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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에겐 동물이 선생님이다

의사에겐 동물이 선생님이다

지구상의 모든 동물이 병들고 치유되는 것에 의사들이 깊은 관심을 가져야 인간 환자의 건강을 더 효과적으로 증진할 수 있다
히말라야 상공의 고도 6000피트(1.8㎞)를 날고 있을 때 갑자기 몸에 이상신호가 왔다. 힘이 빠지고 숨 쉬기가 힘들었다. 심장으로 혈액을 공급하는 주요 동맥이 막혔다. 오랫동안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와 아테롬성 동맥경화를 치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긴급구조를 요청할 수 없었다. 조종사의 비상착륙도 불가능했다.

비행기를 탄 게 아니라 맨몸으로 직접 그 높은 곳을 날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환자(?)는 사람이 아니라 이집트대머리수리였다. 독수리부터 올빼미까지 다양한 조류가 그렇듯이 이집트대머리수리도 콜레스테롤 때문에 심장 혈관에 플라크가 생겼다. 그 플라크는 인간처럼 새에게서도 뇌졸중과 동맥류,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

수천 종의 새가 이런 심장병에 걸린다. 그러나 의사 아니 심장 전문의조차 그런 사실을 잘 모른다. 아테롬성 동맥경화가 인간의 주된 사망 요인인데도 말이다. 새든 사람이든 아테롬성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위험인자(운동 부족, 스트레스, 육류 식단 등)가 같다는 사실을 아는 의사는 더 적다. 새의 경우는 암컷이 더 취약하다. 그 점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성에게서 심장질환 위험이 크다는 사실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장 전문의만 동물의 건강과 질병에 무지한 것도 아니다. 대다수 종양학자도 우리에 갇힌 사자·호랑이·재규어는 유방암에, 범고래는 호지킨 림프종에, 어린 흰코뿔소는 백혈병에 잘 걸린다는 사실을 모른다. 소아과 의사라면 치명적인 뼈암인 골육종이 키가 큰 십대에게서 자주 나타난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세인트 버나드와 그레이트 데인처럼 아주 키가 큰 개도 골육종에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동물은 사람과 똑같은 당뇨·뇌종양·관절염·알레르기에 걸린다. 그러나 대다수 의사는 수의사와 공동 연구를 하지 않고, 수의학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고, 동물의학 학술지를 읽지도 않는다.

이 두 분야는 동물원성 감염병(zoonosis, 동물로부터 사람에게 전염되는 질병)이 유행할 때만 서로 연결된다. 최근 메르스·사스·조류 인플루엔자·에볼라·웨스트나일 등 동물이 옮긴 질병이 세계 전역에서 유행하면서 의사들도 잠시 수의학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동물원성 감염병을 제외하면 대다수 의사는 수의학을 잘 모를 뿐 아니라 아예 무시한다. 그런 현상은 교육에서부터 시작된다. 수의학과 학생은 포유류·조류·파충류·어류의 당뇨·백혈병·뇌종양에 관해 배우지만 의과대학 학생은 인간의 질병에 관해서만 배운다. 수의학계에선 의학계의 편협한 시각을 이런 농담으로 꼬집는다. ‘단일 종만 치료할 수 있는 수의사를 뭐라고 부르는지 아는가? 정답은 의사다.’

그러나 ‘인간 환자 전문 의사’의 무지는 결코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동물이 왜, 어떻게 병에 걸리며, 또 어떻게 치유되고 건강을 유지하는지 알면 의사는 인간 환자의 치명적인 질병을 더 잘 이해하고, 치료하고, 심지어 막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장 전문의는 동면하는 곰의 경우 몇 달 동안 대·소변을 보지 않는데도 혈액 속에 독성물질이 쌓이지 않는 이유가 뭔지 의문을 가져야 마땅하다. 만약 사람이 몇 달 동안 화장실에 가지 않을 경우 혈액투석을 받지 않으면 패혈증으로 사망에 이른다.

골다공증을 연구하는 노인병 전문의도 동물의 동면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 동면하는 곰은 몇 달 동안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아도 골밀도가 그대로 유지된다. 반면 고관절 골절로 움직이지 못하는 노인 환자의 경우는 골소실이 급속히 진행된다.

산부인과 전문의는 젖을 짜는 소·염소·양의 유방암 발생률이 아주 낮은 것과 모유를 수유하는 여성을 비교 연구할 수 있다.

정신질환 분야에서도 수의학 지식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매년 미국 성인의 25% 이상이 정신질환에 시달린다. 그런데도 그들 중 대다수는 치료받지 않는다. 왜 그럴까? 수치심과 사회적인 낙인 때문이다. 정신력이 약하거나 ‘사악한 본성’을 가졌다는 등 정신병 원인에 관한 잘못된 이론이 그런 현상을 부추긴다.

그러나 사람을 괴롭히는 정신질환 대부분은 동물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다양한 동물 종이 섭식장애부터 자해, 불안증까지 인간이 시달리는 다양한 정신적 증상을 보인다. 동물의 경우 치료 효과가 크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독증과 섭식장애, 강박신경증이 동물에게도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기 만해도 그런 환자에게 어느 정도 위안이 될 수 있다.

동물도 정신병에 걸린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환자는 그 질병을 환자 탓으로 돌리는 게 터무니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기 깃털을 뽑는 앵무새, 신경성 식욕부진증에 걸린 돼지, 강박증에 시달리는 개는 치욕스럽거나 피해야 할 사악한 동물이 아니다. 병으로 고통 받으며 온정과 보살핌이 필요할 뿐이다. 그 동물의 행동과 정신적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정성껏 돌보고, 환경을 개선하며, 활동을 증가시키는 것이 수의사가 제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치료법이다.

최선의 인도주의적 의료는 동물을 돌보고 치료하는 수의사에게서 볼 수 있다. 히말라야 상공을 날아오르거나 초원의 언덕을 기어오르거나 우리 발 아래서 낮잠 자는 지구상의 모든 동물이 병들고 치유되는 것에 의사들이 깊은 관심을 가져야 인간 환자의 건강을 더 효과적으로 증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점을 흔히 간과한다.

- BARBARA NATTERSON-HOROWITZ, KATHRYN BOWERS / 번역 이원기



[ 필자 바바라 J 내터슨-호로위츠는 캘리포니아대학(LA 캠퍼스) 심장학·진화생물학 교수이며, 캐스린 바우어스는 과학 전문기자로 UCLA에서 글쓰기를 가르친다. 그들은 국제적인 베스트셀러 ‘인간과 동물 건강의 놀라운 연관성(가제·Zoobiquity: The Astonishing Connection Between Human and Animal Health)’을 공동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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