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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의 ‘머니볼’ 빅데이터 시대

테니스의 ‘머니볼’ 빅데이터 시대

IBM은 US 오픈 대회에서 4100만 건의 데이터를 활용해 팬과 선수들에게 실시간 경기 분석 통계를 제공했다.
지난해 여름, 십대 테니스 신동 노아 루빈이 윔블던 청소년 대회 출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10여년 동안 코치를 맡았던 로렌스 클리거는 그의 플레이에서 상대적인 강점을 찾고 있었다. 경기 동영상의 데이터 기반 분석을 통해 루빈이 ‘서브+1’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상대 선수에게 서브를 넣고 신속히 리턴 샷에 대비한 다음 리턴 볼을 상대 코트의 빈자리에 찔러 넣어 점수를 얻는 플레이를 가리키는 테니스 전문 용어다.

수준 높은 대회에서 효과적으로 경기를 펼치려면 강력한 ‘서브+1’ 기술이 필수적이다. 루빈의 플레이는 일관성 없이 들쭉날쭉 했다. 루빈 팀은 데이터 분석기법을 이용해 문제를 찾아냈다. 루빈이 대회장인 런던의 ‘올 잉글랜드 클럽’에 도착할 즈음엔 예전의 약점이 강점으로 바뀌어 있었다. 2014년 윔블던 청소년 대회 단식 우승을 차지하고 청소년부 챔피언으로 로저 페데러나 비외른 보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윔블던에선 분명 그 플레이를 잘한 것 같다. 90% 정도는 성공한 듯하다”며 뉴욕 ‘존 매켄로 테니스 아카데미’ 원장으로도 일하는 클리거 코치가 말했다. “그것이 그의 위닝 샷이 됐다. 세컨 샷에 훨씬 더 자신 있었기 때문에 사이드로 찔러 넣는 서브가 훨씬 좋아지기 시작했다.”

야구·미식축구·농구계의 프로선수에 이어 데이터 분석을 이용해 플레이를 향상시키는 테니스 선수는 루빈 외에도 적지 않다. 그러나 테니스계는 전반적으로 다른 스포츠에 비해 첨단 분석기법 도입에서 뒤떨어졌다. 첨단기술 업체 IBM이 슬램트래커(SlamTracker)를 내세워 그와 같은 변화를 선도한다. 지난 9월 초에 열린 US 오픈을 비롯한 기타 그랜드 슬램(프랑스 오픈, 호주 오픈, 윔블던 포함 4개 대회)의 후원사다. 4100만 건의 데이터를 활용해 팬과 선수들에게 실시간 경기 분석 통계를 제공하는 응용 프로그램이다. 다만 IBM이 후원하는 대회만 대상으로 한다는 한계가 있다. 다양한 수준의 선수들은 대신 값비싼 민간기업 서비스에 의존해 자신의 플레이를 분석한다. 그러나 부정확한 데이터와 어마어마한 비용이 이들 프로그램의 보급을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테니스계, 통계 분석에 뒤늦게 관심 보여
IBM에 따르면 대회 중 IBM의 데이터가 공개되는 플랫폼을 이용한 팬이 총 1500만 명에 달했다. 사진은 US 오픈 시범 복식경기에 나선 존 매켄로.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첨단 분석기법은 눈길을 끌기 위한 색다른 볼거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프로 스포츠 팀들이 선수를 충원하고, 계약을 제시하고,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요소로 떠올랐다. 이 같은 변화는 프로 야구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세이버매트릭스(sabermetrics, 야구 데이터의 컴퓨터 분석법)의 개척자 빌 제임스의 노력뿐 아니라 마이클 루이스의 2011년 저서 ‘머니볼(Moneyball)’ 덕분이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팀의 빌리 빈 단장이 첨단 통계분석기법을 이용해 야구 선수의 실적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이나 BAPIP(홈런·삼진 등을 제외한 인플레이된 타구의 타율) 등 과거의 실험적 통계가 지금은 야구 팀 경영자에게 홈런만큼이나 중요한 척도가 됐다.

프로농구와 미식축구도 비슷하게 발전을 이뤘다. 판타지 미식축구(실제로 활약하는 선수들로 팀을 구성해 그들의 성적에 따라 승패를 가리는 게임) 팬이나 HBO의 ‘하드 녹스(Hard Knocks, 미식축구팀 훈련 캠프를 다룬 프로그램)’ 시리즈 시청자는 프로미식축구 계의 통계와 경기 동영상에 대한 집착이 어느 정도인지 안다. 미국 프로농구(NBA)에선 첨단 데이터를 이용해 선수 움직임의 효율성과 게임 전략을 세우는 팀이 늘고 있다. 각 팀들은 3점 슛 시도를 늘리는 반면 2점짜리 점프 슛을 줄인다. 통계분석에 따르면 그래야 이길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수와 새로 계약할 때 경기 당 득점뿐 아니라 통계적 효율성까지 평가한다.

