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고독한 세계 경찰?
미국은 고독한 세계 경찰?
2014년 9월 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뒤 CBS 뉴스의 탐사보도 프로그램 ‘60분’에 출연해 미국의 개입 원칙을 이렇게 설명했다. “세계 어디서든 문제가 생기면 그들은 중국을 찾지 않습니다. 러시아도 찾지 않습니다. 그들은 미국을 찾습니다. 늘 그렇습니다. 미국이 세계를 이끌고 있습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나라입니다.”
이 원칙은 환경 재난이나 인도주의 재난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필리핀에 태풍이 닥칠 때 필리핀 사람들이 재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누가 돕는지 보십시오. 아이티에서 지진이 일어날 때 아이티 재건을 돕는 일에 누가 앞장서는지 보십시오. 그게 우리에게 요구되는 바요 우리가 ‘굴러가는’ 방식입니다. 그런 방식이 우리를 미국인으로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했던 오바마가 10월 중순엔 이란 측에 직접 도움을 청했다. 오바마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에게 IS와의 전쟁에서 공통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미국과 이란의 폭넓은 화해를 제안하는 밀서를 보냈다. 이란은 당연히 그 제안을 거부했다. 게다가 밀서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 공화당도 오바마의 그런 행동을 두고 터무니없는 자기비하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미국을 ‘쇠락하는 초강대국’으로 간주하는 이란의 오만함을 부추길 뿐이라는 지적이었다.
실질적으로 바로 그게 미국이 ‘굴러가는’ 방식이다. 다중심 세계에서 홀로 행동에 나서면서 전쟁에선 승리하지만 평화는 빼앗기고 궂은일을 도맡아서 하지만 다른 나라가 어부지리를 얻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국과 러시아(두 나라 모두 이슬람주의자들의 반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만이 아니라, 심지어 이란도 그 득을 본다(이라크 침공의 결과는 궁극적으로 이라크를 이란의 정치적 지배 아래 두는 꼴이 됐다).
미국은 과거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그런 일을 겪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 점령에 항거하는 게릴라 조직 무자헤딘을 미국이 도운 것이 결국 탈레반의 탄생으로 이어지지 않았는가.
이런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글로벌 경제에서 미국의 역할이 달라졌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 세계적으로 하나의 경제 주기가 끝나가고 있다. 1970년대 초에 시작된 주기다. 아테네대의 경제학자 야니스 바로우파키스가 말한 ‘글로벌 미노타우로스(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를 한 괴물)’가 태어난 시점을 말한다. 바로우파키스는 1980년대 초부터 2008년까지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한 무시무시한 괴물 같은 원동력을 그렇게 불렀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는 석유위기와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에도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의 시대만이 아니었다. 1944년 브레튼우즈협정으로 미국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실시됐던 금본위제(온스당 35달러)가 1971년 닉슨 전 대통령에 의해 폐지된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기본 기능에 훨씬 과격한 변화가 있으리라는 조짐이었다.
미국은 남아도는 달러를 유럽과 아시아에서 재활용했지만 1960년대 말이 되자 그런 관행을 더는 지속할 수 없었다. 미국 경제에서 흑자가 적자로 돌아섰다. 1971년 미국 정부는 대담한 전략적 조치로 이런 하락세에 대응했다. 늘어나는 적자를 메우려고 노력하는 대신 거꾸로 적자를 늘려가기로 결정했다.
그들에게 누가 돈을 댔을까? 나머지 세계가 댔다.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 미국의 적자를 메우려고 두 대양을 끊임없이 넘나드는 자본의 영구 이전을 통해서 그렇게 했다. 미국은 국내 소비를 지탱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로부터 매일 10억 달러를 흡수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해서 미국은 세계경제를 지속시키는 케인스식 소비대국이 됐다.
이런 자본 유입은 복잡한 경제 메커니즘에 의존한다. 미국이 안전하고 안정적인 중심추로 신뢰를 받기 때문에 아랍 산유국부터 서유럽과 일본, 지금은 심지어 중국까지 모든 다른 나라는 남아도는 돈을 미국에 투자한다. 이런 신뢰는 경제가 아니라 주로 이념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미국은 제국의 역할을 정당화하는 문제에 부닥쳤다. 미국은 세계 어디서든 영구한 전쟁상태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모든 다른 정상적인 국가들의 범세계적인 보호자를 자임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통화로서 미화 달러의 으뜸가는 가치에 기초한 이런 세계 시스템은 완전히 확립되기도 전에 무너지면서 다른 것으로 대체되고 있다. 과연 무엇으로 대체되고 있는가? 이게 바로 지금 진행중인 세계적인 긴장의 원인이다.
