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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욕실·오디오·병원기업 호텔을 열다

가구·욕실·오디오·병원기업 호텔을 열다

최근 호텔을 쇼룸으로 운영하는 기업이 속속 늘고 있다. 호텔이라는 럭셔리한 체험공간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충성고객을 만든다는 전략이다.
까사미아가 운영하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라까사 호텔의 스위트룸은 대부분 자사 제품으로 채워졌다. 호텔과 매장을 연결해 고객의 관심을 구매로 연계하고 있다.
7월 초 방문한 서울 강남구 신사동 ‘라까사 호텔’은 신관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었다. 본관 바로 옆 까사미아 압구정점 건물의 5~8층 4개 층을 객실로 개조하고 가장 높은 9층에 라운지 바를 신설하는 공사다. 오는 9월 신관이 완공되면 라까사 호텔의 객실은 현재 61개에서 99개로 늘어난다. 라까사 호텔은 가구기업인 까사미아가 뉴삼화관광호텔을 인수해 2011년 새롭게 오픈한 부티크 호텔로, 까사미아의 거대한 쇼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객실을 자사 브랜드의 가구와 인테리어·소품들로 채웠다. 호텔 오픈과 함께 기존 서울 압구정동 직매장을 라까사 호텔로 이전해 호텔 지하 1층과 지상 1·2층, 옆 건물 3개층에 직매장을 열었다. 호텔에서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을 접한 고객의 관심을 구매로 연계하기 위한 전략이다. 조현정 라까사 호텔 마케팅팀장은 “객실은 까사미아가 추구하는 디자인과 라이프스타일을 전달하는 ‘가구 쇼룸(전시장)’ 역할을 한다”며 “투숙객 중 객실 콘셉트가 마음에 들어 신혼집이나 촬영 스튜디오를 비슷하게 꾸민 사례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인천시 남구 주안역 일대는 인천 지역에서 숙박업소가 가장 많은 곳이다. 남구에 등록된 호텔과 모텔 200여 개 중 이곳에만 180여 개가 들어서 있다. 지난해 5월 욕실 브랜드 새턴바스가 오픈한 ‘더 바스텔’은 그 중 가장 눈에 띈다. 호텔에 목욕 문화를 접목한 콘셉트로, 이 일대에서 유일한 부티크 호텔이다. 지하 1층 지상 8층에 39개의 객실을 갖춘 이곳은 새턴바스 제품의 전시장이기도 하다. 욕조와 컬러를 달리한 13개 타입 객실 어디에 들어서든 룸 전체 크기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욕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영화 ‘하녀’에서 전도연이 몸을 담갔던 600만원 상당의 타원형 욕조, 완전 방수스크린을 장착해 TV는 물론이고 인터넷과 MP3 등의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는 1000만원 상당의 스크린 욕조가 대표적이다. 박준 새턴바스 호텔사업부 본부장은 “새로 집을 짓거나 욕조를 개조할 계획을 가진 분들이 제품 체험 차원에서 찾는다”며 “대부분 홈페이지를 통해 룸 타입을 보고 객실을 지정하는데 럭셔리한 대형 욕조와 테라스가 있는 VIP룸이 가장 먼저 예약된다”고 말했다.
 숙박사업·쇼룸 일석이조 효과
인천 주안의 더 바스텔은 객실별 다양한 컬러의 인테리어와 욕조 등을 통해 욕조문화의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다. 예비부부와 숙박업소 사장들이 주 타깃이다.
호텔을 자사 제품의 쇼룸으로 활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일회성 단순 경험을 뛰어넘어 럭셔리한 분위기에서 느긋한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고객이 기업의 브랜드와 일체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마케팅 전략이다. 주로 가구나 욕실, 침구류, 오디오 등 휴식과 관련한 기업이나 브랜드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기업이 적극적이다. 『스페이스 마케팅』 저자 홍성용 건축디자이너는 “최근 기업의 마케팅은 직접 수입을 올리는 방식에서 정기적이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며 “쇼룸 마케팅은 강한 인상을 통한 브랜드 기억 또는 브랜드의 충성도를 높이기 위한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라고 말했다.

앞서 라까사 호텔의 스위트룸은 잘 꾸며놓은 대저택의 마스터 룸을 연상케 한다. 밀튼, 그린랜드, 크리켓 등 까사미아의 대표 브랜드로 3가지 스타일을 연출했다. 룸에 들어서니 오픈형 수납장과 조명기구가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침대에서 소파·책상과 러그, 심지어 휴지통까지 모두 까사미아 제품으로 꾸몄다. 올 초 신제품으로 전면 교체했다는 설명이다. 물론 이 제품들은 모두 매장에서 진열 판매한다. 조현정 팀장은 “투숙객들의 경우 침대 시트와 이불에 대한 문의가 많다”며 “쇼핑몰이나 잡지 화보 촬영이 잦아 자연스레 제품 홍보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1세대 홈퍼니싱(Home Furnishing·생활용품) 기업으로 꼽히는 까사미아는 호텔을 마케팅의 장으로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최근엔 ‘이케아 열풍을 잠재우겠다’며 경기도 광명시에 호텔 건립 계획을 발표했다. 지하 5층, 지상 16층, 객실 190개 규모로 이케아 광명점 바로 길 건너편에

