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와 마티스, 뭉크가 한자리에
피카소와 마티스, 뭉크가 한자리에
지난해 개관한 프랑스 파리의 루이뷔통 재단 미술관(The Fondation Louis Vuitton)은 독특한 디자인으로 눈길을 끌었다. 부아 드 불로뉴 숲에 자리 잡은 이 건물은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강철과 유리, 목재로 지었다. 마치 나무 사이에 떠 있는 안개처럼 불면 날아갈 듯 가벼운 느낌을 준다. 파리는 한 세대에 한 번꼴로 논란 많은 현대식 건물을 선보인다. 퐁피두 센터(1977년 공식 개관)나 몽파르나스 타워(1973년 완공)와 마찬가지로 이 초대형 현대식 미술관 역시 엇갈린 평가 속에 크게 주목 받았다.
얼마 전 ‘열정의 열쇠(Keys to a Passion) 전’(7월 6일까지)을 보러 이 미술관을 찾았다. 어느새 신축 건물의 음산한 분위기를 떨쳐버리고 파리의 일부로 녹아들어 문화생활의 터전으로 자리 잡은 듯 보였다. 미술관 건물이 파리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면서 사람들은 전시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됐다. ‘올해 꼭 가 봐야 할 전시회를 하나만 들라면…’ 하는 식으로 말하고 싶진 않지만 ‘열정의 열쇠’는 올해 문화행사의 백미로 꼽을 만하다.
큐레이터 쉬잔 파제는 초기 현대주의 미술의 걸작들을 모아 19세기 말~20세기의 금기를 깬 미술가들이 어떤 식으로 오늘날의 미술가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보여준다.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걸작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관람객에게 놀라움을 선사한다. 노르웨이 뭉크 미술관에서 대여해 온 에드바르트 뭉크의 대표작 ‘비명(The Scream)’ 앞에 서서 작품을 올려다 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으로 꼽히는 이 작품을 눈앞에 마주한 감흥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전시실을 옮겨 다닐 때마다 한눈에 척 알아볼 수 있는 여러 걸작 중 하나일 뿐이다.
일례로 나는 앙리 마티스의 ‘춤(La danse)’이 더 흥미로웠다. 러시아 기업가 세르게이 시슈킨의 의뢰로 제작된 야수파의 걸작이다. 그 옆에는 마티스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 만든 콜라주 작품이 걸렸는데 그보다 45년 앞서 제작된 작품과 똑같은 에너지와 활기가 흘러 넘친다. 마티스의 친구이자 적이었던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으로는 ‘책 읽는 여인(La Lecture)’ 등 회화 3점과 조각 1점이 전시됐다. 피카소의 에로틱한 주제는 관음증적 시선이 느껴지는 프랑시스 피카비아의 누드화에서도 볼 수 있다. 피카비아의 누드화는 저질스러우면서도 으스스하고, 뭔가를 축하하는 듯하면서도 외설스러우며, 약간 풍자적인 느낌도 준다.
어느 쪽으로 눈을 돌려도 걸작들이 넘쳐난다. 몬드리안의 회화 7점은 그가 점묘주의에서 본격적인 추상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중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제작된 작품 2점은 흰색 모자를 배경으로 검정색 십자가와 대시 기호들로만 구성됐다. 이 전시회에서는 또 20세기를 대표하는 몇몇 미술운동의 탄생 과정을 담은 비디오를 볼 수 있다. 유명한 미술가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가운데 잘 알려지지 않은 매혹적인 그림들도 눈에 띈다. 핀란드 여류 화가 헬레네 스티예르벡의 자화상 5점이 그런 예다. 1915년부터 30년에 걸쳐 제작된 이 그림들은 세월이 그녀의 얼굴과 화풍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보여준다.
현대미술 발전에 ‘열쇠’가 됐던 작품으로 뽑혀 한자리에 모인 이 그림들은 주제에 따라 4구역에 나눠 전시됐다. 인간의 존재적 고뇌를 주제로 한 1구역에는 뭉크의 ‘비명’을 필두로 프랜시스 베이컨, 알베르토 자코메티, 오토 딕스 같은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됐다. 이렇게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들을 보다가 2구역에 걸린 사색적인 그림들을 대하니 위로가 된다. 클로드 모네, 페르디낭 호들러, 에밀 놀데, 그리고 핀란드의 뛰어난 풍경화가 악셀리 갈렌-칼렐라 등의 작품이다. 3구역의 주제는 팝아트다. 이 전시회에서는 팝아트가 1910년대에 로베르 들로네의 ‘카디프 럭비팀 (The Cardiff Team)’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4구역은 음악과 미술의 만남을 주제로 했다. 바실리 칸딘스키의 작품 4점이 대표적이다.
