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셰프들이 뽑은 최고의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 - ‘정직함’이란 그릇에 담아낸 끊임없는 노력과 도전
‘최고 셰프들이 뽑은 최고의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 - ‘정직함’이란 그릇에 담아낸 끊임없는 노력과 도전
미슐랭에 등장하는 스타 셰프들이 존경한다는 요리계의 거장을 만났다. 한국의 미식가들에게 새로운 맛을 선보이기 위해 방한한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 그의 요리 비결은 바로 ‘정직함’이란 그릇에 담아낸 끊임없는 노력과 도전이었다. 롯데호텔서울 신관 35층에 자리한 프렌치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 그곳에서 ‘요리계의 피카소’라 불리는 피에르 가니에르(Pierre Gagnaire) 셰프를 만났다. 그는 올 초 프랑스 요리 전문지 ‘르 셰프(Le Chef)’가 레스토랑 평가서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별 2개 이상을 받은 전 세계 요리사 5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최고 셰프들이 뽑은 최고의 셰프’로 선정됐다.
1986년 창간된 르 셰프가 발표한 100대 셰프에는 누벨 퀴진의 아버지 폴 보퀴즈(Paul Bocuse), 스페인과 미국을 대표하는 호안 로카(Joan Roca)와 토마스 켈러(Thomas Keller), 4년째 세계 최고 레스토랑으로 꼽힌 덴마크 ‘노마(Noma)’의 창업자 르네 레드제피(Rene Redzepi) 등이 선정돼 피에르 가니에르의 뒤를 이었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셰프들을 제치고 세계 최고 요리사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는 어떤 사람일까. 직접 만나 본 그의 첫인상은 인자한 미소를 지닌 노신사였다. 식당 한편에서 후배 요리사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에선 인생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하지만 자신의 요리 철학을 설명할 때는 진지했고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눈빛이 강렬했다. 피에르 가니에르는 “내 요리가 높게 평가되는 것은 큰 기쁨이자 영광이지만 미식가나 평론가들로부터 최고의 셰프에 꼽히거나 명성을 위해 요리를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또 “셰프는 스스로 ‘내가 세계 최고’라고 자만하는 순간 거기서 끝이다. 나는 그저 내 레스토랑에 오는 고객들에게 최고의 만족감을 주기 위해 매순간 최선을 다한다. 언제나 정직하고 발전하는 요리를 할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피에르 가니에르는 1950년 프랑스 아피낙(Apinac)의 요리사 가문에서 태어났다. 18세부터 아버지가 운영하는 ‘르 클로 프뤼리(Le Clos Fleury)’ 레스토랑에서 일했다. 하지만 그는 집안 배경 덕분에 셰프가 됐고 명성을 얻었을 것이라는 편견을 경계했다. “집안의 맏이여서 레스토랑 경영에 참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5년 동안 일하면서 독립에 대한 열망만 더욱 커졌다.”
요리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열여섯 살 때 친구들과의 연말 모임에서였다. 냉장고에 들어있던 두세 가지 간단한 재료로 요리를 만들어내자 친구들이 모두 감탄하며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그 순간, 요리사란 직업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는 “내 요리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 행복하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 셰프로서 가장 보람된 순간이라고 말했다. “요리에 등수를 매기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요리가 주관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사실 나도 손님이 맛없다는 내색을 하면 걱정되고 초조하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내 요리를 맛보러 오는 고객들에게 만큼은 만족감을 주고 싶다. 어느 셰프가 그렇지 않겠나.”
자신만의 창조적인 요리를 선보이기 위해 피에르 가니에르는 1981년 생테티엔(Saint Etienne)에 레스토랑을 열었다. 이후 미슐랭 3스타까지 얻는데 성공했다.하지만 독립의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요리를 통해 보여주는 그의 ‘진보적인 성향’이 당시 고객들에겐 낯설게 느껴졌고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결국 레스토랑은 재정적 어려움으로 1996년에 문을 닫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는 이듬해 파리로 자리를 옮겨 호텔 발자크(Hotel Balzac)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열었다. 그리고 1년 만에 다시 미슐랭 3스타를 받으며 명성을 얻었다. ‘피에르 가니에르 레스토랑’의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요리 스타일은 미식가와 평론가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고 그를 세계적인 스타 셰프로 등극시켰다.
