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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구조조정촉진법 놓고 여야 격돌한 이유는?] 한국적 기업 현실 vs 관치 행사 수단

[기업구조조정촉진법 놓고 여야 격돌한 이유는?] 한국적 기업 현실 vs 관치 행사 수단

정우택 국회 정무위원장(가운데)과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오른쪽)은 올해 일몰을 앞둔 기촉법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 사진:뉴시스


summary | 워크아웃의 근거법인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을 놓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다. 여당은 한시법으로 두지 말고 상시화하면서 적용 대상도 전체 기업으로 확대하자고 주장한다. 야당은 금융당국의 합법적인 관치 수단일 뿐이라며 법 폐지와 법정관리 제도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여야가 평행선을 달리는 사이 자칫 애꿎은 기업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작업) 기업들이 떨고 있다. 워크아웃의 근거법인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하 기촉법)을 놓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어서다. 기촉법은 한시법으로 지난 2001년 제정된 이래 세 차례 기한을 연장해왔다. 하지만 2015년 12월 마지막 국회에서 연장되지 않으면 자동폐기 된다. 11월 25일 국회 정무위원회는 법안심사 소위원회를 열었지만 여야간 의견차만 확인했다.



여야 평행선 왜?


여야가 다투는 핵심 쟁점은 극명하게 갈린다. 지난 5월 기촉법 개정안을 발의한 정우택 정무위원장 등 새누리당 측은 매번 기촉법을 연장할 게 아니라 상시화하자고 주장한다. 워크아웃 대상 기업도 현행 신용공여액 500억원 이상 대기업에서 전체 기업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금융감독원장에게 명시적으로 조정권한을 주는 등 정부 역할을 강화하는 안도 담았다. 한 여당 의원은 “한시법인 만큼 후속법이 있어야 구조조정이 지속될 수 있으니 연장은 불가피하다”며 “해외에 없는 법이라고 주장(김기식 의원)하는데, 해외와 상관없이 한국 현실 사정에 맞춰 발전된 법인 만큼 국내 사정에 적합한 법”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기식 의원 등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기촉법 상시화를 반대하고 있다. 2013년 10월 워크아웃을 신청한 경남기업 사태 처럼 당국이 개입해 채권은행을 압박할 여지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경남기업의 주채권은행인 신한은행은 안진회계법인에 실사를 맡겼다. 안진회계법인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출자전환이 필요하고 성완종 전 회장 등 대주주가 보유한 주식을 2.3대 1의 비율로 무상감자 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실제 워크아웃은 1000억원 규모의 출자전환만 실행됐다. 무상감자 부문은 빠졌다. 금융감독원이 신한은행과 안진회계법인에 대주주 입장을 반영해 달라고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결국 경남 기업은 워크아웃을 거치면서 오히려 재무건전성이 악화돼 상장 폐지 됐다. 부실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환부를 도려내야 하는데 정부가 입김을 불어넣어 수술을 방해한 셈이었다.
 기촉법 개정안 vs 통합도산법 개정안
워크아웃으로 구조조정에 실패한 뒤 15개월간의 법정관리 후 기사회생한 팬택. / 사진:중앙포토
야당은 대신 기촉법 폐지와 법정관리 제도를 보완한 ‘채무자 및 파산에 관한 법률(통합도산법)’ 개정안을 제시하고 있다. 기촉법이 관치금융을 심화시키고 도산은 마땅히 법원이 판단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다. 김 의원은 “구조조정에 기촉법이 필요하다는 논리도 결국 정부의 관치금융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며 “기촉법 상시·연장안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11월 18일 이런 내용의 통합도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기촉법은 어떤 효과?


결국 문제는 워크아웃제도다. 워크아웃은 신속한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외환위기 당시 사회적 합의 형태로 시작됐다. 기촉법은 이를 규정하는 법이지만 실제론 한계기업을 워크아웃으로 유도하는 정부의 강제 장치로 볼 수 있다. 재무 상태나 실적이 부실한 기업에 대해 자금을 지원하고 영업을 보장하는 대신 구조조정을 통해 재활을 모색하도록 정부가 금융시장에 개입할 여지를 주고 있다.

