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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루프’ 세상이 올까?

‘하이퍼루프’ 세상이 올까?

지난 9월, 해리 리드(Harry Reid) 미 상원 다수당 원내총무는 위풍당당한 집무실에서 가죽의자를 굴려 오리엔탈 양탄자가 깔린 바닥 위를 가로 질렀다. 인류의 운송수단을 영원히 바꿔놓을 새로운 아이디어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서였다.

스페이스X 엔지니어였던 브로건 뱀브로건이 미리보기 자료를 보여주겠다며 아이패드를 꺼냈다. 억만장자 반열에 오르기 직전인 벤처투자자 셰르빈 피셰바와 백악관 전임 부비서실장 짐 메시나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리드 상원의원의 반응을 살폈다. 벽에 걸린 초상화 속에서 한때 증기선 키잡이였던 마크 트웨인도 이 광경을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듯했다.

“이건 뭡니까?”라고 리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힘차게 아이패드를 가리켰다. 홈스크린에는 해가 뜰 무렵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멍한 표정으로 사막을 돌아다니는 사람들 사진이 있었다. “어, 그건 ‘버닝 맨’입니다”라고 엔지니어 뱀브로건이 답했다. 그리고 75세의 정치인에게 버닝 맨이란 그의 지역구 네바다주 블랙록 사막에서 노동절 전까지 일주일간 개최되는 축제라고 알려주었다. 프레젠테이션 내용은 이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남서부 지역에서 시작해 나중에는 전세계로 승객과 화물을 음속으로 보내주는 운송 수단이었다.

60분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자 리드는 뒤로 기대 앉으며 미소를 지었다. 이를 본 피셰바는 몸을 내밀어 라스베이거스에서 캘리포니아까지 150마일(241㎞) 구간 통행권을 가진 네바다주 사업가들에게 회사를 소개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리드는 그러겠다 답했고 둘은 악수를 나눴다. 꽤 최근까지도 과학 천재의 환상에 지나지 않았던 ‘하이퍼루프(hyperloop)’ 현실화를 위한 길에서 또 하나의 장애물이 사라졌다.

혹시 모르는 독자를 위해 설명하자면, ‘하이퍼루프’란 억만장자 기업가 엘런 머스크(Elon Musk)가 2013년 8월 58쪽 분량으로 된 백서에서 제안했던 과감한 아이디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공기압 튜브를 깔아 시속 760마일(약 1220㎞)의 속도로 승객을 이동시키는 방식이다. 한때 공상과학으로 치부됐던 이 아이디어는 실현 가능성이 있는 실질적 산업으로 성장했고, 이를 추진 중인 믿을 만한 업체도 3개나 있다. 3개 업체 중 하나가 바로 해리 리드의 집무실을 방문한 하이퍼루프 테크놀로지스다. 이번 기사와 함께 ‘비밀’의 커튼을 젖히고 나온 이들은 850만 달러의 사업자금을 가지고 올해 안에 8000만 달러의 자금을 모집할 계획이다. “필요한 팀, 도구, 기술을 갖췄다”며 “우리가 해낼 수 있다”고 뱀브로건은 말했다. 21세기형 우주개발 경쟁이 시작됐다.
 승객과 화물을 음속으로 보내주는 운송 수단
하이퍼루프가 얼마나 초기단계에 있는 지는 제대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다. 내진 설계부터 통행권 확보,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진공관을 날아갈 때 느끼는 멀미감 등, 엔지니어링과 물류 부문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만 수십 개에 달한다. 그러나 하이퍼루프가 세상에 몰고 올 변화가 얼마나 클 지도 제대로 설명하기 힘들다. 4대 운송수단(선박, 기차, 자동차, 비행기)의 발명으로 현대의 인류는 진보와 번영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들은 동시에 오염과 혼잡, 지연, 죽음도 가져왔다. 머스크가 ‘5번째 운송수단’이라 표현한 하이퍼루프는 비행기만큼 빠르고, 기차만큼 저렴하면서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고 배기관에서 어떤 탄소도 배출하지 않는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20분, 뉴욕에서 필라델피아까지 10분만에 주파할 수 있다면, 각 도시는 전철역처럼 느껴질 것이고 국경은 사라지며, 지역간 주택가격 격차와 인구과밀 문제도 함께 증발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완벽한 ‘하이퍼루프 환상’에도 부족한 게 하나 있다. 바로 엘런 머스크다. 테슬라 모터스와 스페이스X를 동시에 경영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는 하이퍼루프를 현실로 바꾸는 작업을 다른 사람에게 일임했고, 이번 기사에 관한 어떤 논평도 거절했다. 하이퍼루프를 구축하기 위해 경쟁하는 업체들을 보면 각자 계획은 아주 달라도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배어 나오는 머스크의 향기를 지울 수 없다.