이러한 명성을 발판으로 2002년 런던의 복합문화공간 ‘스케치(Sketch)’, 2004년 파리의 비스트로(Bistro) 스타일 레스토랑 ‘가야(Gaya)’, 2005년 도쿄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 도쿄’, 2006년 홍콩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피에르’, 2008년 두바이의 ‘레플스 파 피에르 가니에르(Reflets Par Pierre Gagnaire)’, 2009년 라스베이거스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의 트위스트 파 피에르 가니에르(Twist Par Pierre Gagnaire) 등을 차례로 성공시키며 유럽을 넘어 아시아, 미주에까지 그만의 독특한 요리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레스토랑 운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즉 사람을 대하는 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상대를 어떻게 대하고 받아들이며 생각하고 관리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들이다. 나는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긍정적인 마음이나 믿음을 얻고 있다. 그 이후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창의성을 최대한 끌어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의 독특한 요리 스타일은 2001년 프랑스 대학의 에베 디스 분자미식학 교수와의 공동 작업에서 비롯됐다. 식재료의 질감과 음식 간의 궁합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과학적이고 혁신적인 접근법과 선과 색을 살린 예술적인 터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요리는 미술작품을 접시 위에 올린 것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덕분에 ‘요리계의 피카소’란 명예로운 별명도 생겼다. 식재료 간의 새로운 조합으로 그의 요리에서는 과감하면서도 섬세한 감각이 물씬 느껴진다. 보통 10개 혹은 15개 이상의 요리로 구성되는 긴 코스가 특징이다.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도록 작은 플레이트에 나눠서 내놓으며, 색감의 대비가 중요한 만큼 모든 접시는 흰색을 사용한다.
한국 방문 전에는 ‘2015 아트바젤 홍콩’에 참석해 이우환, 사이 톰블리, 시그마 폴케 등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9가지 새로운 메뉴를 선보인 바 있다. 간결미의 정점을 보여주는 이우환의 ‘대화’ 연작 곁에는 가공의 흔적을 최소화하고 재료 본연의 모습을 정갈하게 드러낸 요리가 놓였다. “요리사에게는 누구나 자신만의 우주가 있다. 아무리 강렬한 인상의 예술품일지라도 그것 하나만으로 새로운 요리의 모티브가 되진 못한다. 하지만 예술을 새로운 방향에서 접근하는 시도인지라 작업 내내 흥분되고 즐거웠다. 예술가들의 작품에 드러난 영감을 내가 경험한 그 나라의 자연환경에 대한 기억과 오버랩시켰다.”
그에게는 예술작품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경험이 영감의 원천이다. 또 새로운 요리에 대한 아이디어는 자신의 마음 상태에서 얻어진다고 믿는다. “마음 상태를 평화롭고 건강하게 가꾸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매일 작업하고, 매일 생각한다. 나의 삶 자체가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요리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를 반복해서 생각하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정직한 요리.’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의 요리 철학이다. 그는 “손님이 진심으로 ‘맛있다’고 탄성을 지르게 되는 요리, 그게 바로 정직한 요리”라며 “음미했을 때 맛있으면서도 즐거움이 들어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요리는 컴퓨터 작업이 아니다. 미리 예측하거나 설정할 수가 없다. 그런 측면에서 내 요리는 한마디로 ‘진심과 열정을 담은 요리’라고 할 수 있다. 나만의 요리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주고 싶다. 이를 테면 삶에 대한 욕구 같은 것이다.”
피에르 가니에르는 혼자 있을 때 편하게 먹는 음식으로 샐러드를 꼽았다. 싱싱한 재료로 조리 과정을 최소화한 요리를 즐기는 그는 한국 음식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번은 김치에서 영감을 받아 김치 마멀레이드(marmalade)를 구상한 적도 있다. 또 참기름으로 버무린 갑오징어, 김가루를 넣어 굳힌 설탕시럽으로 감싼 올리브 오일 파르페 등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국 음식 중 온갖 종류의 양념을 버무린 김치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비빔밥이나 돌솥에 누른 누룽지, 한국식 바비큐와 장어도 맛있었다. 특히 비빔밥은 처음에는 어렵고 생소했지만 알아갈수록 흥미로웠다.”