기촉법은 한국에만 있는 법이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보니 한국 경제만의 특수성이 법률에 녹아있다. 외환위기 당시 ‘대마불사’의 신화는 무너졌다. 이들 기업의 채권을 쥐고 있던 은행 역시 신용위기에 빠졌다. 은행은 저마다 부실기업 채권을 회수하러 나섰다.

자율협약에 따른 워크아웃을 하면 채권회수가 늦어지는 대신 시간만 지나면 빌려준 돈을 모두 회수할 있다. 하지만 발등에 불이 붙은 은행은 손실을 보더라도 채권을 회수하려 했다. 금융채권단(은행)이 자율협약을 거부하면서 수많은 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억울한 기업 구제하는 수단?
기촉법 없이도 워크아웃은 금융채권단이 100% 동의하면 자율 협약에 따라 진행한다. 만장일치 동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법정 관리 대상이 된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금융거래나 영업이 제한된다. 부실 자산을 완전히 정리하는 동안 기업의 거래는 끊긴다. 또 이사 이상 경영진의 모든 스톡옵션이 사라지고, 일률적으로 이사급은 30%, 사장급은 50% 내외로 연봉이 삭감된다. 대신 채권단 권고에 따라 법원이 지시한 대로 자산을 신속하게 매각해야 해서 부실을 털 수 있다.

법정관리로 재무구조를 건전화하는 건 좋지만 단점이 있다. 은행은 정크본드가 된 채권을 할인하는 등 헐값에 정리해야 해서 손실을 입는다. 또 대기업처럼 하청업체가 많이 딸린 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탄탄했던 중소기업들까지 억울하게 연쇄부도에 빠질 수 있다.

이와 달리 워크아웃에 들어가면 숨통이 트인다. 기업에 추가 자금 지원이 시작되고 영업도 계속 할 수 있다. 채권단이 경영에 개입할 수 있지만 실적이 정상화되면 기업이 경영권을 돌려받을 가능성도 있다. 자산을 매각하지 않고 영업에 활용할 수도 있다. 반면 단점도 있다. 막대한 공적자금이 부실기업에 투입돼 기업들의 모럴해저드가 우려된다. 금융당국이 시장에 개입할 여지를 남기는 것도 문제다.

그럼에도 기촉법은 재활 가능성이 있는 기업의 기사회생에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다. 2000년대 들어 정부는 기업을 둘러싼 채권단간 자율적 합의가 쉽지 않다는 데 착안해 법률로 법정관리에 갈 기업을 워크아웃으로 유도했다. 채권단의 4분의 3만 합의하면 강제로 워크아웃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대기업 구조조정은 크게 3가지로 나눠 진행된다. ▶금융채권단이 100% 동의하면 자율협약에 따른 구조조정 ▶75% 동의하면 기촉법상 워크아웃 ▶이보다 동의률이 낮으면 기업회생이나 파산 등의 수순으로 가는 법정관리다. 소수 채권단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가능한 금융 지원을 해서 기업이 영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이와 달리 중소기업 구조조정은 자율협약 혹은 법정관리로만 진행된다. 외국에서도 2가지 단계로만 구조조정이 진행된다. 기촉법은 대기업의 시장 영향력이 대단히 큰 한국의 특징에 따른, 대기업·중견기업 회생을 위해 소수 채권자 의견을 일부 배제시키는 법률로 평가 받는다.

