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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시장의 다크호스들 - 파이 커진 아시아 항공시장에 저비용항공사 힘찬 날갯짓

항공시장의 다크호스들 - 파이 커진 아시아 항공시장에 저비용항공사 힘찬 날갯짓

국내 항공시장이 유례없는 성장기를 구가하고 있다. 180조원에 달하는 아시아 항공시장을 놓고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저가항공의 특성을 살려 호황기를 구가하는 저비용항공사들의 현장을 동행 취재했다.
저비용항공사들의 공격적인 경영이 시작됐다. 사진은 미국 시애틀 보잉사에서 티웨이항공이 새 항공기를 인도받는 장면이다. / 티웨이항공 제공
미국 시애틀에 위치한 보잉사의 보잉필드 사무실에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테이블에 앉은 항공회사 전문가들과 기술진이 각각의 서류 뭉치를 건네며 “체크! 플리즈”를 연발했다. 사무실 벽쪽에는 이들이 검토해야 할 서류들이 상자째 쌓여있었다. 사무실 밖으로 고개를 돌리자 기체 몸통 부분을 가로질러 ‘t’way’ 라고 선명하게 새겨진 항공기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 3월 7일(현지시간) 티웨이항공이 보잉사로부터 B737-800 새 항공기를 인도받는 현장이었다. 국내 저비용항공사(LCC)가 대부분 중고 항공기를 도입해 투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티웨이항공의 새 항공기 도입은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이로써 티웨이항공은 국내 저비용항공사 중 가장 젊은 기령의 항공기를 보유한 회사가 됐다.

보잉사 관계자로부터 세부적으로 나뉜 기술 서류를 넘겨받는 김형이 티웨이항공 전략실장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항공기를 운행할 기장과 동행한 기술진도 꼼꼼하게 서류를 검토했다. 기자가 방문한 이곳에는 티웨이항공 말고도 전 세계 항공사 푯말을 단 사무실이 길다란 복도를 따라 촘촘히 배치돼 있었다. 그만큼 세계 최대 항공사인 보잉사로부터 새 항공기를 인도를 기다리는 전 세계 나라의 항공사가 많다는 얘기다.

창밖에 멋진 위용을 뽑내는 새 항공기를 바라보던 기자에게 함철호(62) 티웨이항공 대표는 “저 항공기를 넘겨받으면 이제 우리 책임이다.(웃음) 가자마자 가장 붐비는 제주 노선에 투입할 예정이다. 신규 노선도 빨리 검토해 봐야겠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발언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티웨이항공 등 저비용항공사가 국내 시장 진출 10년 만에 거둔 눈분신 성과 때문이다. 저비용항공사들은 출발은 더뎠지만 국내선 시장에서는 국적 항공사를 상대로 이미 주도권을 빼앗아 왔고 국제선 시장에서도 1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할 만큼 가파르게 성장해왔다. 제주항공·진에어·에어부산·티웨이항공·이스타항공 등 국내 5개 저비용항공사 체제가 정착된 2010년부터 최근 5년간 이들 항공사 이용객 수는 매년 12%씩 성장해왔다. 이제는 국내 항공 수송의 절반 이상을 맡게 돼 작년에 벌써 국내 대형 항공사들의 실적을 뛰어넘어버린 상황. 특히 5대 저비용항공사가 경쟁적으로 뛰어든 김포~제주 노선의 경우 지난해에만 800만 명의 승객이 이용했다. 연간 이 노선을 이용하는 1200만 명 중 대부분이 저비용항공사를 이용한 셈이다.
저비용항공사의 과감한 새 항공기 도입
항공업계는 이 같은 추세라면 올해 처음으로 저비용항공사 이용 고객 ‘2000만 명 시대’를 맞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동시에 누적 탑승객 숫자도 총 1억 명을 돌파하게 된다. 저비용항공사가 국내 시장에 처음 진출했던 2005년 시장 점유율이 0.2%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절반 이상을 넘어선 시장점유율은 기적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신규 항공기를 도입한 함 대표의 과감한 결정도 무리가 아니다.