실리콘밸리와 워싱턴에 있는 슈퍼스타를 끌어 모아 엄청난 라인업을 완성한 하이퍼루프 테크놀로지스는 가히 ‘드림팀’이라 할 수 있다. 드림팀 대부분은 머스크와 끈끈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우선, 우버(Uber) 투자로 억만장자 문턱까지 발돋움한 셰르빈 피셰바(40)가 있다. 그는 머스크와 ‘절친’ 관계이며, 머스크가 자신의 하이퍼루프 비전을 대중 앞에 발표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그가 시작한 셰르파 벤처스는 하이퍼루프 테크놀로지스와 빅데이터 분석업체 팔란티르 공동창업자 조 론스데일이 감독하는 포메이션 8의 시드 라운드(seed round, 창업 준비 단계 혹은 창업 직후 단계) 자금모집을 주관했다.

포브스 ‘30 Under 30(30세 이하 유망주 30인)’으로 지명됐던 청년 부호 론스데일은 하이퍼루프의 또 다른 열혈 팬이다. 여기에 오바마 대통령 2012년 재선 운동을 담당했던 메시나와 페이팔(PayPal)에서 머스크를 돕다가 특정 기업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보안성 높은 SNS인 야머(Yammer)로 대박을 터뜨린 데이빗 삭스가 공동회장으로 참여했다. 머스크가 이사회에 참여하는 엑스프라이즈 재단 창립자 피터 다이아만디스도 있고, 최근에는 스페이스 X에서 핵심 엔지니어로 활약했던 뱀브로건도 팀에 합류했다. 이들은 머스크에게 정기적으로 진척사항을 보고한다.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보고를 한 적이 있다.

이렇게 화려한 팀원 면면보다 훨씬 놀라운 건 하이퍼루프 테크놀로지스의 최초 미션이다. 이들은 머스크가 대중에 설명한 비전보다 훨씬 더 앞으로 나아가길 원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승객보다 화물 운송에 먼저 집중할 계획이다. 고속의 ‘화물 루프’는 육상 혹은 해저로 연결된다. 타래처럼 얽힌 강철 튜브가 해저에서 대양을 누비거나 해변을 오르내리며 초음속으로 컨테이너를 운송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아이폰이 필요하다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중국 선전에서 하루 만에 컨테이너에 담겨 미국으로 배송 된다.

이런 드림팀과 대항하는 더크 알본의 팀은 오합지졸로 보일 정도다. 역시 LA에 본부를 두고 비슷한 이름으로 출범한 하이퍼루프 트랜스포테이션 테크놀로지스(HTT)는 인해전술을 내세운다. HTT는 크라우드 소싱을 통해 지난 1년간 200명의 엔지니어, 디자이너에게 도움을 받았다. 알본이 세운 웹사이트 점프스타트펀드에서 크라우드 소싱을 시작한 HTT는 시스코나 보잉, 하버드에서 일하며 투잡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지분을 주는 구조를 정착시켰다. 이들은 각자 팀을 나누어 하이퍼루프 구축을 위해 재무모델, 객실 및 정차역 설계, 캡슐 엔지니어링 등의 다른 업무 분야를 책임진다. “언젠가는 상근 직원과 자금 모집이 필요할 것”이라고 알본은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현재 모델로도 잘 돌아가고 있다.” HTT는 올해 요하네스버그와 두바이에서 개최될 대규모 열차 박람회에서 최신 모델을 선보일 계획도 가지고 있다.