작가 앙드레 말로는 ‘상상의 미술관’이라는 개념을 널리 알렸다. 오늘날의 가상 미술관이 그런 종류일 듯하다. 하지만 이 전시회는 뭐니뭐니해도 실제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진짜 작품이 최고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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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열정의 열쇠(Keys to a Passion) 전’(7월 6일까지)을 보러 이 미술관을 찾았다. 어느새 신축 건물의 음산한 분위기를 떨쳐버리고 파리의 일부로 녹아들어 문화생활의 터전으로 자리 잡은 듯 보였다. 미술관 건물이 파리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면서 사람들은 전시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됐다. ‘올해 꼭 가 봐야 할 전시회를 하나만 들라면…’ 하는 식으로 말하고 싶진 않지만 ‘열정의 열쇠’는 올해 문화행사의 백미로 꼽을 만하다.
큐레이터 쉬잔 파제는 초기 현대주의 미술의 걸작들을 모아 19세기 말~20세기의 금기를 깬 미술가들이 어떤 식으로 오늘날의 미술가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보여준다.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걸작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관람객에게 놀라움을 선사한다. 노르웨이 뭉크 미술관에서 대여해 온 에드바르트 뭉크의 대표작 ‘비명(The Scream)’ 앞에 서서 작품을 올려다 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으로 꼽히는 이 작품을 눈앞에 마주한 감흥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전시실을 옮겨 다닐 때마다 한눈에 척 알아볼 수 있는 여러 걸작 중 하나일 뿐이다.
일례로 나는 앙리 마티스의 ‘춤(La danse)’이 더 흥미로웠다. 러시아 기업가 세르게이 시슈킨의 의뢰로 제작된 야수파의 걸작이다. 그 옆에는 마티스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 만든 콜라주 작품이 걸렸는데 그보다 45년 앞서 제작된 작품과 똑같은 에너지와 활기가 흘러 넘친다. 마티스의 친구이자 적이었던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으로는 ‘책 읽는 여인(La Lecture)’ 등 회화 3점과 조각 1점이 전시됐다. 피카소의 에로틱한 주제는 관음증적 시선이 느껴지는 프랑시스 피카비아의 누드화에서도 볼 수 있다. 피카비아의 누드화는 저질스러우면서도 으스스하고, 뭔가를 축하하는 듯하면서도 외설스러우며, 약간 풍자적인 느낌도 준다.
어느 쪽으로 눈을 돌려도 걸작들이 넘쳐난다. 몬드리안의 회화 7점은 그가 점묘주의에서 본격적인 추상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중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제작된 작품 2점은 흰색 모자를 배경으로 검정색 십자가와 대시 기호들로만 구성됐다. 이 전시회에서는 또 20세기를 대표하는 몇몇 미술운동의 탄생 과정을 담은 비디오를 볼 수 있다. 유명한 미술가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가운데 잘 알려지지 않은 매혹적인 그림들도 눈에 띈다. 핀란드 여류 화가 헬레네 스티예르벡의 자화상 5점이 그런 예다. 1915년부터 30년에 걸쳐 제작된 이 그림들은 세월이 그녀의 얼굴과 화풍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보여준다.
현대미술 발전에 ‘열쇠’가 됐던 작품으로 뽑혀 한자리에 모인 이 그림들은 주제에 따라 4구역에 나눠 전시됐다. 인간의 존재적 고뇌를 주제로 한 1구역에는 뭉크의 ‘비명’을 필두로 프랜시스 베이컨, 알베르토 자코메티, 오토 딕스 같은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됐다. 이렇게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들을 보다가 2구역에 걸린 사색적인 그림들을 대하니 위로가 된다. 클로드 모네, 페르디낭 호들러, 에밀 놀데, 그리고 핀란드의 뛰어난 풍경화가 악셀리 갈렌-칼렐라 등의 작품이다. 3구역의 주제는 팝아트다. 이 전시회에서는 팝아트가 1910년대에 로베르 들로네의 ‘카디프 럭비팀 (The Cardiff Team)’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4구역은 음악과 미술의 만남을 주제로 했다. 바실리 칸딘스키의 작품 4점이 대표적이다.
작가 앙드레 말로는 ‘상상의 미술관’이라는 개념을 널리 알렸다. 오늘날의 가상 미술관이 그런 종류일 듯하다. 하지만 이 전시회는 뭐니뭐니해도 실제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진짜 작품이 최고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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