국제선 시장도 저비용항공사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일본·중국·동남아 노선을 중심으로 2010년 2%대에 불과했던 국제선 분담률도 지난해는 5배(약 11%) 가까이 성장했다. 해외여행객 10명 중 1명은 저비용항공사를 이용했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저비용항공사가 단순히 이용객이 늘어난 덕택에 큰 성장을 이룬 것도 아니다. 저비용항공사가 시장에 일으킨 가격 파괴 바람이 오히려 항공 시장을 키운 공이 더 크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05년 국적 항공사를 이용한 여행객 수는 약 3600만 명에 불과했지만, 지난해는 6000만 명을 넘어섰다. 단순한 계산으로 매년 5% 이상 성장했다는 얘기다. 국내 저비용항공사 도입 이전인 1996년부터 2004년 연간 여행객 성장률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다. 저비용항공사들이 저렴한 항공권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더 많은 고객이 항공여객 시장으로 유입되며 일어난 변화였다.
빠르게 성장하는 국내 항공시장
국내 저비용항공사 시장은 제주항공· 진에어·에어부산· 티웨이항공·이스타 항공 등 5개사가 주도하고 있다. / 중앙포토 제공
급격하게 성장한 중국경제도 저비용항공사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요우커’라 불리며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동북아 항공시장 가운데 한국·일본·중국을 잇는 노선이 ‘핫라인’으로 떠오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통적으로 해외여행을 즐기는 일본 중산층 관광객과 한류 여파로 폭증하는 중국인 관광객들까지 더해 지자 지난 한해 국내 저비용항공사들은 쉴 틈이 없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은 2011년 약 200만 명에서 2014년은 3배인 600만 명으로 늘어났다. 2014년 1~9월까지 한국을 찾은 일본 관광객만 200만 명인데 중국인 관광객은 이보다 1.5배(약 350만 명) 더 많다.

정부 지원도 한몫했다. 한국공항공사는 지방공항에 대한 무비자환승제도 확대를 정부에 건의해 작년에 양양·청주·무안·대구공항이 중국단체관광객 대상 무비자 환승공항으로 지정됐다. ‘외국인 무비자입국 제도’ 시한도 ‘120시간’으로 연장해 중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신규 항공노선 개설도 활발해 지방공항의 이용객이 급증하고 있다. 무비자 환승공항인 양양·청주·무안·대구공항의 중국노선 여객은 2014년에 약 100% 가까이 증가했다.

저비용항공사들도 늘어난 수요에 고무돼 있다. 작년부터 이들은 항공기 추가 도입과 신규 노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진에어는 2013년 하와이 등 중거리 노선을 위해 저비용 항공사 최초로 중장거리용 보잉 777-200ER 여객기를 도입해 인천~미국 괌 노선에 투입할 예정이다. 제주항공도 작년에 보잉 737-800 여객기 4대를 추가 도입해 총 21대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 2월에는 대구~중국 베이징 노선에 신규 취항했다. 에어부산·티웨이항공·이스타항공 등 다른 회사 역시 여객기 보유 수량을 늘리겠다는 의지다. 이들 역시 양양·대구·무안·청주공항을 근거지 삼아 틈새 노선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 대형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조차 서울을 기반으로 한 ‘제 2의 저비용항공사’ 설립까지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물론 노선만 만든다고 능사는 아니다. 실패사례를 잘 공개하지 않는 항공업계라지만 함 대표는 초기 신규 노선 실패 사례를 기꺼이 들려줬다. 그는 “수요를 예측하는 게 쉬워 보이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인천~일본 후쿠오카 노선이 처음에는 잘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하루에 두 편씩 배치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업계에 오래 있었다고 해서 수요를 정확하게 맞추는 점쟁이일 수 없는 노릇”이라며 아무리 시장이 좋아도 우리나라 저비용항공사들이 ‘땅 짓고 헤엄치기’ 식 경영을 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을 경계했다.
대형·저비용항공사 구분 없는 시대 온다
물론 모든 게 장빗빛은 아니다. 저비용항공사들의 사세 확장을 놓고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전 세계적인 유가 하락, 여행문화 활성화, 아시아 지역에서의 한류 붐 등 국내 항공시장이 발전할 수 있었던 환경적 요인들이 과연 끝까지 지속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다.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국내 대형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국내선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 미만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자회사를 포함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한항공의 진에어, 아시아나의 에어부산이 가진 시장 점유율을 합하면 약 70%까지 올라간다. 국내 저비용 항공사의 급격한 성장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의 아성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항공업계의 황금기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새로 인도받은 항공기를 살펴보고 내려오는 함 대표에게 물었더니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 항공시장에 비행기 수는 빠른 속도로 늘어날 거다. 틈새시장 하나 잡았다고 사업이 끝난 게 아니다. 언젠가는 대형·저비용항공사할 것 없이 서로 경쟁해야 한다”는 답변이 나왔다.