언제나 열정적인 자세로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하는 한국인 요리사들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고 있다는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는 자신을 롤모델로 삼고 있는 후배들에게 정직함과 함께 책임감도 강조했다. 그는 “좋은 셰프가 되기 위해서는 프로페셔널해야 한다. 이것은 꼭 음식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조리법을 모두 꿰뚫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음식에 대한 열정으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 있는 요리사가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새롭게 시작하는 하루하루에 충실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는 것이 앞으로의 꿈이자 계획이라고 담담하게 얘기하는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 이 노년의 거장에게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질문을 던졌다. “오늘의 당신을 있게 한 원동력이 무엇인가?” 잠시 후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무수한 시도와 노력. 그것뿐이다. 항상 새로운 것을 생각해보려 노력한다. 그런데 쉽지 않다.(웃음)”
- 글 오승일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전민규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1986년 창간된 르 셰프가 발표한 100대 셰프에는 누벨 퀴진의 아버지 폴 보퀴즈(Paul Bocuse), 스페인과 미국을 대표하는 호안 로카(Joan Roca)와 토마스 켈러(Thomas Keller), 4년째 세계 최고 레스토랑으로 꼽힌 덴마크 ‘노마(Noma)’의 창업자 르네 레드제피(Rene Redzepi) 등이 선정돼 피에르 가니에르의 뒤를 이었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셰프들을 제치고 세계 최고 요리사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는 어떤 사람일까. 직접 만나 본 그의 첫인상은 인자한 미소를 지닌 노신사였다. 식당 한편에서 후배 요리사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에선 인생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하지만 자신의 요리 철학을 설명할 때는 진지했고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눈빛이 강렬했다. 피에르 가니에르는 “내 요리가 높게 평가되는 것은 큰 기쁨이자 영광이지만 미식가나 평론가들로부터 최고의 셰프에 꼽히거나 명성을 위해 요리를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또 “셰프는 스스로 ‘내가 세계 최고’라고 자만하는 순간 거기서 끝이다. 나는 그저 내 레스토랑에 오는 고객들에게 최고의 만족감을 주기 위해 매순간 최선을 다한다. 언제나 정직하고 발전하는 요리를 할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혁신과 도전으로 독보적 입지 구축
요리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열여섯 살 때 친구들과의 연말 모임에서였다. 냉장고에 들어있던 두세 가지 간단한 재료로 요리를 만들어내자 친구들이 모두 감탄하며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그 순간, 요리사란 직업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는 “내 요리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 행복하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 셰프로서 가장 보람된 순간이라고 말했다. “요리에 등수를 매기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요리가 주관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사실 나도 손님이 맛없다는 내색을 하면 걱정되고 초조하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내 요리를 맛보러 오는 고객들에게 만큼은 만족감을 주고 싶다. 어느 셰프가 그렇지 않겠나.”
자신만의 창조적인 요리를 선보이기 위해 피에르 가니에르는 1981년 생테티엔(Saint Etienne)에 레스토랑을 열었다. 이후 미슐랭 3스타까지 얻는데 성공했다.하지만 독립의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요리를 통해 보여주는 그의 ‘진보적인 성향’이 당시 고객들에겐 낯설게 느껴졌고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결국 레스토랑은 재정적 어려움으로 1996년에 문을 닫아야만 했다.
모든 일상이 영감의 원천
이러한 명성을 발판으로 2002년 런던의 복합문화공간 ‘스케치(Sketch)’, 2004년 파리의 비스트로(Bistro) 스타일 레스토랑 ‘가야(Gaya)’, 2005년 도쿄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 도쿄’, 2006년 홍콩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피에르’, 2008년 두바이의 ‘레플스 파 피에르 가니에르(Reflets Par Pierre Gagnaire)’, 2009년 라스베이거스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의 트위스트 파 피에르 가니에르(Twist Par Pierre Gagnaire) 등을 차례로 성공시키며 유럽을 넘어 아시아, 미주에까지 그만의 독특한 요리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레스토랑 운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즉 사람을 대하는 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상대를 어떻게 대하고 받아들이며 생각하고 관리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들이다. 나는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긍정적인 마음이나 믿음을 얻고 있다. 그 이후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창의성을 최대한 끌어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의 독특한 요리 스타일은 2001년 프랑스 대학의 에베 디스 분자미식학 교수와의 공동 작업에서 비롯됐다. 식재료의 질감과 음식 간의 궁합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과학적이고 혁신적인 접근법과 선과 색을 살린 예술적인 터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요리는 미술작품을 접시 위에 올린 것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덕분에 ‘요리계의 피카소’란 명예로운 별명도 생겼다. 식재료 간의 새로운 조합으로 그의 요리에서는 과감하면서도 섬세한 감각이 물씬 느껴진다. 보통 10개 혹은 15개 이상의 요리로 구성되는 긴 코스가 특징이다.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도록 작은 플레이트에 나눠서 내놓으며, 색감의 대비가 중요한 만큼 모든 접시는 흰색을 사용한다.