같은 기간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 엔지니어들은 빨리 행동을 시작하고 싶어 안달을 내는 중이었다. 결국 머스크는 1월 하이퍼루프 시험용 주행시설 구축을 위해 텍사스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정확한 날짜나 다른 자세한 내용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머스크가 2013년 하이퍼루프 컨셉을 발표하며 ‘오픈 소스’를 선택한 것처럼, 크기를 줄인 캡슐에 맞춰 제작할 시험용 주행트랙 또한 테스트를 원하는 모든 그룹에 개방할 예정이다.

텍사스에 구축될 시험용 주행트랙을 보면 포드 레이서들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반군 세력이 제국에 맞서는 영화 ‘스타워즈’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이제 막 싹을 틔우는 하이퍼루프 산업이 스타워즈를 연상시키다니 나쁜 일은 아니다. “이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프로세스를 들여다 보는 중”이라고 피셰바는 말했다. “위험은 있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다.”

공상과학 작가나 몽상가들은 오래 전부터 튜브를 통해 빠르게 이동하는 교통수단을 상상해 왔다. 로켓 개발 선구자 로버트 고다드는 1909년 머스크의 제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의 논문을 쓰기도 했다. 1972년 랜드 코퍼레이션의 로버트 솔터는 초음속으로 이동하는 대륙간 지하철 백트레인(Vactrain)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셰르빈 피셰바 또한 이들과 비슷한 몽상가였다. 닷컴 붐이 한창이던 때, 그는 공압 튜브를 통해 중요 문서를 샌프란시스코 전역으로 배달하는 ‘피펙스(Pipex)’ 아이디어를 제안했지만, 안타깝게도 프로젝트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다.
 몽상을 사업으로 만든 셰르빈 피셰바
그러나 피셰바는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실리콘밸리에서 그의 이름을 언급하면 마뜩잖은 표정을 짓는 사람이 많다. 말이 빠르고, 만나자마자 포옹을 해대면서 지나친 정보와 눈물을 쏟아내고, 겸손으로 가장한 자기자랑과 함께 쥬크 박스에 동전 넣듯이 시도 때도 없이 제이 지, 에드워드 노튼, 숀 펜 등의 유명인 친구 이름을 늘어놓기 때문이다.

“그가 타고난 홍보꾼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피셰바와 일해본 경험이 있는 실리콘밸리 투자자는 말했다. “그러나 홍보꾼에게는 장점도 많다.” 40억 달러 규모의 벤처투자사 멘로 벤처스에 가서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면 다들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처음에는 보잘 것 없었지만 결국 큰 열풍을 일으킨 택시 어플 우버를 일찍부터 점 찍은 피셰바가 멘로 벤처스 역사상 최고의 투자 결정을 내려줬기 때문이다.