정부는 워크아웃으로 파산할 기업을 구제해왔다. 각 기업의 채권은행은 일정 기간마다 기업에 대한 신용위험을 평가한다. 기업이 C등급을 받으면 워크아웃 권고 대상이 된다. 이럴 경우 7일 이내 워크아웃을 신청해야 한다. D등급을 받으면 법정관리 대상이다. 기업회생이나 파산 등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통상 기업이 곧바로 D등급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재무상태가 점차 나빠지면서 C등급을 받았다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D등급으로 떨어진다. 그래서 기촉법은 한계기업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을 C등급 선에서 막는다. 법정관리로 법원이 파산을 선고하기 전 재무상황을 개선토록 하는 방식이다.
 대법원은 한시적 재연장에 무게
그러나 2010~2011년 사이 3차 기촉법이 시행될 무렵에는 워크아웃 대상 기업 수가 크게 감소했다. 정부는 이때부턴 기업이 스스로 워크아웃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강제성이 사라지자 기업들은 워크아웃과 달리 경영권 유지에 유리한 회생절차(DIP)를 오히려 선호했다. 워크아웃이 경영권을 중시하는 기업에겐 부담이 될 수도 있단 얘기다.



기촉법 사라지면?


워크아웃제도의 근거가 사라진다. 채권단은 자율협약에 따른 공동관리나 법정관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자율협약은 다양한 채권단 전체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성사되기 어렵다”면서 “이 때문에 한계기업들이 바로 법정관리에 내몰릴 우려가 크다”고 설명했다. 살 수 있는 기업도 자칫 ‘좀비기업’으로 몰려 쓰러질 수 있다는 얘기다. 법안이 폐기되면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지 못한 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간다. 기업은 회생 기회를 잃은 채 금융 거래와 영업이 제한돼 자산 매각이나 파산 등의 수순에 놓이게 된다.

법원의 생각은 어떨까? 대법원은 정우택 의원 발의안에 대한 의견서에서 ‘헌법상 사적자치의 침해와 재산권의 침해 등 위헌성 소지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기촉법 상시화를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상시화에 반대 의견을 냈다. 다만 ‘워크아웃에 따른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진입 지연 방지, 주채권은행의 책임성 강화 등 보완책이 마련된다면 기촉법을 한시법으로 재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법원이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가 되는 사례가 있다. 팬오션(STX팬오션)의 경우, 법정관리 중에도 워크아웃에서처럼 신규 자금 지원을 받은 바 있다. 기촉법이 아니더라도 워크아웃과 절차가 유사한 자율협약(공동관리)도 있기 때문에 모든 한계기업이 법정관리가 되진 않는다는 전망도 있다.

- 박상주 기자 park.sangjoo@joins.com



기업회생절차: 법원 관리 아래 진행되는 기업 구조조정 절차로 과거 법정관리에 해당된다. 해당 기업을 살리는 것이 청산할 때 가치보다 높고, 갱생 가망이 있다고 판단될 때 진행된다.



법정관리: 부도를 내고 파산 위기에 처한 기업이 회생 가능성이 보이는 경우에 법원의 결정에 따라 법원에서 지정한 제3자가 자금을 비롯한 기업활동 전반을 대신 관리하는 제도



자율협약: 자율협약은 법적 강제성 없이 말 그대로 채권단의 자율적 동의로 채무 조정 등이 이뤄진다. 워크아웃은 채권단의 75% 찬성으로 통과되는 법적 구조조정 장치다.
 [박스기사] 기촉법 시행 그 후 - 183개 기업 중 60개 워크아웃 졸업
기촉법 시행 이후 올해까지 모두 183개 기업이 법 적용 대상이었다. 이 중 60개 기업이 워크아웃을 졸업했고 73개 기업은 중단했다. 아직 워크아웃을 진행중인 기업은 50개다. 기촉법 적용 대상 기업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60여개에 이를 정도로 늘었다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2001년 현대건설과 하이닉스를 시작으로 쌍용·대림수산·SK네트웍스 등이 기촉법상 워크아웃을 경험했다. 대기업 워크아웃이 많은 건 이들 기업에 협약채권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2009~2014년 사이 워크아웃을 시작한 80개 기업의 채권 구성을 보면 협약이 93.7%에 달한다. 협약채권 비중이 클수록 대형 채권자들간 워크아웃 동의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기촉법은 안착까지 쉽지 않았다. 2006년 1월부터 2007년 11월까지 실효된 1차 기촉법부터 그랬다. 현대LCD, VK 등 6개 대기업이 자율협약을 통해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이 중 계열사 관계인 팬택과 팬택앤큐리텔만 2009년 합병이 완료되면서 정상적으로 워크아웃이 추진됐다. 나머지 4개사는 워크아웃 과정 중에 채권단의 비협조로 절차가 지연되면서 워크아웃이 무산됐다.