현재 국내 저비용항공사들이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탄탄한 권역별 항공시장이 있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국제선 저비용항공사 비중이 평균 30%대에 달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10%를 갓 넘었을 뿐이다. 해외 여행객 수가 늘고 값싼 항공편을 찾는 수요가 커지는 당분간은 저비용항공사들은 쉼 없이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시애틀 보잉 렌톤 공장 탐방기 - 저비용항공사들의 최선호 기종은 B737-800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보잉사 렌톤 공장은 B737 기종 생산을 전담하고 있다. 월 42대를 생산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율을 자랑하는 곳이다. / 보잉사 제공
‘2대.’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보잉사 렌톤 공장에서 하루에 생산해 내는 B737 대수다. 월별 생산 대수는 총 42대. 항공기 제작에 수개월에 걸릴 줄 알았던 기자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보안상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공장 내부를 둘러보는 탓에 보잉사 직원의 안내가 필요했다. 다이나 와이즈 보잉사 홍보담당 임원은 “안전 문제도 있고 크기가 상당한 항공기 생산 과정을 한눈에 보기에는 공장 2층이 좋다”며 기자를 계단 쪽으로 안내했다.

2층에 올라선 기자를 맞은 것은 한창 작업이 진행 중인 B737 동체들이었다. 부품과 기계들이 즐비했지만, 공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깨끗하고 규모가 웅장했다. 공장을 찾았던 3월 7일(현지시간) 오후에는 터키·중국 국적의 항공사가 주문한 기체 조립 생산 작업이 한창 중이었다. 도색되지 않은 기체 중 꼬리만 유일하게 항공사 로고가 칠해진 이유가 궁금해졌다. 와이즈는 “꼬리 날개 부분은 어느 항공사건 도색하는 부분이다. 그만큼 페인트 무게가 생산 초기부터 반영된다는 뜻이다. 시험 비행 때도 꼬리 날개에 가해지는 저항이 커 처음부터 칠해 놓는다”고 설명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치열한 현장생산 중인 기체 모양과 크기도 조금씩 달라 보였다. 와이즈는 “B737 기종에도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다”고 했다. 그는 “B737 기종도 크기나 목적에 따라 다른 모델로 주문받는다. 생산라인을 달리하는 것은 아니고 한 라인에서 다품종 생산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윙렛에 대한 설명도 이어갔다. “동체에서 나온 날개 끝이 수직으로 솟아오르게 한 것이 윙렛이다. 연료 효율을 높이는 장치로 티웨이항공을 비롯한 대부분 고객이 선택했다.” 와이즈는 실제 윙렛만을 달기 위해 입고시킨 기체도 보여줬다.

작년에 보잉사가 수주한 B737은 1000대가 넘었다. 아직도 주문한 항공사로 인도해야 하는 항공기만 4000여대가 넘는다. 과연 여기서 이 무지막지한 주문량을 감당할 수 있을까? 공장에 첫발을 내딛으며 들었던 ‘1일 생산량’에 더 보태는 얘기를 들었다.

와이즈는 기체가 일렬로 놓여있는 라인을 가리켰다. “예전엔 동체를 여러 대 가져다 놓고 한 자리에서 작업했다. 그러다 일렬로 늘어놓고 작업단계마다 이동시키는 것이 생산성이 높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쌓아놓은 수주량을 두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아니라는 듯 공장 안쪽으로 이동하며 설명했다. “공장 격납고 끝에서 입구 쪽을 보면 생산 과정을 한번에 볼 수 있다. 입구 쪽 비행기는 바퀴와 날개도 달리지 않았지만, 격납고 문 가까운 쪽에 가까울수록 완성체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방식으로 10년 전보다 생산성을 두 배 이상 늘렸다.”

날씨가 평소 좋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시애틀 인근이 이날만큼은 화창했다. 운이 좋았던지 부품 이동을 위해 격납고 문이 열리는 순간을 지켜볼 수 있었다. 문이 열리자 미국 워싱턴주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인 워싱턴호가 눈앞에 펼쳐졌다. 와이즈는 “이 문이 열릴 때는 부품을 이동시키거나 시험비행을 위해 기체를 뺄 때뿐”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2층 사무실에서도 많은 보잉사 직원들이 납품기일을 단축하기 위한 회의를 열고 있다.” 복도 옆 유리창 넘어 보이는 사무실을 보고 와이즈가 한 말이다. 실제 보잉사는 올해부터 생산 자동화 시스템을 새로 도입해 월간 생산 52대까지 늘릴 계획이다. 보잉사 렌톤 공장 사람들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력은 ‘현재진행형’이었다.

- 시애틀(미국)=김영문 포브스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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