2011년 말 2차 자금모집이 완료됐을 때만 해도 우버와 회사 투자자들은 피셰바의 투자 제안을 거절했었다. 그런데 알제리로 출장을 떠났던 피셰바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트래비스 칼라닉 우버 CEO였다. 지금 당장 자기가 있는 더블린으로 와주면 투자를 받겠다는 내용이었다. 피셰바는 즉각 다음 비행기를 잡아타고 아일랜드로 날아갔다. “셰르빈을 잘 몰랐다. (그러나) 그로부터 이메일을 받았고, 그가 아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그에 대해 들었다”고 칼라닉은 2012년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와 만나야 했다.” 마음이 잘 통했던 이들은 더블린 거리를 몇 시간이고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동이 트기전 주요 거래조건을 적은 계약서에 서명했다. 투자 계약으로 멘로 벤처스는 약 2억9000만 달러에 달하는 우버 지분 8%를 갖게 됐다. 해당 지분의 가치는 현재 420억 달러로 급등했다. “일단 비행기를 잡아 타라.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피셰바는 말했다. 우버와 기타 회사에서 그가 보유한 지분 가치는 현재 5억 달러에 달한다. 바닥에서 정상까지 올라온 아메리칸 드림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피셰바는 1980년 이란 혁명이 발생하면서 어머니와 형제자매 2명과 함께 미국으로 왔다. 그의 나이 6세 때였다. 1998년 버클리 대학을 졸업한 피셰바는 메릴랜드로 와서 다양한 회사를 창업했다. 이 중에는 초기 운영체제 웹OS, 소셜게 이밍네트워크, 웹스닷컴 등이 있다. 웹스닷컴은 결국 1억1750만 달러에 비스타프린트에 매각됐다. 2007년이 되자 그는 샌프란시스코로 옮겨와 벤처회사에 소규모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멘로 벤처스는 2011년 6월 그를 투자파트너로 고용했고, 피셰바는 텀블러와 워비 파커,우버를 멘로 벤처스에 안겨줬다. 피셰바는 2년 전 1억5300만 달러를 모집해 벤처투자펀드 셰르파 벤처스를 직접 시작했다. 함께 한 사람은 골드만삭스 벤처투자 담당이었던 스콧 스탠포드였다. 이들은 기존 벤처회사를 지원하는 대신 인재를 중심으로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프로젝트 중 한 개가 바로 하이퍼루프 테크놀로지스다.

하이퍼루프 테크는 피셰바 특유의 홍보 방식을 통해 시작됐다. 지난 수년간 그는 할리우드 스타가 요란하게 외교관 역할을 수행할 때마다 그를 따라 다니며 자신을 알렸다. 숀 펜이 벵가지에서 리비아 반군을 만나고 이집트 시위자들과 타히르 광장에 서 있을 때 그도 동행했다. 2012년 1월에는 숀 펜과 함께 엘런 머스크의 전용기를 타고 쿠바로 가서 미국인 수감자 일부를 석방해 달라고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 피셰바는 하이퍼루프를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 머스크에게 물었다. 머스크가 근 1년간 사적인 자리에서 넌지시 시사하던 프로젝트였다.
 엘런 머스크와 오바마를 설득하다
“머스크가 직접 할 시간이 없다고 말해서 ‘내가 하겠다. 기꺼이 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6개월간 피셰바는 머스크가 진행해온 하이퍼루프 연구 결과를 발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머스크는 너무 바쁘다며 계속 뒤로 물러섰다. 결국 피셰바는 자신답게 밀어붙이는 방식을 택했다. 2013년 5월 IT 정보사이트 올씽즈디지털 회의 무대에 오른 머스크는 하이퍼루프 언급을 또 다시 피했다. 그러자 피셰바는 질의응답 시간이 시작하는 즉시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물었다. “엘런, 하이퍼루프에 대해 청중들에게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겠어요?” 무대 위에서 피할 새도 없이 요청을 받은 머스크는 멈칫거리며 설명을 이어 나갔고, 8월까지 보고서를 공개하겠다고 마지못해 약속했다. 그렇게 하이퍼루프에 관한 아이디어가 세상에 공개됐다.