지금 우리는 ‘미국의 세기’가 끝나면서 다중심 체제의 글로벌 자본주의가 서서히 형성돼 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미국, 유럽, 중국, 어쩌면 라틴아메리카가 각각 독특한 형태의 자본주의를 상징한다. 미국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유럽은 복지국가의 잔재, 중국은 ‘아사아적 가치’(독재)를 내세운 자본주의, 라틴아메리카는 포퓰리스트 자본주의를 상징한다.
이런 세계에선 옛 강대국과 새로 부상한 강대국들이 서로의 힘을 시험하며 자신의 글로벌 원칙을 강요하려 들고 대리인(물론 작은 나라들을 말한다)을 통해 그런 원칙을 시험한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은 1900년께와 섬뜩할 정도로 닮았다. 당시 새로 부상하는 국가들(특히 독일)이 대영제국의 패권에 도전하면서 식민지 파이의 일부를 원했다. 발칸반도가 그들의 전쟁터 중 하나였다. 지금은 대영제국의 역할을 미국이 떠맡았고 새로 부상하는 강대국의 역할은 러시아와 중국이 떠맡았다. 그리고 당시의 발칸반도가 지금은 중동이다. 지정학적 영향력을 확보하려던 과거의 투쟁 그대로다. 미국만이 그런 것도 아니다. 러시아도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자자한 원성을 듣고 있다. 어쩌면 발트해 국가들의 목소리도 곧 듣게 될지 모른다.
뜻밖에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의 상황과 유사한 점도 있다. 지난 몇 달 전부터 언론은 제3차 세계대전의 위협을 계속 경고해왔다. “러시아 공군의 슈퍼무기: PAK-FA 스텔스 전투기를 경계하라” 또는 “러시아는 실전 준비를 갖췄다: 다가오는 미국과의 핵전쟁에서 이길 가능성 커” 같은 제목이 숱하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푸틴이 서방을 향한 도발로 비치는 발언을 일삼고, 저명한 서방 정치인이나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관리가 러시아 제국주의의 야망을 경고한다.
러시아는 나토의 봉쇄에 관해 우려를 표하고, 러시아의 이웃나라들은 러시아의 침공을 두려워한다. 이런 경고의 섬뜩한 어조가 긴장을 더욱 고조시킨다. 1차대전이 일어나기 전 몇 십 년과 비슷하다. 둘 다의 경우 똑같은 미신적인 메커니즘이 작용한다. 세계대전에 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면 그런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우리는 그런 전쟁의 위험을 너무도 잘 안다. 하지만 실제로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바로 그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새로 부상한 강대국과 옛 강대국들의 경쟁에 제3의 요인이 끼어들면서 문제는 더 복잡해졌다. 바로 제3세계의 과격 원리주의 운동이다. 그들은 새 강대국이든 옛 강대국이든 전부 배격하지만 그중 일부와 전략적 협정을 맺기도 한다. 우리가 처한 곤경이 더 모호해지고 힘들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진행중인 싸움에서 누가 누구 편인지 알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시리아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과 IS 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IS와 이란 중에서 어느 쪽을 밀어야 할까? 그런 모호함은 군비 지출을 크게 증가시키고 전쟁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게다가 아군의 피해가 없는 ‘깔끔한’ 첨단기술 전쟁을 치를 수 있도록 해주는 무인공격기 등 최첨단 무기의 등장도 그런 가능성을 높인다.
우리가 이런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첫 단계는 ‘전략적 위험’에 관한 합리성의 탈을 쓴 담론을 떨쳐버리고 위협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처럼 계속 ‘굴러간다면’ 우리는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가망이 없다. 따라서 해결책은 더 신중을 기하고 위험한 행동을 삼가는 동시에 전체 상황을 위험하게 만드는 상호연결의 폭발성을 충분히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전체 상황의 좌표를 옮기는 길고도 어려운 일에 착수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파국을 면할 길이 없다.