2017년 9월 완공할 예정이다. 가구와 욕실, 생활소품 등을 자사 제품으로 채운 비즈니스호텔을 지향한다. 저층엔 사옥과 까사미아 매장 입점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케아 주변에 가구에 관심 있는 고객들이 몰리자 이에 따른 동반상승 효과를 노리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새턴바스의 더 바스텔도 타깃을 찾아 입지를 정했다. 박준 본부장은 “우리의 타깃은 주변 상권을 찾는 일반 소비자들이 아니라 숙박업소의 사장님들”이라며 “모텔이 많은 주안은 주요 고객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영업이 부진한 모텔을 인수해 부티크 호텔로 리모델링하자 인근 숙박업소 사장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그 결과 몇몇 숙박업소에 새턴바스 제품이 설치됐다고 한다. 더 바스텔의 욕조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카림라시드가 디자인한 것으로,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에 다양한 컬러, 자연석 같은 부드러운 질감이 특징이다. 마이크로 버블 기능은 모공에 쌓인 노폐물 배출에 효과적이다. 현대중공업이 호텔현대경포대를 리모델링해 최근 오픈한 씨마크 호텔 욕실에도 새턴바스의 제품이 설치됐다.
 소비력 있는 곳에 장을 펼쳐라
박 본부장은 “최근 생활공간의 중심이 방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주방으로, 주방에서 욕실로 변화하고 있다”며 “이러한 변화는 다양한 개성과 욕구에 부합될 수 있는 제품은 물론이고 첨단기능과 인체공학적 시스템에 미적 감각까지 갖춘 제품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 바스텔 주안점은 안테나 샵의 성격이 강하다. 새턴바스는 호텔, 모텔 등 숙박업소 납품과 함께 자체 호텔 사업도 확장한다는 방침이다.

호텔에 입점해 자사 제품을 홍보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야마하뮤직코리아는 지난 5월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에 조명 일체형 오디오 ‘렐릿 시리즈’ 체험존을 운영했다. 렐릿은 근거리 무선통신기술인 블루투스 기능을 통해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스마트기기에 저장된 음원을 무선으로 손쉽게 재생할 수 있고, 밝기 조절이 가능한 LED조명이 탑재돼 간접 조명 기능까지 갖춘 것이 특징이다. 호텔 신관 4층에 위치한 야외 오션풀 라운지에 이를 배치해 풍부한 사운드와 은은한 조명 효과를 선보였다. 서울 청담동의 유명 레스토랑인 ‘1988일 미오 삐아또’에서도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식당을 찾은 손님들은 야외 테라스와 와인바, 2층 테이블 등에 설치된 렐릿 시리즈를 통해 은은한 조명 아래서 본인이 원하는 음악을 감상하며 식사를 즐겼다. 야마다 토시카즈 야마하뮤직코리아 대표는 “더 많은 소비자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기존 유통 채널에서 벗어나 다양한 상업 공간에서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목가구 얼루어플러스도 서울 여의도 메리어트 이그제큐티브 아파트먼트에 쇼룸을 운영 중이다. 경기도 파주 본사 쇼룸에 이은 두 번째 쇼룸으로, 금융권 등 고소득 직장인이 많은 여의도에 전략적으로 진출했다. 러시아산 최상급 자작나무와 북유럽물푸레나무(에쉬)만을 사용해 만든 100% 핸드메이드 제품으로, 최근 영화와 드라마에 자주 노출되면서 예비부부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얼루어플러스가 입점한 여의도 메리어트 이그제큐티브 아파트먼트는 다국적 기업의 비즈니스 고객과 가족 여행객을 위한 럭셔리 레지던스 호텔이다.

