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연 기자의 ‘스칸디나비안 파워’⑤ 이케아] 한국에 상륙한 ‘스웨덴식 디즈니랜드’
[허정연 기자의 ‘스칸디나비안 파워’⑤ 이케아] 한국에 상륙한 ‘스웨덴식 디즈니랜드’
‘헤이(Hej)’는 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핀란드에서 모두 통하는 인사말이다. 철자는 차이가 있지만 뜻은 하나다. 북유럽 4개국은 비슷한 언어만큼이나 정치·경제·문화적으로 공통점이 많은 나라이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 속에서 재빨리 침체를 벗어난 점도 닮았다. 위기 극복의 저력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에서 나왔다. 각국 인구가 1000만명이 채 되지 않는 북유럽 국가들은 작은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일찍이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덕분에 우리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세계 시장 점유율 1~2위를 다투는 북유럽 출신 ‘히든챔피언’이 적지 않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세계 시장을 휘젓는 북유럽의 숨은 강자들을 소개한다. 글로벌 홈퍼니싱 기업 ‘이케아(IKEA)’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이케아 코리아는 12월 18일 광명시 일직동에 국내 1호점인 광명점을 개장했다. 연면적 13만1550㎡ 대지에 들어선 2층 건물에서는 약 8600여 가지 제품을 만날 수 있다. 이미 전세계 45개국에 360여개 매장을 낸 이 글로벌 기업의 한국 진출은 2012년 부지 선정 과정부터 숱한 화제를 모았다. 국내 가구 업체들의 우려 섞인 시선을 비롯해 다른 나라에 비해 비싼 가격 책정, 일본해 표기 지도 제품 등으로 논란을 빚었다. 개점 전부터 비난 여론이 일던 것과는 달리 이케아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강추위에도 개장 첫 날 몰린 손님은 수천명에 이르렀다. 차량 2000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이 꽉 찬 것은 물론 입구에서부터 줄이 길게 늘어서 매장에 들어가는 데 까지만 1시간 넘게 걸렸다. 인산인해를 이룬 매장 안 풍경은 글로벌 기업 이케아의 브랜드 파워를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이 이케아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저렴한 가격이다. 창업주인 잉바르 캄프라드가 1950년대 가구 업계에 뛰어들었을 때 가구는 비싼 품목 중 하나였다. 결혼을 해 ‘혼수’를 구입 하려면 몇 년 간 저축한 돈을 쏟아 부어야 할 정도였다. 캄프라드는 저렴한 가격에 좋은 가구를 판매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내세웠다. 이른바 ‘민주적인 디자인’이다. 캄프라드는 1970년대 출간한 자서전 <어느 가구상인의 유언장> 에서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제품을 만들기 전에 먼저 가격표를 디자인한다. 비싼 가구를 디자인하는 것은 어떤 설계자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진정으로 훌륭한 디자인이란 기능적으로 멋지면서도 단 200유로에 판매할 수 있는 가구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조립형 플랫팩(납작한 상자에 부품을 넣어 포장한 방식) 가구다. 1950년대 초 이케아 직원으로 일하던 일리스 룬드그렌은 차 트렁크에 테이블을 집어넣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아무리 해도 들어가지 않자 그는 테이블 다리를 잘라 운반했다. 이 작은 아이디어는 곧 이케아 전 제품에 적용됐다. 가구를 선적할 때 빈 공간 없이 운송이 가능해지면서 비용이 대폭 절감됐다. 나아가 소비자가 직접 자동차에 싣고 가져갈 수 있도록 해 불필요한 비용을 줄였다.
