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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사진으로 복원한 역사

입체사진으로 복원한 역사

시리아 고대 도시 팔미라의 파괴되기 전 모습.
지난해 여름 어느 날 시리아의 뜨거운 태양 아래 카메라를 든 한 남자가 고대 도시 팔미라의 유적지로 향했다. 기원전 19세기 이래 상인과 여행자의 오아시스였던 그곳이 가까워지자 그는 숨막히는 열기를 순식간에 잊었다. 허물어져가는 건축물의 그늘에 서서 그 오랜 역사를 생각하며 엄숙함에 잠겼다. 하지만 마냥 과거에 빠져 있을 순 없었다. 카메라를 꺼내 일할 준비를 했다.

몇 달 뒤 팔미라는 수니파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또 다른 희생물이 됐다. 그들이 설치한 폭탄이 터지면서 탑과 기둥이 무너졌고 신전은 약탈당했다. 상공에서 보면 그곳을 장악한 IS가 고대 도시의 잔해를 빗자루로 쓸어 말끔히 청소해버린 듯하다.

그곳을 찾았던 그 남자는 지구 반대쪽에 있는 집에서 저녁 TV 뉴스에 비치는 팔미라의 파괴상을 봤다. 가슴 아팠지만 전부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TV에 담긴 장면이 그 경이로운 고대 유적의 마지막 모습은 결코 아니라고 그는 확신했다.

1943년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연합군 소속으로 구성된 특별부대 ‘모뉴먼츠 맨(Monuments Men)’이 서구 예술의 유산에 기여한 공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부대에 소속된 역사학자와 교수, 예술 전문가와 큐레이터들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가 약탈한 예술품을 되찾고 보호했다. 그들이 없었다면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베르메르의 ‘천문학자’, 얀 반 에이크의 ‘신비한 어린 양의 제단화’ 등 유럽의 가장 중요한 미술품 대부분이 영원히 사라졌을 것이다. 그로부터 70년 이상이 지난 지금 세계의 역사적 미술품과 건축물이 당시와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다. 중동 지역이 전쟁에 계속 휘말리면서 고대의 소중한 유적도 큰 피해를 입었다.

IS는 이라크 모술 박물관의 석조 유물을 파괴했다(왼쪽). 시리아 고대 도시 팔미라의 바알 샤민 신전이 폭파되는 장면. IS가 소셜미디어에 선전용으로 올린 사진들이다.
IS는 지난해 이라크 북부와 서부, 시리아의 대부분을 장악한 이래 그곳의 문화 유산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신성모독이나 우상숭배라고 믿는 고대 유적을 없애는 작전이다. 그들은 방화와 폭약, 불도저와 곡괭이, 슬레치해머로 신전을 파괴하는 장면을 소셜미디어 사이트에 올렸다.

기독교와 이슬람 성지가 그들의 표적이 됐다. 이라크 북부 아시리아 왕조의 고대 유적지 님루두에 있는 북서 궁전, 이라크의 모술 박물관, 시리아의 고대 도시 팔미라에 있는 바알 샤민·벨 신전이 약탈되고 파괴됐다. IS의 파괴 행위가 가장 큰 주목을 끌었지만 고대 유적을 훼손하는 단체는 그들만이 아니다. 다양한 파벌이 시리아에서 권력을 다투면서 바샤르 아사드 정권, 주요 반군 단체인 자유시리아군, 소속 없는 현지 무장단체를 포함한 모두가 고대 유물을 약탈하고 거기서 이익을 얻으려 한다.

지금도 자행되는 미술품과 건축물의 파괴와 약탈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와 비슷하다. 세계가 뒷짐 지고 그냥 내버려두는 것은 범죄 행위와 같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모뉴먼츠 맨’이 되찾은 미술품 대부분과 달리 위험에 처한 중동의 유적지는 안전한 곳으로 옮겨 놓을 수 없다. 그러나 파괴하는 기술이 진화하듯이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도 발전했다. 그래서 디지털고고학연구소(IDA)가 구성한 현대판 ‘모뉴먼츠 맨’은 차선책으로 눈을 돌렸다. 기술을 이용해 문화 유산을 보존하는 방법이다.