9·11 테러 당시 유나이티드항공 93편은 샌프란시스코를 목적지로 뉴어크 국제공항에서 출발했으나 이륙 40여 분 뒤 테러리스트들에게 공중 납치돼 워싱턴 DC로 기수를 돌렸다. 승객들은 조종권을 되찾으려고 납치범들을 공격했다. 그러나 결국 이 항공기는 펜실베이니아주 벌판에 추락해 납치범을 포함한 승객과 승무원 44명 전원이 사망했다. 승객들이 비행기 납치범들을 공격하기 직전 승객 중 한 명인 토드 비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여러분 준비됐어요? 한번 ‘굴러봅시다’”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말한 “그게 미국이 ‘굴러가는’ 방식”이라는 말과 우연하게도 일치한다. 그게 우리가 ‘굴러가는’ 방식이니 그렇게 ‘굴러보자’고 우리는 말할지 모른다. 그러면 비행기만이 아니라 지구 전체가 추락할 수 있다.[필자 슬라보이 지젝은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이자 문화비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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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칙은 환경 재난이나 인도주의 재난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필리핀에 태풍이 닥칠 때 필리핀 사람들이 재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누가 돕는지 보십시오. 아이티에서 지진이 일어날 때 아이티 재건을 돕는 일에 누가 앞장서는지 보십시오. 그게 우리에게 요구되는 바요 우리가 ‘굴러가는’ 방식입니다. 그런 방식이 우리를 미국인으로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했던 오바마가 10월 중순엔 이란 측에 직접 도움을 청했다. 오바마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에게 IS와의 전쟁에서 공통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미국과 이란의 폭넓은 화해를 제안하는 밀서를 보냈다. 이란은 당연히 그 제안을 거부했다. 게다가 밀서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 공화당도 오바마의 그런 행동을 두고 터무니없는 자기비하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미국을 ‘쇠락하는 초강대국’으로 간주하는 이란의 오만함을 부추길 뿐이라는 지적이었다.
실질적으로 바로 그게 미국이 ‘굴러가는’ 방식이다. 다중심 세계에서 홀로 행동에 나서면서 전쟁에선 승리하지만 평화는 빼앗기고 궂은일을 도맡아서 하지만 다른 나라가 어부지리를 얻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국과 러시아(두 나라 모두 이슬람주의자들의 반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만이 아니라, 심지어 이란도 그 득을 본다(이라크 침공의 결과는 궁극적으로 이라크를 이란의 정치적 지배 아래 두는 꼴이 됐다).
미국은 과거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그런 일을 겪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 점령에 항거하는 게릴라 조직 무자헤딘을 미국이 도운 것이 결국 탈레반의 탄생으로 이어지지 않았는가.
이런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글로벌 경제에서 미국의 역할이 달라졌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 세계적으로 하나의 경제 주기가 끝나가고 있다. 1970년대 초에 시작된 주기다. 아테네대의 경제학자 야니스 바로우파키스가 말한 ‘글로벌 미노타우로스(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를 한 괴물)’가 태어난 시점을 말한다. 바로우파키스는 1980년대 초부터 2008년까지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한 무시무시한 괴물 같은 원동력을 그렇게 불렀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는 석유위기와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에도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의 시대만이 아니었다. 1944년 브레튼우즈협정으로 미국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실시됐던 금본위제(온스당 35달러)가 1971년 닉슨 전 대통령에 의해 폐지된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기본 기능에 훨씬 과격한 변화가 있으리라는 조짐이었다.
미국은 남아도는 달러를 유럽과 아시아에서 재활용했지만 1960년대 말이 되자 그런 관행을 더는 지속할 수 없었다. 미국 경제에서 흑자가 적자로 돌아섰다. 1971년 미국 정부는 대담한 전략적 조치로 이런 하락세에 대응했다. 늘어나는 적자를 메우려고 노력하는 대신 거꾸로 적자를 늘려가기로 결정했다.
그들에게 누가 돈을 댔을까? 나머지 세계가 댔다.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 미국의 적자를 메우려고 두 대양을 끊임없이 넘나드는 자본의 영구 이전을 통해서 그렇게 했다. 미국은 국내 소비를 지탱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로부터 매일 10억 달러를 흡수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해서 미국은 세계경제를 지속시키는 케인스식 소비대국이 됐다.
이런 자본 유입은 복잡한 경제 메커니즘에 의존한다. 미국이 안전하고 안정적인 중심추로 신뢰를 받기 때문에 아랍 산유국부터 서유럽과 일본, 지금은 심지어 중국까지 모든 다른 나라는 남아도는 돈을 미국에 투자한다. 이런 신뢰는 경제가 아니라 주로 이념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미국은 제국의 역할을 정당화하는 문제에 부닥쳤다. 미국은 세계 어디서든 영구한 전쟁상태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모든 다른 정상적인 국가들의 범세계적인 보호자를 자임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통화로서 미화 달러의 으뜸가는 가치에 기초한 이런 세계 시스템은 완전히 확립되기도 전에 무너지면서 다른 것으로 대체되고 있다. 과연 무엇으로 대체되고 있는가? 이게 바로 지금 진행중인 세계적인 긴장의 원인이다.
지금 우리는 ‘미국의 세기’가 끝나면서 다중심 체제의 글로벌 자본주의가 서서히 형성돼 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미국, 유럽, 중국, 어쩌면 라틴아메리카가 각각 독특한 형태의 자본주의를 상징한다. 미국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유럽은 복지국가의 잔재, 중국은 ‘아사아적 가치’(독재)를 내세운 자본주의, 라틴아메리카는 포퓰리스트 자본주의를 상징한다.