이후 머스크가 보고서를 공개하자 인터넷은 각종 논평과 찬양, 비난으로 넘쳐났다. 문제 될 건 없었다. 피셰바는 즉시 자신의 홍보꾼 기질을 발휘해 하이퍼루프를 알리기 시작했다. 민주당의 주요 후원자였던 그는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만나는 30분 면담을 하이퍼루프 홍보 기회로 활용했다. 그는 대통령이 그날 밤 머스크의 보고서를 읽고 그 다음 주 과학기술정책실에 보고서를 보내겠다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구글 창립자 래리 페이지와의 만남도 비슷하게 활용됐다. 둘은 샌프란시스코 베이에서 열린 아메리카컵 요트 경주를 지켜보며 하이퍼루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피셰바의 집요함은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론스데일이 시간과 돈을 투자하겠다며 나섰다. 셰르파 벤처스의 외부 파트너로 활약하고 있던 메시나도 합류했다. “셰르빈은 아주 일찍부터 하이퍼루프의 정치 이슈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메시나는 말했다. “그러나 하이퍼루프는 흔한 투자설득 작업과 다르다. 성공하기만 하면 온 세상을 바꿔버릴 수 있다. 화성으로 가자는 것도 아니고, 재빨리 결정을 내려 행동하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 피셰바의 40살 생일 파티는 영국령 버진제도에 있는 850에이커 면적의 개인소유 섬에서 열렸다. 파티에 참석한 머스크는 페이팔 COO였다가 야머를 마이크로소프트에 성공적으로 매각(12억 달러)한 데이빗 삭스를 영입해도 된다고 허락했다. “처음에는 자선재단인 줄 알았는데 실제 사업을 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삭스는 말했다. 그는 피셰바의 손을 잡고 하이퍼루프 테크의 공동회장직을 수락했다. 머스크는 공식적으로 하이퍼루프 프로젝트와 거리를 두던 지난 4월에도 LA 선셋 타워 호텔에서 피셰바, 삭스와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프로젝트 진행상황에 관해 보고를 들었다. “2~5마일 밖에 안 되는 구간이라도 시험주행으로 현실 가능성을 입증하기만 하면, 어떤 정치 장애물이나 규제도 극복할 수 있다고 엘런은 말했다”고 삭스는 설명했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개인 투자자의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모두 동의했다.” 그렇게 해서 피셰바가 지원한 투자금 사용처가 결정됐다. 그가 지원한 돈 850만 달러는 초기 엔지니어링 및 설계비로 쓰고, 8000만 달러는 시험용 주행트랙 건설 및 운영에 지출하기로 계획했다. 그럼 실제 구축은 누가? 스페이스X 엔지니어들이 입을 모아 추천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브로건이었다.
 세계 최고 엔지니어 브로건의 합류
피셰바, 브로건 뱀브로건. 모두 놀리기 쉬운 이름이다. 뱀 브로건은 ‘페퍼상사’ 음반에서 비틀즈가 했던 콧수염을 기르고 브이넥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 티셔츠는 깊게 파여 목에 걸린 곁쇠 목걸이가 훤히 보인다. 그러나 이런 외모 뒤에는 세계 최고 엔지니어의 눈빛이 감춰져 있다. 그는 팔콘(Falcon) 1의 2단 엔진 설계를 혼자서 완수했고, 우주선 ‘드래곤’의 열차폐 장치 설계 또한 최종 감독했다. “그는 누구도 보지 못한 디자인을 들고 나왔다”고 스페이스X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는 말했다.

머스크로부터 하이퍼루프 아이디어를 들은 뱀브로건은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LA까지 부자들의 이동시간을 20분 단축시키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돈 걱정 하나 없던 뱀브로건은 코웃음을 쳤다. 그렇다면 도시의 경계선을 바꾸고 컨테이너 운송산업을 새롭게 변모시키자는 피셰바의 설득은 어땠을까? 뱀브로건도 결국 넘어가고 말았다.

더크 알본은 키가 크고 느긋한 독일인이다. 그래서 그런지 언뜻 보면 배우 리암 니슨을 닮은 것도 같다. 그가 하이퍼루프 이론을 접한 건 뜻밖에도 펠렛 난로를 통해서였다. 이탈리아 펠렛 난로회사를 운영했던 그는 2009년 로스엔젤레스로 온 이후 가스터빈 업체 등 각종 신생회사 설립을 지원했다. 2012년 창업지원법(JOBS)이 제정되자 그는 100% 오픈소스를 통해 벤처회사를 설립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그가 2년 전 시작한 점프스타트펀드는 발명가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개해 대중으로부터 투자 혹은 파트너십을 찾도록 연결해 준다.