2012년 로저 미셸 회장이 설립했고 하버드대학과 옥스퍼드대학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IDA는 파피루스 문서, 비문, 소형 공예품 같은 유물의 고해상도 이미지와 3차원 그래픽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다. 처음엔 실험실에서 시작됐지만 곧 현장으로 범위를 넓혀 고대 건축물을 촬영해 디지털 데이터로 만든다. 환경 재난이나 노후화 등으로부터 유적지를 보호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그들은 IS와 싸우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IDA의 ‘백만 이미지 데이터베이스(Million Image Database)’는 올해 초 시작됐다. 프로젝트에 적합한 사진기를 신속히 확보하기 위해 자기학 전문가 알렉시 카레노프스카가 이끄는 기술팀이 사용이 편리한 저가 3D 카메라를 개발했다. 근접 물체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매크로 모드, 애너글리프(색상 차를 이용해 3D 영상을 구현하는 방식)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파일 포맷,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자동 표시 기능 등을 기존 모델에 추가해 개조했다.

GPS 기능은 약탈된 문화재 추적에 유용하다. 그런 유물을 시장으로 밀반출하는 ‘골동품부’를 둔 IS 같은 단체가 관련됐을 때 특히 활용도가 높다. 약탈된 유물이 시장에 나타나면 그 이미지를 조사해 원래 기록된 장소에 있었던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 지난 8월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골동품 거래상에게 시리아와 이라크 지역에서 도굴된 유물을 취급하지 말도록 협조를 요청하며 그런 물건의 구입 행위는 형사 처벌 대상이라고 경고했다. 유물 판매를 단속하면 소중한 유적지의 파괴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카메라 개발이 시작되면서 표적도 선정됐다. IDA는 유네스코와 함께 요르단·아프가니스탄·터키·시리아·예멘·이집트·이란·이라크에서 가장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 유적지 명단을 작성했다. 이 프로젝트의 민감한 성격과 관련자들의 안전 우려로 세부 사항을 밝힐 순 없지만 선정된 유적지 다수는 유네스코의 세계 위험유산(World Heritage in Danger) 목록에 올라 있다. 대표적인 유적지가 시리아의 팔미라였다. 그래서 IDA 팀은 팔미라 유적지가 파괴되기 전에 그곳에서 디지털 데이터를 확보했다.

유적지가 선정되고 카메라가 제작되자 유네스코와 IDA는 프로젝트 참여자를 모집했다. 자원봉사자다. 현장 책임자 벤 알트슐러 국장은 유네스코의 도움으로 IDA의 박물관 직원, 골동품 연구회 회원, 고고학자로 구성된 팀을 꾸렸다.

팀에 참여한 자원자들은 표적 유적지에 관한 충분한 지식을 갖췄지만 IS의 ‘문화재 청소’를 현장에서 확인하는 작업에는 많은 위험이 따른다. 그래서 모든 팀원은 IS나 동조자들이 직접 장악한 지역을 피해야 한다. 또 특정 유적지의 사진 촬영자 신원을 알기 어렵도록 촬영 시점과 데이터 게재 시점 사이에 3개월의 간격을 둔다.

다른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중동 지역 일부에선 고속 인터넷에 접속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팀원이 메모리 카드를 우송할 수 있도록 선불 배송 봉투를 카메라와 함께 제공한다.

팔미라의 벨 신전 주 건물의 파괴 전(아래)과 후(위)의 모습을 보여주는 위성 사진
전체적으로 프로젝트는 예상보다 순조롭게 진행됐다. 현재 카메라 약 1000대가 현장에 투입됐으며, 연말까지 그 수를 5000대로 늘릴 계획이다. 스캔이 끝난 이미지가 20만 개를 넘어 섰다. 연말까지 100만 개 이상 확보할 계획에 차질이 없을 전망이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고대 건축물의 보존으로 그치지 않는다. 문화유산 보호를 전문으로 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고고학자 캐서린 핸슨 교수는 팔미라와 님루드 같은 고대 도시의 유적지 훼손이 현지 주민에게도 심한 고통을 준다고 말했다. “문화유산은 현지 주민의 정체성과 직결된다는 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수십 세기 동안 동과 서의 교차로였던 중동은 지구상에서 가장 문화가 다양하고 풍부한 지역이다. 예를 들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팔미라의 건축물은 헬레니즘 이전 시대부터 기원전 5∼1세기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그곳 신전 구역은 로마 시대의 교역 중심지, 이슬람교 사원, 기독교 교회, 실크로드의 교차지점이었다. 핸슨 교수는 “지중해 동부에서 가장 잘 보존된 로마 건축물이 팔미라에 있었다”고 말했다.

