다.

미국이 ‘강한 달러’ 정책을 펼친 경우는 그동안 두 차례가 있었다. 지난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 사이가 첫 번째 사례다. 인플레이션이 치솟고 급기야 달러화에 대한 신뢰까지 흔들리자 연준은 달러 유동성을 대대적으로 거둬 들이고 금리를 대폭 인상하는 초긴축 행진에 나섰다. 그 결과 추락하던 달러화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울며 겨자 먹기 식의 달러화 강세정책이었다.

두 번째 사례는 지난 1990년대 중반이다. 당시 미국 경제는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었고, 일본 경제는 플라자합의의 후유증으로 빈사상태에 빠져 있었다. 미국은 긴축이 필요했고, 일본은 부양을 갈망했다. 그래서 두 나라는 엔화를 대대적으로 발행해 달러를 사들이는 외환시장 개입에 나섰다. 이른바 ‘역(逆) 플라자합의’다. 최근의 달러화 강세 수용 정책은 지난 1990년대 중반과 닮은 꼴이다. 위험성도 내포돼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최근 보고서에서 “장기간의 달러화 강세가 신흥시장의 외채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BIS에 따르면 신흥국들이 발행한 외화채권은 총 2조6000억 달러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내년에 예상대로 금리를 인상하게 되면 신흥국에 미치는 금융환경 긴축은 더욱 더 심화된다고 BIS는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의 회복세가 기대한 것과 달리 여전히 미진한데도, 일본과 유럽이 더 빈약해서 달러가 강해지는 것이라면 연준은 금리 인상을 미룰 것으로 보인다.

“미국 경제의 팽창이 아주 충분히 진전되고, 대부분의 신흥국들이 충분히 극복할 준비가 되기 전에는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수출의 47%는 신흥국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연준의 통화정책은 해외 경제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미국으로 되돌아 온다.”(스탠리 피셔 미 연준 부의장, 10월 11일)
 좋은 강달러냐 나쁜 강달러냐
이와 달리 강한 달러화가 미국 경제의 차별적인 강세를 주로 반영한 것이 좀 더 분명해 진다면, 연준은 예정대로 내년 중반쯤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보인다. 이 때 명분은 인플레이션 예방을 위한 긴축이 아닌, 자산거품 방지를 위한 정상화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유가 하락은 미국의 경제성장 전반의 관점에서 볼 때 ‘아주 좋은 것’이다. 고용시장이 계속해서 개선되고 그래서 물가가 올라가기 시작하는 신호가 보이면, 자연히 금리를 인상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를 ‘정상화’라고 부를 것이다.”(피셔 부의장, 12월 2일 연설)

현재 미국은 이러한 ‘좋은 달러 강세’ 시나리오에 무게를 두고 있다.

- 국제경제분석 전문 매체 Globar Monitor 특약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넷마블, 모바일 캐주얼 RPG ‘일곱 개의 대죄 키우기’ 글로벌 사전등록 개시

2KT, 국내 최고 속도 양자 암호 통신 기술 개발

3NH투자증권, ‘THE C FORUM’ 개최…“중장기 전략 등 시장 피드백 공유”

4팬심 공략 통했다…NCT WISH 내세운 카카오뱅크 ‘기록통장’ 흥행

5수출입은행, 사우디 아미랄 석유화학설비에 PF금융 10억 달러 제공

6한국IR협의회, 제8대 회장에 정석호 전 거래소 본부장 취임

7유영상 SKT 대표 “AI 성장·발전과 안전성 균형 도모해야”

8케이뱅크, 금융사기 예방 나서자…사기이용계좌 건수 80% 감소

9DGB금융, ‘제2회 디지털 인재 양성 프로젝트’ 파이널 라운드 개최

실시간 뉴스

1넷마블, 모바일 캐주얼 RPG ‘일곱 개의 대죄 키우기’ 글로벌 사전등록 개시

2KT, 국내 최고 속도 양자 암호 통신 기술 개발

3NH투자증권, ‘THE C FORUM’ 개최…“중장기 전략 등 시장 피드백 공유”

4팬심 공략 통했다…NCT WISH 내세운 카카오뱅크 ‘기록통장’ 흥행

5수출입은행, 사우디 아미랄 석유화학설비에 PF금융 10억 달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