머스크가 공개한 하이퍼루프 백서는 대중을 상대로 홍보 프레젠테이션을 연 것과 다름 없었고, 이를 본 알본은 즉시 뛰어들었다. 그는 파트너 중 한 명을 통해 그윈 숏웰 스페이스X CEO를 알게 됐고, 그녀는 2013년 10월 투자 제안서 모집에 HTT가 참여하도록 허락했다. HTT는 재빨리 자원자 200여 명을 모아 제안서를 만들어 나갔다.

누구든 프로젝트를 위해 주당 10시간 이상을 투자하면 회사 지분을 주는 구조였다. 캘리포니아 허모서비치에 사무실을 둔 알본은 팀원들이 매주 전화 회의를 통해 의사 소통하고, 구글 문서로 결과물을 공유하도록 했다. “정직원으로 다른 곳에서 일하다 보니 상사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솔직히 말할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지금까지 1년간 HTT는 프로젝트의 다양한 부분을 다듬어 왔고, 업데이트가 있을 때마다 웹사이트에 공개했다. 하버드를 비롯한 유수 대학의 수학 전공생들이 꽤 정교한 경로 최적화 모델을 개발했다. 두 도시를 연결할 때 가장 저렴하고 멀미가 나지 않는 노선을 찾아내는 모델이다. 포틀랜드에 있는 전기모터 생산업체는 객차 캡슐의 추진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UCLA 건축과 학생들은 객차 내부를 목재로 꾸민 모형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이 졸업 후 이 일을 계속할 지는 확실치 않다.
 기술적 과제 해결 만만치 않아
비용분석팀은 승객 왕복용 튜브 건설비를 보수적으로 추산하면 마일당 4530만 달러라고 말했다. “철강 혹은 다른 소재를 활용해 혁신을 이루면 가격을 마일당 2000만 달러까지 낮출 수 있다”고 시스코에서 일하면서 HTT 상품 관리팀을 총괄하는 제이멘 쿠스는 말했다. 알본은 멕시코 시티와 케레타로를 잇는 120마일 튜브 건설에 대해 멕시코 정부 측에서도 관심을 표했다고 말했다. 분명한 약속을 받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잠재 투자자들이 크라우드소싱 모델을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함께 일하는 200명은 자신의 업무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정규직 30명보다 더 좋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알본은 말했다. 그러나 상대팀 프로들은 벌써부터 기 죽이는 말을 쏟아내고 있다. 뱀브로건은 HTT의 노력이 “우리 회사에 여름 인턴을 대주기 위한 작업”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 8월 하이퍼루프 테크는 뱀브로건의 차고(로스앤젤레스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지역 로스 펠리즈에 위치)에서 나와 6500 평방피트 면적의 얼음공장을 개조한 건물로 옮겨왔다. 새로 이사한 건물은 토플리스 바에서 한 블록 더 가면 있는 예술가 동네에 위치한다. 최근 재개발을 통해 세련된 고급 주거지로 거듭난 곳이다.