기록 집계가 부실하고 팀워크가 없기로 유명한 테니스계는 훨씬 늦게 통계 분석에 관심을 보였다. 프로야구(MLB)나 프로미식축구리그(NFL)에선 대표 기구가 경기 일정을 수립하고 엄격히 관리한다. 그와 달리 프로 테니스선수협회(ATP) 같은 테니스 기구들은 개별 대회에 상당한 수준의 재량권을 주어 독자적으로 행사를 관리하도록 한다. 테니스 득점표에는 관련 정보가 거의 기록되지 않는다. 그리고 기록을 중앙에서 관리하지도 않고, 일반인이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집계하지도 않는다.

“테니스는 오래 전부터 몇몇 다른 스포츠에 크게 뒤떨어졌다”고 클리거 코치가 말했다. “예컨대 미식축구에선 쿼터백이 필드에서 잠시 내려올 때면 코치진이 백과사전 같은 커다란 데이터 집을 건네준다.”
 그랜드 슬램 대회의 8년치 데이터 열람 가능
분석기법에 대한 테니스계의 무관심에 각성을 촉구하는 테니스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져 왔다. 하지만 발전은 더뎠다. 2006년부터 US 오픈을 포함한 몇몇 대회에서 ‘호크아이(Hawk-Eye)’ 기술을 도입했다. 경기 중 선수와 공의 움직임을 기록하는 다중 카메라 시스템이다. 그러나 집계된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는다. 그것은 개별 대회 관계자들의 재량에 달렸다.

US 오픈에서 IBM의 노력은 범위와 접근성 면에서 진일보한 것이다. IBM은 미국테니스협회(USTA)와 제휴를 통해 실시간 통계를 제공한다. US 오픈 경기를 관전하는 테니스 팬들뿐 아니라 US 오픈의 공식 스마트폰 앱과 웹사이트를 포함한 6개 디지털 플랫폼에 데이터를 발표했다. IBM에 따르면 대회 중 IBM의 데이터가 공개되는 플랫폼을 이용한 팬이 총 1500만 명에 달했다.

US 오픈 팬들은 IBM의 서비스를 통해 경기 실시간 통계뿐 아니라 그랜드 슬램 대회의 8년치 데이터를 열람할 수 있다. 슬램트래커는 또한 ‘승패의 열쇠(Keys to the Match)’ 기능을 자랑한다. 시스템의 4100만 건에 달한다는 데이터를 이용해 특정한 경기에서 한 선수의 플레이 중 어떤 측면이 경기성적을 결정할지 예측하는 기능이다.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와 코치들에게도 IBM 데이터가 제공된다. 선수들은 경기 종료 후 30분 이내에 IBM의 통계분석에 접근해 자신의 경기를 확인할 수 있다. 통계분석은 경기의 실제 동영상에 링크돼 있다. 예컨대 코치가 선수의 포핸드 득점을 모두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 데이터를 토대로 미래 경기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미완성 프로젝트
슬램트래커는 팬과 선수 모두가 물릴 정도로 많은 데이터를 제공한다. 하지만 약간의 제약도 따른다. IBM은 그랜드 슬램 대회 데이터만 수집할 뿐 나머지 대회는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선수들은 자신의 경기만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스카우팅 도구로선 프로그램의 효능이 떨어진다. 그리고 IBM은 수집하는 기초 데이터를 대중에 공개하지 않는다.

“USTA를 우리 고객이라고 생각한다면(실제론 파트너십이다) 우리 사명은 기술을 활용해 테니스 경기가 발전하도록 USTA를 돕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IBM의 기술적 역량에 관한 모범 사례를 세상에 과시한다”고 IBM의 스포츠·엔터테인먼트 후원 담당 전략·마케팅 책임자 엘리자베스 오브라이언이 말했다. “그것은 모두 전 세계 어떤 산업의 고객에게든 우리가 제공하는 똑같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서비스를 토대로 한다.”

오브라이언 팀장은 슬램트래커 시스템을 다른 대회와 분야로 확대할 가능성에 관해서는 논평을 거부했다. IBM이 USTA와 맺은 스폰서십 계약의 제약을 이유로 들었다. IBM은 4대 그랜드 슬램 대회와 차이나 오픈의 후원사다.

IBM의 슬램트래커 기술은 테니스 사상 가장 포괄적인 데이터 관련 프로젝트로 손꼽힌다. 그러나 그 진정한 가치에 관한 의문은 남아 있다. 비판은 대부분 ‘승패의 열쇠’ 기능에 집중된다. IBM이 ‘예측 분석기술’의 표본으로 자랑하는 기능이다. 2013년 월스트리트저널의 칼 비알릭이 분석한 결과, 경기 중 약 3분의 1에서 패한 선수들이 이뤄낸 통계적 승리의 ‘열쇠’가 승리한 선수와 같거나 더 많았다(비알릭은 지금은 스포츠 채널 ESPN의 데이터 기반 ‘파이브서티에이트’ 블로그에 글을 쓴다). 분명 IBM의 예측 성공률이 썩 뛰어난 편은 아니다.

