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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삼의 시네마 게임이론 - ‘돌격 앞으로’ 지시에 ‘그런데 왜요?’ 반박 필수

박용삼의 시네마 게임이론 - ‘돌격 앞으로’ 지시에 ‘그런데 왜요?’ 반박 필수

2013년 개봉한 영화 <올드보이(oldboy)> . 박찬욱 감독이 2003년 만든 한국판 올드보이를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광고회사 간부였던 죠 두셋(조쉬 브롤린)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에게 납치돼 영문도 모른 채 독방에 감금된다. 한국판 최민식처럼 그도 역시 TV만 덩그러니 놓인 방에 갇혀 만두만 먹으며 20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TV를 보다가 자신의 와이프가 무참하게 살해 당하고 그 누명이 고스란히 자신에게 씌워졌음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죠는 이를 갈며 복수를 꿈꾼다.

사실 어렵게 탈출을 시도할 필요는 없었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커다란 가방 안에 갇혀 바깥 세상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잡혀간 이유도, 20년 만에 풀려난 이유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죠는 거리에서 만난 친절한 여의사인 마리(엘리자베스 올슨)의 도움으로 차근차근 복수를 향해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그 유명한 장도리 액션 장면이 할리우드 식으로 재해석되어 현란하게 펼쳐지는 것은 물론이다.
 ‘피로스의 승리’도 비슷한 개념
게임이론에 나오는 유명한 개념 중에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가 있다. 경쟁에서 이기긴 했으나 과도한 비용이나 대가를 치르는 바람에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리는 현상을 일컫는다. 비슷한 개념으로는 ‘피로스(Pyrrhus)의 승리’가 있다. 피로스는 고대 그리스 지방인 에피로스의 왕이었는데, 로마와의 두 번에 걸친 전쟁은 모두 이겼지만 대신 장수들을 많이 잃어 가장 중요한 최후의 전투에서는 패한다. 현실에서는 이렇듯 실속 없는 승리나 상처뿐인 영광이 종종 발생한다. 경쟁에 눈이 멀어 궁극적인 이해득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영화에서 죠를 감금했던 아드리안(샬토 코플리)은 어린 시절 죠의 철없는 행동으로 인해 가족 전체가 큰 고통을 받았고, 그 앙갚음으로 죠를 20년 간이나 괴롭혔다. 하지만 아드리안은 마지막 순간에 자살을 택해 승리의 쾌감을 오래 누리지 못한다. 20년 복수를 향해 악당의 졸개들을 없애며 승리감을 만끽하던 죠도 아드리안의 사연 앞에서 괴로워하며 스스로 교도소로 걸어 들어가는 길을 택한다. 결국 이 영화에서는 어느 누구도 (심지어 거듭되는 반전에 번번이 속은 관객까지도) 승자가 되지 못하고, 모두가 ‘승자의 저주’에 빠져 개운치 않은 결말을 맞게 된다.

‘승자의 저주’가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멕시코만의 석유 시추권 입찰에서부터다. 당시는 정확한 석유 매장량을 측정할 방법이 없어 어림짐작으로 가늠해 입찰을 했는데, 엄청난 비용을 들여 시추권을 따내고 보니 석유 매장량이 터무니 없이 적어 큰 손해를 보게 된 데에서 유래했다. 이후 경제·경영 분야에서 이 용어가 자주 쓰였다. 대체로 낙찰 비용 대비 이득을 얻지 못했을 때, 혹은 과도한 비용을 들여 인수합병을 했는데 시너지 효과는커녕 회사가 부실해지거나 큰 후유증을 겪게 될 때 많이 쓰인다.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약 6조4000억에 대우건설을 인수했다. 그 과정에서 3조원가량을 차입한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그룹 전체가 부실 위기에 몰려 금호산업은 워크아웃에 들어 갔고, 대우건설도 인수 4년여 만인 2010년에 산업은행에 재매각해야 했다. 웅진그룹은 2007년 론스타로부터 예상가의 두 배인 6600억원을 지급하고 극동건설을 인수했다. 하지만 곧바로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자금난에 빠졌고, 결국 2012년에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 밖에도 동부그룹의 아남반도체 인수(2007년),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시도(2008년), 현대차그룹의 삼성동 한전 부지 인수(2014년) 당시에도 승자의 저주가 이슈가 됐다.

그렇다면 ‘승자의 저주’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인수할 제품이나 기업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수합병의 경우를 보면 피인수 기업의 역량과 미래 잠재력, 인수 후의 시너지 효과 등을 평가하는데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항상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게 마련이어서 인수하겠다는 마음을 먹는 순간 실제 가치 대비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마는 것이다. 세일기간에 뭐에 홀린듯이 사들였다가 차곡차곡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애물단지들을 돌아보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시장에 선보이고, 해외로 사업을 확장하고, 인수합병을 통해 사업 규모와 범위를 넓히고 싶은 것은 기업가들의 본능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약간이라도 무리를 했다가는 여지없이 ‘승자의 저주’에 걸려들고 만다.
 ‘해서는 안 되는 이유’까지 깊이 고민해야
‘승자의 저주’를 피하는 방법은 욕심을 자제하는 것 밖에는 없다.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는 의사결정을 내릴 때 ‘해야 하는 이유’와 더불어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함께 고민하는 균형감각이 필수다. 장사 하루 이틀 하고 말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최근 웅진과 STX그룹의 몰락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임직원들뿐만아니라 기업가 정신에 목말랐던 한국 경제에 커다란 손실이었다. 위에서 ‘돌격 앞으로’를 외칠 때 누군가 ‘그런데 왜요?’라고 물을 수 있었다면 모처럼의 단비 같았던 샐러리맨 신화가 그렇게 속절없이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욕속부달(欲速不達), 서두르면 이르지 못한다. 경영진의 판단을 점검하고 견제하며 모든 위험 요소를 사전에 거르는 안전장치를 갖춰야 한다. 이때 의사결정 유형별로 자주 발생하는 오류들을 미리 체크리스트로 만들고, 의사결정의 매 단계마다 꼼꼼히 따져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상명하복이나 일사불란의 문화는 ‘승자의 저주’를 부를 개연성이 높다. 악마의 옹호자(Devil’s advocate),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 워 게임(War game), 역할 전이(Role reversal) 등의 방법을 통해 조직내 건강한 의견 불일치를 인위적으로 조장해야 한다. 아울러 투자 관련 기획을 회사 내 복수 부서에 같이 맡기거나, 최종 의사결정 때 참석자 간 무기명 찬반투표 형식을 도입해서 힘있는 특정 인사의 일방적 견해에 휩쓸릴 위험에 대비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자, 이제 영화 뒷얘기 하나. 할리우드판으로 리메이크된 <올드보이> 는 원작의 날 선 느낌은 줄고 스토리 위주로 나아간 측면이 있다. 그래서인지 할리우드에서는 그다지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고, 박찬욱 감독의 영상, 이미지, OST 등에 한참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됐다는 사실 자체는 반가운 일이다. 한국판과 할리우드판을 번갈아 다시 보면서 최민식 대 조쉬 브롤린, 유지태 대 샬토 코플리, 강혜정 대 엘리자베스 올슨의 연기를 비교 평가해보실 것을 권한다.

박용삼K AIST 경영공학 박사로 포스코경영연구소 산업전략연구센터 수석연구원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정보통신 기술정책 수립 업무를 맡았다. 포스코에서 10년 넘게 신사업·신기술 투자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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