현대LCD는 2006년 2월 자율협약에 참여했다. 7개 채권금융회사 중 저축은행 같은 2금융권 2개사를 제외한 5개 은행이 참여했다. 채권은행은 공동관리를 시작한 이후 모두 455억원에 달하는 채권행사를 유예해줬다. 하지만 2금융권은 협약에 참여하지 않았단 이유를 들어 120억원의 채권을 회수했다. 이 때문에 유동성 위기에 빠진 현대LCD는 그 해 7월 최종부도로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VK도 채권단간 의견 조율 중 부도가 나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2006년 2월 우리은행이 부실징후기업으로 선정해 주채권은행인 농협에 이를 통보했다. 하지만 채권단간 이견이 길어지며 5개월간 워크아웃 개시가 지연됐다. 결국 워크아웃이 무산됐다.

제2차 실효는 2011년 1월~5월까지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건설·조선·해운 등 경기 민감 업종의 실적이 악화되면서 관련 기업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떠올랐다. 삼부토건과 동양건설 등 많은 건설사가 자율협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이 역시 채권단 합의에 이르지 못해 워크아웃이 무산됐다.

정상적으로 진행 중이던 워크아웃마저 중단되는 일도 벌어졌다. 채권 규모 1조3378억원의 세광중공업과 1조509억원의 월드건설은 워크아웃이 중단돼 시장에 혼란을 불렀다.

기촉법이 실효되지 않던 기간인 2011년 2월, 진흥기업은 자율협약에 따른 워크아웃을 추진했다. 채권은행은 만장일치로 워크아웃에 동의했지만 2금융권이 이에 불참했다. 진흥기업은 이듬해 기촉법이 재입법되면서 자율협약에서 기촉법상 워크아웃으로 절차를 전환했다. 2금융권의 채권 회수를 유예해 경영정상화로 방향을 틀고, 출자전환 제한의 예외 등 기촉법상 특례에 따라 채권단의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워크아웃은 ‘조기졸업’할 때 성공이라고 평가한다. 2003년 12월 수익성이 떨어지고 해외 사업에서 실패한 SK네트웍스가 좋은 예다. 대규모 분식회계까지 드러나면서 기업 신뢰도마저 크게 떨어졌다. 국내 채권단은 2조2000억원의 출자전환과 1조2000억원의 CBO(채권현금매입)에 동참하고 해외 채권단도 8000억원의 CBO에 나서면서 회생절차를 피했다.

SK네트웍스는 계획보다 8개월 일찍(2007년 4월)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금호타이어도 성공 사례다. 금융위기 이후 실적이 악화되고 금호그룹 부실화로 2010년 1월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신규 자금 9029억원과 출자전환으로 4610억원을 지원했다. 금호타이어는 영업능력을 회복하면서 2014년 12월 워크아웃에서 졸업했다. 채권단은 출자전환 때 5000원이던 주가가 올라 수익을 올리고 여신건전성도 개선했다.

세하는 유전개발사업에 대한 투자금 회수가 늦어지면서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업황까지 나빠져 2013년 12월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100억원의 신규 자금을 지원하는 내용으로 워크아웃을 시작했고 1000억원의 유암코(연합자산관리) 투자를 유치하면서 2015년 4월 조기졸업에 성공했다. 채권단은 추가 지원 없이 56.7%로 예상했던 채권회수율을 79.2%로 끌어올렸다. 그 밖에 하이닉스, 현대건설, 삼보, STS반도체, 인천공항에너지, 재영솔루텍, 해원에스티 등도 워크아웃에서 무사히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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