대량 생산을 통해 생산 비용도 낮췄다. 이케아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커피테이블 ‘라크’는 1990년대에 24만2000여개가 생산돼 당시 40달러에 팔렸다. 그러나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뒤에 200만개 넘게 생산되면서 20달러에 팔 수 있게 됐다. 대량생산 방식은 이케아가 싼 값에 물건을 팔면서도 20% 가까운 순수익을 남기는 비결이다. 이케아 제품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가구를 고안할 때 직접 생산시설을 찾아 기술자들과 협의한다. 아무리 좋은 디자인이라도 기능성이 떨어지거나 비용이 많이 들면 이케아표 가구로 탄생할 수 없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기계와 생산 설비만으로 만들 수 있는 제품 정보를 수집하고, 가구 제작의 형태에 따라 비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토론한다. 서랍장 크기를 미세하게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훨씬 값싼 가구를 생산할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케아의 등장 후 가구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이케아가 탄생하기 전인 1900년대 중반 유럽 사람들은 화려하고, 중후한 가구를 집안 가득 채워 넣는 것을 좋아했다. 이러한 가구는 고급스럽긴 했지만 인테리어에 변화를 주긴 어려웠다. 그러나 이케아의 등장으로 가구는 더 이상 ‘평생 친구’가 아닌 ‘기분 전환을 위해 바꿔도 좋은 것’이 됐다. 실제로 유럽·미주 등 이미 이케아가 진출한 국가에서 보면 주요 고객들은 대부분 대학생이나 신혼부부와 같은 젊은층이다. 자취생활을 하는 학생이나 어린 자녀가 쓸 가구가 대대손손 물려줄 만큼 고급스러울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유행을 따르면서도, 몇 번 입고 버려도 아깝지 않은 가격의 SPA 패션처럼 가구도 싼 값에 최소한의 기능만 갖추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요즘 세대의 생각과도 맞아떨어진다. 이케아 가구의 내구성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값싼 이케아 가구의 품질에 큰 기대를 갖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몇 년 전부터 인기를 끄는 ‘북유럽 인테리어’ 열풍도 한 몫을 했다. 북유럽 가정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이케아 쇼룸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마치 ‘북유럽 인테리어=이케아’라는 공식이 성립된 듯하다. 실제로 이케아의 성공은 인테리어를 비롯해 북유럽 라이프스타일을 동경하는 소비자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스웨덴을 비롯해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나라들은 척박한 자연환경을 갖고 있다. 특히 길고 어두운 겨울에는 바깥 활동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이 시기 북유럽 사람들은 집을 비롯해 실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어둡고 추운 바깥 풍경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집안은 밝고 따뜻한 분위기로 꾸민다. 밝게 칠한 벽에 단순하면서도 실용적인 가구를 놓는 것이 북유럽 인테리어의 표본이다. 기능을 잃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멋을 갖춘 인테리어 방식을 이케아 역시 차용하고 있다.
이케아의 스웨덴 현지 매장에서 가장 대중적인 제품은 무엇일까. 바로 양초다. 매장 초입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제품 역시 다양한 크기와 향을 지닌 양초다. 스웨덴 가정에서는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집안 곳곳에 초를 켜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두운 집안을 밝힐 수 있을 뿐 아니라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내 1호 매장 풍경은 어떨까. 매장 초입 코너에는 플라스틱 바구니와 방석·쿠션 등이 배치됐다. 이런 차이는 이케아의 남다른 현지화 전략에 있다.
이케아는 해외 진출 전 각 나라의 중산층 가정을 방문해 라이프 스타일을 연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에 매장을 열기 전에도 80여 곳의 가정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한국에서 많이 사용하는 제품을 전면에 배치하고, 수량과 가격을 책정한다. 이케아는 매장 내부를 평범한 가정집처럼 꾸민다. 이케아 가구를 활용해 어떻게 홈퍼니싱을 적용할지 고객에게 직접 보여주는 식이다.
물론 각 나라의 문화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진 않는다. 지난 1998년에 중국에 진출할 때도 젓가락·프라이팬·부엌칼 등 일부 품목만 현지에 맞게 추가했을 뿐 이케아에서 파는 제품종류는 전 세계 어디서나 비슷하다. 이케아의 CEO였던 안데르스 달비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우리가 현지화 전략만 펼쳤다면 한 도시나 나라의 가구점에 불과했을 것”이라며 “우리의 생각은 독창적인 모습, 다시 말해 스칸디나비아식, 이케아식 독창성을 지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이케아는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때 자국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십분 활용한다. 노랑과 파랑이 섞인 이케아 로고만 봐도 그렇다. 이 두 가지 색은 스웨덴 국기를 상징한다. 1943년 창립된 이케아가 초기에 쓴 로고는 지금과 달리 스웨덴을 연상케 하는 요소가 없었다. 그러나 1977년 바뀐 현재 로고는 마치 우리의 태극 문양과 같이 자연스레 본국인 스웨덴을 떠올리게 한다. 매장 직원들은 노란색 폴로셔츠와 파란색 바지를 입는다. 제품명도 스칸디나비아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이케아 침대 브랜드명인 ‘레다렌’는 노르웨이 마을지명에서 따왔다. 30년 간 4000만대가 팔린 책장 이름 ‘빌리’는 스웨덴 남자 이름이고, 장난감 ‘둑티그’는 영리하다는 뜻의 스웨덴어다. 이처럼 가구에 사람 이름이나 지명을 붙여 소비자들이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한 것이다.