미셸 회장은 “IS가 그런 유물과 건축물을 깨끗이 쓸어버린다면 머지않아 그 존재마저 잊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팔미라를 완전히 복원할 순 없다. 그러나 IDA의 작업 덕분에 우리는 입체 사진으로 원래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부의 경우 특정 유적지가 재건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콘크리트 3D 인쇄 기술로 파괴된 건축물을 원래와 똑같은 모습으로 다시 지을 수 있다. 미셸 회장은 “콘크리트는 고전 시대에 널리 사용된 건축재로 우리는 사실상 원래 소재를 사용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유네스코와 IDA는 내년 3월 영국 런던에서 열릴 ‘세계 유산의 날’ 행사를 위해 AD 2세기 로마인이 팔미라에 건설한 벨 신전 입구의 개선문을 복제품으로 재건할 계획이다.

벨 신전의 본관과 돌기둥은 지난 8∼9월 폭파됐지만 위성 사진을 보면 심한 손상에도 아치가 완전히 파괴된 건 아니었다. IDA의 카레노프스카 기술팀장은 “재건되는 벨 신전의 아치는 그 구조의 놀라운 복원력으로 내년 3월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시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아치는 영국에 보관됐다가 팔미라가 안정되면 현지로 옮겨질 예정이다.

복제가 ‘가장 순수한 형태’의 보존은 아니지만 대안이 없는 상황에선 최선의 방법이다. 미셸 회장은 “팔미라의 벨 신전 같은 건축물이 단 5분만에 잔해로 무너진 것을 보면 정상적인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말했다.

핸슨 교수는 복제를 지지하지만 건축물의 보존보다 복제 노력의 상징성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녀는 “IS가 신전들을 폭파한 뒤 그 존재의 기억을 물리적으로 지우기 위해 그 현장을 불도저로 밀고 깨끗이 치웠다”고 말했다. 어떤 형태로든 어느 장소에서든 그 유적지를 복제하면 IS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는 뜻이다.

지난 10월 IDA와 유네스코, 두바이 미래박물관재단은 중요한 제휴를 맺었다. 2017년 개장될 두바이 미래박물관은 엔지니어·디자이너·과학자·자본가 등 모든 분야의 선구자들이 모여 미래 기술에 관해 협력하는 혁신 센터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IDA는 두바이 미래박물관재단과의 제휴로 더 많은 문화재 복제와 재건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처음엔 향후 18개월 동안 3∼4개 프로젝트를 구상했지만 이젠 거의 10개 프로젝트를 목표로 한다. 미셸 회장은 “이 같은 제휴로 사기가 크게 올랐다”고 말했다. “중동 지역 후원자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아무리 힘든 작업이라도 목표를 110% 달성할 의지가 생긴다.”

팔미라의 벨 신전이 파괴되기 전의 모습(왼쪽). IDA 팀의 확보한 사진을 이용해 디지털로 복제된 모습(오른쪽).
IDA는 디지털 자료화 작업으로 수집된 모든 이미지를 보관하는 온라인 포털을 개발 중이다. 내년 상반기에 일반 공개될 예정이다. 우리가 전쟁의 희생물로 언론에서 보도될 때까지는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유적지를 입체 사진으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IDA 팀은 ‘파괴가 아닌 건설적인 수단’을 사용해 IS에 반격을 가한다. 그 전술이 효과가 있는 듯하다. IS가 중동의 문화유산을 쓸어버리려는 노력에도 오히려 그 유산이 널리 퍼질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IS의 파괴 행위에 맞서는 IDA의 계획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그들이 침묵시키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히려 창의적인 협력을 위한 대화의 장이 마련되고 있다.

- MARY KARMELEK NEWSWEEK 기자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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