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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한 최태원 회장 앞에 놓인 과제는] 반도체 투자 확대와 지주사 사업 정비 급해

[출소한 최태원 회장 앞에 놓인 과제는] 반도체 투자 확대와 지주사 사업 정비 급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돼 사면·복권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돼 8월 14일 출소했다. 수감된 지 926일 만이다. 최 회장은 2013년 1월 횡령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이후 재벌 총수로서는 역대 최장 기간인 2년 7개월 동안 복역해왔다. 정부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최 회장 등 경제인 14명을 포함한 6527명을 특별사면·감형·복권했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경제인 가운데 최근 6개월 내에 형이 확정됐거나 5년 이내에 특사를 받았던 경우, 형 집행률이 부족한 경우 등은 특별사면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최 회장은 형기의 3분의 2 이상을 채운데다, 2008년 한 차례 특사를 받았어도 5년이 지난 상태라 이번 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SK그룹은 일단 최 회장의 출소에 안도하는 분위기다. 애초 최 회장은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될 것이 유력했다. 그러나 최근 롯데그룹 형제의 난으로 재벌에 대한 비난 여론이 고조돼 일각에선 최 회장의 사면도 쉽지 않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결국 사면과 복권이 함께 이뤄지면서 그룹 측이 내심 바라던 최상의 시나리오 대로 됐다. 상법상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기업인은 ‘자격 정지’에 대한 복권이 이뤄지지 않으면 등기이사로 취임할 수 없다. SK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은 오랜 복역으로 건강이 악화된 만큼 당분간 쉬면서 몸을 추스를 것”이라고 전했지만, 그룹 측은 조만간 경영 일선에 복귀할 최 회장을 맞을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현재 김창근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비롯한 그룹 계열사 대표들은 최 회장에게 보고할 내용을 최종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이 복역하는 동안 SK그룹은 우려 속에서도 표면상 큰 위기 없이 무난한 실적을 올렸다. 핵심 계열사인 SK텔레콤은 최 회장이 없던 지난 2년(2013~2014년)간 매출이 16조6021억원에서 17조1638억원으로 증가했고 영업이익도 2조111억원에서 1조8251억원으로 소폭 감소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는 매출이 14조1651억원에서 17조1256억원으로, 영업이익은 3조3798억원에서 5조1095억원으로 증가하면서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SK이노베이션은 이 기간 국제 유가 하락과 정제 마진 감소 등의 영향으로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서면서(1조4064억원→-2313억원) 위기였지만 올해는 1조9621억원으로 다시 흑자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 복역 중 신사업 추진에 난항
그럼에도 SK그룹으로선 최 회장의 공백이 뼈아팠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사업 전반의 현상(現狀)은 그럭저럭 유지할 수 있었지만 오너가 결정하고 나서서 지시해야 하는 그룹의 굵직굵한 해외 사업과 인수·합병(M&A), 신사업 추진 등에서는 오너 공백으로 속도를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데는 그만큼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일례로 최근 SK네트웍스는 서울 시내 신규 면세사업권 입찰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경쟁사 오너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적극적으로 나선 끝에 사업권을 따내는 동안 SK네트웍스는 관세청 면세점특허심사위원회에 이렇다 할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뿐이 아니다. SK그룹은 2013년 SK텔레콤이 국내 2위 보안 업체인 ADT캡스를, SK E&S가 국내 민간석탄발전의 맏형격인 STX에너지를 인수하기로 하고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가 나란히 중도 철회했다. ADT캡스는 외국계 사모펀드 운용사인 칼라일이, STX에너지는 GS그룹이 각각 인수했다. 지난해는 SK이노베이션이 호주에서의 석유사업 거점 확보를 위해 현지 유류공급 업체인 유나이티드패트롤리엄(UP)의 인수를 추진했지만 역시 중간에 포기했다. 올 초에는 SK네트웍스가 국내 1위 렌터카 업체인 KT렌탈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최종 승자는 1조원 이상을 배팅한 롯데그룹이었다. 최 회장이 복역 중이던 2년여 동안 국내외에서 M&A 등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데 있어 이렇다 할 결실을 맺지 못한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SK 정도 되는 대기업의 전문경영인도 천문학적인 자금 투입을 필요로 하는 결정을 내리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SK그룹은 최 회장이 수감되기 전이던 2012년 한 해만 실제 투자 규모가 15조원에 달하는 등 매년 투자 규모가 늘어났다가 2013년을 기점으로 연간 13조~14조원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그만큼 최 회장의 공백 속에 대규모 투자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풀이된다. 최 회장은 ‘SK는 국내용 기업’이라는 오명을 뒤로한 채 2012년 SK하이닉스 인수를 주도하는 등 그간 과감한 투자로 그룹을 키워왔다. 인수 당시만 해도 적자 상태였던 SK하이닉스는 2013년부터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2년간 사상 최대 실적을 잇따라 경신했다. SK그룹의 지난해 총 매출은 165조원가량으로 2010년 대비 30% 이상 증가했다. 최 회장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다만, 이번 특별사면으로 한숨을 돌리긴 했지만 SK그룹으로서는 당면한 현안이 만만찮다. 우선 최 회장이 그룹의 숙원사업으로 활발히 전개하려 했던 반도체 사업에서는 최근 중국 기업의 메모리반도체 시장 진출설이 다시금 제기되고 있어 SK하이닉스의 선제적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예컨대 잇단 M&A로 중국 최대 반도체설계 업체로 급부상한 칭화유니그룹은 올 7월에도 세계 메모리반도체 업계 3위 기업인 미국의 마이크론을 인수하겠다고 나서 관심을 모았다.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인 BOE도 올 3월 반도체사업부를 신설하고 메모리반도체 사업에 가세했다. 김병기 키움증권 연구원은 “아직 기술 격차가 있지만, 중국이 중장기적으로는 메모리반도체 산업에서 한국의 경쟁상대로 부상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과거 한국이 일본과 독일 등을 제쳤을 때와 같은 치킨게임이 재현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재계는 최 회장이 복귀 후 SK하이닉스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는 데 우선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SK하이닉스는 올해 총 6조원을 투자해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빅2’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추가 투자가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SK하이닉스는 올 하반기 중 첨단 반도체 생산라인인 M14를 준공, 가동에 들어가는 한편 차세대 메모리반도체인 3D 낸드플래시의 3세대 트리플레벨셀(TLC) 개발을 연내에 완료할 계획이다.
 추가 투자와 해외 파트너십 강화로 활로 뚫을까
이와 함께 최 회장은 그룹의 다른 핵심 사업인 석유화학 분야에서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내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그룹 내에서 가장 고전 중인 사업 부문인 만큼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일이 절실한 상황이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종합화학은 세계 2위 복합화학 업체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빅과 손잡고 고성능 폴리에틸렌 사업을 추진 중이다. 특히 몇 년 안에 사우디에 새로 공장을 세우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어 해외 파트너십 강화에 대한 최 회장의 역할이 한층 중대할 전망이다. 이밖에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는 올 6월 지주사인 SK㈜가 SK C&C와 합병한 상황이라 새로 출범한 SK주식회사 C&C를 재정비할 필요성이 커졌다. 가까스로 출소에 성공한 최 회장이지만 갈 길이 멀다.

- 이창균 기자 lee.changkyu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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