제프 새크먼은 저명한 야구·테니스 분석기술 전문가다. 5년 전 일반대중이 활용할 만한 테니스 데이터가 없음을 깨달은 뒤 ‘테니스 앱스트랙트(Tennis Abstract)’를 개설했다. 새크먼을 비롯한 자원봉사자 팀은 그 웹사이트에서 수년간의 기초 데이터와 통계를 수집해 그것을 바탕으로 선수 트렌드를 파악하고 테니스계의 허구를 파헤쳤다.

새크먼은 그랜드 슬램 대회의 경기 데이터를 수집하려는 IBM의 포괄적인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그도 비알릭과 마찬가지로 프로그램의 신뢰성에 우려를 표시했다. 또한 슬램트래커가 테니스 데이터 분석의 성장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할지에도 회의적이다.

“궁극적으로 그들이 보유한 데이터로 하는 일은 별로 많지 않다. 어떤 데이터도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다”고 새크먼이 말했다. “따라서 그들의 노력은 주로 자신들의 마케팅과 TV 방송을 위한 번쩍이는 그래픽 제작에 맞춰져 있다. 그런 면에서의 성과에 관해 내가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지만 그들이 테니스 통계분석 전반을 위해 하는 일은 별로 없다.”

빅데이터의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하는 테니스 선수가 늘어난다. 중견 테니스 강사 워런 프레토리우스 등 일부 전문가들이 통계분석 서비스의 상용화에 성공했다. 프레토리우스는 미국 유타주 웨버주립대학에서 테니스 선수로 활약한 뒤 훗날 다트피시 등 많은 고객 대상의 테니스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다트피시는 영화 ‘머니볼’로 유명한 빌리 빈 단장과 한때 함께 일했던 스위스의 비디오 분석 업체다.

요즘 프레토리우스는 테니스 어낼리틱스를 운영한다. IBM과 마찬가지로 실제 경기 동영상에 통계적 분석을 결합하는 서비스다. 프레토리우스의 옛 프로 선수 고객 리스트에는 노박 조코비치, 마리아 샤라포바, 그리고르 디미트로프 등이 올라 있다.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소속의 여러 테니스 프로그램, 그리고 ‘존 매켄로 테니스 아카데미’의 클레거와 루빈도 그의 서비스를 이용한다.

프레토리우스 회사의 직원은 풀타임 근무자 3명을 포함해 12명이다. 수많은 시간의 테니스 동영상을 데이터베이스에 수록해 고객에게 서비스한다. 코치들은 3시간에 걸친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볼 필요가 없다. 아무리 터무니없을 만큼 구체적인 조건으로 주문해도 그에 따라 분류돼 나오는 동영상만 보면 그만이다.

“코치가 ‘우리 선수들이 세컨 서브를 사이드로 넣은 뒤 리턴 볼이 크로스로 짧게 들어온 30-0 포인트 상황을 모두 보고 싶다’고 주문하더라도 정확히 원하는 장면들을 볼 수 있다”고 프레토리우스가 말했다.

테니스 어낼리틱스는 또한 품질관리 점검을 광범위하게 실시해 고객에게 제공하는 정보의 정확성을 보장한다고 프레트로우스가 말했다. 이 회사의 입사 지망자는 ‘표본 경기’ 컬렉션에서 97%의 정확성을 보여야 한다. 포핸드 결정타와 범실(unforced errors) 같은 사례를 정확히 식별해야 고객 데이터를 평가할 자격이 주어진다.

이처럼 깊이 있는 분석을 받으려면 큰돈이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테니스 어낼리틱스의 서비스는 시중의 동종 업체 중 오히려 싼 편에 속한다고 프레토리우스는 주장한다. NCAA 대다수 학교의 체육 예산은 쥐꼬리만하다. 다수가 공적 보조금에 기대 근근이 버텨나간다. 그런 환경에서 수천 달러를 들여 동영상 소프트웨어를 들여놓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는 쉽지 않다.

대학 팀들은 1만1650달러에 200시간의 동영상 분석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선수 개인에게는 10시간 당 555달러를 받는다. 종종 더 깊이 있는 수준의 데이터를 요구하는 프로 선수나 테니스 아카데미에는 비용을 더 많이 청구한다. 하지만 프레토리우스는 자세한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존 메켄로 테니스 아카데미’의 클리거 코치는 선수 개개인에게 사용할 목적으로 구입하기에는 동영상 분석 데이터가 너무 비싸다고 말했다. 자원을 어떻게 활용해야 가장 효율적일지, 테니스 어낼리틱스 같은 프로그램의 비용과 경기에서 나타나는 혜택을 어떻게 비교 검토할지 아직 고민 중이다. 당장은 지난여름 프로로 전향한 루빈 같은 일류 선수에게 우선권이 주어진다.

“테니스가 발전함에 따라 선수간의 기량 차이가 크게 줄었다. 아주 약간이라도 우위를 차지할 수 있으면 무엇이든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클리거 코치가 말했다. “분석기술이 거기서 큰 비중을 차지하리라고 본다.”

- THOMAS BARRABI IBTIMES 기자 /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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