이런 세계에선 옛 강대국과 새로 부상한 강대국들이 서로의 힘을 시험하며 자신의 글로벌 원칙을 강요하려 들고 대리인(물론 작은 나라들을 말한다)을 통해 그런 원칙을 시험한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은 1900년께와 섬뜩할 정도로 닮았다. 당시 새로 부상하는 국가들(특히 독일)이 대영제국의 패권에 도전하면서 식민지 파이의 일부를 원했다. 발칸반도가 그들의 전쟁터 중 하나였다. 지금은 대영제국의 역할을 미국이 떠맡았고 새로 부상하는 강대국의 역할은 러시아와 중국이 떠맡았다. 그리고 당시의 발칸반도가 지금은 중동이다. 지정학적 영향력을 확보하려던 과거의 투쟁 그대로다. 미국만이 그런 것도 아니다. 러시아도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자자한 원성을 듣고 있다. 어쩌면 발트해 국가들의 목소리도 곧 듣게 될지 모른다.
뜻밖에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의 상황과 유사한 점도 있다. 지난 몇 달 전부터 언론은 제3차 세계대전의 위협을 계속 경고해왔다. “러시아 공군의 슈퍼무기: PAK-FA 스텔스 전투기를 경계하라” 또는 “러시아는 실전 준비를 갖췄다: 다가오는 미국과의 핵전쟁에서 이길 가능성 커” 같은 제목이 숱하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푸틴이 서방을 향한 도발로 비치는 발언을 일삼고, 저명한 서방 정치인이나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관리가 러시아 제국주의의 야망을 경고한다.
러시아는 나토의 봉쇄에 관해 우려를 표하고, 러시아의 이웃나라들은 러시아의 침공을 두려워한다. 이런 경고의 섬뜩한 어조가 긴장을 더욱 고조시킨다. 1차대전이 일어나기 전 몇 십 년과 비슷하다. 둘 다의 경우 똑같은 미신적인 메커니즘이 작용한다. 세계대전에 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면 그런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우리는 그런 전쟁의 위험을 너무도 잘 안다. 하지만 실제로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바로 그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새로 부상한 강대국과 옛 강대국들의 경쟁에 제3의 요인이 끼어들면서 문제는 더 복잡해졌다. 바로 제3세계의 과격 원리주의 운동이다. 그들은 새 강대국이든 옛 강대국이든 전부 배격하지만 그중 일부와 전략적 협정을 맺기도 한다. 우리가 처한 곤경이 더 모호해지고 힘들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진행중인 싸움에서 누가 누구 편인지 알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시리아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과 IS 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IS와 이란 중에서 어느 쪽을 밀어야 할까? 그런 모호함은 군비 지출을 크게 증가시키고 전쟁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게다가 아군의 피해가 없는 ‘깔끔한’ 첨단기술 전쟁을 치를 수 있도록 해주는 무인공격기 등 최첨단 무기의 등장도 그런 가능성을 높인다.
우리가 이런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첫 단계는 ‘전략적 위험’에 관한 합리성의 탈을 쓴 담론을 떨쳐버리고 위협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처럼 계속 ‘굴러간다면’ 우리는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가망이 없다. 따라서 해결책은 더 신중을 기하고 위험한 행동을 삼가는 동시에 전체 상황을 위험하게 만드는 상호연결의 폭발성을 충분히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전체 상황의 좌표를 옮기는 길고도 어려운 일에 착수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파국을 면할 길이 없다.
9·11 테러 당시 유나이티드항공 93편은 샌프란시스코를 목적지로 뉴어크 국제공항에서 출발했으나 이륙 40여 분 뒤 테러리스트들에게 공중 납치돼 워싱턴 DC로 기수를 돌렸다. 승객들은 조종권을 되찾으려고 납치범들을 공격했다. 그러나 결국 이 항공기는 펜실베이니아주 벌판에 추락해 납치범을 포함한 승객과 승무원 44명 전원이 사망했다. 승객들이 비행기 납치범들을 공격하기 직전 승객 중 한 명인 토드 비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여러분 준비됐어요? 한번 ‘굴러봅시다’”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말한 “그게 미국이 ‘굴러가는’ 방식”이라는 말과 우연하게도 일치한다. 그게 우리가 ‘굴러가는’ 방식이니 그렇게 ‘굴러보자’고 우리는 말할지 모른다. 그러면 비행기만이 아니라 지구 전체가 추락할 수 있다.[필자 슬라보이 지젝은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이자 문화비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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