가구 이름뿐 아니라 놀이방 시설인 ‘스몰란드(스웨덴 남부 지명)’도 그대로 불린다. 이케아 레스토랑에서는 스웨덴 전통식인 미트볼과 스웨덴식 사과케익을 판매한다. 실제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미트볼과 케익일지라도 ‘스웨덴식’임을 강조해 세계 어디에서나 스웨덴식 피카(일과 중 커피와 다과를 즐기는 휴식시간을 갖는 스웨덴 문화)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캄프라드는 자서전에서 이케아의 정체성에 대해 “스칸디나비아 안에서는 ‘전형적인 이케아’가 되어야 하고, 스칸디나비아 바깥에서는 ‘전형적인 스웨덴’이 되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우리가 해외 고객에게 전할 것은 북구의 것이고,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일부”라고도 썼다. 로고에서부터 제품명까지 스웨덴의 아이덴티티를 표방하는 이케아지만 정작 자국 내에서 기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스웨덴 대표 기업’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케아의 본사는 네덜란드 라이덴에 있다. 캄프라드 가족은 스웨덴의 높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1970년대 고향을 떠났다. 당시 스웨덴 새법은 전체 유산의 35%만 상속자가 받을 수 있게 돼있었다. 법인세율 역시 65%에 달했다. 그러나 높은 세금은 스웨덴 복지를 떠받치는 힘이었고, 대부분의 국민과 기업들이 감내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스웨덴 최대 기업이 이를 회피하기 위해 나라를 떠나자 비난 여론이 극에 달했다. 이케아의 기업 구조는 복잡하기로 유명한데 이 역시 세금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게 여론이다.
이케아그룹은 가족 소유 비상장 회사로 스티흐팅 잉카 재단과 인터로고 재단을 두 축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재단 소유라고 해서 공익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자산을 관리하고 기업의 목적에 맞게 사용할 뿐이다. 스티흐팅 잉카 재단은 네덜란드에 있고, 소매업체 이케아를 소유하고 있다. 리히텐슈타인 소재 인터로고 재단에는 인터 이케아가 소속돼 있고, 인터 이케아는 브랜드와 지식재산권을 보유한다. 이케아의 라이선스를 가구매장과 상관없는 별도의 기업으로 옮겨 세무상으로 막대한 이익을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재단이 한 해 내는 세금은 연매출의 3.5%에 불과하다. 호주에서는 지난 2002년부터 10년 간 10억1000만 달러(약 9100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세금은 약 3%인 3100만 달러(약 280억원)만 냈다고 알려졌다. 호주의 법인세율은 30% 수준이다.
이같은 세금 회피 논란에도 그룹 차원에서 공식적인 해명을 한 적은 없다. 글로벌 기업의 투명한 경영과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이케아의 기업 구조는 베일에 싸여있다. 올해 88세인 캄프라드는 지난 10년 간 자신의 권한을 줄이며 세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왔다. 지난해 6월 막내 아들인 마티아스가 회장직을 승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첫째 아들 페터와 둘째 아들 요나스는 이케아그룹 계열사와 인터이케아, 스티흐팅 잉카 재단 이사회 멤버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내년 1월부터는 잉카홀딩의 이사인 전문경영인 라스요한 야르하이머가 그룹 회장을 맡게 돼 마티아스가 회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지 회장직을 수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케아의 역사가 시작된 스웨덴 엘름훌트에는 내년 초 ‘이케아 박물관’이 문을 연다. 1943년 최초의 이케아 매장이 세워진 바로 그 자리에 들어설 예정이다. 인근에는 이미 2012년 개장한 세계 최대 규모의 매장과 디자인 본부, 문화센터, 호텔, 임시박물관 등이 들어서 있어 ‘이케아 공화국’을 방불케 한다. 한 해 20만명이 이케아를 만나기 위해 이 작은 마을을 찾는다. 이만하면 ‘스웨덴식 디즈디랜드’라 불릴 만하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도 매년 10%에 가까운 성장률을 보이며 70년째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이케아. 2020년까지 전국 5개 매장을 내겠다는 이케아의 국내 시장 공략은 이제부터다. 싸고, 간편하게. 간단명료한 이케아의 기본 공식은 한국에서도 이미 통했다.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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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10도를 밑도는 강추위에도 개장 첫 날 몰린 손님은 수천명에 이르렀다. 차량 2000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이 꽉 찬 것은 물론 입구에서부터 줄이 길게 늘어서 매장에 들어가는 데 까지만 1시간 넘게 걸렸다. 인산인해를 이룬 매장 안 풍경은 글로벌 기업 이케아의 브랜드 파워를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이 이케아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저렴한 가격이다.