한국 방문 전에는 ‘2015 아트바젤 홍콩’에 참석해 이우환, 사이 톰블리, 시그마 폴케 등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9가지 새로운 메뉴를 선보인 바 있다. 간결미의 정점을 보여주는 이우환의 ‘대화’ 연작 곁에는 가공의 흔적을 최소화하고 재료 본연의 모습을 정갈하게 드러낸 요리가 놓였다.
정직한 요리를 위하여
그에게는 예술작품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경험이 영감의 원천이다. 또 새로운 요리에 대한 아이디어는 자신의 마음 상태에서 얻어진다고 믿는다. “마음 상태를 평화롭고 건강하게 가꾸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매일 작업하고, 매일 생각한다. 나의 삶 자체가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요리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를 반복해서 생각하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정직한 요리.’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의 요리 철학이다. 그는 “손님이 진심으로 ‘맛있다’고 탄성을 지르게 되는 요리, 그게 바로 정직한 요리”라며 “음미했을 때 맛있으면서도 즐거움이 들어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요리는 컴퓨터 작업이 아니다. 미리 예측하거나 설정할 수가 없다. 그런 측면에서 내 요리는 한마디로 ‘진심과 열정을 담은 요리’라고 할 수 있다. 나만의 요리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주고 싶다. 이를 테면 삶에 대한 욕구 같은 것이다.”
피에르 가니에르는 혼자 있을 때 편하게 먹는 음식으로 샐러드를 꼽았다. 싱싱한 재료로 조리 과정을 최소화한 요리를 즐기는 그는 한국 음식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번은 김치에서 영감을 받아 김치 마멀레이드(marmalade)를 구상한 적도 있다. 또 참기름으로 버무린 갑오징어, 김가루를 넣어 굳힌 설탕시럽으로 감싼 올리브 오일 파르페 등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국 음식 중 온갖 종류의 양념을 버무린 김치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비빔밥이나 돌솥에 누른 누룽지, 한국식 바비큐와 장어도 맛있었다. 특히 비빔밥은 처음에는 어렵고 생소했지만 알아갈수록 흥미로웠다.”
언제나 열정적인 자세로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하는 한국인 요리사들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고 있다는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는 자신을 롤모델로 삼고 있는 후배들에게 정직함과 함께 책임감도 강조했다. 그는 “좋은 셰프가 되기 위해서는 프로페셔널해야 한다. 이것은 꼭 음식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조리법을 모두 꿰뚫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음식에 대한 열정으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 있는 요리사가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새롭게 시작하는 하루하루에 충실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는 것이 앞으로의 꿈이자 계획이라고 담담하게 얘기하는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 이 노년의 거장에게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질문을 던졌다. “오늘의 당신을 있게 한 원동력이 무엇인가?” 잠시 후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무수한 시도와 노력. 그것뿐이다. 항상 새로운 것을 생각해보려 노력한다. 그런데 쉽지 않다.(웃음)”
- 글 오승일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전민규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변우석 업은 배스킨라빈스, X-마스 '케이크 전쟁' 승기 잡을까
2임지연, 씨스루에 두 팔 벌리며…"후회 없이 보여드릴 것"
3신한은행, 재외국민 위한 ‘신한인증서 발급 시범서비스’ 개시
4'금리 인하'에 소식에 은행 찾았지만...대출은 '첩첩산중'
5정병윤 리츠협회장 “국내 리츠 경쟁력 높이기 위한 과제 해결 필요”
6SK증권, 조직개편·임원인사 단행…대표 직속 IB 총괄 신설
7MBK·영풍 시세조종 의혹 재점화…임시주총 변수 되나
8현대차그룹, 英 ‘탑기어 어워즈’ 4년 연속 수상
9롯데, 임원인사서 CEO 21명 교체..."계열사 혁신 가속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