호텔사업을 하면서 객실에 구비했던 소품을 상품화한 곳도 등장하고 있다. 롯데호텔, 호텔신라 등 특급호텔의 침구류 판매가 대표적이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호텔 벽이 낮아지고 호텔 침구 세트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롯데호텔은 자체 침구 브랜드인 ‘해온’ 출시 후 6개월 만에 1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140만원이 넘는 침구세트 인기가 높다. 눈으로 상품을 확인하고 체험한 후 구입하고 싶다는 고객의 요청에 따라 해온 침구를 사용하고 있는 호텔 객실을 쇼룸으로 활용하고 있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예비부부는 물론 30~40대 여성들이 높은 관심을 보인다”며 “수면치료가 주목받을 만큼 숙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침구류에 투자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호텔과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사업에서도 호텔 공간은 마케팅 용도로 활발히 쓰이고 있다. 제주 중산간에 위치한 객실 103개 규모의 더 위(The WE) 호텔은 국내 최초로 관광과 헬스케어 서비스를 융합한 헬스리조트 호텔이다. 호텔 부지에는 청정 화산암반탄산수가 뿜어져 나와 이 물을 이용해 아쿠아테라피를 운영한다. 체크인과 동시에 건강증진센터에서 전문 의료진으로부터 검진을 받을 수 있고, 며칠씩 묵으면서 항노화, 뷰티, 암추적 검사 등 의료서비스도 시술받을 수 있다. 제주한라병원이 이 호텔을 운영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의료진이 직접 토탈 컨설팅과 솔루션을 제공하는 미용성형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더 위 호텔은 최근 서울 용산의 도시활성화추진조합과 손잡고 서울 용산구 국제빌딩 주변에 34층 높이의 의료관광호텔 설립을 추진 중이다. 성형외과 등 8개 진료과목의 의료시설이 전체 연면적의 20% 이상 들어서며, 객실 비율은 50% 이상으로 387객실을 갖추게 된다. 2017년 하반기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의료관광 허브 기능도
지난 5월 특1급 호텔인 ‘풀만 앰배서더 창원’의 새 주인이 된 창원 한마음병원도 같은 전략이다. 1050억원을 들여 호텔을 인수한 한마음병원 측은 “아시아 의료관광 허브로 발돋움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밝혔다. 병원 관계자는 “국내 환자는 물론 러시아·몽골·중국 등 의료 관광객을 유치하려면 호텔이 있어야 한다”며 “호텔에서 숙박하며 치료하고 관광할 수 있도록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되어 인수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쇼루밍&리버스 쇼루밍 트렌드’ 보고서를 발표한 김민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을 보고 온라인 매장에서 제품을 사는 ‘쇼루밍’ 소비 패턴이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온라인 매장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을 구매하는 ‘리버스 쇼루밍’도 확대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소비자들을 자신의 채널로 유도하기 위해 유통업체들도 다양한 서비스들을 시도 중”이라고 말했다.
 [박스기사] 옛 전화국 자리에 호텔 세우는 KT
KT가 서울 역삼동 옛 영동전화국 자리에 세워 호텔신라에 운영을 위탁한 ‘신라스테이 역삼’.
최근 호텔업계의 다크호스는 KT다. ‘유무선 통신기업이 웬 호텔사업?’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지만 이미 서울 역삼동에 306실 규모의 호텔을 건축해 신라호텔의 비즈니스호텔 브랜드인 신라스테이에 위탁운영하고 있다. 옛 영동전화국 자리로, 지하철 2호선 역삼역 인근에 위치해 입지가 좋은 편이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이후 꾸준한 매출 상승은 물론이고, 주변 직장인과 아파트 주민들의 모임 장소로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4월엔 서울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근처 신사전화국에 관광호텔을 짓겠다고 계획서를 제출했다. 지하 5층~지상 16층, 158실 규모의 호텔을 지어 호텔 사업자에게 통으로 임대한다는 계획이다. 신라스테이 역삼보다 규모는 작지만 현대백화점, 갤러리아백화점, 가로수길 등 관광객 수요가 풍부해 입지는 더 낫다는 평가다. 최근엔 서울시의 지구단위계획 변경으로 제2롯데월드와 인접한 옛 송파전화국 자리에도 호텔 신축이 가능해졌다. KT는 최고 37층, 1100실 규모로 객실 안에서 취사가 가능한 가족호텔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KT의 호텔 개발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개발 가능한 입지가 전국에 400곳에 이르기 때문이다. 과거 서울 구 단위마다 전화국이 1~2개씩 있었지만 지금은 한 전화국에서 넓은 지역을 커버하면서 개발 가능한 유휴 부지들이 생긴 것이다. KT는 부동산 개발을 위해 조직 내 부동산사업 컨트롤타워도 대폭 보강했다. 우선 호텔 건축과 아파트 분양사업에 나섰다. 특히 호텔은 용적률 혜택이 크기때문에 부동산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어 1순위 개발 방식으로 꼽힌다. KT 관계자는 “기존에 보유한 부동산 자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라며 “부동산 시장을 보면 현재로서는 호텔로 개발하는 것이 용적률 등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다”고 말했다.

호텔업계에선 서울 신사·송파에 이어 명동·을지·강북·영등포 등지의 옛 전화국 터가 사업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KT 관계자는 “최근 비즈니스호텔 공급이 크게 늘고 있어 신사전화국 자리 호텔 사업 착공 시기는 시장 분위기를 보고 조절할 것”이라며 “옛 송파전화국 터나 명동, 을지로, 영등포 등지의 자리도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한다는 원칙만 세웠지 호텔을 세울 것인지는 미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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