‘민주적인 디자인’으로 승부수
“새로운 제품을 만들기 전에 먼저 가격표를 디자인한다. 비싼 가구를 디자인하는 것은 어떤 설계자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진정으로 훌륭한 디자인이란 기능적으로 멋지면서도 단 200유로에 판매할 수 있는 가구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조립형 플랫팩(납작한 상자에 부품을 넣어 포장한 방식) 가구다. 1950년대 초 이케아 직원으로 일하던 일리스 룬드그렌은 차 트렁크에 테이블을 집어넣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아무리 해도 들어가지 않자 그는 테이블 다리를 잘라 운반했다. 이 작은 아이디어는 곧 이케아 전 제품에 적용됐다. 가구를 선적할 때 빈 공간 없이 운송이 가능해지면서 비용이 대폭 절감됐다. 나아가 소비자가 직접 자동차에 싣고 가져갈 수 있도록 해 불필요한 비용을 줄였다.
대량 생산을 통해 생산 비용도 낮췄다. 이케아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커피테이블 ‘라크’는 1990년대에 24만2000여개가 생산돼 당시 40달러에 팔렸다. 그러나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뒤에 200만개 넘게 생산되면서 20달러에 팔 수 있게 됐다. 대량생산 방식은 이케아가 싼 값에 물건을 팔면서도 20% 가까운 순수익을 남기는 비결이다. 이케아 제품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가구를 고안할 때 직접 생산시설을 찾아 기술자들과 협의한다. 아무리 좋은 디자인이라도 기능성이 떨어지거나 비용이 많이 들면 이케아표 가구로 탄생할 수 없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기계와 생산 설비만으로 만들 수 있는 제품 정보를 수집하고, 가구 제작의 형태에 따라 비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토론한다. 서랍장 크기를 미세하게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훨씬 값싼 가구를 생산할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북유럽 인테리어 열풍의 진원지
몇 년 전부터 인기를 끄는 ‘북유럽 인테리어’ 열풍도 한 몫을 했다. 북유럽 가정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이케아 쇼룸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마치 ‘북유럽 인테리어=이케아’라는 공식이 성립된 듯하다. 실제로 이케아의 성공은 인테리어를 비롯해 북유럽 라이프스타일을 동경하는 소비자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스웨덴을 비롯해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나라들은 척박한 자연환경을 갖고 있다. 특히 길고 어두운 겨울에는 바깥 활동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이 시기 북유럽 사람들은 집을 비롯해 실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어둡고 추운 바깥 풍경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집안은 밝고 따뜻한 분위기로 꾸민다. 밝게 칠한 벽에 단순하면서도 실용적인 가구를 놓는 것이 북유럽 인테리어의 표본이다. 기능을 잃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멋을 갖춘 인테리어 방식을 이케아 역시 차용하고 있다.
이케아의 스웨덴 현지 매장에서 가장 대중적인 제품은 무엇일까. 바로 양초다. 매장 초입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제품 역시 다양한 크기와 향을 지닌 양초다. 스웨덴 가정에서는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집안 곳곳에 초를 켜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두운 집안을 밝힐 수 있을 뿐 아니라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내 1호 매장 풍경은 어떨까. 매장 초입 코너에는 플라스틱 바구니와 방석·쿠션 등이 배치됐다. 이런 차이는 이케아의 남다른 현지화 전략에 있다.
이케아는 해외 진출 전 각 나라의 중산층 가정을 방문해 라이프 스타일을 연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에 매장을 열기 전에도 80여 곳의 가정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한국에서 많이 사용하는 제품을 전면에 배치하고, 수량과 가격을 책정한다. 이케아는 매장 내부를 평범한 가정집처럼 꾸민다. 이케아 가구를 활용해 어떻게 홈퍼니싱을 적용할지 고객에게 직접 보여주는 식이다.