해리 리드와의 만남 이후 엄청난 기회가 찾아왔다. 상원의원은 이들을 안소니 마넬에게 소개시켜줬다.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스티브 윈의 럭셔리 리조트 건설을 담당하고 리오 호텔 & 카지노 CEO를 역임했던 사람이다. 마넬은 미 서부해안에서 베이거스까지 승객용 왕복 열차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근 30년간 전세계 고속 열차는 모두 쫓아다녔다”고 그는 말했다. 지난 10년간 마넬과 투자자들은 라스베이거스에서 LA 동부 교외를 잇는 190마일의 고속열차 프로젝트 익스프레스웨스트에 개인 투자금 5000만 달러를 쏟아 부었다. 투자금 대부분은 통행권 취득을 위해 쓰였다. 하이퍼루프 실험이 훨씬 흥미로운 계획인 만큼 협상은 계속 진행 중이다. “우리가 함께 일할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마넬은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를 잇는 머스크의 원래 계획이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으므로 이들이 계약을 체결하기만 한다면 상당한 중요성을 가질 것이다. 캘리포니아 고속철 건설 정책 준비작업에만 20년이 걸리는 이상한 정치를 논외로 하더라도 머스크는 하이퍼루프 튜브 노선을 각 도시에서 1시간 미만이 걸리는 곳으로 끌어올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미 혼잡한 도시 공간을 가로지르는 통행권을 취득하는 일은 아직 프로젝트의 장기적 난제로 남아있다. HTT가 예술가의 도움으로 만든 렌더링을 보면, 뉴욕 브루클린교의 그림자가 보이는 이스트 강을 가로질러 철탑이 우뚝 서 있고, 그 위에 영화 ‘헝거게임'에 나올 법한 하이퍼루프 튜브가 놓여 있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통행권 문제를 무시하면 하이퍼루프도 할 만하다. 다만, 무시할 수 없는 게 문제”라고 클리블랜드 항공우주국 산하 글렌 리서치 센터에서 항공우주 엔지니어로 일하는 저스틴 그레이는 말했다. 하이퍼루프 테크가 화물에 집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 항구를 목적지로 해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화물의 상당수가 라스베이거스를 가로 지르는 도로 혹은 철도를 이용하기 때문에 해당 노선을 자연스럽게 테스트할 수 있다.

그러나 통행권은 수많은 문제의 시작에 불과하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머스크가 정한 횡가속 최대 4.9㎨(혹은 0.5g)는 구토를 유발할 수 있다. 일본 도카이도 고속열차는 횡가속이 0.67㎨이고 속도는 시속 180마일밖에 되지 않는다. 시작부터 끝까지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겠다는 당찬 꿈도 꺾어야 할 지 모른다. 머스크는 튜브 위에 태양광 패널을 붙여 에너지를 공급받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뱀브로건은 하이퍼루프 전기 추진체계에서 사용하는 에너지가 너무 많아서 아무리 많은 태양광 패널을 붙여도 에너지가 부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력망에서 전기를 공급 받아야 하는데 이는 석탄을 사용한다는 뜻이다.

기술적 과제 해결 또한 만만치 않을 예정이다. 하이퍼루프 테크는 캡슐 아래쪽 슬레드(sled)를 통해 내보낸 얇은 공기막 위로 날아다니는 방식을 선택했다. 하드 드라이브 산업에서 모델을 일부 찾을 수는 있지만, 공기 베어링 위로 초음속에 가깝게 움직이는 열차를 연구소 밖의 실제 환경에서 시도해본 적은 없다. (뱀브로건 팀은 이번 여름 시험용 주행시설을 구축할 예정이다.) 튜브 생산 장비도 제작해야 한다. 아직 그런 장비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뭘 모르는지 알아낼 사람이 필요하다”고 뱀브로건은 말했다.

이런 게 우주개발 경주의 묘미다. 불가능해 보이던 일도 다 방법을 찾게 된다. 머스크는 자신의 돈 1억 달러를 투자해 팔콘 1 로켓을 만들었고, 성공에 이르기까지 4번의 실패를 극복해야 했다. “사진 어플은 그만 만들고 지구를 위한 일을 시작할 때”라고 하이퍼루프 테크 이사회 임원으로 있는 피터 디아만디스는 말했다.

돈은 문제가 되지 않을 전망이다. 피셰바가 우버 지분을 매도해 현금화시키면 하이퍼루프 테크가 8000만 달러 자금 중 절반을 직접 감당할 예정이다. 누구라도 하이퍼루프 프로젝트에서 실질적 결과를 보여준다면 수십억 달러의 돈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한 문명이 끝나고 다른 문명이 시작되는 걸 지켜보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운송 인프라는 새로운 교통망의 시작”이라고 피셰바가 말했다. 그가 한 말 중 가장 절제된 말이었다. “이제 돌아설 곳은 없다.”

- BRUCE UPBIN 포브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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