물론 각 나라의 문화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진 않는다. 지난 1998년에 중국에 진출할 때도 젓가락·프라이팬·부엌칼 등 일부 품목만 현지에 맞게 추가했을 뿐 이케아에서 파는 제품종류는 전 세계 어디서나 비슷하다. 이케아의 CEO였던 안데르스 달비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우리가 현지화 전략만 펼쳤다면 한 도시나 나라의 가구점에 불과했을 것”이라며 “우리의 생각은 독창적인 모습, 다시 말해 스칸디나비아식, 이케아식 독창성을 지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이케아는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때 자국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십분 활용한다.
한국 진출 전 가정 80곳 방문해 전략 가다듬어
가구 이름뿐 아니라 놀이방 시설인 ‘스몰란드(스웨덴 남부 지명)’도 그대로 불린다. 이케아 레스토랑에서는 스웨덴 전통식인 미트볼과 스웨덴식 사과케익을 판매한다. 실제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미트볼과 케익일지라도 ‘스웨덴식’임을 강조해 세계 어디에서나 스웨덴식 피카(일과 중 커피와 다과를 즐기는 휴식시간을 갖는 스웨덴 문화)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캄프라드는 자서전에서 이케아의 정체성에 대해 “스칸디나비아 안에서는 ‘전형적인 이케아’가 되어야 하고, 스칸디나비아 바깥에서는 ‘전형적인 스웨덴’이 되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우리가 해외 고객에게 전할 것은 북구의 것이고,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일부”라고도 썼다. 로고에서부터 제품명까지 스웨덴의 아이덴티티를 표방하는 이케아지만 정작 자국 내에서 기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스웨덴 대표 기업’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케아의 본사는 네덜란드 라이덴에 있다.
세금 회피 논란으로 이미지 먹칠
이케아그룹은 가족 소유 비상장 회사로 스티흐팅 잉카 재단과 인터로고 재단을 두 축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재단 소유라고 해서 공익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자산을 관리하고 기업의 목적에 맞게 사용할 뿐이다. 스티흐팅 잉카 재단은 네덜란드에 있고, 소매업체 이케아를 소유하고 있다. 리히텐슈타인 소재 인터로고 재단에는 인터 이케아가 소속돼 있고, 인터 이케아는 브랜드와 지식재산권을 보유한다. 이케아의 라이선스를 가구매장과 상관없는 별도의 기업으로 옮겨 세무상으로 막대한 이익을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재단이 한 해 내는 세금은 연매출의 3.5%에 불과하다. 호주에서는 지난 2002년부터 10년 간 10억1000만 달러(약 9100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세금은 약 3%인 3100만 달러(약 280억원)만 냈다고 알려졌다. 호주의 법인세율은 30% 수준이다.
이같은 세금 회피 논란에도 그룹 차원에서 공식적인 해명을 한 적은 없다. 글로벌 기업의 투명한 경영과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이케아의 기업 구조는 베일에 싸여있다. 올해 88세인 캄프라드는 지난 10년 간 자신의 권한을 줄이며 세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왔다. 지난해 6월 막내 아들인 마티아스가 회장직을 승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첫째 아들 페터와 둘째 아들 요나스는 이케아그룹 계열사와 인터이케아, 스티흐팅 잉카 재단 이사회 멤버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내년 1월부터는 잉카홀딩의 이사인 전문경영인 라스요한 야르하이머가 그룹 회장을 맡게 돼 마티아스가 회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지 회장직을 수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케아의 역사가 시작된 스웨덴 엘름훌트에는 내년 초 ‘이케아 박물관’이 문을 연다. 1943년 최초의 이케아 매장이 세워진 바로 그 자리에 들어설 예정이다. 인근에는 이미 2012년 개장한 세계 최대 규모의 매장과 디자인 본부, 문화센터, 호텔, 임시박물관 등이 들어서 있어 ‘이케아 공화국’을 방불케 한다. 한 해 20만명이 이케아를 만나기 위해 이 작은 마을을 찾는다. 이만하면 ‘스웨덴식 디즈디랜드’라 불릴 만하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도 매년 10%에 가까운 성장률을 보이며 70년째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이케아. 2020년까지 전국 5개 매장을 내겠다는 이케아의 국내 시장 공략은 이제부터다. 싸고, 간편하게. 간단명료한 이케아의 기본 공식은 한국에서도 이미 통했다.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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